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병 파산’ 불안 틈타 가입 유도...막상 급할 땐 지급거부에 혈안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4부] 아프면 망한다

지난해 12월 이하은씨(38•가명)의 남편(33)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쇼핑몰 사업으로 매일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린 게 화근이었다. 수술을 받고 20여 일만에 퇴원하면서 1400만 원을 병원비로 냈다. 그런데 그들에겐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해 꼬박꼬박 납입해 온 보험만 믿었는데 보험사는 ‘중대한 질병이 아니므로 지급할 수 없다’고 통보해 온 것이다. 

“처음 보험설계사에게 청구했을 때는 질병 코드번호만 맞으면 보험금이 나올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험사에서 연락이 와서는 중대한 질병에 해당되지 않아 보험금을 줄 수 없다는 겁니다.”

보험사 얘기는 가입자에게 신경학적 손상이 있거나, 신체의 일부 기능을 잃는 등의 ‘후유장해’가 80% 이상일 경우, 혹은 가입자가 숨졌을 경우에만 약정된 3200만 원을 지급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쉽게 말하면 ‘거의 사망에 가깝거나 사망해야’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씨 남편은 보험에 가입할 때 설계사로부터 그런 얘기를 못 들었고 질병에 대한 보장성이 높다는 설명만 들었다고 한다. 80페이지 가량의 약관을 받았지만 일일이 그 내용을 확인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 이하은씨가 직접 찍어서 보낸 보험약관. '중대한 뇌졸중'의 정의에 대해 '영구적인 신경학적결손'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 이하은

중대한지 안 중대한지, 해석은 보험사 '마음대로'

이씨의 남편은 미혼이던 27살 때 S보험사의 월 4만 원 짜리 종신보험에 들었다가 보험설계사가 치명적 질병까지 보장한다며 ‘갈아타기’를 권해 이른바 ‘CI(Critical Illness)보험’으로 변경했다. 월 불입액이 10만원으로 올랐지만 종신보험 혜택에 질병보장 정도가 높으니 든든하다고 생각했다. 뇌출혈로 입원을 했을 때 보험사는 일단 수술비와 입원료 특약에 따라 약 400만 원을 지급해 주었다. 부부는 나머지 병원비 1000만 원을 주변 사람들에게 빌려서 낸 뒤 보험금으로 해결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퇴원 후 집에서 안정을 취해야 하는 남편 대신 이씨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고 유치원 다니는 아들도 챙기며 보험사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지난 3월, 한국소비자원과 금융감독원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제도적으로 둘 중 한 기관에만 신청이 가능하다고 한다. 금융감독원에서 답변을 받았는데,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담당 보험설계사가 제출한 서류에 ‘후유장해와 보장금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가입자에게 설명했다’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씨는 금감원 분쟁조정 담당자에게 “설계사 본인과 연락을 해서 직접 들었느냐”고 물었다. 금감원에서는 “서류로만 받았다”고 답했다. 이씨는 다섯 달 넘게 금감원에 전화를 걸어 자세히 재조사해 줄 것을 요구했다. 금감원은 “보험설계사로부터 ‘상담 당시 모든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직접 시인을 받아오라”고 말했다. 이씨는 할 수 없이 보험설계사를 찾아 나섰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고, 회사에 연락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 많게는 100쪽 가까이 되는 약관들을 가입자가 모두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를 설명하는 보험설계사들도 마찬가지다. 보험사는 계약서와 약관을 합쳐 백과사전 두께의 '앨범'에 넣어 가입자에게 제공한다. ⓒ 최원석

이씨는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들어 보험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CI보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다른 피해자들을 찾아 이야기도 나눴다. 그러나 남편이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생계를 꾸려야 하는 그녀가 언제까지 보험 문제를 붙들고 있긴 어려웠다.

“정말 일만 아니었다면 1인 시위도 하고 보험사를 매일 찾아갔을 거예요.”

기대했던 보장금을 포기했지만, 이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보험료를 계속 내고 있다. 처음 가입한 2004년을 시작으로 15년을 부어야 만기가 돼 종신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중도 해지하면 손해가 크다고 해서다. 이씨는 남편의 병 때문에 불안해서 의료비를 직접 보장받을 수 있는 다른 보험에 들려고 같은 보험사에 알아봤다. 그런데 황당했다. ‘중대한 질병으로 수술을 했기 때문에 가입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중대한 수술 때문에 보험 가입을 할 수 없다면, 제 남편이 중대한 질병에 걸렸다는 말이잖아요. 그렇다면 CI보험에서도 중대한 질병이라는 걸 인정해 줘야죠. 보험금 줘야 할 때는 인정을 안 하고, 다른 보험 가입은 그 이유로 거절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암 환자에 “돈 타려면 서류 들고 나오라”

주부 이소향씨(62•가명)는 지난 해 추석연휴를 이틀 앞두고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평소 갑상선 질환 때문에 수시로 혈액검사를 했는데, 의사가 혈소판이 늘었으니 몇 달 후 검사를 해보자고 말했기 때문이다. 혈소판 검사에 컴퓨터단층촬영(CT), 골수 검사까지 마친 뒤 불안하게 추석 연휴를 보냈는데, 추석 직후에 병원에서 혈액암이라고 연락이 왔다.

“눈앞이 캄캄했죠. 초기라 잘 관리하면 나을 수 있다고 했지만, 그래도 암인데. 치료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걱정도 크고.”

다행히 이씨는 세 개의 보험을 들어 둔 상태였다. 첫째는 이미 만기를 채운 D보험사의 종신보험으로 ‘암 특약’이 돼 있어 암 진단을 받으면 100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다른 두 개는 S보험사의 암 전용 보험과 여성 특정질환 보장보험으로, 암 진단을 받으면 각각 500만 원과 1000만 원을 일시불로 주는 상품이었다.

S보험사는 전화 신청을 받고 몇 가지 서류를 보내달라고 하더니 사흘 만에 1500만 원을 입금해 주었다. 반면 D보험사는 까다로웠다. 전화를 받은 담당자가 “해당 질병은 지급 대상이 아니지만 확인을 좀 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일주일이 넘도록 연락이 없었다. 병원을 오가는 시간을 쪼개 이씨는 인터넷에 불만 접수를 했다. 역시나 전화는 없었고, 며칠 후 들어가 보니 ‘담당자에게 해당 내용을 전달한 상태’라는 댓글만 달려 있었다.

혹시 보험금을 못 받을까봐 불안해진 이씨는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만성 골수증식성 혈액암’이라는 자신의 병에 대해 알아봤다. 수술이나 입원은 필요 없지만 완치될 수 없고 간혹 백혈병으로 발전하기도 한다는 것, 혈관 출혈에 의해서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들을 알게 됐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이 질환을 최근에 암으로 분류를 했기 때문에 명백히 보험금 지급대상이 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서야 D보험사 심사업무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는데 그의 태도가 기가 막혔다. 추가 서류를 복사해서 직접 사무실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이씨는 벌컥 화를 내고야 말았다.

“보험사가 병과 돈을 갖고 장난을 치는 것 같았어요.”

그러자 보험설계사가 이씨를 찾아와 ‘의사 면담을 허락한다’는 서명을 받아갔다. 처음 전화를 건 지 한 달도 넘어서 보험금이 들어왔다. 이씨는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만약에 인터넷도 못하고, 전화도 여러 번 안 했으면 돈을 못 받았을지도 몰라요. 청천벽력 같은 상황에 놓인 환자를 두고 보험사 태도가 정말.......”

▲TV방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험광고. 대부분 '보장금액'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 설명하는 경우는 드물다. ⓒ 최원석

보험사 감언이설에 붓고 또 붓고

보험회사들은 절박한 상황에 놓인 환자들을 이렇게 냉대하기 일쑤지만, 보험에 가입하라고 권유할 때는 ‘천사의 얼굴’을 한다. 중병에 걸리면 가산을 탕진하고 비참한 신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서민의 불안을 파고들면서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보장해준다고 말한다. 방송과 인쇄 매체, 인터넷 등에 넘쳐나는 민영의료보험 광고들은 ‘뇌출혈, 급성 심근경색 8000만 원’ 등 거액의 보장금을 내세우면서 ‘적은 부담으로 안심을 사라’고 부추긴다.

서울 종로구에서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방을 세놓으며 살고 있는 주미숙씨(54•여•가명)는  월수입의 4분의 1을 민영의료보험료로 내고 있다.

“가족 중에 고혈압과 당뇨로 고생한 분이 좀 있었어요. 아는 사람 중에 갑자기 뇌졸중이 와 쓰러진 사람도 봤고요. (중병에 들면) 건강보험 갖고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걸 아니까, 불안해서 보험을 여러 개 들었죠.”

주씨는 암보험 2개, 뇌출혈대비 1개, 일반질병보험 3개를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가입해, 매달 100만 원 가량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 방세 수입이 달마다 들쭉날쭉한 걸 감안하면 엄청난 부담이지만 아픈데 치료비까지 없어 비참해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질병치료비에 대한 불안감으로 민영의료보험을 여러 개 드는 것은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서울 종로 탑골공원 골목에서 식당일을 하는 박태곤씨(66•가명)는 월 3만 원짜리 ‘실버보험’에 들었다가 보험모집인이 하도 달콤한 말을 늘어놓는 바람에 5만 원, 4만 원짜리를 추가해 모두 3개의 보험을 붓게 됐다. 매달 나오는 9만 원의기초노령연금이 있으니 그 정도는 괜찮겠지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석 달을 밀리는 일이 생겼다. 그러자 보험사는 “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않으면 강제 해지될 수 있다”고 고압적으로 통보했다.

“보험회사들 나빠. 가입하라고 할 때는 살살거리다가 조금만 건수가 있으면 뭐가 안 된다는 말부터 하잖아.”

▲ 병원에 갈 일이 많은 노년층들에게 TV 속 보험광고는 솔깃한 정보다. 하루에도 수십 번, 보험은 '불안감'을 자극한다.ⓒ 최원석

충남 서산의 한 제철소에서 일하는 신성민씨(22•가명)는 일의 성격상 다칠 가능성이 높다는 걱정에, 취직한 직후부터 민영의료보험에 여러 개 가입했다. 암보험, 실비보험, 연금보험 등 네 개 상품에 월 90만 원의 보험료가 들어간다. 월수입이 450만원으로 또래들에 비해 꽤 많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부담스런 지출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에서 보험 상품에 대한 글들을 읽다보니 자신이 가입한 상품들에 대해 보험설계사가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떤 저축보험은 5년이 지나지 않으면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갑자기 목돈 쓸 일이 있을 수도 있는데, 보험사들이 가입만 유도하고 설명은 미흡한 것 같아요.”

가계 부담 늘고 보험사 순이익 급증…국민건강보험 보장성 높여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1월 발표한 ‘한국의료패널로 본 민간의료보험 가입 실태’를 보면 하나 이상의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한 가구 수가 2009년 현재 전체 가구의 77.79%로 열 가구 중 여덟에 해당한다. 2008년의 77.03%에서 더 늘었다. 가구당 평균 민영의료보험 가입개수는 3.62개, 납입보험료는 27만6,638원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의료비 중 건강보험이 내주는 비율)이 60% 남짓 밖에 되지 않아 중병에 걸리면 가계가 파탄 날 만큼 의료비 부담이 심각한 현실이 민영의료보험에 쏠리게 만드는 셈이다.

▲ 민간의료보험 가입자 및 가입 가구당 월평균 보험료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1

문제는 국민건강보험에 비해 훨씬 많은 보험료를 납부하고도 민영보험사의 치료비 지급 거부 등으로 분쟁을 겪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보험가입단계에서 설계사들이 약관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판매한 뒤, 막상 의료비 청구단계가 되면 애매한 약관을 근거로 지급을 거절하는 일이 많다고 피해자들은 말한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민영보험 피해구제 민원은 모두 1231건으로 2009년의 844건에 비해 45.9%가 늘었다. 이런 분쟁에서 보험소비자가 거대보험사들과 맞서 이기기는 쉽지 않다. 또 보험사들은 지병이 있는 사람 등 누구보다 의료비 지원이 절실한 사람일수록 보험가입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보험금 지급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런 ‘고위험군’은 받아주지 않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좌훈정 연구조정실장은 민영보험의 급성장이 보험금을 둘러싼 분쟁과 함께 의료현장의 왜곡을 낳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좌 실장은 “보험금을 받으려는 가입자들이 과잉진료를 요구하거나, 보험사가 환자의 퇴원을 앞당기거나 늦춰달라고 하는 등 의사들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논란 속에 보험사들의 이익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3개 상장보험사의 2010사업연도 순이익은 3조8934억 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43.28%나 늘었다. 특히 삼성생명은 순이익 증가율이 112%였다. 

금융소비자협회 김미숙 대표는 “민영의료보험은 영리 추구를 위해 보험금 지급 거절 등 횡포를 일삼고 있다”며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여서 민영보험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10월 발족한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는 2010년 기준으로 국민 1인당 월 3만3000원씩 내는 건강보험료를 1만1000 원씩 더 내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90%로 올리고 어떤 중병이라도 1인당 연간 본인부담액이 100만 원을 넘지 않도록 만들자고 제안했다. 가구당 거의 30만 원, 1인당 12만 원을 내고 있는 민영의료보험료의 일부를 건강보험료로 더 내고 기업과 정부가 이에 비례해 갹출하면 국민 모두가 민영보험을 따로 드는 부담 없이 모든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은 심각한 병력이 있다고 해서 가입을 거절하는 일도 없고, 어떤 병에 대해서도 치료비 지급을 거절하지 않는다. 따라서 가입 거절과 지급 거부가 잦고 비용이 많이 드는 민영보험 대신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는 것이 의료복지와 경제적 효율성 등 모든 면에서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