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⑫ 국가위기관리포럼 토론회

"지금 대선 예비후보들이 환경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을 하고 있습니까?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가, 그러면 어떤 일자리가 새로 생기고 기존 일자리는 어떤 게 없어지나, 직업이 없어질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새로운 비전을 주나...대선 후보들이 그런 얘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새만금에 공항을 만든다, 흑산도에 공항을 만든다, 온실가스 늘어나는 일만 벌이니 말이 됩니까."

12일 오후 2시 서울 태평로1가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제8차 국가위기포럼에서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이 ‘기후위기, 새로운 모델을 만들자’ 발제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국가위기관리포럼 등 8개 단체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서 최 이사장은 최근 러시아 시베리아와 미국 서부의 산불, 중국과 유럽의 홍수 등 극단적 기상재해가 이어지는 것을 지적하며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태양광·풍력 등 자연에너지 기반사회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후보 토론에서 실종된 ‘기후위기’ 의제 

▲ 국가위기관리포럼이 주최한 ‘21세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위기관리시스템’ 토론회에서 기조발제를 하는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 강훈

최 이사장은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이 2조 달러(약 2300조 원)를 들여 친환경 인프라 구축에 나선 것을 거론하며, 우리도 도시에 에너지제로빌딩을 세우고, 친환경 교통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사회 전반의 에너지전환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연에너지는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가격이 떨어진다”며 태양광·풍력의 경제성을 강조했다. 태양광산업협회에 따르면 태양광모듈(태양광패널)의 가격은 2010년 와트당 1.8달러에서 2020년 0.2달러로 약 90% 하락했다. 태양광 설비비 또한 하락 추세로, 현재 미국·중국 등에서는 태양광 발전 비용이 석탄이나 원자력보다 싸다.

최 이사장은 그런데도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언론이 ‘숲을 파괴한다’ 등의 이유로 태양광을 공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태양광이 환경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태양광을 설치하는 방법이 나빴던 것”이라며 “태양광 설치 기준을 잘 만들어 시행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최 이사장은 “햇빛은 공유재이기 때문에 지역 주민과 태양광 사업자 간의 교류 등 설치 단계에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 이사장은 국내 원전업계와 보수언론 등이 자연에너지 대신 원자력발전을 기후위기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도 비판했다. 그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현장에 다녀온 경험을 들려주며 “지금 그 안에는 (원자로) 노심이 녹아 접근할 수 없고, 로봇도 들어가면 파괴된다”며 “피해를 수습하는 비용이 500조 원으로 추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원전은 이렇게 안전성에 문제가 클 뿐 아니라 경제성도 낮다고 그는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원전 설치에 주민들의 반대가 커지면서 안전시설 투자비가 늘고, 이로 인해 가격이 비싸지면서 경제성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최 이사장은 미국 원전회사인 웨스팅하우스를 일본 도시바가 인수한 후 웨스팅하우스가 미국에서 파산을 신청하고 도시바도 해당 사업부문에서 철수하는 등 원전은 ‘사양산업’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의 원전회사 아레바도 2016년 파산위기를 겪은 후 2018년 오라노로 사명을 바꾸고 원자로 해체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원전, 탄소감축 기여도 낮고 사고 가능성은 증가  

월성과 신고리 등 국내 원자력발전소 설계에 참여했던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이어진 토론에서 기후위기 대응에 원전의 역할은 미미한 반면, 기상재난으로 원전 사고의 위험성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2017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에너지기술전망보고서를 인용, 2060년까지 원자력이 이산화탄소 감축에 기여하는 수준은 6%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에너지효율 향상(40%)과 재생(자연)에너지(35%)의 기여도에 비해 미미하다.

반면 원전은 수백 년에서 수백만 년 동안 방사선을 내뿜는 ‘사용후핵폐기물’을 발생시키며 체르노빌, 후쿠시마와 같이 원자로 노심이 녹아내리는(멜트다운) 대형사고의 위험성도 안고 있다. 이 대표는 이른바 ‘핵마피아’로 불리는 원자력계의 폐쇄적 네트워크 때문에 핵폐기물 관리와 원전의 안전관리가 취약하다고 말했다. 또 기후변화로 빈발하는 태풍, 홍수 등 자연재해가 원전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로 부상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9월 태풍 마이삭이 통과하면서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이 가동을 멈춘 것, 비슷한 시기에 태풍 하이선이 상륙했을 때 경주 월성원전의 터빈 발전기가 멈춘 것 등을 예로 들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은 지진해일(쓰나미)로 전원이 상실되면서 핵연료봉이 녹아내렸다. 이 대표는 “해수면 상승, 침수 등이 원전을 위협한다”며 “우리나라는 (탈원전 계획상) 2080년까지 원전을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폭넓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원전 안전을 이해집단인 원자력학회나 학교에 맡겨두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며 방치된 원자력안전 문제에 국가, 지방자치단체,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시민사회단체가 고루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 토론하는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 강훈

기후변화 경고 후 30여 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재호 나노웨더 대표는 1991년 기후변화 보고서를 작성했다가 정부 관계자로부터 “그대로 사용할 수 없으니 수치를 줄여서 다시 반영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기후위기’를 ‘기후변동’이라 불러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는 서른 해가 지난 지금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연평균 350피피엠(ppm)에서 410ppm으로 높아졌고, 기후재난은 본격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 대표는 “그 사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오균 대전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은 우리 정치와 교육에서 환경과 생태계를 살피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선 주자들이 내놓은 의제를 보면 기후나 환경에 대한 어젠다는 없다”고 꼬집었다. 두 소장은 또 이탈리아와 멕시코에서 환경교육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추진된 것을 소개하고 “한국에서는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교육부가 발표한 ‘중고등학교 환경교과목 채택 현황’을 보면 2018년 기준 중고교 5591개 중 환경과목을 선택해 가르치는 학교는 470곳으로 8.4%에 그쳤다.

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재편되는 국제경제 질서 속에서 기후위기란 곧 국가위기라고 내다봤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탄소 경제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면 이 모든 것을 바꾸는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2050년이 채 오기도 전에 한국 경제는 위기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찬권 한국위기관리연구소 소장은 위정자들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정치 지도자들 중심으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며 “그 후에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는 식으로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제에 이어진 토론에서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는 참석자들. ⓒ 강훈

박연수 충청북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은 “일상으로 다가온 기후위기를 온전히 감각하는 사람은 적다”며 위기를 초래한 집단은 가려지고 피해를 받는 계층만 늘어나는 불평등한 구조를 지적했다. 박 사무처장은 “기후위기를 정치화하지 않고 종으로서 인류를 보전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려면 국민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런 뜻에서) 교육과 홍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연준 충청북도 환경산림국장은 박 사무처장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국민 각자가 기후위기를 ‘당면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기후위기는 이제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며 “체계적인 홍보와 교육을 통해 국민들에게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편집 : 최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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