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능력주의’

▲ 정진명 기자

‘숨마 쿰 라우데, 마그나 쿰 라우데, 쿰 라우데, 베네.’ 로마에서 성적등급을 라틴어로 표시한 것이다. 우리나라 ‘수우미양가’와 비슷하지만 다르다. ‘최우등, 우수, 우등, 좋음, 잘했음’이라는 뜻인데, 잘했다는 정도의 차이로 등급을 매긴다. ‘수우미양가(秀優美良可)’도 원래 나쁜 뜻은 들어있지 않았는데, 의미론적으로 완전히 우열을 가르는 말이 되고 말았다.

한국은 어떤가? 나는 예중과 예고에 들어가려고 치열한 입시 경쟁을 치렀다. A부터 D까지 알파벳으로 ’잘하거나 못하거나‘를 구분해서 매겼고,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은 인간으로서 가치가 떨어지고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처럼 폄하하는 말의 폭력을 감수해야 했다. 나는 운 좋게도 부모님 지원을 받아서 높은 등급을 유지할 수 있었고, 수도권 대학에 갔다. 나는 자연스럽게 사회가 만든 잣대로 입시 시험등급이 낮은 친구들을 무능력한 존재로 여겼다. 능력에 따라 차등적 기회와 보상을 주는 능력주의가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성적 등급을 매긴 학창시절의 서열 문화는 사회로 이어졌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려고 취업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일자리에도 등급이 있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특히 비정규직은 유통기한이 있는 계약직, 프리랜서, 일용직 등으로 나뉘었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대부분 고용의 차이가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학창시절에 수업시 들은 ‘공부 못하면 남들보다 어렵게 돈을 번다’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다. ‘공채시험’은 누구나 볼 수 있으니 공정한 기회를 줬다고 여겼다. 과거로 거슬러가서 계급과 부가 세습된 신분제 사회와 비교하면, 개인 능력을 평가해서 대우에 차등을 두는 것은 공정하고 합리적이었다.

이 믿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졌다. 평범한 청년들이 취업 준비와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하는 현실인데, 뉴스에 나오는 기득권층 자녀들은 인턴이나 논문 참여를 위조해 스펙으로 만들고 고임금 정규직에 취업했다. 능력주의는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는 대신 정당화하는 데 사용됐다.

한국 사회는 개인의 능력과 집단의 성과를 높인다는 이유로 등급을 매겨왔다. 노동자 개인은 주어진 운명에 책임지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능력주의가 만든 현대판 계급구조는 고용안정성과 노동 기본권의 유무로 갈렸다. 단순한 근무 형태의 차이가 아니다. 비정규직은 해고나 계약만료와 같은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고, 기본 권리를 요구하는 노조 가입도 할 수 없다. 부당한 처사에도 개인이 참아야 한다. 이런 상황이 비정규직을 하층 노동으로 전락하게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 이동이 막힌 폐쇄사회에서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고용이 늘어나고 부의 양극화는 더욱 벌어졌는데도 사회안전망은 허술했다는 점이다. 

▲ 한국 사회는 현재까지 사회 구성원의 능력을 등급으로 매겨왔고, 노동자 개인은 일자리의 질적 차이로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 KBS
국가의 역할은 모든 사람이 잘살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고 공공선을 확대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 첫걸음이 ‘전국민고용보험제도’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전국민고용보험 로드맵’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내세운 ‘포용국가론’의 핵심요소다. 직장을 잃어도 생계를 보장하고 직업을 재교육해서, 사람들이 배제되지 않게 하는 취지를 가졌다. 

현재 고용보험은 사회안전망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 1995년 7월, 고용보험법이 제정된 때는 실업 걱정이 없었기에 직업 능력 개발과 고용 안전 서비스의 역할을 가볍게 여겼다. 단순히 실업급여 구실만 한 것이다. 노사가 반반씩 부담하고 정부가 관리하는 구조이기에 사용주가 확실하지 않은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 초단기 노동자는 배제됐다. 최근 등장한 플랫폼 노동자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보편적 세금 형태로 고용보험을 만든 유럽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고용보험제도가 튼튼한 독일은 1998년 노동촉진법(AFG)을 폐지하고, 임금보조금 사업과 연방고용청의 역할 등 강화해 노동자의 수혜 범위도 넓혔다. 미국,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는 특수고용노동자도 고용보험에 들 수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다. 2018년에 한정애 의원이 예술인과 플랫폼 노동자까지 포함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로 특수고용과 플랫폼 노동자를 대상에서 뺀 채 개정안이 통과됐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개인의 존재 자체가 의미 있음을 인정하는 ‘잘했음의 철학’을 배제한 것이다. ‘빈곤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개인이 기본적 필요를 넘어 각자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역령 계발 기회까지 제공하는 것이 공정한 국가라고 봤다. 시민이 요구하는 사회도 누구나 세금을 내고, 교육을 공평하게 받고, 기술 개발 혜택을 차등 없이 누리도록 하자는 것이다.

최근 길에서 학창시절 미술 과외를 따로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그린 친구를 만났다. 그는 이름 대신 ‘전교 꼴등’이라는 낙인으로 기억됐다. 옛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불쑥 “공부할 거면 제대로 하지 그랬냐”고 말해버렸다. 이제야 알게 된 그의 사연은 안타까움을 넘어 슬펐다. 고등학교 진학 후, 아버지 사업이 망했고 집안 사정이 너무 안 좋았다는 대답이었다. 그는 등록금을 구하지 못해 미대 진학을 포기하고 생계형 기술을 택했다. 능력주의를 추구하는 사회는 그에게 불평등과 차별의 구조를 넘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게 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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