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청소년 대변할 수 있는 정치적 통로 마련해야

지난해 1월 9일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는 현행 정당법이 정당 가입 연령을 제한해 국민의 평등권과 정당의 기본권을 제한한다고 보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심 전 대표는 "대한민국 정당법은 선거권이 없는 국민의 정당 가입을 불허하고 있어 청소년들의 정치 활동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다"며 "청소년들이 10대부터 정당 활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정치적 권리를 가지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청소년의회 제13대 박지우 의원은 "많은 정당이 예비당원제를 운영해 청소년의 권리보장에 힘쓰고 있지만, 법률로 인한 제약 때문에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청소년의 정당 가입을 연령으로 제한하는 것은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정책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청소년의회는 청소년헌장과 유엔 아동 권리협약 등에 따라 청소년의 자율성과 사회 참여를 높이기 위해 2003년에 출범한 사단법인이다. 청소년의 의견이 주장에만 그치지 않고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헌법 제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공직선거법 제15조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선거권을 18세 이상의 국민에게만 부여하고 있다. 정당법 제22조 1항에 따라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사람만 정당의 발기인과 당원이 될 수 있다. 2020년 기준 18세 이하의 인구는 약 82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5.8%에 해당하지만, 이들 중 18세 미만 청소년은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세계 곳곳에서 청소년들이 기후위기‧인권‧페미니즘‧소수자 등 중요한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지금, 나이를 이유로 청소년의 정당 가입 등 정치 활동을 제한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청소년 정치 활동 제한하는 법률들

▲ 나이 제한에 의한 청소년의 정치 참여 배제는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 그래픽: 김주원

정치적 기본권에는 △피선거권 △선거권 △선거운동의 자유 △정당과 관련된 자유 △정치적 결사의 자유 △집회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등이 있다. 그러나,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자신의 정치적 기본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여러 법률이 청소년의 정치 활동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설명한 공직선거법 제15조와 정당법 제22조 이외에도 청소년의 정치 활동을 제한하는 법률은 다양하다.

공직선거법 제60조 1항 2호는 18세 미만인 미성년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박영선 후보를 지지하며 유세차에 올라 연설한 미성년자인 학생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일이 있었다.

지방자치에 있어 주민의 직접 참여 수단인 조례 제정이나 개폐 청구권, 주민소환투표권 등도 19세 이상에만 부여돼 있다. 청원권에 관해서는 이러한 제한이 없지만, 나이 제한은 정치적 기본권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지난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당 가입 연령을 선거권 연령보다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전달하기도 했었다.

해외의 주요 국가들은 대부분 각 정당이 자체적으로 가입 기준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관심 있는 누구나 정당에 가입할 수 있고, 10대부터 정당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핀란드는 만 13세부터 18세까지 청소년의회를 법적 기구로 두고 있고, 독일의 고등학교는 직접 자신이 원하는 정당의 강령을 만드는 교육과정이 있으며, 영국 노동당은 14세 이상 청년 당원을 대상으로 ‘청년 노동당’을 조직해 청년의 관심사를 정책에 반영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 5월 2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정당 가입 연령을 만 16세로 낮추고 청소년 대상으로 교육 목적의 모의투표 실시를 허용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선관위는 "선거 문화가 개선되고 국민의 정치의식이 향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정치 활동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선관위의 개정 의견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는 즉시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교총은 "정당에 가입한 고교생들이 학교에서 각종 정치 활동을 제한 없이 하면 교실의 정치화와 학습권 침해 등의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청소년 인권운동연대 ‘지음’의 이은선 상임활동가는 "가입 나이를 낮춰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높이겠다는 선관위의 취지에 공감한다"면서 "더 나아가 정당 가입 연령 기준 자체를 없애야 하고, 청소년의 정당 활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문화도 같이 정착해야 제대로 된 청소년 정치가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현 상황에서는 연령을 낮추는 것만으로는 실질적인 학생들의 정치 참여가 보장받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전국 중·고등학교 533개 학교(중학교 316개, 고등학교 217개)를 대상으로 학교 규칙을 조사했다. 당시 조사 대상의 54.8%(292개)는 정당 등 정치적 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을 처벌하는 규칙을 갖고 있었다. 학교별로는 중학교가 48.4%(153개), 고등학교가 64.1%(139개)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정치적 권리를 침해하는 규칙들이 많았다. 

헌법재판소는 어떤 결정을 내려왔나

▲ 헌법재판소는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나이로 제한하는 것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여러 차례 내려왔다. © 그래픽: 김주원

헌법재판소는 과거 선거권 연령을 '20세 이상' 또는 '19세 이상'으로 규정한 '공직선거법'(구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15조에 대하여 여러 차례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권이나 제24조 선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정당법 제15조 1항이 19세 미만인 사람의 정당 활동의 자유를 침해하는지에 대해서도 2014년 4월 헌재는 "정치적 판단 능력이 미약한 사람이 정당을 설립하고 가입하는 경우 정당의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한다"며 "미성년자는 정신적·신체적 자율성이 불충분하고 가치 중립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해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선거권에 관한 사항은 법률에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선거권 연령을 결정하는 것은 입법자에게 위임된 사항이기 때문에 선거권 연령 결정은 입법정책의 문제로서 합리성을 판단하면 된다고 보았다. 교육적 측면에서의 부작용 우려도 추가로 제시했다.

합헌결정에 반대의견을 낸 재판관도 있었다.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은 "정당 구성원의 정치적 판단 능력을 선거권행사의 판단 능력과 동일하게 여겨 정당 구성원에게 과도한 능력을 요구하고 있고, 정당의 헌법상 기능을 보호하고자 한다고 해도 일정한 형태의 자유만 제한하는 방법으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에도, 19세 미만인 사람에 대하여 정당원으로서의 모든 활동을 제한해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한다"고 말했다.

더 많은 청소년이 정치에 참여해야

교총의 입장문과 헌재의 결정에서도 알 수 있듯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주된 이유는 '교실의 정치화 우려'와 '사고의 미숙함'이다. 육체적·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시기의 청소년들에게 정치 참여를 장려하고 정치적 선택권을 주는 것이 적절하냐는 것이다. 그리고 학업에 집중할 청소년기에 정치 현안에 지나친 관심을 가지는 것에 관한 우려도 크다. 

이에 대한민국청소년의회 제13대 전형준 의원은 "이러한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청소년 스스로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이 잘 이뤄진다면 걱정을 기대로 바꿀 수 있다"며 "교실의 정치화가 두려워 정치 참여를 반대한다면,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정치 참여는 사회 곳곳에 발자국을 남겼다. 지난 2000년 청소년 인터넷 연대 <위드>는 '노컷운동'을 통해 두발 규제를 반대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였고 1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노컷운동'은 학생인권 문제를 표면화하는 계기가 됐고 두발 규제 철폐를 요구하는 집회로 이어졌다. 이후 교육부는 각 학교에 새로운 두발·교복 규칙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 

2002년 주한미군 장갑차에 효순·미선 양이 숨졌을 당시에도 청소년들은 시위 참여와 성금 모금 등 적극적인 활동으로 기성세대의 참여를 호소했다. <희망>, <전국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 등 자발적으로 구성된 청소년 단체들이 그해 7월 17일 의정부역 광장에서 모여 '청소년 행동의 날'을 선포하기도 했다. 2008년 광우병 집회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도 앞장서서 촛불을 들었고 이제는 기후위기와 젠더 이슈, 동물권 등 다양한 담론으로 청소년의 사회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 제21대 총선은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선거였다. © 그래픽: 김주원

18세로 선거권 연령을 낮춘 것도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에 큰 변화를 이끌었다. 2019년 만 19세이던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는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청소년은 정치하면 안 된다', '학교가 정치적 공간으로 변하면 안 된다'는 기성세대의 낡은 생각을 허무는 계기가 됐다. 총선에서 만 18세 유권자(53만 명)의 투표율은 67.4%로 전체 투표율인 66.2%를 넘어섰다.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지표였다.

서울시의회가 지난해 9월 서울시에 있는 고등학생 1,012명을 대상으로 벌인 '선거권 연령 하향에 따른 청소년 정치참여 인식 및 실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5.3%가 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데 찬성했다. 이유로는 △정치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43.6%) △청소년에게 병역이나 납세 의무가 주어지지만 투표할 권리는 없기 때문(40.8%)이라고 답했다. 선거연령 하향이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활발하게 만든 것처럼 정당 가입 연령을 낮추자는 선관위의 의견도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높이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편집 : 이예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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