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실험실] 리걸 마인드(Legal Mind) 제1화

방역 지침 바뀌었지만 여전한 '확진자 시험 응시 불가'

작년 4월 20일 질병관리청은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시험방역관리 안내서'를 발표했다. 코로나19 확진자, 의사환자와 감염병 의심자, 자가격리 대상자의 시험장 출입을 금지했다. 해당 지침은 가이드라인으로 개별 시험 주최기관이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는 확진자와 자가격리자를 별도 시험장에 배치해 모두 시험을 치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1차 중등 교원 임용시험에서 교육부의 운영 지침은 수능 때와 달랐다. 자가격리 대상자는 '음성' 확인을 받을 경우 별도 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었지만 확진자는 응시할 수 없었다. 확진자에게 응시 불가 외의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교육부는 2차 중등 교원 임용시험에서는 확진자도 시험을 치를 수 있게 규정을 바꿨다. 지난 1월 4일 헌법재판소가 확진자의 변호사 시험 응시를 금지한 법무부 공고에 효력 정지 처분을 내린 후였다. 헌법재판소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확진자도 변호사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날인 1월 5일 질병관리청은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시험방역관리 안내서 개정안'을 내놓았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자가격리자가 시험에 응시할 경우에 관한 방역 조치 내용이 추가됐다. 질병관리청이 개정안을 내놓은 후 각종 채용 시험에서 확진자의 응시 절차를 안내하는 곳들이 생겼다. 코로나19에 확진되더라도 시험을 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몇몇 채용 시험에서는 여전히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확진자의 시험 응시를 금지한다. 확진자라는 이유로 채용 시험 응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타당한가?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팬데믹 상황에서 감염병 확산 방지라는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직업선택권, 평등권 등 기본권이 충돌할 때 무엇을 더 우선해야 하는가? 지난 1월 법무부의 변호사 시험 공고 효력에 관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통해 이 둘의 관계를 살펴보자.

▲ 올해 진행한 채용에서 '확진자 응시 불가' 규정을 둔 두 기업의 채용 공고 갈무리. 왼쪽은 공기업인 충청남도개발공사, 오른쪽은 사기업으로 언론사인 SBS다. 두 기업 외에도 '확진자 응시 불가' 규정을 명시한 기업은 많다. ⓒ 충청남도개발공사, SBS 채용 누리집.

기본권 vs 공공복리

법무부 변호사 시험 공고에서 확진자 시험 응시 금지 부분의 효력 정지를 신청한 사람들은 해당 규정이 직업선택의 자유와 건강권, 생명권,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헌법 제 15조는 모든 국민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한다. 헌법 제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두 조항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감염병 확진자라는 이유로 시험 응시 기회를 제한하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평등권을 보장하지 않는 차별에 해당한다. 

하지만 헌법 제38조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때에는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다만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는 없다. 시험 주최기관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라는 공공복리를 위해 확진자의 시험 응시를 금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경우 세 가지 쟁점이 있다. 확진자의 시험 응시를 금지하는 것이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되는지,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다른 대안이 없는 꼭 필요한 최소한도의 제한인지, 이런 제한이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지 등이다.

헌법재판소는 먼저 변호사 시험에서 확진자의 시험 응시를 즉시 금지하는 것이 오히려 감염병 확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의심증상이 있는 응시예정자들이 증상을 감추고 시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확진자가 시험을 치려고 할 경우 시험 주최기관은 감염차단시설이 설치된 별도의 시험 장소를 마련하는 부담을 지지만 확진자가 시험을 못 치게 되는 것이 더 큰 손해라고 보았다. 별도의 시험 장소 마련이라는 대안이 있는데 심한 제한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확진자가 시험 기회를 박탈당할 경우 침해된 기본권은 다시 회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판단했다.

확진자 시험 응시는 배려 아닌 권리

코로나19 확진자의 시험 응시 불가 규정은 공공복리와 기본권이 충돌하는 사례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들이 서로 충돌할 때 어느 기본권이 우선하는지 판단해야 한다. 우선 순위가 명백한 사례가 있는 반면 우선 순위가 명확하지 않아 판단이 힘들 때도 있다. 후자의 경우 충돌하는 권리 모두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두 권리 모두에 조금씩 제한을 가하거나 두 권리를 보호할 때 각각 발생하는 구체적인 이익을 비교해 이익이 더 큰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응시 기회가 제한적인 채용 시험에서는 확진자가 받는 불이익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방역 수칙을 잘 지켜도 감염될 수 있는 팬데믹 상황에서 확진됐다는 이유로 채용 시험 기회를 박탈하는 건 지나친 기본권 침해다. 확진자도 시험을 볼 수 있게 하는 건 채용 시험을 시행하는 기관이 응당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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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강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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