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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사회’에서 탈출할 기회
[단비발언대]
2021년 09월 27일 (월) 12:12:52 윤재영 PD yjy62155@gmail.com
   
▲ 윤재영 PD

충북 보은의 작은 시골 마을에는 아이들에게 기본소득을 나눠주는 학교가 있다. 나는 작년 가을부터 올 초에 걸쳐서 <단비뉴스> 팀원들과 함께 '판동초 기본소득 이야기'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아이들은 매점 화폐로 월요일마다 2000원씩 받고 행복했다. 아침을 못 먹은 아이는 기본소득으로 쉬는 시간에 빵과 우유를 사 먹었다. 아이스크림 같은 군것질뿐 아니라 학용품과 생활필수품을 구매했다.

돈이 많아서 매점에 자주 가는 친구를 질투하던 아이들은 다같이 매점에 가서 필요한 것을 구매하기도 했다. 매점에 자주 못 가던 아이는 매점에 갈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기본소득을 막 쓰지 않고 저축하는 아이도 있었다. 기본소득을 제안한 선생님은 일부 아이들이 교내 매점을 이용하지 못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저소득층 아이들에게만 매점 쿠폰을 나눠줬다면 그것을 당당히 쓸 수 있었을까?

   
▲ 충북 보은 판동초등학교에서는 학년과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매주 2천 원씩 받는다. 매점에는 아이들의 이야기로 북적이고, 복도에서는 아이들이 매점으로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 단비뉴스

조건부 기본소득의 문제는 수혜자가 되기 전에 본인의 소득을 증명해야 하는 데 있다. 안심소득의 문제는 사회 결속을 약하게 만든다. 안심소득은 소득이 국가가 정한 기준소득보다 많으면 세금을 내고, 적으면 세금을 돌려받는 제도이다. 이렇게 되면 부담과 혜택이 분리된다. 부담과 혜택이 분리되는 사회에서는 통합과 연대가 어렵다. 세금을 부담하는 쪽에서는 부담스럽고 귀찮은 존재다. 돈을 내는 쪽은 받는 사람이 적으면 좋겠고, 돈도 적게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상위 10~30%를 배제하는 것은 고소득층에게 세금은 많이 내고 돌아오는 건 없다는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수혜자도 시혜 차원에서 복지를 받기 때문에 부정적 정체성을 내면화하게 된다.

선별적 복지의 대표로 기초생활수급비가 있다. 기초연금수급비를 선별해서 줄 때 서류로 거르지만 실제로 기초수급비 등 수급을 받지 못하는 노인들이 생긴다. 기초수급자이거나 별거를 하고 있어도 부양의무자인 가족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수급을 받지 못하는 이가 많았다. 기초수급을 받으려면 부양의무자의 부양 능력이 없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내년부터 전면 폐지된다. 이렇게 선별적 복지 대상을 늘리는 대신,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는 보편적 복지를 한다면 복지의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 금액을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어 보편적 복지를 추구한다. 기본소득의 최대 장점은 수혜 대상을 정하는 기준이 필요 없어 수혜자를 선별하는 행정비용이 적고, 수급률 역시 안심소득보다 높다는 데 있다. 특히 복지 수혜자를 향하는 낙인도 사라진다. 인간이 생계 걱정을 하지 않게 되면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힘들고 위험한 일에는 그에 합당한 높은 대가가 주어질 것이다.

보편적 복지는 복지의 연대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모두가 내고 모두가 누리는 기본소득 제도를 시행해야 하는 이유다. 내가 세금으로 기여한 만큼 어느 정도 받는다는 인식은 제도를 정착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 아동수당과 재난기본소득도 그렇다.

기본소득 때문에 사람들이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비합리적인 편견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는 논리와 통한다. 이는 기독교적 윤리의식이 우리 뇌리에 박혔기 때문이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의 찬양>에서 이런 '노동윤리'란 지배세력이 꾸며낸 허구라는 것을 꼬집는다. 가난한 자들이 하는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것이 근현대의 노동 윤리로 이어진 것이다.

근면 성실하게 일한다고 해서 돈을 모을 기회는 많지 않은 세상이다. 오히려 가난한 자들도 여가를 누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돈을 쓰려면 수중에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을 쓸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이 두 조건을 충족해주는 확실한 방법이 기본소득이다. 특히 여성이 집안일, 즉 가사노동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통념이 형성되어 왔다. 이는 장애인과 노인을 돌보는 일처럼 사회에서 필수적이고 중요한 일이다. 가사노동이나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이처럼 중요한 노동이 그에 걸맞은 지위를 얻게 될 것이다.

기존 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피하고자 도입된 보편적 코로나 재난지원금이 복지도 이렇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부추겨왔다.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를 위해, 플랫폼 노동자를 위해, 자산 기준 때문에 생계 급여를 받지 못하는 이웃을 위해서라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우리나라에는 노후 대비가 전반적으로 빈약해서 비참한 노년을 보내는 이들이 많고, 청년들도 미래가 불안하다.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자체가 '불안 사회'에 가깝다. 우리 사회도 이제 선별적 복지의 안심소득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의 기본소득을 실현할 때가 됐다. 이를 계기로 노동에 관한 그릇된 인식도 바뀌었으면 한다.


편집 : 이현이 기자

[윤재영 PD]
단비뉴스 미디어콘텐츠부, 환경부, 시사현안팀 윤재영입니다.
연약한 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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