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정책토론회] 위원회 제도 획기적 개선안 제시

지난 10월 26일, <무한도전> 관련 소식으로 인터넷이 들썩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9월 17일 방송된 자동차 폭파 장면을 두고 “시청자에게 충격을 줄 수 있고 청소년에게 유해할 수 있다”며 징계를 논의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이를 두고 “새로운 시대와 변화를 거부하는 ‘꼰대형 심의’”라고 성토했다. 여기에 방심위가 11월 중으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 소셜네트워크(SNS) 심의팀을 별도로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논란이 가중됐다.

방송과 통신 내용 관련 1차 심의기구인 방심위는 2008년 출범 이후 계속 과잉심의 논란에 휩싸여왔다. 꼭 필요한 부분만 심의하고 나머지는 풀어서 방송통신 콘텐츠의 질적 향상을 꾀해야 한다는 논의가 꾸준히 제기된 이유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 주최로 11일 성공회대에서 열린 5, 6회 ‘2012 미디어정책 연속토론회’는 모두 방심위 개선안을 구체적으로 다루었다.

▲ 11일 성공회대학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가 주최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련 공개토론회 현장. ⓒ 임종헌

▲ '인터넷 내용심의, 행정심의에서 자율규제로' 를 주제로 한 토론회 참석자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양홍석 위원, 장여경 활동가, 전응휘 이사, 김학웅 변호사, 송경재 교수, 박경신 교수. ⓒ 임종헌

“방심위는 임시조처, 최종 판단은 사법부 맡겨야”

‘인터넷 내용심의, 행정심의에서 자율규제로’라는 제목의 5회 토론회 발제자인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은 방심위의 큰 문제점을 세 가지로 지적했다. 첫째, 9개월간 4만2천 건이 넘는 요청 건수를 소화하다 보니 실질 심의가 보장되지 않아 ‘규제자판기’로 전락할 수 있고, 둘째, 통신 특성을 이해하는 심의위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졸속 심의로 이어질 여지가 다분하고, 셋째, 모호한 심의규정을 이용해 방심위가 자신의 권한을 확장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적 형태로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이다. .

양 위원은 방심위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6인 위원회’로 상징되는 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등 하드웨어의 변화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방심위는 9인의 위원 중 6인의 친여위원이 심의를 주도한다 해서 ‘6인 위원회’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이 붙어있다. 양 위원은 이와 아울러 규정과 심의절차 등 ‘소프트웨어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양 위원은 2002년 헌법재판소의 불온통신규제 사건 판시를 가이드라인 삼아 통신심의대상을 조정해 합헌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보통신망법 44조7항에서 규정한 불법정보의 심의주체를 조정하여 위헌적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 위원은 이어 “유통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합의가 있어도 신속하게 차단할 대책이 방심위에는 없다”며 이를 위해 가칭 임시접속차단명령제를 제안했다. 이는 방심위가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임시로 접속과 유통을 차단시키는 조처다. 차단은 법원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72시간 실시하되, 필요에 따라 1회 연장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전자가처분신청제도를 활성화해 효율을 높이고, 정보게재자나 ISP(인터넷서비스사업자)의 발언권을 확대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양홍석 위원이 제안한 임시접속차단명령 실행안.

토론자들은 대체로 공감을 표시하며 다양한 주체들이 지속적인 숙의를 통해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경찰이 북한 관련 게시물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이니 삭제하라고 요구한 사례를 언급하며 “ISP나 국민 각자가 정부 판단에 저항하는 절차가 쉽지 않으니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방심위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과도한 내용규제는 정부의 과잉친절과 비슷하고 친절한 정부가 국민을 괴롭힌다”며 “자율권 보장 차원에서 시민이나 민간단체가 상당부분 자율 규제하도록 방심위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학웅 변호사는 임시접속차단명령 과정에서 ISP나 게재자의 반론권이 보장되지 않는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포털이 언론의 영역으로 들어온 이상, 언론중재법을 적용해 반론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의위원 여야 동수로 ··· 특정단체 ‘청부심의’ 중단을”

6회 토론 주제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자율심의의 효율성을 두고 방송계 종사자와 시민단체 사이에 격론이 오갔다. 하지만 ‘심의는 불평부당성과 공정성에 기초해 꼭 필요한 부분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대체로 한 목소리를 냈다.

첫 번째 발제자인 최영묵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우회전 깜빡이 켜고 유턴해서 5공 시절로 회귀하고 있다”며 두 가지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언급했다. 심의는 경성방송국을 만들고 감청과 사전검열을 자행했던 식민통치 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고, 심의를 제도화한 건 박정희 전 대통령 인데 그 당시 만들어졌던 어이없는 기준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방심위처럼 자의적 기준을 아무 프로그램에나 들이대는 국가는 선진국 중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최 교수는 밝혔다.

최 교수는 법원보다 행정행위를 하는 위촉기구가 더 강하게 작동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그는 “방송 내용은 제작자의 인격에 해당하는데 사과나 정정, 나아가 방송중지가 재판을 통해 결정되지 않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방심위를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의 방심위 재편안은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심의위원은 위원장을 제외하고 여야 동수로 구성해야 한다. 둘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결정과 관련한 모든 회의를 공개해야 한다. 셋째, 특정 집단이나 단체의 압박에 의한 ‘청부심의’는 지양한다. 넷째, 징계를 위한 심의 의결은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한다. 다섯째, 보도프로그램에 대한 심의, 특히 내용상 공정성 관련 심의는 즉각 중단한다.

“BBC처럼 보도 프로그램은 심의 폐지해야”

또 다른 발제자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은 “기존 미디어가 자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뉴미디어에 대한 두려움이 결합되어 지금의 상황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윤 처장은 언론계, 특히 방송계에서 방심위 폐지를 주장하고 있으나 자율심의가 활성화하더라도 최소한의 공적심의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 참석자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영묵 교수, 윤여진 사무처장, 황대준 회장, 장지호 국장, 윤정주 소장, 김동찬 활동가. ⓒ 임종헌

윤 처장은 방심위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초법적 성격을 띄고 있다면서, 그 예로 유성기업 파업 보도와 일제고사 거부 교사 징계 보도를 들었다. 방심위는 ‘유성기업 파업 보도가 사측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정성을 위반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일제고사 관련 보도에서는 법원의 판결을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행정처분을 내렸다. 미디어는 문화인데 ‘슈스케’나 ‘위탄’도 모를 정도로 미디어를 이해 못하는 심의위원 때문에 ‘꼰대형 표적심의’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윤 처장은 개선안으로 방송사, 방심위, 방통위 심지어 청와대까지 개입하는 복잡한 심의 절차가 문제라고 보고 이를 단일하게 체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BBC처럼 보도 프로그램에 한해 심의를 폐지하고, 지금껏 배제된 이해당사자인 시청자, 곧 시민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제작 자율성 침해돼 PD들 심리적 공황상태”

토론자로 나선 황대준 한국PD연합회 회장은 “모든 PD들이 방심위를 폐지하고 재편하자는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난 1, 2년간 방심위 결정 때문에 제작 자율성이 침해되면서 PD들이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심의에 따른 상상력 저하가 우리 문화의 손해로 연결된다며 “공정성 관련 심의는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시청자 참여에 대해 아마추어리즘으로 여기고 귀찮게 생각하는 현업자들이 적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자율심의가 자리잡기 위해선 방송사를 정치적으로 독립시키고 시청자위원회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정주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현 상황을 봤을 때 자율규제의 실효성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윤 소장은 사회적으로 물러설 수 없는 최소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방심위가 필요하며 “심의가 특정 주체의 한계를 보완하고 사회적 소통에 기여해 프로그램 향상을 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장지호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은 “근본적으로 심의는 권력의 이데올로기 통제수단으로 구심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장 국장은 방심위가 공적 민간기구일지라도 그 예산이 방송통신발전기금으로부터 주어진다면 행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국가예산이 아닌 미디어 공동기금을 이용한다면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 12·12까지 연속 토론회

토론회를 주최한 미디어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는 ‘황폐한 미디어 생태계의 민주화’를 목표로 지난 4일 출범했다. 미디어 관련 법, 제도, 정책 등에 걸쳐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현업 언론인과 언론시민단체, 학계, 연구자 70여 명이 참여하였다. 최상재 공공미디어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언론은 이미 죽었다”며 “시신을 안고 비장한 심정으로 새로운 언론의 탄생을 찾아 활동을 시작할 주체가 이 모임”이라고 선언했다.

공개토론회는 미디어와 관련된 가장 뜨거운 이슈 25개를 주제로 잡아 연말까지 계속 열린다. 앞서 열린 1~4회 토론회는 ‘지역방송의 제자리 찾기’ ‘미디어 생태계 민주화를 위하여’ ‘SBS, 지상파 방송서비스 가능할까’ ‘방송광고제도 개편과 미디어 균형발전’을 주제로 삼았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는 공개토론회 의제 포함, 미디어 공공성 의제 40개를 선정해 정책보고서를 집필 중인데, 내년 1월 16일 발표할 예정이다.

▲ 미디어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 공개토론회 추후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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