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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곳엔 냄새가 난다
[단비발언대]
2021년 09월 30일 (목) 19:45:31 강주영 기자 juyo9642@naver.com
   
▲ 강주영 기자

냄새의 기억은 강렬하다. 7살 때부터 살기 시작한 우리 동네 뒷동산에는 큰 과수원과 양계장이 있었다. 그곳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고 그 너머로 지독한 닭똥 냄새가 풍기곤 했다. 초등학교 시절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유언비어가 돌았다. 큰 산을 통째로 소유하고 철저히 통제하는 것으로 보아 뒷동산 주인이 스크루지 같을 거라고 떠들어댔다. 사과 서리를 하고 싶었던 건지 산을 못 올라가는 것이 괘씸했던 건지 틈만 나면 그 철조망을 어떻게 뚫고 들어가나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늘 적과 대치하는 것처럼 굴었다. 한 번은 철조망에 대고 소리를 질렀는데 멀리서 주인 할아버지가 쫓아 내려오는 걸 보고 줄행랑을 쳤다.

또 다른 냄새의 기억은 2년 전에 겪은 것이 선명하다. 꾸리꾸리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냄새만큼 또 내 옆에 누군가가 있음을 인지하기 좋은 신호도 없는 듯했다. 웬만해선 막을 수 없는 사람 냄새, 그곳은 바로 영국의 공공도서관이었다. 세계에서 손꼽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즐비한 런던에서도 가장 인상깊은 장소는 도서관이었다. 냄새의 충격이 선명하게 남은 이유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이었다.

도서관에는 부랑자와 집시가 많았다. 부촌에 있는 공공도서관도 마찬가지였다. 더러운 배낭을 바닥에 흩뜨려 놓고 소파에 앉아서 낮잠을 잤다. 그 옆에서는 정갈하게 옷을 차려입은 신사가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았다. 누구 하나 그들을 내쫓거나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대학생, 교수, 장애인, 난민 그리고 부랑자. 모두가 같은 공간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뱉아도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일하는 카페에 오던 단골도 그곳에서 마주쳤다. 그 공간에서 우리는 고객님과 알바생이 아닌 그저 책을 읽으러 온 ‘시민’일 뿐이었다. 

복지란 냄새를 공유하는 걸까?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 스크루지 영감의 뒷동산을 공원으로 바꾸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주인이 어떤 영문인지 뒷동산 전부를 지자체에 넘겼다는 것이다. 개인만의 영역이던 뒷동산에서 철조망이 사라졌고 나도 그 산에 올라갔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분 혼자 봐왔을 동네 전망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이제 동네 노인들이 아침저녁마다 운동을 함께하고 젊은 부부가 아이들을 데려와 논다. 똥냄새를 풍기던 사과밭은 이제 자작나무, 진달래, 개나리 같은 수목이 자란다. 사유지가 공유지로 변하자 더 많은 이들이 그 뒷동산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 오스트리아 빈은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힌다. 이곳 시민에게 사랑받는 사회주택(social housing)은 부동산 불평등을 해소하는 좋은 선례로 언급된다. 부동산을 사유재산이 아닌 공유재로 옮겨왔을 때 다수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지난 29일, 임대료 폭등과 주택난을 겪어온 독일 베를린은 도시 내 주택을 공공 소유로 전환해야 하는가를 놓고 주민투표를 치렀다. 주민 절반 이상이 이에 동의하면서 공공임대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KBS

우리 사회의 공공재 확충은 더 미룰 수 없는 사회 양극화 해소의 수단이다. 코로나19 이후 공공재 중 하나인 공공의료가 대두된 것도 마찬가지다.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병원을 이용하기 위해 시민은 몇 곱절에 이르는 의료비를 납부해야 했고 이는 결국 가진 자인 의사집단과 시민사회 간의 갈등과 불신을 부추겼다. 공공병원이 거의 없는 인도나 미국에서는 빈민층 시민 수십만이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는다. 억만장자의 재산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빈민층도 늘어난다. 바이러스가 치명적인 건 병마 때문만이 아닌 양극화 심화 탓이 크다.

복지란 공존을 구현하는 것이다. 복지시설은 우리 사회가 함께 누리는 공간이다. 당시 도서관의 풍경은 보편 복지가 어떤 것인가를 떠올리게 한다. 그곳은 연대의 장소였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누구나 머물 수 있고,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원칙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소득불균형이 심해지는 사회에서 힘이 있거나 재력이 있는 자에게 쏠리는 사유재와 달리 공공재는 경제적으로 분리된 개인들을 한자리에 만날 수 있도록 돕는다. 

소득 불평등을 풍자한 영화 <기생충>에서 봉준호는 냄새를 빈부격차의 갈등으로 묘사한다. 우리 사회도 냄새가 선을 넘지 못하는 양극화의 벽이 더 두터워지고 있는 듯하다. 몽테스키외는 신이든 천사든 인간이든 정의는 둘 사이에 내재하는 조화로운 관계라고 말했다. 이 시대의 정의는 간극을 줄여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편집 : 유제니 기자

[강주영 기자]
단비뉴스 지역사회부, 시사현안팀 강주영입니다.
진흙탕 속에도 밤하늘의 별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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