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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기후위기시대] ⑭ 채식주의자 늘었지만 식단 선택권 제약
2021년 09월 02일 (목) 23:18:19 남윤희 기자 yoon0439@naver.com

대학생 김혜림(22·서울) 씨는 넷플릭스 영화 <카우스피라시(Cowspiracy)>를 보고 육류 소비가 기후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영화는 축산업이 기후변화 원인의 51%,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 원인의 91%를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이후 김 씨는 덩어리 고기를 덜 먹는 정도로 육식을 줄였지만 완전 채식을 하진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8월 경기도 동두천시의 한 도계장(닭을 도살하는 곳)에 가본 후 육식을 뚝 끊게 됐다.

닭을 실어 나르는 트럭에 작은 케이지(닭장)가 여러 층 쌓여있는데, 그 안에 갇힌 닭들은 몸을 제대로 펴지도 못했다. 닭들의 몸에는 털이 거의 없고 피부염증이 심각했으며, 온몸에 분비물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김 씨는 “그때 공포와 슬픔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 후 김 씨는 음식을 비건(완전채식)으로 먹고, 화장품은 동물실험을 거쳤거나 동물성 성분이 들어간 제품을 쓰지 않는다.

지구온난화의 강력한 용의자, 공장식 축산과 육식 

   
▲ 공장식 축산이 기후변화에 끼치는 영향을 고발한 다큐 영화 카우스피라시. ⓒ 넷플릭스

기후위기전북비상행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남지숙(55)씨는 10년 전 채식을 시작했다. 환경운동을 하면서 ‘기후위기를 늦추기 위해 개인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채식’이라는 신념을 갖게 됐다. 그는 건강, 동물복지, 지구환경을 위해 채식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채식요리 강좌를 열고 있으며 성인과 학생을 대상으로 기후변화와 관련된 교육도 하고 있다.

광주광역시에 살고 있는 유휘경(30) 씨는 채식 2년차다. 채식을 하되 가끔 육식도 먹는 ‘플렉시테리언’에서 시작해 붉은 살코기만 안 먹고 닭고기는 먹는 ‘폴로’ 등 여러 단계를 거쳐 현재는 비건이 됐다. 그는 광주 청년들의 비건식당 발굴 모임인 ‘비건 탐식단’을 운영 중이다. 이른바 ‘비건 불모지’인 광주에서 마음 편히 채식을 하고 싶은 청년들이 비건 식당, 혹은 비건 메뉴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는 모임이다. 그는 동물권에 관한 관심으로 비건을 시작했지만 비건을 공부하면서 기후위기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채식 외에도 대중교통과 계단 이용하기, 안 쓰는 플러그 뽑기, 플로깅(조깅을 하면서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운동) 등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탄소감축 운동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민간단체인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는 약 100만~150만 명으로 추정된다. 2008년 15만 명 대비 10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대량 방출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런 추세는 가속화하고 있다. 소, 돼지, 양 등 가축의 배설물 등에서 메탄이 발생하고, 가축을 키우기 위해 숲을 태우고 농경지에 비료를 뿌리면서 아산화질소와 블랙카본이 발생한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연구에 따르면 육류는 100그램(g)당 7.16킬로그램(kg)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완전채식은 2.89kg만 배출한다. 기후관련 비영리단체 카본브리프에 따르면 소고기 1kg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59.6kg으로 닭(6.1kg)의 약 10배, 두부(3kg)의 약 20배에 달한다.

   
▲ 소고기는 다른 식품에 비해 압도적인 양의 온실가스를 생산과정에서 방출한다. ⓒ 남윤희

채식인구 늘면서 다양한 식단과 식당 등장

채식인구가 늘어나면서 식단과 식당도 다양해지고 있다. 김혜림 씨는 최근 서울 이촌동 노들섬의 한 식당에서 고기를 넣지 않은 ‘제로비건 감자탕’을 맛보고 만족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언리미트(식물성 대체육)로 또띠아 피자를 만들고, 우유 대신 두유를 넣고 마라크림 떡볶이를 만들어 먹는 등 다양한 식단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채식도 논 비건 음식과 다르지 않고 더 맛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더 공들여 요리할 때도 있다”고 밝혔다. 인스타그램에서 #채식식단 #비건요리 등 해쉬태그를 검색하면 대체육을 올린 비빔면, 콩으로 만든 돈까스, 버섯탕수육, 비건어묵으로 만든 떡볶이 등 다양한 채식 식단과 레시피(조리법)를 구경할 수 있다.

 
김혜림 씨가 집에서 요리한 마라크림 떡볶이와 또띠아 피자. 고기를 넣지 않아도 손색없는 음식 맛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 남윤희
 

서울에는 채식식당도 꽤 생겼다. 서울시는 서울에서 채식을 취급하는 1555개의 식당 중 정보제공에 동의한 948곳을 발굴해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하지만 서울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채식 불모지’라고 할 수 있다. 채식전문식당이나 채식메뉴를 구비한 일반식당을 찾기 어렵다. 1인 가구, 청년층 등이 자주 이용하는 편의점에도 채식식품은 찾기가 어렵다. 한 프랜차이즈 편의점에서 찾아본 비건식품은 베지가든 떡볶이, 채식주의 도시락, 채식주의 버거, 콩고기 삼각김밥 등 종류가 한정돼 있었다.

유휘경씨는 채식식당에 갈 수 없을 때 식당 측에 별도의 요청을 한다고 말했다. 콩나물 국밥을 주문할 때 육수 대신 맹물로 조리하고 수란을 빼달라고 부탁하는 식이다. 된장찌개나 순두부찌개를 주문할 때는 고기나 해산물을 빼고 야채와 두부만 넣어달라고 한다. 비빔밥을 주문할 때는 고기와 계란을 빼달라고 요청하고 무생채에 액젓이 들어갔는지 확인한다. 기본 반찬은 액젓과 젓갈이 들어가지 않은 나물류만 받는다. 유 씨는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며 “동물성 재료를 제외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수락해주는 곳을 찾아 놓으면 언제든지 찾아가 식사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 비영리단체인 ‘한국고기없는월요일’에 따르면 한 사람이 주 1회만 채식을 해도 1년에 나무 15그루를 심는 효과가 있다. ⓒ 한국고기없는월요일

주변 시선도 피곤...채식 선택권 보장돼야

채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다. 유휘경 씨는 처음에 주변 사람들에게 “이상한 종교에 빠진 것이 아니냐” “사람이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지 어떻게 채소만 먹고 사느냐”는 질타를 들었다고 말했다. 남지숙씨도 주변에서 ‘까다로운 사람’이라며 눈치를 줘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직장이나 친구들 간의 회식에서도 어려움이 많다. 가끔 채식주의자를 배려해 식당을 정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 때문에 어떤 경우는 흰밥만 먹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남지숙 씨는 “남편도 채식을 하는데 아침마다 (출근하는) 남편 도시락을 준비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며 “(직장과 식당에서) 채식 선택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거의 모든 학교에서 육류나 육가공품 위주의 식단을 제공한다. 채식을 하는 학생들은 먹지 않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 학교에서 채식을 하는 학생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담은 영상. 채식 메뉴가 부족해 부실한 식사를 할 수밖에 없다. ⓒ EBS

지난 6월 채식급식시민연대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채식 선택권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채식 학생의 어머니인 황윤 씨는 “채식 선택권이 없다는 것은 초중고 12년 동안 학교급식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한 남학생은 “모두가 급식시간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비건 청소년들에게는 (급식시간이) 고난과 좌절이며 굶주림과 소외를 경험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편집 : 김계범 기자

[남윤희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 시사현안팀 남윤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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