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최은솔 기자

요즘 직장인들 자투리 시간 취미가 바뀌었다. 실시간 주식, 암호화폐 가격 확인보다 중요한 일이 생겼다. 잔여 백신 알림이 나오는 포털 사이트를 무한 ‘새로고침’ 한다. 잔여 백신을 최대한 빨리 맞고 마스크 없이 전국 각지로, 해외로 여행 갈 날을 상상한다. 집단면역을 위한 중요한 조건에는 이런 열렬한 접종 의사가 있다. 뛰어난 디지털 플랫폼 기술을 통한 정보 공유는 코로나 방역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휴대전화로 사람들이 확진자 동선, 마스크 재고량, 모임 자제 안내, 잔여 백신 알림에 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모두가 정보를 누렸을까? 한 장면이 떠오른다. 마스크가 부족하던 코로나19 사태 초기 약국 앞. 젊은 세대는 마스크 판매 사이트 정보를 SNS로 공유하면서 쉽게 구했지만, 스마트폰 활용이 서툰 고령자는 마스크를 구하러 몇 시간씩 줄을 섰다. 그렇게 기다리다 허탕 치는 때도 많았다. 팬데믹 상황에서 여러 디지털 기기로 전송된 방역, 금융, 배달 정보들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줄 아는 세대에게는 정보의 ‘창구’였지만 고령층에는 ‘소외’로 다가왔다.

코로나19 사태는 디지털 격차의 촉매제에 불과하다. 코로나 이전부터 디지털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기술 활용을 못 하고, 정보화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계층은 있었다. 패스트푸드점과 프랜차이즈 커피매장, 버스, 지하철, 기차역에서 무인발매기가 계산을 하는 점원을 대체하자, 기계가 낯선 계층은 당황했다. 모바일 예매 시스템이 활발해지자 입석 탑승객 중에는 노인이 대부분이라는 기사도 보인다. 전자 화면을 눌러 원하는 정보를 입력하는 과정 자체가 젊은이에게는 손쉬운 일이지만, 아날로그 세대에게는 장벽 그 자체다. 

▲ 정부는 디지털 취약계층의 정보 수준이 2021년 72.7%로 전년도보다 2.8%p 개선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전자상거래나 키오스크를 통한 비대면 거래 경험이 없는 65세 이상 고령 소비자가 어려움을 토로한다는 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도 나오고 있다. 디지털 취약계층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늘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계속해서 제기되는 것이다. ⓒ KBS

이런 현실은 수치로 증명된다. 2019년 인터넷이용 실태조사 결과, 70대 이상의 인터넷 쇼핑과 인터넷 뱅킹 이용률은 15.4%, 6.3%로 매우 낮다. 2019년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령자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 대비 64.3%에 불과하다. 저소득층, 장애인, 농어민도 75% 수준이다. 이 수치에 담긴 비밀은 대다수 디지털 소외계층이 기기는 있어도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정보격차는 기술보급 확산과 대중화로 자연스레 사라진다는 반론이 있지만, 순진한 생각이다. 신기술은 계속 개발되고 활용 능력은 중첩되어야 한다. 정보격차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계속 벌려 놓는다.

디지털 격차 해소는 정의의 관점에서도 필요하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의 목적은 사람 고유 능력과 미덕을 계발하게 함으로써 공동선을 고민하고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걱정하게 하는 데 있다. 디지털 사회에서 정의는 다른 게 아니다. 시민들이 마땅히 누릴 것을 주면 된다. 디지털 기기를 다루고,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 기회나 정책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소외 계층을 포용하는 것은 이들이 사회에 닿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디지털 시대의 노인이 기기를 잘 다루고 정보를 찾는 능력은 자존감과 삶의 질에 영향을 준다.

그러면 디지털 포용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 정책은 기기를 보급하거나 취약계층의 사용 능력을 높이는 것에만 지나치게 집중했다. 전국의 지역미디어센터, 시청자재단 등으로 이뤄지는 교육 내용 대부분은 정보 활용보다 기기 활용에만 편중됐다. 직접 제천 노인미디어모임에 참석했을 때 교육생들은 주로 화상통화 프로그램을 어떻게 쓰고, 핸드폰 사진과 영상을 어떤 구도로 찍는지 배우느라 바빴다. 정작 일상생활에서 자주 안 쓰니, 모임마다 다시 처음부터 프로그램 사용법을 배워야 한다.

개개인 맞춤형 서비스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기기를 보급하고 작동 방법을 배우는 것까지는 정책으로 어떻게든 밀어붙일 수 있지만, 일상의 활용은 개인의 동기와 욕구가 따라야 한다. 1대1로 55세 이상 동년배 노인이 멘토가 되는 서울시 ’어디나 지원단‘ 사업은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미디어 문해 능력을 높이는 것도 디지털 포용에 중요한 요소다. 미디어 문해 능력은 비판적으로 정보를 소비하는 능력이다. 최근 육칠십대 유튜브 콘텐츠 시청 시간이 빠르게 늘고 있다. 문제는 알고리즘으로 편향된 정보를 걸러내는 방법을 알려줄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 문해 능력이 없는 계층이 편향된 정보에 경도되어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도 커진다.

디지털 포용은 약자를 배려하는 존 롤스의 ‘차등의 원칙’을 적용한 정의다. 한국이 초고령사회와 초연결, 최첨단 사회로 들어가는 데 우리도 언제 ’디지털 소외’ 계층으로 전락할지 모르는 것 아닌가? 정보격차 실태를 느낀 참여연대 활동가는 우리 사회가 모든 시민이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특정 인간 유형을 표준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사회에서 기술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은 자꾸 뒤로 밀려난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모두에게 부탁한다. 나 역시 언젠가 뒤처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런 경우에 대비해 모두를 포용하는 정책에 동의하는 것이다.


편집 : 김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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