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⑬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정의로운 전환’ 포럼

“기후위기 대응이 절박한 만큼, 노동자의 고용과 일자리를 지켜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서 노동자의 일자리 보호를 강제할 정책이 전혀 보이지 않아요. 좋은 일자리 규모와 전체 고용 유지를 위한 노력보다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전직을 지원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19일 오후 2시 서울 관수동 전태일기념관 2층 공연장에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주최한 ‘제1차 2021 정의로운 전환 연속 포럼’이 열렸다. 이 포럼에서 ‘한국의 정의로운 전환 논의 분석’ 발제를 맡은 정보영 연구원(정의로운전환연구단)은 노동자의 일자리를 보호하는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란 미국 노동운동가 토니 마조치가 제안한 개념으로, 환경파괴산업 등을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막고 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로 이동하게 돕거나 생계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지역사회의 희생을 최소화하고 재건을 돕는 개념도 포함된다. 최근 기후위기 대응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석탄발전과 내연기관 자동차산업 등을 중심으로 정의로운 전환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보다 성장 담론 앞세운 탄소중립 시나리오

▲ 정보영 연구원이 ‘정의로운 전환’의 개념과 각계의 논의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정 연구원은 "정부가 직접적으로 전환의 책임을 지기보다는 ‘지원자’ 역할에 머무른다"며 “정부가 노동자를 직접 지원하는 것은 내일배움카드를 통한 훈련과정 개설과 저금리 생계비 대부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는 기업을 탄소배출과 산업 전환의 책임 있는 주체가 아니라 일방적인 피해자로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에 노동자가 배제됐다는 점도 비판했다. 전환의 실질적인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노동자, 빈민, 중소상공인을 대변할 수 있는 위원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탄소중립위의 ‘공정 전환 분과위원회’에는 한국노총 김동명 위원장만 참여한다.

정 연구원은 지난 4일 대통령직속 탄소중립위원회가 발표한 2050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과 관련, “기후위기 대응보다 경제성장 담론을 훨씬 더 중요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탄소중립이 글로벌 패러다임이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고 산업 전환 시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 담겼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발의한 정의로운 전환 관련 법안을 거론하면서 “기존 노동시장의 불평등한 구조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정 연구원은 현재 발의된 법안 중에는 정의당 강은미 의원안이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했다. 강 의원안은 이해당사자의 실질적인 참여와 협력에 기초해서 전환을 추진할 것,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와 손실 등이 지역사회와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등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할 것, 기후위기에 취약한 지역·계층·젠더(성별)·산업·노동·세대 등에 관한 현황을 파악하고 영향평가를 정기적으로 진행할 것 등을 포함했다. 강 의원안은 또 기후위기 대응과 산업구조 개편으로 발생하는 실업 및 빈부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의로운전환기금’을 조성할 것을 명시했다.

산업 전환 과정에서 불평등 완화 노력 절실

▲ 정의로운 전환 포럼에서 토론하고 있는 참가자들.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김석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이어진 토론에서 “현재의 생산과 소비 체계를 유지하는 현상유지적 접근 방식을 떠나 노동을 중심 가치로 경제구조, 사회체제, 생활방식 모두를 바꾸는 변혁적 접근이 이뤄져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지금의 경제구조를 유지한 상태로 진행하는 전환은 정의로울 수도 없고 기후위기 대응 또한 담보할 수 없다”며 탄소배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자본의 역할을 명확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는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일자리가 대거 만들어질 수 있다며 ‘국가책임 기후 일자리’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화석연료를 대체할 재생에너지 제조-설치-유지관리 일자리, 공공교통 일자리,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향상하기 위한 리모델링 일자리, 생태 농축어업 일자리 등을 적극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태섭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기획실장은 탄소중립정책과 에너지시장 자유화(에너지 생산과 공급을 민간기업이 담당하는 것)는 양립 불가능하다며 독일에서 진행된 에너지산업 재공영화(민영화한 서비스를 다시 공적관리 아래 두는 것) 사례를 소개했다. 독일 함부르크시는 2013년 9월 주민투표를 통해 1990년대에 민영화한 시내전력, 가스, 지역난방에 관한 재공영화를 했고, 이후 시민단체, 학계, 노동조합, 기업협회 등이 ‘안녕 석탄(Tschüss Kohle)’ 단체를 조직해 2030년까지 함부르크시에서 석탄발전을 퇴출하기로 합의했다. 그는 “한국은 전체 석탄발전소 중 75%를 발전공기업이 점유하고 있다”며 “재생에너지 전환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도 발전 공기업을 활용하는 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한국노총은 기후위기와 산업전환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세와 전국민배당제도를 정부에 제안했다. 탄소세는 화석연료를 많이 쓰는 제품 등에 누진적으로 세금을 부과해 에너지 사용을 억제하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이렇게 모인 탄소세를 전국민에게 배당한다면 탄소세의 소득 역진성을 해결하고 소득재분배 효과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탄소중립위 등에 노동자 참여 늘려야

▲ 토론 시간에 발언하는 남태섭 한국노총 공공노련 정책기획실장.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남 실장은 지난 1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의결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법’에 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사업 전환 지원이나 자산 손실 위험 최소화 등 기업을 지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고, 일자리 창출이나 고용 대책들은 다 빠졌다는 것이다. 그는 “정의로운 전환은 죽고 녹조라떼만 살아났다”며 이 법을 4대강 녹조 사태를 빚은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법에 빗댔다. 그는 또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 77명 가운데 양대 노총을 대표하는 한두 명이 참여하는 방식은 의미가 없다”며 “전환 과정에 직접 영향을 받는 노조가 직접 참여해야만 사회적 대화가 의미가 있고, 공정한 전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현정 녹색정치랩(LAB) ‘그레’ 소장은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위기 해결만을 위한 게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접근법으로도 확장하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위기라는 큰 흐름 속에서 다양한 구성 주체들의 젠더, 지역, 세대와 같은 특징을 잘 분석해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편집 : 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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