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불패] 대산농촌재단 장학생 연수 참가기 ①

기후위기 시대를 성찰하며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농업과 농촌의 가치다. 대산농촌재단 연수단은 조별 분산연수와 통합연수의 방식으로 지난 7월 6일부터 9일까지 3박4일간 경기 포천시와 연천군, 전남 보성군, 충남 천안에 있는 친환경 농가를 견학해 지속가능한 농촌사회를 유지할 대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후위기 시대의 지속가능한 농(農) 무엇인가‘를 주제로 한 이번 연수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참석자 전원이 선제 검사를 받고, 방역수칙을 지키며 진행됐다.

재방문률 90% 체험마을 비결은?

인구 4만3000여 명에 불과한 경기도 연천군에 연간 방문객 수 2만5000~3만여 명을 자랑하는 농촌 체험마을이 있다. 동쪽으로는 종현산이 북쪽으로는 한탄강 상류 아우라지강이 굽이쳐 흐르는 청산면 궁평리의 푸르내마을이 그곳이다. 지난 2008년 설립된 마을 주민 농장에서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주민 소득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 푸르내마을 공동체에는 궁평리 전체 266가구 중 직간접으로 130가구가 참여한다. 방문객 수가 늘어나자 체험마을 운영 후 농산물 판매가 늘어, 푸르내마을 참여 농가는 한 농가에 연간 1000만~1500만 원가량 수익을 추가로 올린다. 

▲ 지난 7월 6일 연천군 푸르내마을 양갑숙 사무국장과 함께 대산연수생들이 모여 있다. ⓒ 대산농촌재단

방문객은 궁평리의 토마토, 포도, 오이 농장 등에 들러 직접 농작물을 수확하는 체험을 해보고, 신선한 농작물을 원료로 하는 비누나 미스트 만들기, 제빵을 경험한다. 푸르내마을 양갑숙 사무국장은 “12년 동안 처음 구성원이 지금까지 한 명도 안 바뀌었다”며 “초심을 잃지 않고 주민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유지한 점이 오래가는 비결인 거 같다”고 말했다. 

연수단 1조는 푸르내마을 곳곳을 누비며 체험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마을 특산품인 오이를 직접 추출한 오일로 된 콜라겐 미스트와 싱싱한 보리빵을 구워보는 체험을 했다. 체험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토마토 농장에서는 커다란 애플토마토와 대추방울토마토 두 가지 열매를 1인당 한 박스씩 땄다. 양 사무국장은 연수생 전원을 직접 태워 연천군 명소인 재인폭포로 데려가 용암이 녹은 흔적이 장관을 이룬 경치를 소개했다.

▲ 연수생들이 푸르내마을 농장 체험으로 토마토 따기 체험을 했다. ⓒ 대산농촌재단

푸르내마을은 마을 운영 역량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2년 동안 푸르내마을은 체험휴양마을 경진대회나 공모전에서 여러 상을 받아 명성을 떨쳤다. 양 국장은 개인적으로 자격증이나 수료증을 포함해 50개를 땄을 정도로 개인 역량을 키우고 있다. 방문객 중에 장애인이 많이 포함되니 사회복지 자격증을 따고, 쌀 요리 체험을 하기 위해 쌀 클레이 자격증을 따는 등 수없이 투자하고 배우면서 방문객에게 제공할 서비스 품질을 개선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배움은 해외로 이어졌다. 2019년에는 마을 구성원들이 선진지 견학을 위해 일본 연수를 3박4일간 가서 농산물 소포장이나 로컬푸드 매장 전시 방법들을 학습했다.

‘흙에서 온 것, 흙으로 돌려보내자’

“여기는 체험장이 아니라 농사짓는 농장이에요.”

평화나무농장 원혜덕(66) 대표의 말이다. 경기도 포천시 평화나무농장에서 연수단 1조는 유기농업 최전선 현장을 체험했다. 유기농업 1세대를 길러낸 풀무원농장의 원경선 선생을 계승한 그 딸 원혜덕, 김준권(74) 대표 부부를 만나 지속가능한 가족농의 모습을 살펴봤다. 평화나무농장은 총 50종에 이르는 유기농 작물을 시기별로 바꿔가며 약 5천평에 재배한다. 

▲ 평화나무농장 김준권 대표가 직접 산양 배설물을 보여주면서 경축순환농법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평화나무농장은 지속가능한 농업을 지향한다. 직접 기르는 수십 마리 소의 배설물은 토마토와 보리, 밀 등이 있는 밭 퇴비로 쓴다. 이를 경축순환농업이라 한다. 김준권 대표는 연수생을 논으로 데려가 벼를 한 포기 뽑아 선보였다. 벼 뿌리에 다닥다닥 붙은 우렁이 알과 커다란 왕우렁이였다. 왕우렁이는 1995년부터 친환경농업에서 수면과 수면 아래 있는 수초, 연한 풀을 섭취해 제초제를 대신한다. 농장 입구에 있는 너비 4m 정도 되는 커다란 태양광패널은 농장 운영에 필요한 전력을 대는 데 쓰인다. 김 대표는 “유기농의 본래 목적은 재생과 순환”이라며 “이는 어떻게 사느냐를 결정하는 삶의 태도 문제”라고 말했다. 

▲ 평화나무농장에서 연수생들이 들깨 심기 체험을 하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오후 2시 무렵 연수생들은 밀짚모자에 작업용 바지와 기다란 장화를 착용하고 들깨 밭으로 갔다. 김준권 대표가 밭 고랑에 구멍을 내면 연수생들은 뒤따라가며 들깨 모종을 세 그루씩 집어넣고 손으로 구멍을 메웠다. 30도에 이르는 날씨에 겨우 1시간 남짓 작업을 했는데도 연수생들은 온몸이 땀으로 뒤덮였다. 원혜덕 대표는 농장에서 수확한 양파를 저울에 달아 박스로 포장하는 작업도 시켰다. 연수생들은 흙이 낀 양파들을 박스 가득 담아 옮겼다. 농장 체험 뒤에는 평화나무농장 대표 상품인 유기농 통밀 치아바타와 소시지, 요거트를 맛보았다. 

농민 기본소득에서 농촌 기본소득으로

“모두 헛웃음을 지었어요. 농촌에서 기본소득이 가능하겠냐고. ‘빨갱이’ 정책 아니냐는 사람도 있었죠. 그런데 2019년 전남 해남군에서 최초로 시행하더니 이제는 전국 광역지자체 10곳에서 추진하거나 검토중이죠.”

▲ 박경철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은 강연에서 “우루과이라운드(UR)와 IMF 외환 위기를 겪으며 농민 기본소득에 관해 연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 대산농촌재단

지난 8일 박경철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이 ‘농민 기본소득에서 농촌 기본소득으로’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우루과이라운드(UR)와 IMF 외환 위기를 겪으며 20대를 보냈다. 그리고 농촌 지역의 인구소멸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을 보며, 농촌 기본소득이 대안이라 생각했다. 농민 기본소득은 국가가 모든 농민에게 영농의 규모나 업종에 상관없이 일정한 금액을 균등하게 지급하는 제도다. 박 연구실장은 이 정책을 ‘사람을 향하는 정책’이라 요약했다. 

유럽인들은 ‘식량을 뺏기면 주권도 뺏긴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 농민들은 이미 기본소득에 해당하는 직불금으로 생계를 보장받고 있다. 전체 농업예산 중 직불금 비중은 2016년 기준으로 유럽연합(EU)의 경우 71.7%에 이르렀지만 우리나라는 17%에 불과했다. 물론 유럽과 우리나라를 직접 비교하긴 어렵다. 평균 경작지 면적이 유럽은 30~50ha(30만~50만㎡)이지만 우리나라는 1.5ha(1.5만㎡)로 영세하다. 그래서 박 실장은 우리나라에는 면적 기준 수당 개념이 아닌 기본소득이 지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도 점차 농민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곳이 늘고 있다. 2019년 전국 최초로 전남 해남군에서 ‘농민수당’이라는 이름으로 농가당 60만 원을 지급했다. 그 후로 전국으로 확대돼 현재 광역지자체 10곳에서 시행중이거나 검토중이다. 특히 경기도는 올해 10월부터 월 5만 원 또는 분기별 15만 원씩 농가별이 아닌 개인별로 지급한다. 박 실장은 “기본소득을 지급할 때 조건이나 원칙을 달면 안 된다”며 “조건을 달면 검증하기 위해 또 인력과 예산이 투입되는데 차라리 그 예산을 아껴 기본소득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 논리 거스르는 착오적 발상? 

정부가 기본소득으로 농민을 지원하는 것이 자유경쟁을 원칙으로 하는 시장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여기에 박 연구실장은 이렇게 답한다. 

“나라 지키는 국방 일도 시장 경제에만 맡기진 않잖아요. 농업도 마찬가지예요. 식량이 없으면 국민은 살 수 없어요. 이익을 떠나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농민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 증세 전략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박 실장은 국토보유세를 강화해 기본소득 재원을 충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 예산편성에 관해 두 가지 조언을 했다. 첫째는 농업인구에 맞게 예산편성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전체 인구의 4.3%가 농업인구인데, 농업 예산은 전체 예산 중 2.9%밖에 안 돼 터무니없이 적다. 둘째는 편성된 농업 예산에 맞는 사업을 하는 것이다. 새만금 매립 비용을 비롯한 지역개발사업도 농업예산으로 충당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사업을 용도에 맞는 항목으로 옮기면 농민 기본소득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 2021 대산농촌재단 하계 연수 3일째, 충남 천안시에서 박경철 연구실장의 강연을 듣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농민 기본소득은 진짜 기본소득이 아니다?

농민에게만 지급하는 농민 기본소득이 기본소득의 정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기본소득은 ‘보편성’ ‘개별성’ ‘무조건성’ ‘정기성’ ‘현금성’과 같은 다섯 가지 성격을 띤다. 그런데 농민 기본소득은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으므로 ‘무조건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박 연구실장은 기본소득 개념 안에 ‘참여소득’이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기본소득을 주되 농민에게 농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을 거는 것이다. 농민이라는 집단 안에서는 차별 없이 지급하는 것이므로 참여소득, 다른 말로는 범주형 기본소득이라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장기적으로 ‘농민 기본소득’이 아닌 ‘농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농촌에서 농민과 비농민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경영업체로 등록하지 않은 사람, 농업을 직·간접적으로 돕는 사람, 외국인 노동자 등 농업에 참여하지만 실제로 농민이라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 실장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농지별, 농민별 기본소득이 아닌, 포괄적인 농촌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농민 기본소득은 급진적이거나 서양의 전유물처럼 느껴지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통일 신라 때 자영농민을 돕기 위해 지급한 토지 정책인 ‘정전’, 조선 후기 정약용이 제시한 토지개혁안 ‘정전제’ 등이 시행된 바 있기 때문이다. 박 실장은 “당시에는 토지가 곧 일자리와 소득이었으므로 토지를 나눠주는 것이야말로 기본소득과 같은 개념”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농민 기본소득이 시행되어야 하는 이유를 힘주어 말했다.

“기본소득은 현대에 갑자기 등장한 정책이 아니에요. 시혜가 아닌 권리인데, 지금은 말 잘 듣는 농민에게 돈을 주는 식으로 농업 예산 정책이 자리잡았죠. 그러다 보니 심고 싶은 작목, 기르고 싶은 꽃이 있어도 소득 작물만 심게 되는 거예요. 기본소득은 농민이 당연히 쟁취해야 할 권리입니다.”


편집 : 정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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