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남윤희 기자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품위 있는 사회란 ‘제도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도록 배려하며 이로써 구성원들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사회’라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을 모욕하는 제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선별 복지다. 복지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고, 한 인간을 동정이나 자비의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열등한 존재로 격하하고, 가난을 증명하게 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낙인을 찍는다.

헌법 34조에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규정돼 있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물질의 토대를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10년 전, 김황식 국무총리는 "복지 혜택은 국민의 권리가 아니며 사회에 고마움을 가질 때 품격 있는 나라가 된다"며 사회의 약자들을 모욕했다. 품위 있는 사회는 복지의 절차와 방식이 그 대상자를 모욕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의 약자를 ‘동정’으로 돕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받을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며 분배해야 한다. 최근 코로나를 겪으며 자신이 영위하는 경제가 어려워질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이들이 많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은 모두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 초 4차 긴급재난지원금 지원대상을 소상공인·자영업자로 한정했고 특수고용노동자 등 어려움에 직면한 많은 이들을 배제했다. 

▲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임시직 일용직 노동자들이 무급휴직, 정리해고 되었다. 이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각종 정부지원에서 배제된다. 모든 사람들이 차별없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보편복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 연합뉴스

기본소득은 자격심사 없이 모든 사람에게, 개인 단위로, 노동 요구 없이 무조건 지급된다. 이는 선별 복지보다 효과가 크다. 첫째, 효율성이다. 최근 아동수당 지급 대상을 선정하는 데 들어간 행정비용은 예산의 약 1/7인 1000억원이다. 기본소득은 행정비용이 거의 들어가지 않고 신속한 지급이 가능하다. 둘째, 정치적 실현 가능성이 높다. 2000년도부터 실시된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수급 대상자가 거의 확대되지 못하고 있는 반면, 무상급식은 2009년에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을 시작으로 2010년에 지방선거로 확산됐고 2012년 대선에서는 공약으로 나왔다. 중산층을 수혜 대상으로 하는 복지는 빠르게 확대되지만, 저소득층에 집중하는 선별 복지는 확대가 느리다. 셋째 노동 유인이 크다.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는 근로소득이 발생하면 그만큼 생계급여가 줄어들지만 기본소득은 일을 할수록 소득이 늘어난다. 

기본소득 재원 마련 방안에 관한 논의도 필요하다. 모든 국민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하려면 187조원 이상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조선 시대 정조는 “손상익하(損上益下)가 국가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위에서 손해를 보고 아래에서 이익이 되게 하라는 뜻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인 소득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재벌이나 고소득층에서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국토보유세와 초부유세 신설, 소득세 한계소득세율 상향, 탄소세, 로봇세, 데이터세 도입 등을 통해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보편증세 확대가 불가피하다. 지금은 세금을 내는 사람과 혜택을 받는 사람이 분리돼 조세저항이 더 커지는 측면이 있다. 적은 금액이라도 기본소득을 실시해 중산층과 고소득층에게 복지 혜택을 누리게 한다면 저항을 줄일 수 있다.

선거철만 되면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를 말한다. 복지에 반대하는 정치인은 한 사람도 없다. 한 인간을 제도로 모욕하는 선별 복지가 아닌 보편 복지로 나아가야 한다. 보편 복지가 구현해야 하는 사회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자신의 인간적 필요를 충족시키며, 자기존중을 누릴 수 있는 품위 사회다. 기본소득은 품위 있는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편집: 남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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