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시사보도 공모전] 병의 기록: 우리가 묻은 짐승들의 이야기 ①

[앵커]

요즘 계란이나 닭고기 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조류인플루엔자, AI 방역을 위해 많은 닭을 살처분하기 때문입니다.

AI만 터지면 ‘살처분’이 공식처럼 적용되면서, 살처분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 살처분한 가금류를 파묻는 땅도 병들고 있습니다.

살처분 일변도의 동물 전염병 대책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는데, 먼저 살처분으로 고통받고 있는 농민들의 실태와 함께 매몰지 상황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경기도 화성에 있는 산안마을.

3만 7천 마리의 산란계를 기르는 산안마을은 조류인플루엔자, AI 확산을 막기 위한 예방적 살처분 대상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작년 12월 23일, 3km 이내의 다른 산란계 농장에서 AI 확진 판정이 났기 때문입니다.

동물복지 방식으로 닭을 기르는 산안마을은 예방적 살처분 조치에 반발했고, 경기도 행정위원회로부터 지난달 25일 살처분 집행정지 결정을 받았습니다.

추가로 실시한 정밀검사에서 잠복기를 고려해도 모두 AI 음성 판정이 난 점이 반영된 겁니다.

[김한결/산안마을 농장 주민: 주변 (농가들)은 이제 다 (닭들을) 묻었고…. 저희는 바이러스가 검출이 안 되고 있기 때문에. 이제 잠복기인 21일도 지났고...]

하지만 살처분 집행만 중단됐을 뿐, 계란을 내다 팔 수도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김한결/산안마을 농장 주민: 일단은 (살처분을) 실행하지는 않는다는 거고요. 명령은 살아 있어요. 그런데 저희가 이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는 상황이거든요. 계란은 반출을 못 한 지 40일, 44일, 45일. 이렇게 되었고. 사료 값은 그대로 나가고.]

실제로 작년 10월 이후 AI 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에서 살처분된 가금류는 1,300만 마리. 

AI에 걸리지 않았지만 AI가 발생한 농가 중심으로 3km 반경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예방적’으로 살처분된 가금류가 대부분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AI 확진 농가는 85건이지만 이미 443곳의 농가에서 살처분을 실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전체의 80% 이상이 AI에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 ‘예방적 살처분’을 한 겁니다.

[김한결/산안마을 농장 주민: 저희도 뭐. 닭이 병에 걸리면은, 다른 곳에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 ‘어쩔 수 없나…’라는 생각을 하지만, (예방적 살처분은) 납득을 할 수가 없어요. 닭들은 단순히 달걀을 생산하는 기계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 중 하나인데.]

살처분으로 인한 정서적 후유증을 겪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김솔/동물자유연대 활동가: (살처분) 현장을 봤을 때는 되게 참혹한 환경이 많죠, 축산업을 하시는 분들도 (동물들이) 지내는 동안 만큼은 되게 잘 기르게 하려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근데, 그런 분들이 눈앞에서 많은 동물들을 한꺼번에 다 죽여야 되니까. 그런 거로 되게 트라우마를 겪으시기도 하고...]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76%가 살처분 경험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 가운데 23%는 중증 이상의 우울증에 해당하는 응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이 때문에 지금은 용역업체를 통해 살처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솔/동물자유연대 활동가: 꿈에서 제가 살처분 현장 안으로 들어가거나, 제가 직접 동물을 묻는 노동자가 된다거나…(그런데) 제가 외부의 관찰자로서도 이런데, 내부에서 직접 (살처분을) 행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상처나 스트레스가 클 것 같아요.]

과도한 살처분으로 인한 매몰지 관리 문제도 커지고 있습니다. 

살처분된 동물의 사체가 썩지 않고 남아 있거나, 침출수가 유출되어 매몰지 주변 환경도 오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선희/동물 매몰지 관련 도서 『묻다』 저자: (매몰지를 가 보니) ‘아, 저기에 파 묻었구나. 그리고 저 땅이 썩고 있는 거구나…’ 우리가 생각하면 오리를 당연히 땅에 파묻었으니까 오리가 썩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좁은 땅에 너무 많이 (오리를) 파묻으니까… 오리가 썩는 게 아니고 땅에 문제가 생긴 거구나.]

실제로 이곳은 2015년 1월 살처분된 동물 사체를 묻은 뒤 2018년에 관리가 해제된 땅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땅에서는 역한 악취가 풍겨 나옵니다. 

매몰지 바로 옆에 있는 농가는 몇 년째 방치된 듯 가축을 기른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문선희/동물 매몰지 관련 도서 『묻다』 저자: 파묻었는데 괜찮은 땅은 없어요. 90% 이상은 당연히 밀봉에 실패했고. 그냥 그 근처 땅들이 다 오염된 상황이고요. 밀봉에 성공한 곳이 아주 드물게 있는데, (제가 최근에 본 연구에 의하면) 밀봉에 성공한 곳은 조류독감 바이러스도 살아 있었어요. 그러니까 사실은 (매몰지가) 효과가 전혀 없다고 보는 거죠.]

지금 같은 살처분 중심 AI 방역 정책이 유지된다면 앞으로도 이렇게 동물 사체 매몰로 병든 땅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단비뉴스 원종환입니다.

(영상취재 : 원종환 / 편집 : 원종환 / CG : 원종환 / 앵커 : 원종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저널리즘연구소가 주최한 ‘제1회 시사보도 기획안 공모전’에서 당선된 기획안들이 후속 취재를 거쳐 기사로 완성됐습니다. 지난 1월 중순 당선작이 발표된 뒤부터 수상자들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들의 지도 하에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코로나19로 비대면으로 이뤄지긴 했지만 여러 차례의 데스크를 거쳐 완성한 기사를 단비뉴스를 통해 공개합니다. 오늘은 두 번째 순서로 최우수작으로 선정됐던 원종환 씨의 기사로 오늘 1편에 이어 목요일에 2편이 게재됩니다. 기획안 제목은 ‘병의 기록: 우리가 묻은 짐승들의 이야기’로, AI와 같은 동물 전염병에 무조건 살처분으로 대응하는 문제와 대안을 짚어보는 내용입니다.

편집 : 이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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