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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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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도 맨홀서도 질식...구조자도 위험
[VR기획②] 무색무취의 위험 도사린 상수도 맨홀
2020년 10월 26일 (월) 11:59:38 김성진 이정헌 이예슬 기자 ksj949773@gmail.com

발을 내딛자 10cm 높이로 차오른 빗물이 찰박 거렸다. 사다리를 타고 4m 내려온 맨홀 아래에 직경 600mm의 상수도관이 있다. 이날 일반 가정과 공업단지에서 쓸 깨끗한 물 9,052톤이 이 관을 통해 흘렀다. 충북 제천시 고암동에 있는 이 맨홀 아래는 상수도 물길을 가르는 시설이다. 여기서부터 한쪽은 의림 배수지로, 한쪽은 제천 시내로 이어진다. 상수도관 한 가운데 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제수밸브’라는 이름의 큰 밸브가 설치돼 있다. 수문이 나비날개처럼 좌우로 회전해 버터플라이 밸브라 부른다. 이런 제수밸브가 상수도 관로 곳곳에 설치돼 있다.

상수도관이 파손돼 물이 새면 근처에 있는 제수밸브를 잠가야 한다. 지난 8월 2일 제천에 하루 동안 강수량 259mm의 비가 내렸다. 제천시 금성면 중전리 하천변 도로가 유실되면서 그 밑에 묻혀있던 상수도관이 함께 떠내려갔다. 100m 떨어진 곳의 제수밸브를 잠갔다. 끊긴 상수도관이 뿜어내던 물이 멈추자 복구 작업에 돌입해 10시간 후 임시로 관을 대서 수돗물 공급을 재개할 수 있었다.

   
▲ 길이 4.5m, 너비 3.5m 좁은 맨홀 안에 직경 600mm 두꺼운 관이 T자로 갈라졌다. ⓒ 이예슬

이곳 길이 1m, 너비 0.5m 직사각형 맨홀 뚜껑은 두 달에 한 번씩 열린다. 맨홀 바닥에 차오른 빗물을 빼내는 ‘양수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맨홀의 내벽과 밸브, 상수도관은 모두 철로 만들어졌다. 물에 닿으면 산화해 녹이 슨다. 필요한 때 제수밸브를 가동하려면 차오른 빗물을 제때 퍼내 사다리와 밸브 사이 길을 열어야 한다. 5m 길이 호스를 맨홀 안에 들이밀고 수중 펌프를 이용해 10분 남짓 물을 빼낸다. 

제천시 수도시설팀 손원철 팀장은 “상수도관은 깨끗한 물이 흐르기 때문에 유독가스가 발생할 이유가 없다”면서 질식 위험이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취재진이 상수도관 가스농도를 측정한 결과 산소농도가 20.9%(적정 수준 18~23.5%), 일산화탄소 농도는 3ppm(8시간 작업 기준 30ppm 이하)로 질식 위험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안전하다는 양수 작업 중에도 사람은 죽었다. 펌프의 모터 엔진은 휘발유를 연료로 쓴다. 연료를 태울 때 일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지난해 5월 대전광역시 서구의 한 맨홀에서 바닥에 차 오른 물을 빼내던 작업자 3명 중 1명이 목숨을 잃고 2명이 다쳤다. 양수기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에 중독됐다. 재해 당일 일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한 결과 900ppm을 넘어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했다. 정상 수치인 30ppm을 훌쩍 넘는 수치다. 공기 중 일산화탄소 농도가 1,000ppm인 환경에서 2~3시간 작업하면 맥박이 빨라지고, 심한 경우 경련과 함께 실신하고,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밀폐된 관과 맨홀에서 칠도 하고 점검도 해야

겨울철 기온이 떨어지면 수도관이 얼 수 있어 상수도관은 꼭 땅 밑에 묻어야 한다. 지역별 겨울 기온을 감안해 몇 미터 아래로 관을 묻어야 하는 기준을 정했다. 이 기준을 ‘동결심도’라 한다. 제천은 지난 2017년 겨울철 평균 체감온도가 –13.6도로 떨어져,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추운 지역에 이름을 올렸다. 제천의 동결심도는 1.2m다. 비교적 겨울 날씨가 따뜻한 부산(0.2m), 제주(0m)보다 상수도관을 깊게 묻어야 한다. 직경 600mm 상수도관이 지나는 고암동 제수변실의 깊이가 4m로 깊은 이유다. 

땅 밑에 묻은 상수도관과 맨홀을 관리하기 위해 사람이 밀폐된 공간으로 들어간다. 상수도관이 노후화하면 관이 파손돼 물이 새어나갈 우려가 크다. 지방공기업법의 ‘노후’ 판별 기준은 상수도관 종류에 따라 다르다. 상대적으로 부식에 강한 스텐레스관ㆍ주철관 등의 수명이 30년으로 가장 길다. 2018년까지 매설된 전체 관 길이 21만 7,150km 가운데 13%, 2만 7,552km가 매설한 지 30년 지난 노후 상수도관에 해당한다. 

지자체마다 방침이 다른데, 매설 기간에 따라 등급을 구분해 순차적으로 상수도관을 교체하는 게 일반적이다. 상수도관을 새로 묻거나 교체하는 작업 중에도 질식재해가 발생한다. 지난 6월 평택시 상수도관 안에서 작업자 두 명이 쓰러졌다. 이번엔 상수도관을 매설할 때 관 사이 접합점에 녹이 슬지 않도록 페인트를 칠하는 작업이 문제였다. 이승용 평택시 상수도사업소 수도과 주무관은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당시 작업자들이 상수도관 내부를 환기하고 산소 마스크를 썼다”면서도 “관이 ‘디귿’(ㄷ) 자로 꺾인 다음 구간의 가스가 제대로 순환하지 못해 질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상수도 시설물을 관리하는 과정에서도 질식 재해가 발생했다. 맨홀 안에는 밸브나 유량계ㆍ수도검침 계량기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 이 시설물을 점검ㆍ관리하러 맨홀에 들어갈 때 사고가 발생한다. 2017년 8월 경기도 화성시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에서는 새로 설치한 상수도관에 물이 통하지 않자 밸브를 작동하러 맨홀에 들어간 작업자 두 명이 산소 결핍으로 목숨을 잃었다. 

   
▲ 근육과 뇌가 산소를 제대로 공급 받지 못하면 근력 저하, 의식불명 등 증상이 발생한다. ⓒ 산업안전보건교육원

이르면 6분 만에 사망...돌이킬 수 없는 ‘산소결핍’ 재해

단비뉴스 기획탐사팀은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 동안 발생한 질식재해 193건에 대한 자료를 입수했다. 이중 상수도에서 발생한 질식 사고는 11건이다. 10년 동안 7명이 목숨을 잃었다. 

가장 빈번한 질식재해의 원인은 ‘산소 결핍’이다. 재해가 7번 발생해 4명이 숨졌다. 공기 중 산소 농도가 18% 아래로 떨어지면 산소 결핍에 해당한다. 맨홀의 내벽과 밸브, 상수도관 등 철제 구조물은 물에 닿으면 녹이 슬면서 공기 중 산소를 빨아들였다. 수중 미생물 호흡으로도 산소 농도가 낮아졌다. 맨홀 뚜껑은 빗물을 막지 못한다. 뚜껑 가장자리로 스며든 빗물은 맨홀 바닥에 고이고, 빗물 속 미생물은 숨을 쉬며 맨홀 안 산소를 빨아들인다. 미생물은 덥고 습할 때 개체 수가 빨리 늘어난다. 여름철 산소 결핍에 의한 질식 재해 위험이 더 높은 것도 그 때문이다. 산소결핍으로 발생한 질식재해 7건 가운데 6건이 여름철(7~9월)에 발생했다. 

산소 결핍이 각별히 위험한 것은 작업자의 대응 능력이 단시간에 낮아지기 때문이다. 2011년 7월 서울시 구로구 신도림동의 한 아파트에서 수도검침을 위해 맨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던 작업자는 진입과 동시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측정 당시 산소 농도가 0.125%였다. 조해경 산업안전보건교육원 교수는 “측정 오차를 고려하면 이 정도는 ‘무산소’에 해당한다”면서 “산소 농도가 6%보다 낮은 경우 순간 혼절하고 호흡이 정지되며 같은 상태가 6분이 지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산소 농도가 낮은 공기를 들이마셨을 때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이 뇌 기능 상실과 근력 저하다. 산소는 혈액 속 헤모글로빈과 결합해 모세혈관을 타고 몸 곳곳 세포로 전해진다. 산소 농도가 낮으면 몸은 생존과 직결된 뇌와 심장에 산소를 보내기 위해 근육 세포로 갈 산소 할당량을 줄인다. 산소 결핍이 근육 경련을 수반하는 이유다. 산소를 많이 소비하는 뇌의 활동이 위축되는 것도 특징이다. 뇌는 몸 전체 무게의 2%를 차지하지만 전체 산소 호흡량의 25% 가량을 소비한다. 

이런 질식 재해를 막기 위해서는 미리 대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조해경 교수는 “산소가 부족하면 심한 경우 6~8분 사이에 죽음에 이르게 된다”면서 “장비를 들여와 구조할 시간적 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작업에 앞서 산소 농도를 측정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지책”이라고 말했다. 

   
▲ 맨홀 안 일산화탄소 농도는 취재진이 맨홀 바닥의 빗물을 휘저으니 3ppm에서 17ppm으로 올라갔다. ⓒ 이예슬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는 일산화탄소...작업 전 농도 측정만이 유일한 해법

산소 결핍 다음으로 빈번한 재해 요소는 ‘일산화탄소 중독’이다. 10년 동안 사고가 2번 발생해 2명이 목숨을 잃었다. 공간이 비좁아 산소가 부족한 상황에 석탄ㆍ석유ㆍ가솔린 등 연료가 불완전 연소하면 일산화탄소가 발생한다. 2016년 경기도 용인시에서 맨홀 안의 물을 퍼내면서 동시에 유량계 설치 작업을 했다. 이 과정에서 양수기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에 작업자 2명이 죽었다. 재해 당일 일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한 결과 900ppm이 넘어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8시간 작업에 적합한 일산화탄소 농도는 30ppm이다. 900ppm이 넘는 일산화탄소가 가득 찬 공간에서 작업하면 2시간 내 어지럼증을 느끼며 심한 경우 정신을 잃고 숨질 수도 있다.

일산화탄소는 눈에 보이지 않고, 황화수소와 달리 냄새도 나지 않는다. 작업 전 가스 농도 측정이 절실한 이유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일산화탄소는 공기와 비슷한 무색무취의 기체라서 눈으로는 전혀 감지할 수가 없다”면서 “재해가 발생하기 전 가스 농도를 측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무리한 구조는 치명적...행동 바뀌도록 반복 교육해야

전문가들은 작업 전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산소 결핍의 경우 재해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6~8분으로 짧기 때문에 상황이 발생한 후 대처하는 건 늦다. 예방이 최우선책이다. 조해경 교수는 “질식 위험은 눈으로 감지할 수 없기 때문에 작업자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믿어선 안 된다”면서 “작업 전 산소농도를 측정하고 조처하는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밀폐 공간 질식 위험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 최성필 주무관은 “51%의 높은 사망률이 보여주듯 질식 재해는 위험성이 높아 작업자들이 교육 받은 응급조치나 심폐소생술 등이 큰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고 예방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밀폐 공간 질식재해의 가장 큰 특징은 구조에 나선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것이다. 질식해 쓰러진 작업자를 구하려고 동료가 밀폐공간에 진입했다가 함께 쓰러졌다. 지난해 5월 대전에서 일어난 양수 작업 도중 질식 사고도 한 명이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쓰러지자 다른 동료 두 명이 구조를 위해 맨홀에 들어갔다가 함께 의식을 잃은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작업자들이 함부로 구조에 나서지 않도록 각별히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른 산업재해 유형인 ‘감전’의 경우 재해자 몸에 손을 대면 안 된다는 안전지식이 사업장 내 보편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조기홍 대한산업보건협회 직업환경연구실장은 “밀폐 공간의 위험성을 알았다면 동료들이 무리한 구조는 하지 않았을 테고,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기홍 실장은 질식 재해의 경우에도 작업자가 쓰러진 급박한 상황에도 동료들이 침착하게 대응하려면 작업자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준의 반복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산업재해의 상당수는 조금만 교육을 하고 장비를 갖춰도 막을 수 있다. 일단 재해가 발생했다 하면 절반 이상이 사망하는 밀폐 공간에서의 질식 사고도 그렇다.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무관심과 무지인지도 모른다. 일하러 들어가는 사람은 물론 일을 시킨 사람도 밀폐공간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잘 모른다. 단비뉴스 기획취재팀은 최근 10년치 사고를 촘촘히 분석하고, 현장을 VR 360도 영상으로 담아 그런 작업 공간이 도대체 어떤 곳인지, 왜 사고가 나는지, 생생하게 보도하려고 한다. (편집자)

① 보이지 않는 위험, 밀폐 공간 '질식 재해' 해부

③ 한 순간에 작업자 생명 위협하는 양돈장

④ 하수도관 막는 ‘물티슈’...맨홀 열어야

⑤ '넓고 개방된' 밀폐 공간, 하수 처리장

⑥ [인터랙티브] 보이지 않는 위험, 밀폐된 죽음의 공간

⑦ [VR 360] 하수가 흐르는 곳에 질식 위험이 있다


편집 : 윤상은 기자

[김성진 기자]
단비뉴스 기획탐사팀 김성진입니다.
기자로 살거나 평생 후회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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