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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이 ‘매운맛의 본 고장’이 된 사연
[행복기자학교] ‘빨간오뎅’과 ‘장칼국수’의 수수께끼
2021년 06월 16일 (수) 20:08:51 신나래 원윤성 임혜민 기자 kimsan119@naver.com

삶이 힘들었을까? 언제부터인가 엽기적으로 매운 음식들이 유행했다. 처음에는 매운짬뽕 등 매운맛 음식이 특정 지역에서만 인기를 끌었는데, 2012년부터는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 전국적인 유행을 선도했다. 그 과정에서 사라진 것은 한국이 가진 전통적인 매운맛, 고추의 맛이었다. 고추가 가진 매운맛으로는 수요가 충족되지 않던 터라, 식당에서는 주로 캡사이신 농축액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점점 더 엽기적인 매운맛을 찾는 공간에서도, 수십년 전부터 유행한 매운 음식이 여전히 강한 명맥을 유지하는 지역이 있다. 충북 제천이다. 제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빨간오뎅이나 장칼국수 같은 매운 음식을 즐겨 먹어왔다. 빨간오뎅은 1986년부터 먹기 시작해 이제는 전국에서 유행하게 됐고, 장칼국수 또한 원주, 충주 등에서 맛을 아는 이들은 즐겨 찾는 음식이다. 제천은 어떻게 매운맛의 고장이 되었을까? 또 어떻게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제천 매운맛이 시작하게 된 경위에 관해서는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누군가는 내륙지방이라 자극적인 음식을 많이 먹었다고 주장하고, 누군가는 제천이 고추 집산지여서 고추가 값 싸고 맛있어 매운맛을 즐기기 쉬운 환경이었다고 주장했다. 취재진은 제천 빨간오뎅과 장칼국수의 원조를 찾아 제천 매운맛의 기원을 찾아 나섰다. 

1986년 생 빨간오뎅 ”밍밍한 어묵은 싫어” 

   
▲ 의림지 파크랜드 앞에서 장사하는 빨간오뎅 개발자 김윤숙 씨는 스물일곱에 제천으로 시집와서 빨간오뎅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 오동욱

김윤숙(75) 씨는 대중화한 ‘빨간오뎅’을 처음 개발한 장본인이다. 27살에 제천으로 시집온 것이 계기였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돈벌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일거리를 찾아 시장에 갔다가 할머니들이 삶은 어묵과 떡을 쟁반 위에 올려놓고 파는 것을 목격했다. 요리를 좋아하던 그는 심심하고 밍밍한 맛에 “양념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양념을 개발해 어묵을 팔면 성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그는 빨간오뎅을 실험 삼아 만들어보았다. 황기 등 약재 육수와 고추가루를 조합해 빨간오뎅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김 씨가 처음으로 장사에 나선 것은 제천시내 학교 소풍 행사였다. 양은쟁반을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연탄화덕을 갖고 아들 소풍을 따라갔다. 쟁반 위에 오뎅을 끓이면서 양념을 발랐다. 빨간 양념 오뎅을 먹은 학생들이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자신이 생긴 그는 누군가 버린 리어카를 주워 ‘제천 차 없는 거리’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 빨간오뎅은 지금까지 제천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학생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세명고 임혜민(19)학생이 빨간오뎅을 먹고 있다. ⓒ 신나래

장사는 잘됐지만 단속이 문제였다. 불법으로 운영하는 노점이기 때문이었다. 김 씨는 기동력이 낮은 리어카는 멀리 대놓고 장사를 했다. 제천시청에서 단속 나오면 연탄불과 끓는 어묵을 머리에 이고 도망갔다. 도망 다니는 고초는 중앙시장에 점포를 임대해 정식으로 식당을 개업하며 끝났다. 지금 그는 의림지 테마파크에서 소일 삼아 군밤을 판다. 허리 디스크 수술로 계속 서있어야 하는 빨간오뎅 장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아쉬워하는 기자에게 “의림지 겨울축제 하면 빨간오뎅을 팔 테니 꼭 와서 원조를 먹어보라”고 권했다. 

왜 하필 빨간오뎅이었을까? 김 씨는 칼칼한 것을 좋아하는 본인 취향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천 사람들도 칼칼한 맛을 좋아한다. 중앙시장에서 30년 넘게 한복집을 운영하는 김정순(70) 씨는 ‘김윤숙 표 빨간오뎅’에 관해 “매운데도 다른 집보다 담백하고 쫀득쫀득해, 지금 하는 집(가게)들이랑 맛이 다르다”고 했다. 같은 빨간오뎅인데 다른 가게와 맛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뭘까? 기자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김 씨는 “고추가루. 오로지 국산 고추가루와 청양고추”라고 답했다. 단가 때문에 대개 중국산 고추를 쓰는데 맵기만 하지 맛이 없다는 것이다.    

1967년 선보인 '국수 겸 안주'

제천의 매운맛으로 제일 유명한 것은 빨간 오뎅이지만, 더 오래된 것은 제천 장칼국수다. 제천역 맞은편에 있는 장칼국수 원조집 ‘보령식당’은 50년이 넘었다. 가게 안에는 그동안 사용한 도마 중 일부가 전시돼 있다. 칼국수를 써는 방향대로 푹 파인 도마에는 사람들 낙서가 빼곡히 적혀 있다. 낙서는 가게 벽면에도 빈틈없이 쓰여 있다. 부산, 울산, 전주에서 왔다는 낙서가 보령식당의 전국적 인기를 실감나게 한다. 고추장을 풀어낸 빨간 국물에 칼국수면과 콩가루를 넣고, 김가루를 뿌려 양푼에 담아 내오는 간단한 음식인데, 사람들은 왜 장칼국수를 좋아할까?

   
▲ 임춘영 씨가 보령식당의 역사를 설명해주고 있다. 임 씨는 보령식당 손님이 개업 당시에는 인근 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청년들도 많이 온다고 설명했다. ⓒ 오동욱

보령식당에서 삼촌의 뒤를 이어 일하는 임춘영(69) 씨는 1967년 개업한 보령식당이 처음부터 장칼국수를 판매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일반 칼국수를 팔았는데, 손님들 수요로 3년 뒤인 1970년부터 매운 칼국수를 개발해 판매했다는 것이다. 제천역은 충북선, 태백선, 중앙선 세 철도노선이 경유한다. 광부들은 제천역에서 광산이 있는 정선과 태백 또는 영월로 향하는 기차를 탔고, 강원, 경북, 충북에서 나는 농산물을 팔려는 소매상들은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다. 보령식당의 주 손님은 그들이었다. 

임 씨는 “(역전에 있는) 홍익우동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이 식당에 왔다”고 말했다. 홍익우동이 인기가 제일 많았는데, 가게에서 수용할 자리가 없어 손님들 일부가 보령식당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식당은 그런 손님들을 사로잡아야 했다. 임 씨는 “일하고 온 광부들은 식사하면서 술 한잔 마시기를 원했다”고 한다. 칼국수는 식사와 동시에 안주가 되어야 했다. 식당은 칼칼한 맛을 내려고 고추를 듬뿍 넣었다. 

   
▲ 보령식당의 한 끼는 장칼국수와 김치, 단무지 등으로 조촐하게 차려낸다. 하지만 이 식당을 찾는 이들은 대개 육천원짜리 장칼국수에 만족하며 착한 가격에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한다. ⓒ 오동욱

보령식당이 지금 같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임 씨는 예전에는 “매일 찾아오는 여학생, 영월에서 음주운전해 오는 사람도 있었다”며 황당하지만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일화를 소개했다. 지금도 칼칼한 장칼국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제천 출신이지만 타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 중에는 장칼국수를 못 잊어 면을 얼려서 가져가기도 한다. 매운 칼국수 맛은 고추를 넣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제천 고추에는 어떤 특별한 점이 있었을까?

고추 집산지, 제천이 창조한 맛

제천 고추시장은 지형적인 이점과 교통 발달로 성장했다. 제천은 충북∙경북∙강원도가 감싸고 있다. 제천 인근 지역이 전국에서도 고추 생산량이 많은 편이며 특히 강원도에서는 전국으로 고추를 판매하기 위해 제천으로 넘어왔다. 

   
▲ 지도에 빨간색 원으로 표시된 곳이 제천이다. 파란색 원으로 표기된 원주, 영월, 정선. 단양, 충주가 제천을 둘러싸고 있다. ⓒ 네이버지도

제천 고추시장에 물건을 가져오는 수집상은 그런 교통 이점을 활용했다. 강원도, 경상북도, 충북의 고산지대에서 나는 고추를 떼어왔다. 제천이 고추로 유명한 것은 산지의 특징이 만든 고추의 맛 덕분이다. 신월동 제천고추시장 양정환(69) 상인회장은 “고추가 나는 생산지의 고도가 높고 온도차가 커서 매우면서도 달콤한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고추상인들은 1989년부터 제천 복개천 길바닥에서 고추를 팔기 시작했다. 판매자들이 증가하고 시장터가 형성됐다. 이후 시가지로 개발되면서 당시 100여 개 점포가 제천시 화산동과 명동으로 양분됐다. 그러나 장소가 협소하고 양분된 시장을 통합할 필요가 있어 지금 장소로 이전했다.  

주민들이 기억하는 제천의 매운 맛

“86년도에 빨간오뎅 먹어봤죠. 중앙시장 짓기 전에 아주머니 두 분이 영업했어요. 남남이지만 서로 같은 형제끼리 하는 것처럼 엄청 맛있게 했어요. 근데 너무 비싸서 자주는 못 먹었죠 지금은 아들 둘이 제천 오면 빨간오뎅은 꼭 먹어요.”

제천 주민인 전은숙(66) 씨에게 빨간오뎅은 ‘아쉬움’이다. 한 번 먹고 나면 이상하게 끌리는 매운맛에 매료됐다. 하지만 1개에 200원 남짓하는 빨간오뎅은 당시 은숙 씨에게 부담스러운 가격이어서 자주 먹지는 못했다. 지금은 두 아들이 고향에 찾아오면 꼭 먹으러 가는 음식이다.

   
▲ 제천고 3학년 원윤성(19) 학생이 장칼국수를 먹고 있다. 그에게 장칼국수는 귀가 길에 허기진 배를 달래주는 음식이다. ⓒ 임혜민

“신세대 사람들 따라서 맛이 변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여전히 많이 사 먹습니다. 아들과 딸들이 서울에서 내려올 때마다 포장해서 가지고 올라갑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먹는 이유는 자기 입맛에 따라가는 거겠죠.”

70년대 결혼하면서부터 제천에 살기 시작한 송영순(67) 씨에게 빨간오뎅은 ‘젊은 입맛을 이해하는 지표’다. 86년 빨간오뎅이 생겼을 때부터 지금까지 즐겨먹어온 영순 씨는 젊은 사람들 입맛에 따라 맛이 점점 변한다고 했다. 특히 과거보다 매운맛과 단맛이 함께 강해졌다고 말했다. 

   
▲ 세명고 신나래(19) 학생이 빨간오뎅을 먹고 있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시장상인들에게도 빨간오뎅은 ‘자주 먹기에는 값이 부담스러운’ 음식이었다. 이제는 학생들도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됐다. ⓒ 원윤성

“옛날 기억을 더듬어 보면 작은딸 고등학교 시절에 야간자율학습 끝나면 새벽 1시쯤 딸을 데리고 가봤어요. 처음엔 장칼국수 2개를 주문했더니 빨간 게 2개가 나오는 거예요 너무 놀라서 ‘왜 이렇게 빨간 것을 주냐’고 물었더니 여기는 ‘기본적으로 장칼국수 시키면 빨간색이 나온다’고 그러더라고요.”

제천 중앙시장 정촌기름집 사장인 지순녀(61) 씨에게 장칼국수는 “딸과의 추억”이다. 순여 씨는 보통 새벽 1시즘 딸아이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마중을 나갔다가 귀가하는 길에 출출한 배를 보령식당 장칼국수로 달랬다. 

* 신나래·임혜민 기자는 세명고 3학년 학생입니다. 원윤성 기자는 제천고 3학년 학생입니다.
* 취재·첨삭지도: 김정산(단비뉴스 기자), 오동욱(단비뉴스 미디어콘텐츠부장) 이봉수(단비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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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이예슬 기자

[김정산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부, 전략기획팀 김정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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