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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즈존’을 다시 생각한다
[단비발언대]
2021년 09월 29일 (수) 12:22:59 조한주 기자 yourglim23@naver.com
   
▲ 조한주 기자

얼마 전, 서울 한 번화가에서 '아이들 출입 금지'를 뜻하는 '노키즈존' 문구를 붙인 카페를 봤다. 있다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내가 "너무하지 않냐"고 투덜대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카페는 조용히 쉬고 싶어서 가는 곳인데 애들은 너무 시끄럽게 굴잖아"라고 타박했다.  

누구나 표현의 자유를 공평하게 갖고 있지는 않다. 자기 상황을 제대로 표현해 사회에 관철시킬 수 있다면, 표현 권력을 지닌다는 뜻이다. 아이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는 표현 권력의 약자이기도 하다. 대부분 아이는 자기 상태와 기분을 정확히 말로 설명하기 힘들고, 나이와 관계의 위계에 눌려 아예 말을 못 꺼내기도 한다. 그런 약자를 어떤 공간에서 배제하는 '노키즈존'은 한번 따져볼 만한 관행이다. 수십 년 전 미국에 있던 '유색 인종 출입금지(No colors allowed)'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발상이기 때문이다. 명백히 약자인 어린이에게 책임을 떠넘기니 더 얄팍한 상혼이다. 나는 '노키즈존'이 받아들이지 못할 개념이며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 서울에 있는 한 가게 출입문에 'NO KIDS ZONE SORRY(어린이 출입 금지 공간, 죄송합니다)'라는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 KBS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팡세>에서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라고 했다. 힘의 우위는 대개 논란의 여지가 없다. 반면 정의는 논란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대개 정의 없는 힘은 자신을 정의라고 위장한다. 표현 권력과 구매력이 있는 어른들이 시끄러운 걸 아이들 탓으로 돌리며 '노키즈존'을 정당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식당이나 카페 이용자는 대개 성인인 데다 그들은 대화 소리가 커도 제어가 안 되는데 왜 성인 출입을 금지하는 '노어덜트존'은 없다는 말인가? '노키즈존'을 당연하게 여기는 건 정의로 위장한 힘이며, 약자 혐오 행위다.

표현 권력을 지닌 어른들이 좀 더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노키즈존'을 보고 6년 전 중국 배낭여행 때 일이 떠올랐다. 기차 안에서 큰 소리로 엉엉 떼쓰던 아이를 보고 단 한 승객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애들이 떼쓸 수도 있지'라며 허허 웃던 장면이 생각난다. 모두가 웃자 아이는 울음을 그쳤다. 어떤 이들은 '노키즈존'이 사는 게 팍팍해진 사람들이 많아 생겨난 사회현상이라고 말한다. 갑자기 자신이 힘든 걸 약자에게 푸는 걸 '못난 놈'이라고 꾸짖던 할아버지 말이 떠오른다.


편집 : 박성동 기자

[조한주 기자]
단비뉴스 유튜브브랜딩팀장, 지역사회부 조한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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