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폭염의 연대기'

▲ 임예진 기자

마스크를 쓰고 맞이하는 두 번째 여름이다. 기상청은 12일 전국에 폭염경보와 주의보를 발령한 데 이어 13일 아침에는 간밤에 열대야 현상이 있었다며 지난해보다 23일 이른 기록이라고 발표했다. 날이 더워지니 3년 전 여름이 떠오른다. 그해는 유독 더웠다. 지구가 폭염으로 달궈져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폭염은 31.4일, 열대야는 17.7일로 역대 1위를 기록했다. 그해 위태위태하던 우리 집 에어컨이 가스를 내뿜다가 가동을 멈췄다. 부모는 지출이 많아 당장 에어컨을 사는 건 어렵다고 했다. 나는 더위를 잘 안 타는 편이기도 하고 낮에는 카페나 도서관,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면 되니까 거뜬할 줄 알았다. 

복병은 잠이었다. 공기가 너무 더워 선풍기는 쓸모가 없었다. 뜨거운 바람이 오히려 불쾌감을 더했다. 이마에 얼음주머니를 올려 놓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흥건했다. 뒤척이느라 잠을 설쳤고 겨우 서너 시간 잠들었다가 일어나면 온몸이 축축했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자 낮에도 피곤이 가시지 않았다. 도저히 못 참겠다 싶은 날에는 근처 친척집 신세를 졌다. 부모에게 앓는 소리를 하며 에어컨을 사자고 졸랐다. 이듬해 봄 에어컨을 장만했다. 시릴 만큼 차가운 바람에 기록적인 폭염은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추억이 됐다.

지난해 한 신문 칼럼은 2018년 여름을 다시 떠오르게 했다. 기자가 폭염 속 쪽방촌을 취재하고 쓴 취재기였다. ‘쪽방촌 주민 A씨의 가난’이라는 제목을 보고 내가 잠깐 겪은 에어컨 없는 여름이 얼마나 호화로운 고생이었나 생각했다. 다닥다닥 작은 방들이 붙어 있는 쪽방촌은 여름이면 거대한 찜질방이 된다. 몸 하나 누이기도 버거운 방에 에어컨은 사치재다. 그 기자는 쪽방촌 주민을 만나 폭염이라 힘들지 않냐고 묻는데 주민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채 자리를 뜨려는데 주민이 얘기를 시작했다. 

2년전 뇌질환 병원비를 내느라 쪽방에서도 밀려난 그는 차비가 부족해 가는 데만 4시간 걸리는 병원을 걸어 다녔다. 기자는 쪽방 생활의 어려움을 물었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폭염 속 왕복 8시간씩 걷는 사람에게 쪽방에서 더운 바람 나오는 선풍기 앞에 앉아 있는 것은 시원한 시간이었던 셈이다. 나는 치료를 받으러 하루 8시간씩 걷는 삶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재난은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궁핍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교과서 문장처럼 여겼다. 현실감이 없었던 것이다. 2000년부터 2018년까지 19년간 폭염이 602명의 생명을 앗아갔다는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다.

▲ 뜨거운 태양 아래 이동중인 사람들 © 연합뉴스

지난해 환경부와 기상청이 공동 연구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은 가까운 미래에 여름날 사흘 중 하루는 극악의 폭염일 거라고 예측했다. 지난 3월에는 전국 평균기온, 최고기온, 최저기온 모두 역대 최고값을 기록했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 봤다. ‘최악의 폭염’이던 2018년 3월의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고 한다. 심상찮은 올 여름을 A씨는 어떻게 견뎌낼까? 이름도 얼굴도 모를 그의 평안을 마음으로 빌면 그만일까? 눈에 잘 띄지 않는 취약계층 사람들이 조용히 죽어가는 것을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가?

1995년 7월 14~20일 미국 시카고에서는 4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739명이 사망했다.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인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폭염에 희생됐는지 알아내기 위해 16개월간 이들의 죽음에 관해 ’사회적 해부’를 했다. 그는 폭염 사망자가 분포한 장소가 인종차별 및 불평등의 지형도와 대부분 일치한다는 점을 알아냈다. 폭염 피해자들이 흑인이거나 가난해서 더위에 취약한 것만은 아니었다. 시카고 엥글우드와 오번그레셤은 흑인 거주 비율이 99%인 지역이었는데 엥글우드는 주민 10만명당 사망자가 33명인데 오번그레셤은 3명에 그쳤다.

두 지역을 가른 건 ‘사회 하부구조’ 즉 촘촘히 연결된 공동체의 존재였다. 사회적 고립과 소통의 상실이라는 문제는 폭염이란 재난을 맞닥뜨리면서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의 대안도 여기에 있다. 쪽방촌의 현실이 소설 속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지지 않게, 우리 이웃의 문제로 함께 고민하는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

지난해 정부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여름철이면 에어컨을 틀어주는 쪽방촌 쉼터의 문을 닫았다. 쪽방촌 주민 중에는 몸이 불편해 밖에 나가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방 한 칸에 더운 선풍기 바람만 쐬는 이들에게 쉼터는 그나마 한숨 돌릴 공간이었다. 빈곤층이 폭염 속에서 어떻게 살고 죽는지 아무 관심이 없는 탁상행정인 셈이다. 다시 폭염의 계절이다. ‘조용한 살인자’를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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