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활약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여천(汝千)이다. 1868년 8월 평남 평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홍 장군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 뒤 의병 활동을 시작했다. 1895년 11월 강원도 화양에서 봉기한 뒤 철령에 매복해 일본군 1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고 한다. 1907년까지 함경남도 북청에서 사냥과 농업에 종사한 홍 장군은 포수 동업조직 포연대의 대장을 역임하고 일제 침략이 노골화한 뒤 포연대를 주축으로 의병 부대를 조직했다. 1910년 노령 연해주에서 13도의군 조직에 참여하고 1911년 '조국독립'을 최고 이념으로 하는 권업회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1920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활약한 홍 장군은 1943년 10월 카자흐스탄에서 숨을 거뒀다. 1962년 정부는 홍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지난 8월 15일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카자흐스탄에서 세상을 떠난 지 78년 만이다.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방문 당시 홍 장군 유해 봉환을 요청했다. 한국 군 특별수송기(KC-330)을 통해 고국으로 돌아온 홍 장군 유해는 16일부터 17일까지 국민 추모 기간을 거쳐 18일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16~17일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국빈 방한에 맞춰 유해 봉환이 성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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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미디어콘텐츠부장, 유튜브브랜딩팀 신현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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