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노동자 두 번 울리는 산재보험] ③ 특수고용직 사각지대

한 대형 학습지회사 소속 교사인 윤성희(59·가명) 씨는 지난 2018년 9월 수업하러 가던 길에 골목길에서 차를 빼다가 사고를 당했다. 골목을 돌아 내려오던 차에 받히면서 윤 씨의 차가 앞으로 튕겨 나가 다른 차들을 들이받은 것이다. 핸들에 눈을 부딪힌 윤 씨는 현장에서 기절했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윤 씨는 검사를 기다리는 중에도 수업이 걱정돼 사무실에 사고 사실을 알렸다. 자신이 담당하는 30여 명의 학부형에게도 일일이 전화를 걸어 수업을 못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눈이 시퍼렇게 멍들어 붓고 뒤통수에는 큰 혹이 났다. 온몸에 타박상까지 입은 윤 씨는 2주간 입원했다. 어디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힘든 와중에도 윤 씨를 괴롭힌 것은 일이었다. 회사에서는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윤 씨에게 학생들 교재를 정리하라며 병원으로 들고 왔다. 매주 90~100과목을 가르치는 윤 씨가 2주치 교재를 정리하는 데 8시간이 걸렸다. 그는 입원하자마자 응급처치만 받고 외출증을 끊어, 담당 학생들 집으로 교재를 돌리러 다녀야 했다.

‘쉬면 일감 끊겨’ 교통사고로 입원하고도 교재 돌리러 외출  

▲ 이동 중 교통사고를 당해 눈이 퍼렇게 멍들고 부은 학습지 교사 윤성희 씨 모습. 사고 열흘 후에 찍은 사진인데도 멍이 거의 빠지지 않았다. ⓒ 윤성희

학습지 교사는 과목별로 수당을 받는 ‘수당제’로 일한다. 기본급과 퇴직금 등을 받을 수 없는 탓에 무리하게 수업을 늘리다가 시간 압박으로 사고를 당하는 일이 잦다. 학습지로 꽉 채운 무거운 가방을 양쪽 어깨에 메고 다니기 때문에 낙상사고에도 취약하다. 윤 씨는 “다세대 주택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넘어져 무릎을 꿰매고 골절된 손가락에 깁스한 채 수업하러 간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학습지 가방을 들고 시간 맞춰 집과 집 사이를 오가느라 어깨와 허리도 망가졌다. 수원에서 일하는 학습지 교사 김행희(43) 씨는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직업병이 생긴다”며 “몸을 숙인 채 계속 학습지를 봐주느라 목 디스크가 생겼는데 직업과 질병의 관련성이 떨어진다며 산재 불승인을 받아 치료비를 지원받지 못했다”고 말했다.고객들의 불평에 대응하는 일도 겹쳐 더 힘들었다. 갑자기 수업을 못 하게 돼도 다른 교사가 대체해주는 게 아니라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윤 씨는 입원기간 동안 밀린 수업들을 보충해주기 위해 퇴원하자마자 바로 수업에 나갔다. 그는 학습지 교사로 일한 지난 20년간 교통사고만 네 번을 당했다. 한 번은 차 앞부분이 다 부서졌지만 견인차를 불러놓고 바로 수업을 하러가기도 했다. 여러 해 지난 지금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후유증이 몸 곳곳에 남아있다. 

윤 씨도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했지만 막상 산재보상을 신청하는 일은 부담스러웠다. 질병과 업무의 연관성 등 산재 사실을 본인이 직접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진단서 등 각종 구비서류를 갖추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쉬면서 준비해야 하는데, 일자리의 안정성이 없는 특수고용직에겐 어려운 일이다. 윤 씨는 “한 번 쉬게 되면 일감이 거의 끊긴다”며 “20년 동안 한 번도 쉰 적이 없다”고 말했다. 본인이 집안 생계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가족상을 당했을 때도 영안실에서 교재를 정리하고 나눠주러 다녔다고 한다. 그는 “한창 일을 많이 할 때는 집에서 아침 일찍 나와 밤 10시가 넘어서야 귀가했다”며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씨는 산재 신청을 단념했다. 

사용자 눈치 탓 ‘산재 적용제외신청’이 80%

특수고용직이란 불안정한 신분은 큰 사고를 당한 후에도 윤 씨가 아픈 몸을 끌고 억지로 일터에 나서도록 만들었다. 특수고용직은 고용 근로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도급·용역·위탁 등의 계약 형태로 노무를 제공하는 노동자를 뜻한다. 학습지 방문 교사나 화물차 운전기사, 골프장 캐디 등이 특수고용직에 해당한다. 특수고용노동자는 불안정한 고용상태나 보험 포기 각서 등에 발이 묶여 산재를 신청하기 어렵고, 산재보상을 신청해도 전속성 등 비현실적인 승인 요건 때문에 산재를 인정받기 어려워 2~3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윤 씨처럼 일 때문에 본인이 산재보상 신청을 단념하는 경우도 많지만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산재신청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경우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게 은근히 강요되는 ‘산재보험 적용제외신청’ 때문이다. 학습지 노동자, 퀵서비스 기사, 대리기사 등 14개 직종 특고직은 산재보험 특례규정의 적용을 받아 당연가입(의무가입) 대상자에 포함됐지만, 적용제외신청서를 작성할 경우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 적용제외신청서는 실질적인 ‘보험 포기 각서’로, 사업주가 100% 산재보험료를 부담하는 일반 노동자와 달리 사업주와 보험료를 절반씩 나눠 내야 하는 특고직의 부담을 완화해주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대신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적용제외 신청을 강요하거나 당사자의 의사에 관계없이 적용제외신청서에 허위 날인할 경우 고발 조치할 수 있도록 보완 장치를 두었다. 그러나 처음 취지와 달리 본인의 의사보다 사업주의 강압과 종용에 의해 적용제외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다. 여민희 학습지노조 재능지국장은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사업주가 계약서와 적용제외신청서를 같이 들이밀어 얼떨결에 사인하게 만든다”며 “설명도 듣지 못한 상태에서 본인 의사와 관련 없이 산재보험에서 자동 탈퇴하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적용제외신청서가 뭔지 모르고 얼떨결에 서명하는 사람도 있지만 알면서도 산재보험가입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고용주의 요청에 불응하면 채용이 취소되거나 불이익이 생길까 우려하는 것이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아 공개한 ‘2017년~2020년 7월까지의 특수형태근로자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률 현황’에 따르면, 입직신고(노동자가 입사해 보험가입대상이 됐음을 사용자가 신고하는 것)된 특고직 총 53만2792명 중 42만4765명(79.7%)이 산재보험 적용제외신청서를 제출했다. 10명 중 8명꼴로 산재보험에서 배제된 것이다. 입직신고조차 되지 않은 경우를 감안하면 산재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특고직의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용주 애매한 택배 노동자 발목 잡는 ‘전속성’

특수고용노동자 중 산재 관련 불이익을 가장 심하게 받는 건 플랫폼 노동자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주로 스마트폰 앱 등을 사용해 일감을 수주하고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 이들의 산재 승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은 산재보상 규정 중 ‘특정한 사업주에게 주로 노무를 제공해야 한다’는 전속성 요건이다. 고정된 사용자 없이 플랫폼을 통해 일을 매개하는 디지털 특수고용직의 속성상 이들이 전속성 요건을 충족시키기는 쉽지 않다. 산재보상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이다.  

오토바이 퀵서비스 기사 박남현(50·가명) 씨는 20년 동안 배달을 해왔다. 오토바이 브레이크를 감았다가 놓는 반복 동작을 계속하는 바람에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뼈가 굽은 채로 굳었다. 골반과 허리도 망가졌다. 앞에서 계속 바람을 맞는 무릎은 보호대를 착용했어도 쿡쿡 쑤신다. 도로포장을 뜯었다 덮는 일이 빈번한 연말에는 울퉁불퉁한 도로 상태 때문에 척추 등 몸에 고스란히 충격을 받는다. 통증이 심해 자다가도 깨는 바람에 술을 먹고 잠들어야 할 정도다. 그러나 퀵서비스 기사가 근골격계 산재를 신청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분위기다. ‘전속성’ 요건을 충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퀵 기사가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를 신청해 인정받은 사례가 없다. 통원 기록이 있느냐는 질문에 박 씨는 “병원 다닐 시간과 여유가 없다”고 답했다. 

▲ 오토바이 퀵서비스 기사 박남현 씨가 손가락뼈가 굽었다고 설명하며 오른손을 만지고 있다. ⓒ 이나경

퀵 사무실은 기사들의 사용자가 되기를 회피한다. 퀵 기사들은 2012년 5월부터 산재보험 당연가입대상자가 됐지만 실제 가입 사례는 극소수다. 대부분의 사무실에서 산재보험 얘기를 꺼내는 순간 계약이 깨진다. 박 씨는 “퀵 기사의 산재보험료를 내주는 사무실은 100대 1 정도로 손에 꼽힌다”고 말했다. 산재보험에 가입했어도 퀵서비스 기사가 보상을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의 ‘특고 직종별 산재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8월까지 업무 중 산업재해를 입어 보상을 신청한 택배 기사, 보험 설계사, 골프장 캐디 등 특고직 1700여 명 가운데 10%는 산재 승인을 받지 못했는데, 이 중 퀵서비스 기사가 73%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문제는 한 사무실에 ‘전속’되어야만 산재 승인 요건을 충족하는데, 특정 사무실에 소속되어 사무실 ‘콜(호출)’만 받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스마트폰 앱을 사용해 콜을 공유하기 때문에 ‘전속된 사무실’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김수근 성균관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가 발표한 <플랫폼 노동과 산업보건>에 따르면 최근 6~8년간 플랫폼 산업이 발달하면서 스마트폰 앱을 운영하는 업체가 퀵서비스 기사들의 실질적인 사업주가 됐다. 박 씨를 비롯한 기사들은 로지, 카카오 등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업주가 누구인지 불분명하다. 

▲ 짐을 한가득 싣고 이동하는 퀵서비스 기사의 모습. 퀵 기사들은 고정된 자세로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업무 특성 때문에 근골격계 질환에 취약하다. ⓒ 박남현

경쟁 늘고 단가 하락, 5년간 특고직 산재 3배 증가 

고용주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퀵 기사들은 산재를 많이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위험에 직면해 있다. 박 씨는 “플랫폼 기업들이 기사들을 고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회피하기 위해 일을 자꾸 가르고 쪼개 ‘조각난 일터’로 만든다”고 말했다. 콜을 잡는 프로그램도 30~40개로 쪼개졌다. 프로그램 하나당 한 달에 한 번씩 1만6500원을 지불해야 한다. 자동으로 콜을 잡아주는 20~30만 원짜리 불법 프로그램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콜 잡는 프로그램비로만 월 60만 원 상당의 고정비용을 지출하는 기사들도 많다. 업체는 중복으로 수입을 얻고 기사들은 과다한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구조다. 

박 씨는 오토바이 할부 대금, 수리비, 정비비, 보험료, 기름값 등을 합해 한달에 120만 원 가량을 추가로 지불한다. 콜 수수료는 23%씩 사무실에 떼인다. 박 씨는 버는 돈의 50% 이상이 각종 지출로 떼이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먹고 살려면 필수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2015년에 발간한 ‘이동노동 종사자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서울지역 퀵서비스 기사는 하루 평균 12시간을 근무하고(실 운행 9시간) 월평균 150만 원 정도를 번다. 몸도 기계도 마모된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이동을 많이 하는 직종이기 때문에 노동 강도가 높고, 높은 노동 강도는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한다. 박 씨는 “택시가 하루에 200킬로미터(km) 뛰는데 나는 예전에 몸이 망가지는지도 모르고 450km까지도 뛰었다”고 말했다. 이제는 몸이 너무 아파 장거리 운송은 엄두도 못 낸다. 이 와중에 업체끼리 출혈 경쟁으로 단가가 낮아져 10년 사이에 3만5천 원짜리 택배가 2만5천 원으로 떨어질 정도가 됐다. 퀵 기사들이 더 많은 짐을 싣고 더 오래 이동하게 되면서 수시로 신호를 위반하고 차 사이로 요리조리 다니는 일도 예사가 됐다. 시간 압박을 받는 만큼 사고 위험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019년 10월 배달 노동자 등 특고직 산업재해율이 최근 5년 새 3배 늘었다고 발표했다.

정해진 사무실의 일감을 수주하는 게 불가능한 대리운전기사에게 전속성 요건은 더욱 치명적이다. 대리기사는 2018년부터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 추가됐으나, 여러 업체의 콜을 동시에 받아 처리해야 하는 업무 특성 탓에 산재보험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 현황’(20년 5월 기준)에 따르면 대리운전기사 등록종사자는 13명이고, 산재보험 적용종사자는 3명에 그친다. 전속성 기준을 충족하는 인원이 13명뿐이고, 그중에서도 10명이 적용제외신청서 등을 써서 배제된 셈이다. 대리운전기사 노동조합 측에서 추정하는 대리기사 수는 약 20만 명이다. 국토교통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6만5천 명 이상이 현업 대리기사로 일한다. 수십만 명의 대리기사 중 산재보상 혜택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 현황. ⓒ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는 고위험군 노동자들

대리기사들은 산재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지만 만성적인 야간 노동으로 산재 발병 위험이 크다. 대부분의 대리기사는 마땅한 야간 이동수단이 없어 저녁에 출근해 새벽 4시 대중교통 첫 차가 다닐 때까지 일한다. 대리운전기사의 일평균 취침시간은 대개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평균 6.13시간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세대 산업보건연구소와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의 2014년 연구에 따르면 대리운전 기사 1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22명(약 73%)이 중등도 이상의 불면증을 호소했다.  

지속적으로 숙면을 취하지 못할 경우 혈당 수치가 올라가고 혈압이 불규칙해지며 치아, 눈, 간 등이 손상된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의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수면을 충분히 취하지 못하면 자살 위험도 높아진다.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연구 결과 수면 위생이 좋지 않은 대리기사 집단의 약 41%가 자살 생각을 했다고 응답한 반면, 수면위생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대리기사 집단에서는 약 17%만이 자살 생각을 했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야간노동이 가장 주요한 산재요인인데도 특수고용직인 대리기사의 경우 통상적인 야간 노동에 붙는 수당도 요구할 수 없는 구조다.  

대리기사들은 또 술에 취한 사람을 대신해 운전하기 때문에 승객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는 일도 많다. 김주환(53)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위원장은 “일하다 보면 젊은 친구가 나이 든 기사한테 쌍욕하고 심지어 완력을 행사하는 일은 다반사”라며 “‘뭐하다가 늙어서 대리기사 하냐’ 혹은 ‘대리기사 주제에 말대꾸한다’ 등의 비하 발언도 수시로 듣는다”고 말했다. 폭언과 폭행에 노출당하면 트라우마 때문에 한동안 일을 못하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정신질환 산재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지만 인과성을 입증하기 어려운데다 ‘전속성’ 요건에 발이 묶여 산재 신청은 꿈도 꾸기 어렵다.

▲ 취객의 폭행이나 폭언을 일년에 한 번 이상은 경험한 적 있다고 응답한 대리운전 기사들의 비율은 85.9%에 이른다. 이러한 폭행을 겪었을 때 상당수 대리기사들은 ‘참고 넘긴다’고 대답해 정신적 후유증의 가능성을 보였다. ⓒ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대리기사도 대부분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대리기사들은 전체 수입의 35~50%를 고정 비용으로 지출한다. 콜을 잡아주는 프로그램 이용비를 매달 2만 원씩 내고 20~30%에 달하는 수수료, 대리운전 보험료와 출근비까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콜을 빠르게 잡아주는 불법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가격은 비싼 경우 10만 원을 넘기도 한다. 

야간 이동수단이 부족한 지방 업체들은 기사들을 태우고 이동하는 ‘합차’를 운영하며 출근비를 받는다. 경북 구미 같은 경우는 기사들이 출근비만으로도 한 달에 40~50만 원을 지출한다. 그러다 보니 대리기사들의 한 달 수입은 100만 원대 초반에서 중반을 오간다. 생계를 유지하기 빠듯해 산재보험료를 내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김주환 위원장은 “대리기사들이 한 1~2주   일을 못하는 정도의 경미한 사고는 얘기도 안한다”며 “2~3년에 한 번씩은 중상을 입지만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달 노동자는 ‘사고 책임소재’도 산재 인정 걸림돌 

‘전속성’ 기준을 충족시켜도 산재 불승인이 나는 경우가 있다. 배달 라이더 유건우(19) 군은 2019년 12월 배달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새벽 0시 반쯤 배달이 늦어져 경인고속도로 서인천 교차로(IC)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다가 고속도로 출구에서 나오는 차하고 부딪혔다. 타박상을 심하게 입어 약 2주간 절뚝거리며 다녀야 했다. 특고직이지만 마침 사업주가 업무 지시를 한 ‘강제 배차’로 배달하다가 난 사고여서 전속성이 인정된 상태였다. 산재 신청 요건을 충족했다.

그러나 사고 책임소재가 문제였다. 유 군은 자기가 신호를 위반했는지 상대 차량이 위반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유 군에게 배차 지시를 내린 콜 사무실에서는 사고 현장에서 배달통에 실린 음식만 수거해갔고, 유 군은 경황이 없던 와중에 친구의 도움을 받아 귀가했다. 상대 차량은 사업주에게 유 군이 교통신호를 위반했다고 통지했다. 유 군은 블랙박스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유 군의 책임을 물어 ‘산재 불승인’ 통지를 내렸다.

▲ 오토바이를 타고 일하는 배달 라이더들이 주로 겪는 산업재해는 교통사고다. 산재보상은 '무과실 책임주의'가 원칙이지만 라이더들은 교통사고를 당해도 사고에 책임이 있으면 구제받지 못한다. ⓒ 연합뉴스

원래 산재는 노동자의 과실 여부를 묻지 않는 ‘무과실책임주의’다. 사고와 업무 사이의 관련성만 충분하다면 노동자의 부주의나 실수는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2019년 8월 고용노동부가 ‘법령 위반으로 발생한 사고의 업무상재해 인정기준’(지침)을 신설한 이후 도로교통법 위반 등의 행위로 인해 발생한 사고는 산재보상 승인을 하지 않고 있다. 라이더유니온 구교현 기획실장은 “시간 압박에 시달리는 배달 라이더들이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맥락과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판단해야 한다”며 “야밤에 강제 배차를 당해 시간 압박에 시달리던 특수고용직종 노동자에게 교통법규 위반 사실만 놓고 책임을 물어 산재를 불승인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전속성 기준 폐지하고 보험료 지원 늘려야   

사업주와 고용관계가 뚜렷하지 않은 특고직노동자들의 공통적 불만은 사무실의 무책임과 무관심이다. 노동자를 고용해 수익을 올리면서도 산업재해의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한다. 학습지 노동자 윤 씨는 “사무실이 모든 일을 나에게 맡기고 조율해주거나 관리해주지 않는다”고, 퀵서비스 기사 박 씨는 “다쳐서 나오지 못하든 말든 사무실은 아무 관심이 없다”고, 배달 라이더 유 군은 “다쳤다고 그러면 그냥 나오지 말라고 그런다”고 말했다. 사업주들은 특수고용직들의 입직신고를 미루거나 적용제외신청서를 쓰게 만들어 책임을 회피한다. 겨우 산재보험에 가입해도 충족하기 어려운 전속성을 승인 요건으로 삼으니 이들은 가장 필요할 때 보호를 받지 못한다.  

2019년 10월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발간한 <산재예방정책의 중장기 전략 수립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국내 특고노동자는 약 230만 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임금노동자의 11%로 추정된다. 특고직은 근로기준법 상의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예외를 두는 방식(산재보험 특례적용)으로 산재보상보험체계에 편입됐다. 그나마도 대통령령으로 정한 14개 직종 77만 명으로 한정되고 전속성과 적용 제외 신청 등으로 실제 가입자 수는 6만여 명에 불과하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김 위원장은 “전속성은 처음에 산업화하면서 공장 기준에 맞춰 노동기본권을 만들다 보니 맞춰진 20세기 기준”이라며 “그렇게 할 수 있는 노동자들은 현대사회에서 많지 않기 때문에 속히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법 적용 대상 사용자와 노동자의 범위를 규정한 ‘노조법 2조’를 개정해 특고직도 노동자에 포함시키고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특고직의 산재보험 가입을 전면 의무화하고 적용제외신청은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고직은 대부분 소득이 낮기 때문에 사업주와 산재보험료를 반반씩 나누어 부담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일반 노동자처럼 사업주가 전액 부담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우준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콜을 받는 플랫폼에 어느 업체의 일감을 수주했는지 기록이 남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업체들에 건별 보험료징수를 할 수 있다”며 “혹은 농업인 재해보상보험을 국가가 일부 지원해줬던 것처럼 특고직 산재보험료를 국가 재정으로 일정 부분 부담하는 것도 선택 가능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은 일터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병을 얻은 노동자가 제대로 치료받고 직장에 복귀하거나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산재를 감추려는 기업과 까다로운 입증을 요구하는 근로복지공단에 맞서 피해 노동자가 보상을 받는 과정이 험난한 경우가 많다. 특히 플랫폼노동자, 특수고용직 등 사각지대의 불안정노동자들은 ‘높은 재해 위험’과 ‘낮은 산재 보호’라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단비뉴스> 특별취재팀은 이런 불안정노동자들의 현실을 현장취재를 통해 조명하고,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대안을 모색했다. 이 시리즈는 뉴스통신진흥회 주최 제 3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전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정됐으며, <연합뉴스>에서 [구멍난 산재보험] 특집으로 4회에 걸쳐 보도됐다. (편집자)

① 협박·고발 시달리고 생활고에 절망도

② 사고 감추려 회유, 압박, 따돌림까지

편집 : 방재혁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