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위기와 혁신] ㉒ 돌파구는 대학의 공공성 높이기

“최근 각 지방대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교육과정 개편, 학과 구조조정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 효과를 떠나 지방대의 각자도생은 불가능합니다. 학령인구(만 6~21세)가 감소해 대학 입학생 수가 급격히 줄고 있고, 재정이 풍부한 수도권 대학과의 격차도 더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지방대의 개별 노력으로만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방대의 위기는 정부의 공적 지원을 통해 함께 연대하고 협력하는 공공성 차원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임은희(43)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지난달 26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지방대의 생존과 혁신을 위해 ‘공공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방대는 재정의 상당 부분을 등록금 수입에 의존하는데, 지금처럼 계속 적자생존 경쟁만 벌인다면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대학은 학생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재정 수입도 매우 부족해질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지방대가 더욱 침체에 빠지고 끝내 소멸해 버리는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방대에 정부 세금이 투입되어 안정적인 재정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학의 공공성 강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금으로 사립대 살리려면 ‘국민 신뢰 얻기’ 필수 
 
“올해부터 전면화되는 고등학교 무상교육에 대한 국민 여론은 나쁘지 않아요. 고교까지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합의가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대학에 공공 자원이 들어가는 데 대해서는 국공립까지는 합의가 돼도 사립대는 안 되는 실정입니다. 대학교육 비용은 수익자(학생·학부모)가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고, 사립대 부정비리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세금이 투입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냐’는 불신이 크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지방 사립대들은 스스로 공적기관이라는 인식 아래 재정을 투명하게 운영하고 공공성을 높여 국민들에게 제대로 신뢰를 얻는 일이 필수적입니다.”

▲ 강원도 원주시 상지대가 지난해 11월 본관 앞 광장에서 ‘민주공영대학 출범 선포식’을 진행하는 모습. 이 대학은 정부의 재정지원을 전제로 대학 운영의 투명성·민주성을 높이는 ‘공영형 사립대’를 지향하고 있다. © 상지대

우리나라 지방대는 ‘학령인구 감소’와 ‘정부 재정지원 격차’ 등 개별 대학의 노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를 보면 통계청 추산 ‘만18세 학령인구’는 1990년 92만 명이었지만 2021년에는 47만6천 명으로 약 30년간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 중 대학교육연구소가 추계한 2021학년도 ‘대학 입학가능인원’은 41만4천 명으로, 334개 국내 대학·전문대 입학정원인 49만2천 명보다 7만8천 명 부족하다. 따라서 대학 중에는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곳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대부분 지방대에서 정원미달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입시업체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지난 1월 전국 일반대학 정시 지원현황을 집계한 결과, 서울권 대학의 경쟁률은 지난해 5.6대 1에서 올해 5.1대 1로 약간 떨어진 반면 지방권(경기·인천 제외) 대학은 3.9대 1에서 2.7대 1로 크게 하락했다. 수험생들이 정시에서 3곳을 지원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지방대는 평균적으로 미달이 된 셈이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대학교육연구소의 ‘대학 위기 극복을 위한 지방대학 육성 방안(2020)’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 입학가능인원은 2020년 45만7천 명에서 2024년 38만4천 명으로 줄고, 2037년엔 31만5천 명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이에 따라 현재 입학정원을 유지할 경우 2024년엔 지방대의 34.1%, 2037년에는 83.9%가 ‘충원율 70%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면 지방대 학부 등록금 수입은 2018년 대비 2024년에 25.8%가 줄고 2037년엔 42.6%나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 대학교육연구소 추산에 따르면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2024년엔 지방대 34%, 2037년에는 84%가 충원율 70%를 채우지 못할 전망이다. © 대학교육연구소

학령인구 감소 직격탄 지방대, 재정지원 격차도 심각 

등록금 수입 감소로 타격이 예상되는 지방대는 수도권 대학에 비해 정부 재정지원에서도 심각한 소외를 겪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가 지난 1월 발표한 ‘정부 대학재정지원 분석’ 보고서를 보면, 대학재정알리미에 공시된 2019년 전국 대학(4년제 198곳, 전문대 136곳) 재정지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학자금 지원과 국공립대 경상비 지원을 제외한 ‘일반지원’에서 수도권대 대학당 평균 지원액은 225억 원이었지만 지방대는 121억 원으로 2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특히 연구개발사업에 대한 지원 격차가 두드러져, 수도권대 대학당 연구개발 지원액은 149억 원인데 비해 지방대는 52억 원으로 3분의 1에 불과했다. 

대학교육연구소가 지난해 지방대 구성원 583명(직원 381명, 교수 2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방대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을 묻는 질문에 학령인구 감소(30.4%), 수도권대학 중심의 정부 고등교육정책(17.8%), 대학재정 부족(16.1%), 설립‧운영자의 부실운영 및 부정‧비리’(10.8%) 순으로 답이 나왔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재정 악화를 극복하기 위한 재정 확보 방안’을 묻는 질문에는 ‘정부재정 지원 확대’(42.6%)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지방대가 겪는 재정위기에는 수도권·비수도권 차별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 대안은 정부의 지방대 지원 확대라는 인식을 보여준 셈이다.

▲ 대학교육연구소가 2019년 정부의 전국 대학 일반재정지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방대 대학당 지원액은 수도권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 대학교육연구소

조선대‧상지대‧평택대의 공공성 실험 주목   

그렇다면 지방대가 공공성을 높이고 국민의 신뢰를 얻어 공적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조선대(전라 광주), 상지대(강원 원주), 평택대(경기 평택) 등 국내에서 가장 먼저 ‘공영형 사립대’(‘지원’ ‘감독’ 함께 늘려 사학 공공성 제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대학들의 노력을 주목할 만하다. 공영형 사립대는 이사진 절반을 외부 공익 이사로 선임하는 등 대학 운영의 공공성을 높이면서 국가 재정지원을 확대하는 모델이다. 세 대학은 모두 이사장·총장 일가의 전횡과 부정비리로 오랫동안 분규를 겪다 교직원 등의 저항과 정부 개입을 통해 정상화하는 과정을 거치고, 공영형 사립대에 앞장서 도전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 대학은 교육부 지원을 받아 지난해 9월 각각 공영형 사립대 도입 실증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들 보고서에 따르면 세 대학은 공통적으로 재정 운영과 주요 의사결정을 교직원·학생·시민에게 공개하는 ‘투명성’, 대학 주요 인사의 업무수행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이를 평가·견제하는 ‘책무성’, 대학 교직원과 학생뿐 아니라 지역 시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대학 운영에 직간접으로 참여하는 ‘민주성’을 높이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러한 노력은 꼭 공공형 사립대가 아니더라도, 전반적인 대학 공공성 제고 방안으로 참고할 수 있다.

▲ 조선대·상지대·평택대가 각각 교육부 지원을 받아 작성한 공영형 사립대 도입 실증연구 보고서. © 곽영신

국립대 수준 재정 심의에 교직원·학생 대표도 참여  

대학 재정 운영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한 가장 대표적인 제도는 ‘재정위원회’다. 재정위원회는 원래 국립대에서 국립대학회계법에 따라 재정 및 회계의 운영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사립대는 국립대와 달리 재정 권한이 전적으로 법인 이사회에 있지만, 공영형 사립대와 같이 공공성을 높이고자 하는 경우 재정위원회를 도입해 심의 기능을 강화하고 법인 이사회가 투명하게 대학 재정 정책을 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 재정위원회는 사립대의 다른 재정기구인 ‘등록금심의위원회’와 ‘대학평의원회’와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등록금심의위원회는 등록금 관련 정책을 심의하고 학생의 요구를 수렴할 수 있지만, 다른 재정 영역을 전반적으로 다루기는 어렵다. 대학평의원회는 대학의 발전계획, 학칙, 교육과정 운영 등에 대해 심의하고 대학 구성원의 요구에 반응할 수 있으나, 재정과 관련해서는 자문 기능만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재정위원회는 중장기 재정운용계획, 대학회계 예산 및 결산, 수업료, 교육‧연구 및 학생지도 비용 지급, 주요 사업 투자계획 등을 폭넓게 심의하고 시민의 참여를 통해 높은 수준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

조선대는 지난해 학교 임원 당연직 5명, 교수평의원회 추천 3명, 직원노동조합 추천 2명, 총동창회 추천 2명, 총학생회 추천 2명, 광역단체장 추천 1명, 총장 추천 2명 등 총 17명으로 ‘조선대학교재정위원회(위원장 이대용)’를 구성했다. 세무법인, 법무법인, 동창회 소속 외부위원 5명을 두고 재정 심의를 외부에도 개방해 공공성을 높였다. 

회의록을 보면 지난해 5월 8일 1차 회의에서 재적위원 17명 중 12명이 참석해 ‘‘2020년도 교비회계 1회 추가경정자금예산’ 등을 심의했고 5월 18일 2차 회의에서는 16명이 참석해 교내 전망대 카페 건립 등 신규 수익사업을 논의했다. 이 대학은 2020학년도에 총 4차례에 재정위원회를 열고 안건 및 논의사항을 모두 희의록에 남겨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 지난해 5월에 열린 조선대재정위원회 회의 모습. © 조선대

조선대 공영형 사립대 실증연구 책임자 지병근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지난달 25일 전화인터뷰에서 “조선대 재정위원회에는 본부 측이라 할 수 있는 부총장과 재정을 총괄하는 기획조정실장도 들어오지만, 직원노조, 총학생회장, 교수진, 외부 전문가 등이 함께 들어와 국립대 재정위원회와 거의 같은 구성 및 권한을 가지고 있다”며 “이처럼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한 재정위원회가 재정 심의 권한을 갖고 여기서 승인을 받아야 재정 지출을 할 수 있으므로 그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사립학교법은 대학을 일종의 사기업처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과도한 법적 권한을 이사회에 부여해, 설립이나 재정에 뚜렷한 기여가 없어 정당성이 없는 사람도 학교 경영권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며 “사립대에도 재정위원회가 있으면 이전보다 훨씬 더 체계적으로 재정을 검토하고 운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역 시민단체와 외부 전문가도 이사회 참관 

조선대는 대학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시민이 참관하는 제도도 도입했다. 지난해 4월 23일 우리나라 사립대 사상 처음으로 이사회를 외부에 개방했는데, 이날 참관한 인사는 5.18기념재단의 박진우 연구실장과 천주교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이태윤 사무국장이었다. 이들은 조선대 정관개정(안), 직제규정개정(안) 등 20건에 대한 심의, 의결과정을 지켜봤다. 이 대학은 이어 5월 21일 이사회에서도 광주소재 고등학교 교장과 시교육청 노동조합 간부 등 지역 교육전문가 2명이 참관한 가운데 8건의 안건을 처리했다.

▲ 조선대는 지난해 4월 제5차 이사회 회의에서 국내 사립대 최초로 지역 시민단체 인사에게 이사회 참관을 허용했다. © 조선대

상지대는 교내 구성원이 이사회를 참관할 수 있게 했다. 지난해 4월 29일 이사회에 교내 재정위원회 산하 행정감사위원회 위원장과 위원 4명이 출석해 2019회계연도 결산 승인에 관한 논의를 지켜봤다. 이어 6월 23일 이사회에는 교수협의회 공동대표, 직원노동조합 지부장, 총학생회 회장‧부회장‧사무국장, 총동문회 수석부회장이 참관해 정관개정, 교직원인사규정, 전임교원 신규임용 등의 논의를 지켜봤다. 상지대는 특히 교수협의회, 총학생회, 직원노동조합과 같은 구성원단체를 정관에 명시해 공식 기구화하고, 이들 대표가 이사회 등 주요 회의에 참관하게 함으로써 민주성과 참여성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사회 참관에 대한 구성원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상지대 공영형 사립대 실증연구 보고서 심층인터뷰 자료에서 한 학교법인 상지학원 이사는 “구성원단체의 대표가 이사회에 참관하는 제도는 학원 운영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강화하는 실질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교내 구성원 단체에게도 필요한 회의 자료가 충실히 제공되어 참관의 실질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사회를 참관한 경험이 있는 총학생회장은 “이사회가 구성원단체를 배려해 주고 있다는 느낌이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물론 우려도 있다. 같은 보고서에서 한 단과대학 학장은 “이사회를 감시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고, 이사들이 소신대로 하지 못할 우려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한 외부인사는 “모든 것을 다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조직의 섭리”라며 “사안에 따라서 참관을 허락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사학 족벌의 독단적 학교 운영 견제 기대 

상지대 공영형 사립대 실증연구에 연구원으로 참여한 방정균 교수(한의예과)는 지난 3일 전화인터뷰에서 “상지대는 교수협의회, 총학생회, 직원노조 등 구성원단체가 이사회를 참관하고, 학장과 학과장, 학생 대표, 동문‧직원‧외부인사가 단과대학 운영 전반을 논의하는 단과대학 운영협의회가 교무위원회에 참관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극소수 인사들이 학교를 독단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견제하고 구성원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함으로써 행정 참여도를 높이고 중요 사안을 공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립대 거버넌스는 이사회의 족벌체제라 할 수 있고, 사학비리 역시 그들의 회계부정과 독단적 운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학비리로 인한 분규를 겪었던 상지대도 지난 2017년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새 이사를 꾸릴 때 공공성과 투명성, 도덕성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그 기준으로 이사를 구성했습니다. 지금 논의 중인 것은 현재 9명인 이사회 정원을 늘려 지역협력을 위한 지역인사, 책무성을 높이기 위한 재정전문가를 이사에 추가하는 방안입니다. 또 총장 선임에 있어서도 지난 2018년 첫 총장 직선제를 했는데, 대부분 학교는 교수 위주로 투표하지만 우리는 학생 투표 반영비율을 22%로 정해 구성원들의 민의를 수렴했습니다.”

▲ 상지대는 사학비리로 인한 오랜 분규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지난 2018년 12월 직선제 선거를 통해 정대화 교양대학 교수를 제7대 총장으로 선출했다. 선거에는 교수와 직원 외에 학생 투표도 일정 비율로 반영, 대학의 공공성과 민주성을 제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상지대

‘인권센터’가 대학 민주화의 마중물 되기도

평택대는 2019년부터 법인 이사장과 총장의 월별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정관에서 원래 3개월만 공개하기로 한 이사회 회의록을 무기한 공개하는 것으로 개정하기도 했다. 또 법인 임원 간 친족관계도 홈페이지에 밝혔다. 과거 총장과 이사진의 업무추진비 부정 사용, 친족 간 비리 행위 동조·방조 때문에 심각한 분규를 겪었던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평택대에서는 특히 지난 2018년 설립된 ‘인권센터’가 대학의 민주성을 높이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 총장의 여직원 성추행과 갑질 등으로 침해받아온 대학 구성원들의 권리 보장이 필요하다는 인식 속에서 인권센터가 만들어져 교수회, 직원노조, 총학생회 등 교내 자치조직의 설립과 활동에 큰 영향을 준 것이다. 현재 인권센터는 운영위원회와 인권고충심의위원회, 상담실 등으로 구성돼 차별과 폭력 대응뿐 아니라 장애인·외국인·성소수자·노동자의 권리 교육, 캠페인, 연구 및 인권연대 구성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인권고충심의위원회에는 교수, 직원, 외부 변호사와 시민단체 활동가가 참여해 신고 사건을 심의・의결하고, 추가 조사 및 해결 방안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평택대 공영형 사립대 실증연구 책임자이자 인권센터 소장을 맡았던 선재원 교수(일본학)는 지난달 26일 전화인터뷰에서 “인권센터가 대학 구성원의 인권침해 사건을 처리하고, 성평등, 노동권 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등 대학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며 “예전에는 족벌경영 체제에서 알려지면 학교 명예가 실추된다며 강압적으로 덮었던 성희롱, 갑질 문제가 이곳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향후 보다 민주적인 거버넌스를 위해 법인 임원의 친족 교직원 수 공시, 직원 채용의 공정성 강화, 대학 평의원회 참관, 재정위원회 참관 등을 추가로 추진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 지난 2017년 4월 평택대 교수진 등 구성원들이 총장·이사장·명예총장을 30여 년 역임하며 부실·비리경영, 성추행, 갑질 등 물의를 일으킨 조기흥 씨의 퇴진을 요구하는 모습. © 평택대

사학단체 “소유·운영권 탈취 노린 전체주의 발상” 반발  

교육부는 지난 2019년 12월 ‘교육신뢰회복을 위한 사학혁신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사학 회계 투명성 제고, 사학 법인 책무성 강화, 사학 운영 공공성 확대 등 5개 분야 26개 추진과제를 제시했다. 이후 사립학교법 시행령 개정, 고시 제정 등을 통해 ▲1천만 원 이상 배임·횡령 임원은 시정명령 없이 임원취임승인취소 가능 ▲이사회 회의록 공개기간 3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 ▲설립자 및 설립자 친족과 기존 임원 및 학교 총장 등은 개방이사 선임 불가 등 일부 추진 사안을 확정했다. 이외에 적립금 공개 확대, 사립대 외부 회계감사 강화, 비리임원 복귀 제한 등 추가적인 혁신 방안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사립학교법을 개정해야 한다. 

반면 사학단체들은 정부와 일부 대학의 공공성 제고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한국사학법인연합회·한국대학법인협의회 등 사학단체는 지난해 2월 토론회를 열고 “정부는 일부 사학의 비윤리적 사례를 근거로 전체 사학을 왜곡하고 이를 확대 재생산하지 말라”고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이어 “사학의 자율적 운영을 보장하는 정책으로 대전환하라”고 요구했다.  

한국사학법인연합회는 지난해 11월에도 공영형 사립대 정책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에서 “사학재단을 비리재단으로 몰아세워 ‘민주공영대학’이라는 딱지를 붙이면 가장 먼저 지배구조가 바뀐다”며 “설립자와 재단법인이 운영 주체가 아니라 이사회를 장악한 친정부 특정 집단 인사들이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합회는 이어 “(공영형 사립대는) 비리 사학을 정리하고 부실대학을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우지만, 속내는 사학법인 재산과 국민 혈세로 학교를 장악하고 망할 때까지 사적 이익을 취하겠다는 행위일 뿐”이라며 “사립학교에 대한 소유와 운영권을 탈취하여 ‘공영화하겠다’는 것 자체가 전체주의적 발상이라 규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관해 임은희 연구원은 “대학의 공공성과 자율성은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그는 “대학의 자율성이란 구성원의 논의와 합의를 통해 행정을 운영하고 교직원‧학생이 자유롭게 학문을 펼치는 것을 말하므로 이러한 자율성은 충분히 보장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다만 학교에 공적 자금이 들어가는 만큼 투명한 시스템을 갖추고 정부 차원에서 부정·비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사를 통해 관리하는 일은 필요하다”며 “이로 인해 오히려 대학 구성원 입장에서는 더 책임감 있는 운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 교육부는 2019년 12월 ‘사학혁신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5개 분야 26개 추진과제를 제시했다. 이후 후속조치로 시행령 개정, 고시 제정 등을 통해 일부 정책을 확정했다. © 교육부

김태훈(47)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부위원장은 지난 4일 전화인터뷰에서 “사립대에 재정 투명성과 민주적 거버넌스를 강화할 때 재정 안정성이 확보되고 대학교육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정책적 청사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되면 교육적 마인드를 가진 설립자나 이사회 중에서 대학 발전을 위해 협력적으로 나오는 곳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또 재정 안정성이 확보되고 교육 여건이 나아진다고 하면 재학생과 교수진, 직원 등 대학 구성원들은 이를 환영하게 될 것”이라며 “이러한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나간다면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학벌사회 극복과 지역격차 해소 효과 기대  

사립대학, 특히 지방사학의 공공성을 높이고, 정부 재정지원을 대폭 늘리면 사회적으로 어떤 이익이 생길까? 교육부와 한국사학진흥재단이 함께 발표한 ‘공영형 사립대학 도입 필요성 연구(2019)’ 보고서에 개략적인 효과·편익 분석이 나와 있다. 우선 대학은 구성원·지자체·지역사회의 참여와 협력을 높이고, 지역산업과 연계해 특성화한 교육과정과 기술 개발, 인력 양성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그동안 쇠퇴해 온 기초학문 교육과 연구를 강화할 수 있고, 지역사회 맞춤형 평생교육 환경과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이를 통해 대학에서 전반적으로 교육의 질이 향상되면 졸업생의 취업률 증가, 경쟁 완화로 인한 사교육비 절감, 대학시설 지역사회 공유와 같은 부가적 편익도 발생할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예산 500억 원을 들여 권역별 5개씩 25개 대학을 공영형 사립대로 선정해 연평균 20억 원씩 지원할 경우, 대학교육의 공적 및 사적 편익 2229억 원, 사교육비 절감 효과 543억 원, 평생직업교육 소득 상승효과 85억 원, 인적 자원 확충을 통한 혁신효과 400억 원, 지역 시설자원 제공 편익 23억 원 등 총 3280억 원의 편익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 교육부는 예산 500억 원을 들여 공영형 사립대 정책을 시행할 경우, 대학교육의 공적 및 사적 편익, 사교육비 절감 효과, 평생직업교육 소득 상승효과 등 총 3280억 원의 편익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 교육부

조선대 지병근 교수는 “많은 지방대가 더 이상 혁신할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력하고 있지만 구조적인 어려움 때문에 한계가 있고 하고 싶어도 못하는 부분도 있다”며 “지방대가 살기 위해 취업률 높은 학과만 키우거나 ‘도토리 키 재기’하는 경쟁을 할 게 아니라 공공성을 강화해 이에 비례하는 정부의 재정지원을 떳떳하게 받고, 교육의 질을 높이며 공공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관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택대 선재원 교수는 “학령인구의 감소는 그동안 대학생들이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했던 문제를 개선하고 1인당 교육비 지원 증가, 나아가 대학 무상교육 등 오히려 수준 높은 고등교육의 수혜를 받도록 하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단순히 입학 정원을 줄이는 문제를 논의하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대학 공공성을 개선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장기적인 교육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제껏 우리 교육이 학생들도 서열을 만들고 대학도 서열을 만드는 과도한 경쟁체제여서 진정한 교육이라 할 수 없었는데, 미래가 없는 그런 교육을 탈피해야 한다”며 “과도한 경쟁을 없애고 상생하기 위해서는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과 안정적인 재정 공급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상지대 방정균 교수 역시 “정부 지원 대부분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집중돼 있고 대학 서열 역시 정부가 지원하는 금액 순서로 거의 고정돼 있다”며 “그만큼 지방대 지원은 안 해주면서 경쟁력 없으니 문 닫으라고 하는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을 하라고 하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대에 대한 지원이 없으면 지방대가 무너지고 지방대가 무너지면 지역사회가 무너진다”며 “지방대가 살면 지역사회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상생을 도모함으로써 지역도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대학 공공성 높아지면 지역주민도 혜택 

“상지대가 지난해 전국 대학 최초로 학교 내에 발달장애인통합지원센터 ‘더불어 봄’을 설치했어요. 발달장애학생 돌봄기관을 지역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만들기가 쉽지 않은데 대학이 그 공간을 제공한 겁니다. 센터는 발달장애 학부모들이 만든 사회적협동조합(드림하이)과 함께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런 기관은 공공적 대학이 지역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죠. 그밖에 원주가 한살림 등이 태동한 협동조합의 메카라 할 수 있는데, 상지대에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지원하는 사회적기업 성장지원센터도 있고 강원도 사회적경제 지원센터도 있습니다. 작년에 사회적 경제학과를 개설하기도 했어요. 최근 주목받는 사회적 경제를 통해 지역사회와 협력하겠다는 의지입니다.”

▲ 상지대 발달장애인통합지원센터 ‘더불어 봄’과 발달장애 학부모 협동조합 ‘드림하이’는 지난해 12월 ‘2020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회적가치 어워드’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 우수기업으로 선정돼 최우수상을 받았다. © 상지대

김태훈 정책부위원장은 “지방대의 공공성 강화는 비리, 부실 사학이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고, 또 공공성 강화를 조건으로 국가 재정지원이 강화된다면 지방대생들에게 안정적인 학업과 자기계발을 수행할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되면 지방대라 하더라도 학생들이 학업과 취업에 긍정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고, 그러면 지방대 기피 현상이 완화되는 동시에 학벌사회를 극복하고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데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학교육연구소는 학령인구 감소와 함께 갈수록 심각해질 지방대 미충원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대학 공공성 강화 외에 ‘수도권 대학을 포함한 전체 대학이 고르게 정원 10% 감축’ ‘재외국민 및 외국인 특별전형 등 정원 외 모집인원을 정원 내로 전환’ ‘동일법인 대학 통·폐합’ ‘폐교에 따른 피해 최소화 방안 마련(학생 등록금 및 교육기회 보호, 교직원 임금 및 고용 보호)’ 등을 제안했다.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와 미국의 하버드 등 선진국 명문대학은 대부분 수도가 아닌 지방의 작은 도시에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지방에 있는 대학을 교육의 품질과 상관없이 ‘지잡대’ 등으로 싸잡아 부르며 멸시하고 차별하는 풍토가 심하다. 지방대생들이 편입 등을 통해 서울로 ‘탈출’하는 행렬도 끊이지 않는다. 저출산 추세로 학생 수가 점점 줄면서 지방대 중 상당수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와 <단비뉴스>는 심층기획 ‘지방대 위기와 혁신’을 통해 서울 중심의 불균형 발전과 왜곡된 학력 경쟁 등이 낳은 지방대 소외의 실상을 조명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편집 : 김병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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