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K 양극화” ① 집

물 위에 둥둥 떠 있던 이주노동자의 집

작년 중순이었다. 탐사보도 공모전 최우수상을 받은 <단비뉴스>팀의 ‘이주노동자의 집’이라는 기사를 보게 됐다. 지금은 내가 단비뉴스를 만들고 있지만, 그때는 우연히 접한 기사였다. 기사는 충격적이었다. 바다 위에 둥둥 떠 있거나, 논밭에 놓여 있는 ‘물체’가 집이라고 했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주노동자였다. 이들은 한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3D업종에 종사하며 거주지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취재에 도움을 준, 이주노동자를 돕는 목사는 이들이 ‘노예’나 다름없다고 했다. 노예라는 이름은 자극적이었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는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 단비뉴스는 지난 2020년, 이주노동자의 집’이라는 기사를 통해 공장 옆, 비닐하우스 아래, 바다 위에 위치한 이주노동자들의 취약한 주거 현실을 고발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도 그 처절한 현실은 이어지고 있다. Ⓒ 단비뉴스, Bold-Extende

사업주는 집이라 할 수 없는 이 집을 그냥 제공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3명이 사는 집에 월 75만 원, 개인당 25만 원가량의 임대료를 받고 있었다. 내가 대학 시절 알아본 학교 앞 고시원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이 사는 ‘물체’에 그 금액을 준다는 사실 자체가 상식에 벗어난 일이었다. 파도가 치면 흔들리고, 논 위에 설치한 비닐하우스 안에 샌드위치 패널을 두고 만들어진 가건물은 도저히 집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건물 밖에 놓여 있는 화장실은, 누가 화장실이라고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폐건물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한 실태가 알려지는 걸 꺼렸다. 자신들이 고발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했다. 이주노동자의 주거 현실을 다룬 보도는 연이어 이어졌지만, 얼마 전 그들이 변하지 않는 집 속에서 살고 있다는 기사를 다시 보게 됐다. 여전히 그들은 비닐하우스에 머물고 있었다. 

영화 <기생충>이 그려낸 현실

이주노동자만이 아니다.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이들만큼, 끝없이 치솟는 집값에 전셋값까지 집 없는 서민들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영화 <기생충>은 반지하에서 완전 지하로 전락한, 집 없는 이들의 아픔을 그려낸다. 지하 암흑세계에서 끝없이 지상을 향해 보내던 모스 구조신호, 집 없는 이들의 아픔을 계단 아래로 끝없이 쏟아지던 물줄기와 반지하 방 변기를 꾸역꾸역 넘치던 오물 장면은 너무나 생생했다. 반지하 생활에 밴 냄새가 마침내 살인을 부르며 영화는 끝나지만, 영화는 세상의 공감을 얻었다. 영화는 집이 누군가에게는 안락한 휴식처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벗어나고픈 지옥임을 보여준다. 

▲ 기생충 속 기우의 가족은 반지하를 집으로 삼고 살아가지만, 동시에 그 집을 벗어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반지하는 마음을 놓고 살아갈 수 있는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 집을 벗어나려는 이들의 분투는 우리의 현실을 담아냈고,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 CJ엔터테인먼트

집은 더 이상 사는(living) 곳이 아니다. 집은 이미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가르고, 신분을 나누는 지표가 되었다. 나락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빚을 끌어다 투자를 하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해 집을 사려고 발버둥 친다. 집을 투기대상으로 삼고, 부동산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선봉에 공무원과 사회지도층이 있었다. 지난 3월 LH 사태를 통해 드러난 공무원들의 재개발 지역 농지 투기는 돈이 되는 일에 최소한의 양식과 도덕성도 없음을 보여준다. 공무원의 비밀 정보 활용을 기반으로 한 투기만이 아니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국민권익위원회의 당 소속 의원 전수조사 결과 12명의 의원이 부동산과 관련해 위법 의혹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청와대에서는 김상조 전 정책실장이 임대차 3법 시행 직전 자신이 소유한 아파트의 전셋값을 과하게 올린 혐의로 현재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겠다며 나선 지도층의 모순된 행태는 많은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불패 신화가 낳은 부동산 공화국

지도층과 공무원도 예외 없는 부동산 ‘불패 신화’는 부동산 공화국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임금보다 집값 상승률이 100배나 높았다는 한 시민단체의 조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이제 정상적인 월급으로는 집을 살 수가 없다. 역대 정부는 모두 부동산정책을 앞세웠다. 문재인 정부도 잇따라 집값을 잡기 위한 정책을 내놓았지만, 그 효과는 보이지 않는다. 2021년 7월 2주 차에는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0.15%를 기록하며 1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재개발을 앞둔 아파트들은 1년 새 시세차익이 5억이 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는 정부 차원의 시도는 모든 정권에서 끝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고, 집값은 여전히 잡히지 않은 채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 6월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1년 반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 기록은 한 달 후인 7월 새로 경신됐다. Ⓒ KBS

집의 양극화는 더욱더 깊어지고 있다. 신한은행이 지난 5월 발표한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 2021’에 따르면, 2018년 상위 20%의 부동산 자산은 11.9% 증가했으나, 하위 20%는 이보다 더 큰 폭인 14.7% 감소했다. 보유자산의 차이는 부동산 자산 가격이 주도했다. 이에 따라 부동산 자산 격차는 164.3배로 기존 125.4배보다 큰 폭으로 증가했다. 부동산이 양극화를 가중시키는 모양새다.  

집 양극화는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불평등을 내재화하게 만든다. 서울연구원은 지난 5월  ‘장벽사회, 청년 불평등의 특징과 과제’ 보고서를 냈다. 20~39살 청년 1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결과였다. 청년들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느낀 불평등으로 10명 중 4명이 자산을, 3명이 소득을 꼽았다. 응답자의 90%가량은 지난 10년간 한국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더욱 심각해졌으며, 향후 10년간 불평등이 심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자산 불평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미래세대인 청년들은 불평등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시 보는 ‘경자유전 거자유택(耕者有田 居者有宅)’ 정신

자산 불평등이 심화되고 집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집과 관련해 양면성을 드러냈다. 하나는 집을 둘러싼 불평등이 더욱 심화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역설적으로 집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재택근무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집이 됐다.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뒤따르며 ‘살아가는’ 집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집의 본질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현상이 이른바 ‘집방’ 프로그램의 유행이다. 1인 가구가 증가한 세태를 반영한 MBC <나혼자 산다>를 필두로 MBC <구해줘 홈즈>, JTBC <서울엔 우리집이 없다>, SBS <나의 판타집> 등이 대표적이다. 해당 프로그램들은 공통적으로 ‘내가 살지 못하는 집’을 ‘대리 체험’ 시켜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나를 대신해 집을 구하러 다니고, 서울을 벗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판타지를 충족시켜주기도 한다. 이는 결국 거주지로서의 집을 갈망하지만, 현실에서 이루고 있지 못한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욕구를 충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거주지를 찾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많은 시민은 방송을 통해서나마 대신 그 욕구를 충족하고 있다. 살 수 있는 집이 없어져 버린 세태를 반영한 모습이다. MBC <구해줘 홈즈>는 이러한 시민들의 욕구를 정확히 짚어내 많은 호응을 끌어냈다. Ⓒ MBC

집은 이제 ‘살고 있는(living)’ 존재가 아니라 ‘사는 (buying)’ 대상이 돼버렸다. 늦었지만 다시 ‘경자유전 거자유택(耕者有田 居者有宅)’ 정신을 돌아본다. 경자유전의 원칙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농지개혁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농사짓는 사람이 밭을 소유하게끔 하기 위해 마련된 원칙이다. 이제부터 그 본질을 되살려 다시 실현해야 한다. 헌법은 농지의 소유권을 농사짓는 사람에게 제한해 허용하고 있다. 헌법정신을 법과 제도로 구현하자. 나아가 거주한 실소유자가 집을 가진다는 ‘거자유택’의 원칙도 다시 세우자. 결국, 집을 사는(living) 곳으로 만들자는 의미다. 

‘사는 집’으로 돌아가려면

집이 K-양극화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집이 사는(Living) 공간이 아니라 자산으로서 만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한, 사람의 공간은 없다. 집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가장 기본조건이란 뜻이다. 늦었지만, 집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부동산 광풍을, 집 양극화를 방치할 수 없는 이유다. 집은 누군가에게는 재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최소한의 삶을 조차 보장하는 기본조건이다. 집이 없어 결혼을 포기한 사회초년생 청년부터, 평생 노동했지만, 몸 하나 누일 자리조차 없는 노년층까지, 집은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절망에 빠트리고 있다. 

코로나가 집 양극화를 더욱 심화하고 있다. 전국 집값은 2019년 9월 이후 94주째 오르고 있으며, 수도권의 집값 오름세는 2012년 이후 최고 폭을 기록했다. 그 와중에 지난해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청년층의 9%가 방 면적이 14㎡보다 적은 최저 주거기준에도 못 미치는 방에 살고 있었다. 집은 ‘사는(Living) 곳’인가, ‘사는(Buying) 물건’인가?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K 양극화’다. 코로나 팬데믹은 그동안 방치돼 온 부와 노동의 불평등을 심화했다. 가진 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어려운 이는 나락에 빠져 신음 중이다. ‘사회적 돌봄’이 코로나 이후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오늘, 우리 사회의 다양한 ‘K 양극화’ 실상을 조명한다. (편집자)

편집 : 신현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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