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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기억하는 법
[상상사전] ‘공유’
2020년 12월 02일 (수) 21:16:03 이예슬 기자 yeslowly@gmail.com
   
▲ 이예슬 기자

엄마는 안 해본 일이 없다. 국밥집 ‘서빙’부터 목욕탕 세신사, 종래에는 만둣집 사장까지. 그렇게 악으로 우리 삼남매를 키웠다. 어렸을 적부터 노래를 잘해 가수가 되고 싶었던 엄마의 꿈은 예상치 못한 언니의 탄생으로 접어야 했다.

가수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엄마는 끼가 많은 사람이다. 흥얼거리는 노래 한 자락으로 만두를 먹으러 온 손님들과 자연스레 대화를 트기도 하고 손재주가 좋아 만두도 어여쁘게 잘 빚었다. 점심때가 되면 엄마 가게 ‘춤추는 만두’에 수많은 손님과 더불어 그들이 몰고 온 이야기가 춤추듯 들어왔다 빠져나갔다. 만두는 빠르고 간단한 음식이라 금방 먹고 금방 일어날 수 있다. 그 짧은 시간에도 엄마와 손님들은 만두의 훈김처럼 따스한 교감을 나눴다.

가끔 느지막이 들어와 만두 한 접시 시켜놓고 떠드는 술꾼들의 주정도 보아가며 나는 세상의 다양한 꼴을 엿보았다. 내가 본 게 뭔지 모르고 자랐지만 그 공간에 밴 공기를 오래 쐬었다. 그곳에서 우리 남매는 가끔 엄마에게 돈을 타서 과자를 사 먹기도 하고, 만두 빚고 남은 반죽으로 찰흙놀이도 하며 자랐다.

   
▲ 시간은 흘러가거나 사라질 뿐 아니라 불어나기도 한다. 엄마의 만둣집에서 보낸 유년의 기억도 불어나기를 기대한다. ⓒ Pixabay

엄마는 그렇게 번 돈으로 삼남매를 가르치고, 먹이고, 나중에는 집도 장만했다. 끝내 가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사장님’이 되어 내 집까지 마련했다며 밀가루 묻은 손을 자랑스레 보여주곤 했다. 엄마는 ‘가방끈’은 짧았지만 당당한 여성이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 말할 줄 알았고, ‘아비 없이 삼남매를 키운다’는 동정을 뿌리칠 줄도 알았다. 스스로 일하고 벌어서 자식들을 먹여 살린다는, 삶의 긍지를 갖고 사는 사람이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엄마는 소소한 소유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어떤 날은 방문판매원한테 화장품을 사기도 하고, 우리 남매가 같이 쓸 철제 ‘하이 샤파’ 연필깎이를 안겨주기도 했다. 장사와 살림으로 고단한 삶이었지만 엄마는 인생에서 아름다움과 조금의 사치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았다. 우리 남매는 그 기억을 공유하고, 각자 마음으로 들이마시며 컸다.

시간은 흘러가거나 사라질 뿐 아니라 불어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함께 공유해 나누면 더 또렷해지기도 한다. 우리는 그 만둣집에서 12년 넘게 살았다. 내 유년의 정서는 그곳에서 만들어졌다. 하루에도 사람이 수십 명씩 왔다 갔다 하는 복잡한 곳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정답고 아늑했던 곳. 그때 기억은 흘러가거나 사라지지 않고 그저 불어나기를 기대한다. 좋은 기억을 오래오래 간직하는 방법은 공유하는 것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이봉수)

편집: 양수호 기자

[이예슬 기자]
단비뉴스 기획탐사팀, 청년부 이예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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