[단비인터뷰] ‘청년밥상문간’ 이사장 이문수 신부

“흔히 ‘문간방’이라고 할 때는 대문 곁에 있는 방 한 칸을 의미하는데, 집 밖과 집 안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공간을 말해요. ‘청년문간’이 청년들이 세상에 나가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다가 피곤하고 지치면 와서 좀 쉬고, 그러다가 또다시 세상에 나가는 그런 문간방 같은 곳이 됐으면 좋겠어요.”

서울시 정릉동 정릉시장 골목에는 주머니가 얇은 청년들이 단돈 3천 원에 따끈한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 글라셋선교수도회 이문수 가브리엘(47) 신부가 운영하는 ‘청년밥상문간’이다. 2017년에 문을 연 청년밥상문간은 지난 6월 서울시 신촌동에 2호점을 열었고, 지금은 대학로에서 3호점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5월 티비엔(tvN)의 <유퀴즈>에 출연한 후 유명세를 치르느라 바빠진 이 신부를 지난 6월 22일 청년밥상문간 정릉점에서 만나고, 지난 9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20대 여성의 고독사가 남긴 숙제  

▲ 청년밥상문간 정릉점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는 이문수 신부. ⓒ 유지인

2015년 겨울, 서울 신림동의 한 고시원에서 20대 여성이 지병과 굶주림으로 숨진 뒤 보름 만에 발견됐다. 이 소식에 가슴이 아팠던 강 세실리아 수녀(전교 가르멜수녀회)는 친분이 있던 이 신부에게 “청년을 위한 식당을 운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홀몸 어르신이나 노숙인을 위한 식당처럼, 고립된 청년을 위한 식당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자신이 속한 수녀회에 제안했지만 성사되지 못해 이 신부에게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저도 한 청년의 고독사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했고, 마침 저희 수도회에서도 청년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뭔가 새로운 일을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수녀님 말씀을 들었을 때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날 저녁 이 신부는 수도원으로 돌아가 동료 신부들과 식당 운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신부는 수도회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사회가 기대하는 신부의 역할과 식당 운영에 차이가 크다고 생각했고, 식당 운영에 따르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걱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도회는 이 신부의 제안에 긍정적으로 호응했다. 이 신부의 제안이 수도회에서 통과됐고, ‘청년문간’이 그의 손에 맡겨졌다. 

3천만 원으로 옥상에 꾸민 카페 같은 공간 

이 신부는 수도원에서 받은 후원금 3천만 원으로 밥집을 열 공간을 찾다가 정릉시장 골목의 한 건물을 발견했다. 북한산 전경이 보이는 건물 옥상을 보고, 바로 계약을 결심했다. 이 신부는 “탁 트인 옥상에서 청년들이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모습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사무실로 사용되던 건물을 밥집으로 개조하며 그는 ‘청년들이 오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데 각별히 신경을 썼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니까 카페 같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디 예쁜 카페나 식당이 있으면, 음식도 음식이지만 분위기 자체가 좋아서 가잖아요. 청년들이 그냥 이 공간 자체가 좋아서 오고 싶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대신 제가 가진 3천만 원 안에서 다 해결해야 했죠.”

▲ 서울시 성북구 보국문로 11길 건물 2층에 있는 청년밥상문간의 외관. ⓒ 유지인

초록 식물 테라스에선 ‘달빛영화제’도 

청년밥상문간의 메뉴는 김치찌개 하나다. 계절 메뉴로 청국장, 비빔밥, 냉라면 등을 추가한 적도 있었지만 부족한 인력과 자금으로 감당하기가 어려워 김치찌개 한 가지만 주력하기로 했다. 가격은 무료로 하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오히려 청년들이 방문을 주저할 수도 있다고 판단해 대학교 학식 평균 가격인 3천 원으로 결정했다. 이 신부는 그러나 “3천 원도 부담스러운 청년이 있을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문간을 찾는 손님은 하루 평균 80~90명이다. 이 신부가 <유퀴즈>에 출연한 직후에는 손님이 코로나 이전의 150% 정도로 늘기도 했지만 요즘은 코로나 이전의 90% 정도라고 한다. 

청년밥상문간은 중앙 계단 통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선 밥집을, 다른 쪽에선 카페를 운영한다. 밥집 벽에는 한 끼 식사를 맛있게 한 청년들이 고마운 마음을 전한 메모지가 빼곡하게 붙어있다. 카페에는 버튼을 누르면 원두 갈기부터 커피 추출까지 자동으로 되는 커피머신이 비치돼 있다. 커피값은 옆에 놓인 모금함에 자유롭게 내면 된다. 카페의 2~6인용 테이블에서는 다양한 모임이 이뤄진다. 인터뷰 날은 카페 한편에서 그림 그리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계단으로 한 층 올라가면 20평 남짓한 옥상 테라스가 있다. 초록색 식물과 알록달록한 장식품들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등을 기대고 앉을 수 있는 좌석들도 여럿 마련돼 있다. 천장에는 간이 지붕 같은 미색 천이 드리워져, 햇빛이 쨍쨍한 한낮에도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 

2019년부터 이곳에서 ‘달빛영화제’가 열렸다. 영화평론가와 심리상담사가 영화를 선정하고, 상영 후에는 청년들과 영화감독이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는 방식이다. 지난해에는 ‘고립청년들의 자립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찬실이는 복도 많지>와 <카트> 등 8편을 상영했다. 참가비는 무료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잠시 중단했다. 

▲ 청년밥상문간 정릉점의 옥상 정경. 손님들은 옥상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이곳에서 ‘달빛영화제’도 열린다. ⓒ 청년문간

지난해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새 출발  

밥집으로 시작한 청년문간은 지난해 4월 사회적협동조합으로 거듭났다. 청년문간사회적협동조합은 ‘청년희망로드’ ‘청년공감 잇다’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청년희망로드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하기 전인 2019년에 청년 8명이 이 신부와 함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는 것으로 시작됐다. 공개모집으로 선발된 참가자들은 개인당 50만 원만 냈고 청년문간에서 300만 원씩 여행비를 후원했다. 올해는 9월 27일부터 10월 16일까지 제주도 올레길을 걷는 청년희망로드가 진행되고 있다. 

▲ 2019년 이문수 신부와 청년 8명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는 ‘청년희망로드’를 다녀왔다. ⓒ 청년문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진행하고 있는 ‘청년공감 잇다’는 청년들이 노인의 생애를 직접 듣고, 그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서울 성북구청에서 함께 지원하는데, 청년과 노인의 소통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신부는 “청년들이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청년공감 잇다를 통해 완성된 그림책은 참여한 노인에게 증정된다. 이 신부는 “어르신들이 책을 받고 너무나 좋아하시더라”고 말했다. 

▲ 서울 성북종합노인센터에서 어르신의 인생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는 청년들. 오른쪽은 완성된 그림책. ⓒ 유지인

청년문간에서 많은 청년들을 만나는 이 신부는 그들이 마주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청년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데, 그 시기를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취업에만 매달려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사회가 함께 청년들의 불안감을 덜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청년문간이 그런 공간의 하나가 되길 기대한다”며 “다양한 경험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완충 지대가 되어 준다”고 덧붙였다. 

“많이 힘들겠지만, 청년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일이 안 풀리고 취업도 안 되면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겠어요. 그래도 자기 자신은 끝까지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힘들면 무너지는 건 당연한 건데, 그래도 포기는 하지 말아야 누군가가 내미는 손도 잡을 수가 있거든요.”

만화가를 꿈꾸던 청년이 사제가 된 까닭은  

이 신부도 치열한 입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고, 한때 좋은 직장과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만화 그리기를 좋아해 만화가를 꿈꾸기도 했던 그가 성직자의 삶을 선택한 계기는 대학교 3학년 때 가톨릭 동아리에서 떠난 수련회였다. 당시 성서연구 시간에 ‘예수님이 행복 그 자체’라는 걸 경험했다고 한다. 이 신부는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면 주변에 알리고 싶듯이,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그런 삶의 일환으로 이 신부는 수도권에만 청년문간 150개 지점을 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수도회에서도 이 신부의 뜻을 지지하며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 청년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청년밥상문간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문수 신부. © 청년문간

이 신부는 밥집 외에도 많은 구상을 한다고 말했다. 산티아고 까미노 순례길을 걸으면서 ‘알베르게’와 같은 숙박 공간을 운영하는 상상도 했다고 한다. 알베르게는 순례자들을 위한 숙박시설인데 잠자리와 식사를 저렴하게 제공한다. 이 신부는 거기에 집을 하나 빌려서 한국에서 청년들을 보내 운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영미권 청년들이 학업을 잠시 멈추고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찾는 기간인 ‘갭이어’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의 열정은 문간을 찾아오는 청년들에게도 전달되고 있다. 2019년 6월부터 아홉 달간 문간에서 시간제 일을 했던 김영훈(29) 씨는 일을 그만둔 후로도 후원금을 여러 차례 보내고, 2호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김 씨는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당시에 대학원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고민하느라 혼란스러웠다”며 “이 신부님 덕분에 세상에 비관적인 시선을 거두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견뎌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 신부의 소개로 서울시 청년 월세 지원금을 20만 원씩 받을 수 있었는데, 지원금이 들어올 때마다 그중 절반을 문간에 기부했다고 한다.

“우리 청년들이 공부를 하다가, 혹은 직장생활을 하다가 스스로 삶을 돌아보거나 쉬고 싶을 때 찾아올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청년문간은 또 오는 22일까지 <2030, 청년영화제>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는데, 영화에 꿈이 있는 20~35세 청년이 영화감독 멘토와 함께 2~3분 내외의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다. 제작비도 청년문간이 지원한다. 이 신부는 “지금 구상하는 것들을 다 하게 된다면 청년문간은 굉장히 신나고 재미있는 곳이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기획·취재: 유지인 기자/ 촬영·편집: 이성현 PD)


편집: 이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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