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⑯ 부산 현대미술관 등 ‘지속 가능 전시’ 도전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사회 전체가 총체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시기, 미술관들은 ‘지속 가능한 전시’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동안 미술관들은 ‘자본집약적 전시’로 행사 한 번 마다 석고벽, 현수막 등 5톤(t) 트럭 4대 가량의 폐기물을 만드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제로 웨이스트(쓰레기 배출 최소화)’와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해상운송, 전시물품 재활용, 홍보물 디지털화 등을 시도하는 미술관이 등장했다. 

해외 작품 운송 대신 실시간 중계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 부산 현대미술관은 지난 5월 4일부터 지난 22일까지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전시를 하면서 작품 운송과 설치 등 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고 쓰레기를 줄이는 작업에 도전했다. 우선 하룬 미르자의 <웨인을 위한 가로지르는 물결>, 코시마 폰 보닌의 <만약 짖는다면 4> 등 작품 6점을 미국 뉴욕에서 해상운송으로 실어와, 비행기와 트럭을 이용했을 때에 비해 탄소배출량을 40분의 1로 줄였다. 시간상으로는 비행기가 15일, 배는 60일 정도 걸리지만 환경을 위해 속도를 양보했다. 전시를 기획한 최상호 학예연구사는 “환경을 주제로 한 작품을 일회용 포장재로 칭칭 감아 비행기로 옮겨 놓는 상황이 역설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 부산현대미술관의 <지속 가능한 미술관 : 미술과 환경> 전시관 입구. 해외 작품을 국내로 운송한 과정 등 전시회 이면의 탄소배출 감축 노력을 설명했다. ⓒ 김지윤

해상운송으로 전시회가 가능했던 것은 직접 실어오는 작품 수를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항공운송이 필요한 작품들은 현지에서 제작 설명서를 전송받아 부산에서 다시 제작하거나, 온라인 생중계를 통해 방송하는 방법을 택했다. 캐나다 출신 화가 줄리엔 세칼디의 <쇼핑의 사마귀>는 스캔한 작품 이미지를 전송 받은 뒤 그리드(격자)로 나눠 종이에 인쇄하고 이어 붙였다. 인쇄할 때도 콩기름 잉크와 친환경 종이를 썼다. 대만에 있는 첸치린과 차이푸칭 작가의 <거래소: 동시대‧세대‧미학‧기법‧기관> 작품은 타이베이 현대미술관과 협업해 현지 전시 모습을 생중계했다. 화면에는 타이베이 미술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 줄리엔 세칼디의 <쇼핑의 사마귀>. 높이 9미터(m)에 이르는 작품을 전송 받아 재현했다. ⓒ 김지윤

환경 파괴적이었던 전시 관행 솔직히 고백 

<지속 가능한 미술관> 전시는 환경 파괴적이었던 그간의 미술관 관행을 고백하기도 했다. 전시장 한쪽 구석에 이전 전시의 폐기물을 그대로 진열, 관객이 ‘깨끗한 석고벽 뒤의 진실’을 발견하도록 했다. 지난 6월 24일 전시를 관람한 김모(38) 씨는 “기존 전시에서 일시적으로 쓰고 버려진 자원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깨달았다”며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지속 가능한 미술관>은 나무벽을 사용했고, 다음 전시에 재활용할 수 있도록 페인트나 시트지를 입히지 않았다. 일반적인 미술 전시에 쓰는 석고벽은 각재(角材)로 된 뼈대에 합판 1~2장을 붙인 후 그 위에 석고보드를 덧대어 페인트로 마감하는데, 접착제가 사용되기 때문에 재활용이 어렵다.

▲ 부산 현대미술관이 전시벽을 나무 합판으로 대체한 모습. 모두 다음 전시 때 재활용 할 수 있다. ⓒ 김지윤
▲ 이전 전시에서 나온 폐기물을 작품 뒤에 쌓아 놓았다. 폐기물 대부분은 목재 뼈대와 합판이다. ⓒ 김지윤

이번 전시회는 또 작품 설명을 아크릴 등에 인쇄하는 대신 이면지에 손글씨로 쓰거나 모니터에 글을 띄웠다. 인쇄할 때 배출되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서다. 전시 홍보도 대부분 온라인으로 했다. 불가피하게 만든 홍보물은 한 가지 색 잉크만 사용했고 포스터, 초청장, 가방 등은 제작하지 않았다. 온라인 홍보도 데이터 전송에 쓰이는 전기를 줄이기 위해 디지털 파일의 크기와 개수를 최소화했다. 이 전시의 폐기물은 나사와 못, 철사 등의 부속과 작품마다 붙는 제목 및 설명판이 전부다. 최 학예연구사는 “모든 홍보를 온라인으로 진행했음에도 다른 전시 관람 인원과 큰 차이가 없다”며 “현수막이나 포스터 등을 통한 홍보가 효과적인지 의문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 이면지를 활용해 손글씨로 작성한 작품 설명서. 이수현 캘리그라피 작가가 썼다. ⓒ 김지윤

‘지구, 우리의 집’을 위한 문화예술인의 도전 

이에 앞서 지난달 8일 전시를 마친 서울시립미술관의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도 탄소감축과 쓰레기 최소화에 집중했다. 지구 생태계, 인간의 주택, 곤충의 생태계를 모두 ‘집’으로 보고 ‘기후변화로 위기에 놓인 집’을 보여준 이 전시는 작품 사진과 설명을 책자로 만드는 대신 모두 웹사이트에 올렸다. 전시장은 이전 전시에서 사용한 가벽을 재활용했고 버려진 책상과 액자를 주워와 활용하기도 했다. 전시 그래픽디자인도 잉크 사용량을 3분의 1로 줄이는 서체인 ‘라이먼 에코(Ryman Eco)’를 활용했다. 서울시립미술관 김혜진 학예연구사는 “전시를 구현하는 모든 방식에 있어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라이먼 에코 서체를 활용해 인쇄한 전시 그래픽 디자인과 기후변화로 말라죽은 소나무를 전시한 로비, 최혜정 작가의 작품 <플라스틱 라이프> ⓒ 서울시립미술관

해외 예술계에서도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영국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 등 30개 문화기관은 영국 예술위원회의 새로운 환경프로그램 ‘스포트라이트(Spotlight)’에 따라 2023년까지 탄소배출량의 10~20%를 줄이기로 공약했다. 스위스 바젤에서 매년 6월 열리는 세계 최대 미술품시장 아트 바젤에서는 페이스 갤러리 등 전시업체들이 1회용 컵 대신 텀블러 사용, 인쇄물 대신 아이패드 이용, 대중교통 이용 등을 직원들에게 권장한다. 

물론 이 정도 노력으로 기후위기 대응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관계자들은 인정한다. 부산 현대미술관 최상호 학예연구사는 “전시에서 제시한 시도들은 제안적인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해상운송은 작품의 안전이나 보험 측면에서 항공운송보다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고 물품 재활용이나 특정 서체 활용은 전시의 품질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지속 가능한 미술관> 전시에 참여한 김실비 작가는 “작품을 보여주는 데 최적화된 공간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깔끔한 벽이 없고, 최소한의 조명을 사용해 어두우며, 소리의 간섭도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립미술관과 부산 현대미술관은 각각의 전시에서 의미 있었던 실천 방안과 추후 시도해 볼 만한 방안들을 정리한 성과 자료를 배포할 예정이다. 김혜진 학예연구사는 “미술 작품을 생산하고 전시를 구현하는 방식에 있어 생태적 실천을 하는 건 세계적인 추세”라며 “공립미술관으로서 환경적인 개념과 철학이 지속 가능하도록 차츰 고민하고 적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편집 :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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