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뽀삐뽀] 충북지역 의료격차 취재기 ①

충청북도는 의료 취약지다. 2017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보건의료실태조사'를 보면 충북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인구 10만 명당 치료 가능 사망자 수'가 58.5명으로 가장 높다(전국 평균 50.4명). '치료 가능 사망자'는 적절한 치료를 받았으면 숨지지 않았을 사람이라는 의미다. 충북에 노령 인구가 특별히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 노령 인구가 많아서 생기는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연령표준화 사망률'을 기준으로 봐도 2019년 충북의 인구 10만 명당 사망률은 335.8명으로 전국 평균보다 30.4명이 많다.

<단비뉴스>는 지난 7월부터 충북지역의 의료격차 문제를 집중 취재하고 있다. 특별취재팀을 만들어서 충북에 얼마나 병원이 없는지, 지역민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지역민이 겪는 일상적 불편함을 만났다. 살고 있는 군 안에 분만 시설이 없어 '원정출산'을 가고, 안과를 비롯한 주요 진료과가 없어 '원정진료'를 다녔다. 그나마 있는 병원은 지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 취재팀이 만나는 지역민마다 '엉뚱한 치료를 받았다', '지역 병원은 못 미덥다'고 말했다. 취재한 내용은 1차로 세 편의 영상에 담아 보도했다.

충북에서 차 없으면 애 못 낳는 이유
괜찮다니까 괜찮은 줄 알았지
단양 군민의 안과의사가 된 김 교수

의료 취약 현장을 취재하면서 만난 주민들의 목소리는 절실했다. 직접 현장을 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그들의 얘기가 있었다.

우리 모두의 의료격차…‘노인 문제’가 아니다

지역 의료격차라고 하면 흔히 노인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취재팀의 생각도 그랬다. 그래서 취재 초반에는 응급 상황에 대처하기 힘든 노인들의 문제에 초점을 뒀다. 그러나 취재하면서 의료격차가 모두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 의료격차는 출산으로 시작하는 생애주기 전체를 위협하고 있었다. 우선 아이를 낳을 산부인과가 없다. 그 아이가 자랐을 때 갈 수 있는 소아과가 없다. 아플 때 언제든 믿고 갈만한 치과나 정형외과가 없다. 병원이 없다는 문제는 모든 사람의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 지역 의료격차는 응급 상황에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단양, 괴산, 보은에는 이비인후과가, 단양, 음성, 증평, 괴산, 보은, 옥천, 영동에는 피부과가 없다. 병원이 없어서 겪는 불편함은 지역민 모두의 몫이다. ⓒ <단비뉴스> 충북지역 의료격차 취재팀

농촌생활과 불안감의 상관관계

지난 8월 2일 취재팀은 괴산을 찾았다. 초록이 짙은 여름의 괴산. 논에는 햇빛이 반사돼 바람이 불면 짙은 초록의 벼 잎이 흔들리면서 반짝였다. 감탄이 나오는 자연을 뒤로하고 취재원의 집을 찾아가는 길에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병원 어떻게 가지?'였다. 24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괴산으로 온 이애란(38) 씨는 농촌공동체와 함께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펼치는 '문화학교 숲' 사업을 시작했다. 괴산의 자연과 사람들이 좋았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게 되면서 지역의 의료 시스템을 돌아보게 됐다.

▲ 이애란 씨가 사는 괴산군 문광면은 1,255세대가 사는 작은 마을이다. ⓒ <단비뉴스> 충북지역 의료격차 취재팀

"이 시기에 언제 아이가 나올지 모르고 제 몸 상태도 어떨지 모르는 걱정과 두려움이 커요. 임신했을 때 편안한 마음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근데 농촌에 산다는 이유로 수도권에 살았으면 신경 쓰지 않았을 부담과 두려움을 안고 사는 거죠."

출산을 한 달 앞두고 있던 그는 도시에 살았으면 덜했을 불안감에 대해 얘기했다. 만에 하나 갑작스런 상황이 벌어져도 괴산에서 청주까지 '무작정 달린다' 이외에는 선택권이 없다. 지난해 괴산에서는 77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애란 씨는 이 77명의 아이를 위해 어느 누가 좋은 의료진이 있는 산부인과를 운영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애란 씨의 집에는 응급의료키트가 눈에 보이는 곳에 놓여 있었다. 실제로 그는 첫째 아이가 밤중에 고열이 나는 일이 생겨도 편도에만 1시간 걸리는 병원을 찾는 대신 자체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침이나 뜸을 배우는 등 다양한 상황에 적절한 처치 방법을 스스로 학습하는 것이 그가 의료격차에 대항하는 방법이었다.

▲ 지난 8월 2일 취재팀은 이애란 씨를 만나 인터뷰했다. ⓒ <단비뉴스> 충북지역 의료격차 취재팀

산부인과가 없는 괴산에는 산후조리원도 없다. 애란 씨는 첫째 아이의 일상을 지켜주고 싶어서 당시 임신 중이었던 둘째 산후조리는 집에서 하고 싶다고 말했다. 괴산에서 산후조리를 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산후도우미가 들어오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타지역에서 불편한 교통을 감수하고 몇 시간 산후조리를 하러 괴산까지 오는 도우미를 찾기는 쉽지 않다. "산후조리원이 괴산에 있으면 가족과 멀지 않은 곳에서 모두의 일상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요"라던 애란 씨에게서 지난 9월 12일 드디어 둘째를 순산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지금 전라남도 영광에 있는 친정집에서 산후조리 중이다.

왕복 3시간 넘는 병원을 가는 이유

임신 중에는 받아야 하는 검사가 많다. 기형아검사, 양수검사, 정밀 초음파 검사 등 새 생명을 무사히 태어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검사들이다. 지난 3일 대전에 사는 정예경(28) 씨를 줌(zoom) 화상회의로 만났다. 그의 품에는 아기가 안겨 있었다. 8개월이 된 아기는 낮잠 시간을 넘겨 졸린 듯했다. 화면을 응시하다가 이내 눈을 비볐다. 예경 씨가 이 아기를 품에 안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들어봤다.

▲ 지난 9월 3일 취재팀과 줌(zoom) 화상회의로 인터뷰하는 정예경 씨. 인터뷰 내내 예경 씨 품에 아기가 안겨 있었다. ⓒ <단비뉴스> 충북지역 의료격차 취재팀

예경 씨도 임신 당시 괴산에서 지내면서 다양한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간단한 초음파검사만 괴산에서 받고, 이외의 검사들은 차로 1시간 반 걸리는 대전까지 가서 받았다. 제일 가까운 지역은 청주였지만, 지인 두 명이 분만 과정에서 숨지는 일이 벌어지자 멀더라도 대도시를 택했다. 그는 "실제로 분만을 해보니까 왜 죽는지 알겠더라"고 말했다. 그는 괴산의 노후해 보이는 기계에 여러 예민한 검사를 맡길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임신 기간 내내 입덧이 너무 심해서 요양 겸 친정인 괴산에 머물렀던 건데, 항상 마음 졸이며 불안했어요. 언제 위급상황이 올지 모르니까요."

믿을 수 있는 검사 이외에도 그가 대전에서 느꼈던 또 다른 안정감은 병원에 24시간 상주하는 의사의 존재였다. 1층에는 소아과가 있고, 옆 건물에는 조리원이 있었다. 조리원에서는 1층의 소아과 의사들이 매일 회진을 돌며 신생아들의 상태를 살폈다. 언제 무슨 일이 있어도 안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예경 씨가 조리원 생활에서 만난 산모들은 이런 안정감을 찾아 다양한 지역에서 멀리 대전까지 올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지역에 살려면 서울 사는 자식 있어야

"애들한테 나중에 연락이 왔는데 다 그냥 공포에 떠는 거야.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니까 식도암이라는 게 무서운 거라면서. 급한 대로 청주 충북대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까 역시 그렇게 나오더라고. 거기서 입원을 하고 치료를 하려고 입원실까지 마련해놨는데, 우리 애들이 우리 아버지 시골병원에 못 맡긴다고 큰 병원으로 가야된다고 우겨가지고... 그래서 서울 병원으로 옮겨 간 거야."

병원을 가기 위해 서울에 올라가는 지역민도 많다. 지난 8월 2일과 9월 6일 취재팀은 충북 괴산에 있는 두레학교를 방문했다. 두레학교는 동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평생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마을학교다. 처음 두레학교를 방문했을 때 취재팀은 수업이 끝나고 아직 교실을 떠나지 않은 어르신들에게 의료격차를 겪은 사례를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어르신들은 손을 들고 한 명씩 발표하듯 이야기를 꺼내줬다.

▲ 지난 8월 2일 취재팀은 괴산 두레학교를 방문하여 어르신들에게 의료격차로 불편함을 겪은 이야기를 들었다. 추영자 할머니가 일어나서 이야기하고 있다. 추 할머니는 삐뽀삐뽀 두 번째 영상 ‘괜찮다니까 괜찮은 줄 알았지’에 등장한다. 인터뷰를 통해 증상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지역 병원 이야기를 들려준다. ⓒ <단비뉴스> 충북지역 의료격차 취재팀

의료격차는 어르신들의 잔병치레부터 암과 같은 중증질환까지 다양하게 퍼져있었다. 오히려 동네 병원을 이용하는 어르신을 찾기가 어려웠다. 자식들이 먼저 나서서 부모를 수도권에 있는 병원으로 모셔가기 때문이다. 이상분(73) 할머니는 남편이 음식을 삼키기 힘들 정도로 힘들어해서 할아버지와 함께 동네 병원을 찾아갔다. 소식을 전해 들은 이 할머니의 자식들은 검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할아버지를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으로 모셔갔다. 이 할머니는 병원 근처에 있는 고시원에서 지내며 할아버지의 간병을 도왔다.

충북 괴산에 사는 윤명희(81) 할머니는 대상포진에 걸렸는데 동네 병원에서 진단을 못 한 바람에 병을 키우고 여전히 고생하고 있다. 취재팀은 두레학교를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윤명희 할머니 댁을 찾아갔다. 작은 언덕 위에 올라선 윤 할머니네 집 마당에 동네 전경이 펼쳐졌다. 할머니는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친구들이 사는 집을 가리켰다. "동네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외롭지 않냐"는 취재팀의 질문에 할머니는 "내 친구들이 다 여기에 있어서 서울이 오히려 외롭다"고 말했다.

지역민들의 깊은 지역병원 불신, “병원 생겨도 안 다녀요”

충북 괴산군수어통역센터 김정희(34) 대리는 괴산에서 지낸 지 3년 차다. 정희 씨는 괴산에 있는 병원에 대한 불신이 깊은 듯 보였다. 무엇보다 정희 씨는 동네 병원이 다른 지역에 비해 진료비를 많이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괴산 지역의 치과는 5군데. 치과는 괴산군에 노년층이 많아 다른 진료과에 비해 많은 편이지만 도심에서 지내다 온 정희 씨에겐 선택권이 적다고 느껴진다. 정희 씨는 "진료비가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비교할 대상이 없다"고 말했다. "괴산에 큰 병원이 들어서면 이용할 생각이 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정희 씨는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차를 끌고 도심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생각"이라고 답했다.

충북 제천에 사는 박예진(24) 씨는 대원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간호사를 준비하고 있다. 예진 씨는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어 제천에서 취업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예진 씨 역시 동네 병원을 신뢰하진 못한다. 불신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됐다. 예진 씨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시절, 어머니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쓰러졌다. 그 이후로 어머니는 수시로 고열과 고통에 시달린다. 어머니는 충북 지역의 대형병원을 찾아갔지만 병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에 가서야 '시신경척수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현재는 제천에서 서울까지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 지난 8월 23일 취재팀은 제천 세명대학교 문화관에서 박예진 씨를 만나 인터뷰했다. ⓒ <단비뉴스> 충북지역 의료격차 취재팀

예진 씨의 지인은 제천에 있는 병원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다가 서울의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다시 살아났다. 지인은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심정지로 쓰러졌다. 가족들은 처음 방문한 병원에서 환자에게 충분한 처치를 해주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가족들의 의지로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환자가 다시 살아난 걸 기적이라고 말해야 할까. 분명한 건 지역민이 피부로 느낀 의료격차다. 지역민은 병원이 있어도 불안하다. (2편으로 계속)

● <단비뉴스> 충북지역 의료격차 취재팀 : 유지인 이정민 정진명 조한주 기자 김대호 신현우 이성현 PD


편집 : 이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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