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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싸움 준비하는 게릴라 시위 늘어
[미얀마 민주항쟁] ⑤ 한국 거주 미얀마인들의 증언
2021년 06월 11일 (금) 11:41:30 글 김정민 기자|미디어 이예진 PD akimmin37@naver.com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발한 지 넉 달이 지났다. <단비뉴스>는 그간 한국에 머물고 있는 미얀마 사람들을 꾸준히 만나 나날이 엄혹해지는 현지 상황에 관한 증언을 수집했다. 지난달 2일, <단비뉴스>기자들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 포포(29) 씨와 외국인노동자상담사로 일하는 수수(38) 씨를 부산 벡스코역 한 교회에서 만났다. 부산역에서는 20년 이상 한국에서 거주하며 미얀마 민주항쟁 지지 운동을 하고 있는 미얀마인 노동자 또뚜야(52) 씨를 만나 인터뷰했다. 쿠데타 발발 이후 미얀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보도한다.

# [미얀마 민주항쟁 연속보도] 보기

① 저항과 학살을 기록한 시민들의 사진 첫 공개

②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 연대' 활동가 A씨

③ 6만 미얀마 시민들의 텔레그램 단독 취재 

④ 봄의 혁명 100일 기록

 

미얀마 전역에서 소통과 교류 통제돼

한국에 머물고 있는 미얀마인 대부분은 현지 가족들과의 연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얀마 군부가 인터넷을 주기적으로 끊어 버리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무료나 다름없는 인터넷 전화에 비해 비용이 훨씬 많이 드는 국제전화를 이용하고 있다. 비용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정도 가족과의 연락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다. 한국에서 미얀마의 군부 독재 실태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는 또뚜야 씨의 경우는 현지에 있는 가족들이 그와의 관계를 숨기고 있다. 그는 친구를 통해 조심스럽게 안부를 전하는 것 외에는 가족과의 접촉을 일체 삼가고 있다.

가족 간의 연락 단절에 더해 표현의 자유도 크게 위축됐다. 미얀마 현지 언론사는 쿠데타 발발 이후 전부 폐쇄조치됐다. 기자들은 언론사 조직이 와해된 이후에도 뿔뿔이 흩어져 개별적으로 취재활동을 하고 있다. 미얀마 내부의 인터넷이 통제되자 미얀마 기자들은 태국 유심칩을 구했다. 이들은 태국을 경유하는 가상 사설망(VPN)을 이용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에 글과 사진을 올리는 방식으로 뉴스를 송출하고 있다. 미얀마 기자들 대부분이 체포령을 피해 도주 중이거나 군경의 눈을 피해 몰래 언론활동을 하고 있다. 또뚜야 씨는 미지마, 이라와디, 미얀마 나우 등 미얀마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온라인 독립매체의 페이스북 공식 계정과 영국의 BBC, 미국의 VOA 등 외신 매체를 통해 현지 상황을 간신히 파악하고 있다.

   
▲ 산 속에 숨어서 기사를 쓰고 방송 송출을 준비하는 미지마TV 기자들. ⓒ 아웅 태

소셜미디어를 통한 항쟁 독려 역시 크게 위축됐다. 예전에는 페이스북 등에 군부 독재에 항거하는 글과 사진을 올리고 서로 ‘좋아요’를 눌렀다. 그러나 인터넷에 민주 항쟁과 관련한 사진과 글을 올리는 시민들을 군경이 길거리 불심검문을 통해 잡아가기 시작하자 많은 게시글이 자취를 감췄다. 인터넷을 통해 진실을 알리고 연대하던 흐름이 끊긴 것이다.

무장투쟁에 참여하는 이들을 격려하는 게시물들도 사라졌다. 지난달 카렌족 소수민족군 훈련캠프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귀가한 70여 명의 청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부 잡혀갔다. 그들의 훈련 내용과 귀가 상황 등을 알리는 글과 사진이 페이스북에 올라와 호응을 얻은 직후였다. 그들이 존경스럽고 고맙다며 시민들이 ‘좋아요’를 누르거나 공유하면서 사진이 널리 퍼졌는데, 페이스북을 지켜보고 있던 군부의 안테나에 걸린 것이다.

“그래서 인터뷰하지 말고 사진 올리지 말라는 당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이나 사진 찍힌 사람의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민족군 훈련시설에 입소하고 내전에 참전하게 된 사람들 사진을 올리면 어떻게 되겠나. 예전에는 그런 게 운동의 동력이 되고 서로에게 용기를 주었지만 지금은 군인들이 그 사람들을 타겟팅해 숙청한다.”

- 대학원생 포포(29)

일상적인 경제와 행정시스템은 마비

미얀마 시민들은 쿠데타 발생 일주일 뒤부터 은행이나 ATM기 앞에 몰려들어 길게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끊기자 인터넷뱅킹이 덩달아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식료품 등을 구매하기 위해서라도 현금이 필요해진 시민들이 몰려들자 ‘뱅크런’(고객들이 은행에서 예금을 한꺼번에 인출하는 사태)을 우려한 군부는 은행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민간은행에 예치해둔 돈을 군부 소유의 은행으로 옮기라고 시민들에게 강요하거나 하루 출금 금액을 제한해두는 식이다. 은행에서는 한 사람이 하루에 200만짯(약 135만 원), ATM기는 한 사람당 하루에 20만 짯(약 14만원)씩 찾을 수 있다고 군부는 공포했다. 그러나 미얀마 시민들은 실제로 그만한 돈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나의 가족도 일주일째 돈 찾으러 갔는데 번번이 허탕을 쳤다고 한다. 4~5시간 정도는 기본적으로 서 있어야 한다. 아침 9시 반에 가면 은행이 대기 번호를 주는데, 대기자가 많으면 그 번호조차 못 받는다. 대기번호를 받아온다고 바로 돈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은행에서 하루 5~6명한테만 돈을 주고 영업을 중단해 버리기 때문이다. ATM기는 양곤 안에만 있고.”

- 외국인노동자상담사 수수(38)

   
   
▲ 아침부터 은행 앞에 길게 늘어선 줄. ⓒ 마 떼 위이소, 아웅 태

돈을 찾으러 가는 것도 모험이다. 양곤처럼 통행금지가 내려진 지역에서는 군인들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도심이나 시내까지 가야 은행에서 돈을 찾을 수 있다. 군인들이 돌아다니는지 살펴보며 몰래 움직이지만 사복경찰한테 걸려 얻어맞기도 한다. 돈을 찾아오는 데 성공하더라도 군인들한테 걸리면 전부 빼앗기는 일은 예사다. 어린아이가 물고 있는 바나나까지 군경이 뺏어먹는다며 미얀마인들은 치를 떨었다.

“돈 찾아서 집까지 가는 게 너무 위험한 상황이라 다들 정말 조심한다. 그나마 원래부터 현금을 집에 두던 이웃들은 상황이 낫다. 저는 이런 이웃들한테 일정 금액을 온라인으로 송금하고 우리 가족이 쓸 수 있도록 현금으로 바꿔달라고 부탁한다. 이분들도 지금은 현금 가지고 있는 게 불안하니까 기꺼이 협조해준다. 원래 미얀마 사람들은 은행을 못미더워 해서 집에 금고를 따로 둔다. 그런데 지금은 군인들이 집 안까지 쳐들어와서 막무가내로 갈취해 가니까 은행에 돈 맡기는 게 차라리 안전해진 것이다.”

- 외국인노동자상담사 수수(38)

미얀마의 경제와 행정시스템은 마비된 상태다. 직장인들은 통행금지로 인해 출근을 하지 못하거나 시민불복종운동(CDM)으로 인한 직장 폐쇄 때문에 일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군사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면서 등교를 거부하고 있다. 독재정권 아래서 교육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학교수들도 CDM에 참여 중이기 때문에 대학 교정은 텅 비어 있다. 대부분의 청소년들도 등교를 거부하고 있다. 군부는 지난 6월 1일 공립학교 개학을 명령했지만, 900만 명의 청소년 가운데 등교생은 100만 명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 6월 1일 미얀마 군부가 공립학교 개학을 지시했지만 학생의 90%가 등교를 거부했다. 사진을 보면, 학생은 보이지 않고 군경만 학교 문 앞에 배치돼 있다. ⓒ 연합뉴스

역설적으로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공포는 거의 사라졌다. 진단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도에서는 하루 평균 수만 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지만 미얀마는 하루에 백 여 명이 나올까말까 한 상황이다. 이런 수치가 실제 감염자의 감소를 뜻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군부가 검사를 해야 말이지. 통계가 안 나오니까 다들 그러려니 한다. 날이 더우니까 마스크도 안 쓰고 섞여 지내는데 걱정은 된다. 60대 이상의 고령층이 많은 나라라서.” 

- 외국인노동자상담사 수수(38)

게다가 미얀마에서는 마스크가 비싸다. 경제 시스템이 마비되어 생필품을 구하는데도 애를 먹고 있는 미얀마 사람들은 천이나 휴지로 수제 마스크를 만들어 쓰거나, 아예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다.

   
▲ 지난달 31일 양곤항에서 양곤 달라 섬으로 가는 배 안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사람들의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재래시장이나 식당에서도 미얀마 시민들은 마스크를 잘 착용하지 않고 있다. ⓒ 연합뉴스

규모 큰 시위는 소강상태 접어들어

시위 열기는 확연히 줄었다. 이전처럼 대규모로 조직적인 거리 시위를 하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미얀마인들은 군부에 굴종한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단기간에 끝날 싸움이 아니게 된 만큼 장기화를 대비해 힘을 아끼는 중이라고 말했다.
 
“쿠데타 초기의 대규모 거리 시위에 사람들이 모였던 이유는 군부 쿠데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국제 사회에 미얀마 시민들의 의지를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러나 큰 규모의 거리 시위를 해도 쿠데타 세력이 물러나지 않을 전망이고, 시민들의 희생만 커지고 있다. 시위 열기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어떻게 길게 싸울지 고민하며 전략을 바꾼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 민주항쟁 활동가 또뚜야(52)

   
▲ 왼쪽부터 <단비뉴스>가 부산시 벡스코역의 기독교 교회에서 만난 포포, 수수. ⓒ 이예진

대신 규모가 작은 산발적인 시위가 등장했다. 누군가가 먼저 구호하고 나서면 주변에서 자발적으로 함께 구호하며 연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군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암호를 이용해 몰래 소통하는 경우도 생겼다.

“이제는 검열 때문에 휴대폰에서도 페이스북 그룹을 못 만든다. 대신 각각의 개인이 점조직이 돼서 서로가 서로를 연락책으로 삼아 파도타기하듯이 페이스북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전달하고 있다. 누구든지 시작할 수 있고,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는 게릴라식 시위를 하게 된 셈이다.”

- 외국인노동자상담사 수수(38)

“요즘은 암호를 쓰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시위라는 단어를 ‘김치’라고 쓰기로 내부적으로 약속해서 ‘오늘 어디 가서 김치 먹자’라고 쓰는 식이다. 혹은 ‘비’라고 써서 ‘언제 어디서 비가 내릴 예정이다’라고 쓰면 다들 언제 어디서 시위가 벌어질지 알게 된다. 상당히 창의적으로 바뀌었다. 이제 어디서 시위 있었고 사망자 몇이나 나왔는지 등을 아는 사람들끼리만 알게 되는 것이다.” 

- 대학원생 포포(29)

지난 항쟁들에 비하면 이번 싸움은 희망적이라고 다들 입을 모은다. 미얀마 시민들은 1988년 ‘8888 항쟁’에 이어 2008년에도 ‘샤프란 혁명’을 통해 유혈 민주항쟁을 벌였다. 그러나 8888항쟁이나 샤프란 혁명은 군부독재정권 치하에서 태동한 혁명이었기 때문에 전망이 어두웠다. 반면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선거를 통해 미얀마 시민들이 직접 뽑은 민주 정부를 군대가 힘으로 밀어붙여 전복했다. 명백한 반란이기 때문에 시민들의 분노와 억울함의 정도가 다르다. 이미 민주 정부 치하에서 자유를 맛 본 청년세대의 항쟁 의지도 어느 때보다 강하다.

게다가 지난 항쟁 때는 소셜미디어(SNS)가 그다지 활성화하지 않아, 시위 현황을 실시간으로 해외에서 공유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지금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라이브로 시위대의 민주화 열망, 군부의 적나라한 폭력 등을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송출할 수 있게 됐다. SNS를 통해 군부 독재 정권의 민낯을 낱낱이 알게 된 시민들이 항쟁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비율도 높아졌다. 해외에 거주하는 미얀마인들도 세계 각국에서 미얀마의 상황을 알리며 모금을 주도하는 등 힘을 모으고 있다.

단순한 거리 시위 일색이었던 사태 초기와 달리 지금은 은행, 철도, 학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민들이 CDM을 통해 국가 행정에 제동을 걸고 있다는 점도 과거의 항쟁과 다르다. 종교나 민족을 따지지 않는 군부의 무차별적인 살상도 시민들을 하나로 단결시켰다. 과거에는 민주항쟁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소수민족들이 이번에는 항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4월에 군부에 반대하며 출범한 새 임시 정부가 버마족 위주의 정부 구성을 깨고 소수민족과 함께 연방민주국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다른 균열과 갈등이 사라지고 군부를 타도하기 위해 하나로 결집하는 모습이 이번 항쟁의 큰 특징이다.

“내전이 심해져 군부 쪽 군인 중에서도 사망자가 꽤 많아졌다. 탈영하는 군인도 늘어나고 있고 전쟁터에 가고 싶지 않아서 멀쩡한 양곤에 폭탄을 투하하고 뇌물까지 쓰면서 주둔하겠다고 꼼수를 쓰는 경우도 생겼다. 결국 자기들끼리 내부분열이 생겨서 망하리라고 확신한다. 이번 싸움은 반드시 승리하리라고 믿는다.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울 테니까.” 

- 민주항쟁 활동가 또뚜야(52)


사단법인 <단비뉴스>는 미얀마 민주 항쟁과 연대합니다. 여러분들의 참여도 기다립니다. 자신의 '이름'과 '휴대전화 뒷번호 8자리'를 송금 메모에 적어 신한은행 100-034-615484(사단법인 단비)에 기부금을 보내주십시오. 보내주신 전액을 미얀마의 '해외 주민 운동 연대 코코(KOCO)'에 전달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보도하겠습니다. 더 궁금한 사항은 전자우편 akimmin37@naver.com으로 문의해주세요.

#Myanmar_with_you

 

편집 : 김태형 기자

[김정민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 청년부 김정민입니다.
밥값하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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