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중증장애인은 사용할 수 없는 장애인화장실

2017년, 박은경(51) 씨는 경기도 분당의 한 대학 병원에서 낭패를 겪었다. 뇌병변으로 하루 대부분을 누워 생활하는 와상장애 자녀의 기저귀가 넘쳤는데, 갈아입힐 곳이 없었다. 처음에는 병원 침대를 빌리려 했다. 병원 쪽은 “입원실 말고는 침대가 없다”며 거절했다. 아무리 찾아도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박 씨는 장애인 화장실을 향했다. 장애인 화장실에도 누울 공간이나 시설은 없었다. 결국 화장실 한편에서 활동지원사가 자녀를 안고 있는 동안, 박 씨가 기저귀와 바지를 갈았다. 박 씨는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뇌병변 장애는 뇌의 손상으로 나타난 장애를 통칭한다. 시각・청각・언어 등 여러 유형으로 장애가 나타난다. 둘 이상의 장애가 중복되면 중복뇌병변장애라고 한다. 장애 정도는 목욕하기・먹기・화장실 이용・계단 오르내리기 같은 생활동작에서 보호자 의존도를 따지는 수정바델지수(MBI, Modified Barthel Index)로 측정한다. 중증은 일상수행동작이 어려운 1급에서 3급까지의 장애를 말한다.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은 장애정도가 1급인 경우가 다수다. 뇌병변 1급은 동작수행을 할 수 없어 일상생활에서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이들은 보호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해 살아간다. 배변 문제 같은 기본적인 생리활동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이들은 독립적으로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한다. 보호자가 기저귀를 채우고 갈아줘야 한다. 한국에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이 얼마나 되는지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대략 2만 명에서 3만 명으로 추정된다.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 보호자에게 박 씨가 겪었던 낭패는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공공장소에 기저귀를 갈 수 있는 마땅한 시설이나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최은경 한국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이하 중애모) 이사는 “휴게소, 역사, 관공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대학병원에도 기저귀를 갈 공간이 없다”고 말한다. 그럼 중증뇌병변장애인의 보호자는 어떻게 자녀 기저귀를 가는 걸까? 지난 9월, 중애모 소속 보호자 28명을 설문조사했다. 답변은 모두 서술형으로 작성됐다. 

자괴감, 미안함, 눈치, 그도 아니면...

응답자 28명 가운데 8명이 “수유실, 유아 휴게실, 사무실, 의무실 등 (독립된) 공간을 찾는다”고 답한다. 남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원래 용도와는 다르니 관리자나 다른 사용자의 눈치를 봐야 한다. 때로는 사정하거나 싸우기도 한다. 

다른 대안은 자신들의 차량을 이용하는 것이다. 8명이 “차에서 해결한다”고 답했다. 차에서 성인 자녀의 기저귀를 가는 것은 기예에 가깝다. 승용차 뒷좌석 길이는 120cm정도인데 신장이 130cm만 넘어도 차가 꽉 찬다. 결국 한쪽 문을 열고 기저귀를 간다. 그러고도 보호자는 좁은 공간 때문에 한참을 씨름한다. 뇌병변장애 자녀를 가진 김옥주(45) 씨는 “어쩔 수 없이 차 안에서 기저귀를 갈았는데, (상체를 차 안에 두고) 엉덩이만 문에 걸친 상태로 갈았다”고 답했다. 

차문이 열린 채 기저귀를 교체하니 아무데서나 차를 댈 수 없다. 보호자들은 사람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구석공간을 찾는다. 고속도로 휴게소라면 덤프트럭 주차장 뒤편을, 도심이라면 빌딩 주차장 한쪽 구석을 이용한다. 최은경 중애모 이사는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라면,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말한다.     

여의치 않으면 결국 화장실을 사용한다. 28명의 응답자 가운데 5명이 “장애인 화장실 안에 돗자리를 깔고 해결했다”고 답했다. 중증뇌병변장애인의 보호자 김미경(53) 씨는 “야외로 현장학습을 갔을 때 공간이 없어 공공화장실의 더러운 바닥에서 돗자리를 펼치고 신변처리를 했다”고 답했다. 김 씨는 화장실, 그것도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자녀의 기저귀를 간 당시 경험을 “자괴감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일반 화장실이 아닌 장애인 화장실도 이들에겐 적합하지 않다. 기저귀를 교체하려면 자녀를 바닥에 눕혀야 하는데, 보호자가 직접 중증뇌병변장애인을 휠체어에서 바닥으로, 바닥에서 휠체어로 옮기게 된다. 이 과정에서 보호자의 힘이 빠지면 장애인은 낙상을 입는다. 중증뇌병변장애인은 신체 활동이 적어 골밀도가 낮고 근육이 적다. 낮은 곳에서 낙상하더라도 골절과 같은 큰 부상으로 이어진다. 별 일 없이 바닥에 눕힌다 해도 문제다. 근육 긴장도가 높은 중증뇌병변장애인을 딱딱한 바닥에 눕히면 몸이 말리면서 근육 수축이 더 심해진다. 

▲ 최은경(59) 중애모 이사는 중증중복뇌병변장애를 가진 26살 아들을 돌본다. 그는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장애인에게 필요한 기저귀와 기능성 제품 등을 제작하는 사회적 기업 마마품의 대표이기도 하다. ⓒ 오동욱

‘자체 해결’에 실패한 보호자는 외출을 줄이거나 아예 포기하기도 한다. 28명의 응답자 가운데 4명은 “집으로 돌아와 해결한다”고 답했다. 강혜숙(51) 씨는 “외래진료를 받으러 간 병원에 (기저귀 교환) 공간이 없어 결국 집에 돌아와 기저귀를 갈아줬다”고 말했다. 그 동안 자녀는 젖은 기저귀를 계속 차고 있었다. 강 씨는 “앞으로 웬만하면 아이를 데려가지 않으려 한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병이 생기기도 한다. 26살 뇌병변 자녀가 있는 이정욱(55) 중애모 대표는 “아이가 밖에서 기저귀 교환을 못하니 소변을 참는 버릇이 생겼다”며 “12시간 이상 소변을 참아 방광에 이상이 생겼고, 결국 병원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렇듯 한국에는 중증뇌병변장애인의 이동을 위한 최소한의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다. 기저귀 교체 공간이 없기에 뇌병변 보호자는 더러운 화장실 바닥에서 기저귀를 갈며 자괴감을 느끼고, 좁은 차 안에서 불안해 하는 자녀에게 미안해한다. 허락되지 않은 공간을 찾으며 비장애인들의 눈치를 살피고, 그도 아니면 외출을 포기한다. 최은경 이사는 전화 통화에서 “지금이 21세기라는 게 믿겨지세요?”라고 물었다.

법마저도 외면한 중증 뇌병변장애인

장애인은 이동할 때 자동차 도로와 기차를 주로 이용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19년 발간한 <장애인의 지역 간 이동 편의 증진을 위한 교통 서비스 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역을 이동할 때 장애인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자동차다. 승용차(32.8%), 고속버스(13.1%), 장애인 택시(7.4%) 등을 합해 전체의 53.3%를 차지한다. 다음으로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기차(22.7%)다. 도로 위 휴게소와 철도 역사에 중증뇌병변장애인을 위한 화장실 시설이 있다면, 이들의 이동도 훨씬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런 공간은 얼마나 될까?

지난달 6일 한국철도공사와 한국도로공사에 ‘중증뇌병변장애인의 기저귀 교환 시설’에 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한국도로공사 소유의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199개소에는 모두 장애인 화장실이 있지만, 중증뇌병변장애인이 기저귀를 갈 수 있는 별도 공간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한국도로공사는 “(중증뇌병변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간이침대 설치는 권장사항으로 (한국도로)공사와 계약을 맺은 운영업체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한다”면서도 “최중증장애인이 기저귀를 갈 수 있는 별도 공간은 없다”고 답했다. 

철도 역사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일반 시민이 이용하는 여객취급역사는 전국에 479개가 있다. 신축 예정이거나 외딴 곳에 있는 역을 제외한 460개 역사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최중증장애인 화장실 시설은 없다”고 한국철도공사는 밝혔다. 

▲ 경기광주고속도로휴게소(광주 방향)의 장애인 화장실이다. 넓어 보이는 이 공간을 중증뇌병변장애인은 사용할 수 없다. 기저귀를 갈 수 있는 침대가 없기 때문이다. 2018년, 한국도로공사는 장애인 화장실을 다목적 화장실로 바꾸며 접이 침대를 집어넣었지만, 높낮이가 조절되지 않고 휠체어 이동을 방해하는 단순 접이 침대를 중증뇌병변장애인과 그 보호자는 사용할 수 없었다. ⓒ 조한주

최중증장애인을 위한 화장실을 마련하지 않았어도 이들 기관이 법률을 어긴 것은 아니다.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 증진법’(이하 교통약자법)과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시행법’(이하 장애인편의법)은 장애인 화장실 같은 편의시설을 규정한다. 교통약자법은 주로 교통시설에 관한 편의시설을, 장애인편의법은 일상 공간 속 편의시설을 적어뒀다. 두 법과 하위 시행령, 시행규칙 어느 곳에도 중증뇌병변장애인을 위한 화장실 또는 기저귀 교환 공간을 마련하라는 내용은 없다.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들은 법 바깥에 있다. 집 밖에 나서는 순간부터 기본적인 생리현상도 해결할 수 없다. 정숙경(44) 씨는 “자주 가는 공공시설에 민원도 넣고 부탁도 했는데, ‘장애인 화장실에 관련된 법에 성인 기저귀 교환대는 해당되지 않으니 (당사자들이 나서서) 법을 고치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안성훈 한국장애인개발원 유니버셜디자인팀장은 <단비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건물주들은 (장애인 화장실 등) 공용공간이 늘어나길 원치 않는다”고 지적했다. 법률이 규정하는 강제성이 없는 한, 중증뇌병변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마련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민간이 힘들면 공공기관부터라도”

중증뇌병변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최은경 중애모 이사는 “4~5평 공간에 침대, 소파 그리고 쓰레기통이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침대다. 높이가 고정된 단순 접이식 침대가 아니라, 높이 조절이 되는 침대여야 한다. 휠체어에서 침대로 이동할 때는 침대가 낮아야 하지만, 침대에서 들어 휠체어로 옮길 때는 보호자가 지탱하기 수월하도록 높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 이사는 이런 시설이 갖춰진 유일한 곳으로 서울 연건동에 있는 서울대치과병원 중앙장애인구강진료센터(이하 중앙센터)의 ‘장애인 가족실’을 꼽았다. 

▲ 서울대치과병원 중앙장애인구강진료센터 2층에 있는 장애인 가족실이다. 오른쪽 위의 건물 평면도를 보면 화장실, 장애인화장실 등과 별개로 마련돼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는 장애인 가족실 내부다. 소파, 수납장, 쓰레기통, 그리고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침대가 놓여있다. 침대 옆 공간이 비어 있어 휠체어와 보호자가 오가기에 무리가 없다. ⓒ 오동욱

중앙센터는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치과시설이다. 지난 2019년 8월에 문을 열었다. 장애인 가족실은 중앙센터 2층 화장실 옆에 있다. 장애인 가족실의 이용 안내문에는 ‘장애인 환자의 기저귀 교환 혹은 수유를 위한 공간’이라 적혀있다. 가족실 안에 들어가면 3평 남짓한 공간이 있다. 침대, 소파, 수납장 그리고 쓰레기통이 있다. 침대가 한쪽 면을 차지하지만, 바로 옆 공간은 비어있어 휠체어가 진입할 정도의 넓이가 된다. 침대에는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손잡이가 있다. 대략 80cm에서 130cm까지 높낮이 조절이 된다. 

김재경 중앙센터 중앙사무국장은 “장애인 이용객이 진료 대기 중 불편을 겪지 않고 독립된 공간에 누워있을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가 장애인 화장실 옆에 붙은 별도공간인 ‘장애인 가족실’이다. 김 국장은 “기존의 장애인 화장실 안에 침대를 놓으면 휠체어로 화장실을 이용하는 다른 이용객이 불편하고, 기저귀를 가는 중증장애인이나 그 보호자도 불편하다”며 별도 공간을 마련한 이유를 설명했다. 

김 국장은 지난 2년간 ‘장애인 가족실’을 운영하며 “저런 시설이 굳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저 시설(장애인 가족실)이 특혜라기보다 중증 장애인의 기본 시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비장애인들이 아무 고민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장애인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차별이 사라진 상태잖아요. 장애인 가족실 같은 공간이 민간 시설에 마련되면 좋겠지만, 공공기관이라도 먼저 저런 시설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장애인 가족실에 있는 침대다. 높이 조절이 가능하고, 떨어짐 방지를 위한 손잡이 난간도 접었다 펼 수 있다. ⓒ 오동욱

‘법이 없다’는 말이 핑계가 될까?

▲ 경기광주고속도로휴게소(광주방향)의 여성화장실에 있는 파우더 존이다. 4평정도 크기다. 최은경 중애모 이사는 공공휴게소에 있는 파우더존 정도의 공간이라면 중증뇌병변장애인과 그 보호자가 충분히 기저귀를 갈 수 있다고 말한다. ⓒ 조한주

관련법이 없다고 이런 시설을 만들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 필요성을 절감하는 사회 인식이 높아지면 법률상 정해지지 않은 시설도 마련된다. 2014년 고속도로 휴게소 내 ‘파우더존’은 41개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웬만한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파우더존이 있다. 여성을 배려한 시설이다. 파우더존은 특정 법률에 근거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한국도로공사는 (파우더존이) 법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지만, 고객들에게 편의시설을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설치했다고 파우더존이 설치된 이유를 설명했다. 2만~3만 명으로 추산되는 중증뇌병변장애인들도 그런 편의시설을 소망하고 있다. 


편집 : 이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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