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2020 데이터저널리즘 코리아 컨퍼런스

"데이터저널리즘의 목적은 단순화·간소화가 아니라 명확화입니다. 기자는 데이터를 왜곡하지 않기 위해 주의해야 하고, 데이터를 읽어내는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 독자가 오독하지 않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21일 오전 서울시 정동의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열린 ‘2020 데이터저널리즘 코리아 컨퍼런스’에서 데이터 시각화 전문가인 알베르토 카이로(46) 미국 마이애미대 비주얼저널리즘 석좌교수가 말했다.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 건국대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센터,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하고 구글뉴스이니셔티브와 방송기자협회가 후원한 이날 컨퍼런스는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데이터저널리즘 목적은 단순·간소화 아닌 명확화 

▲ <숫자는 거짓말을 한다>의 저자이자 세계적 데이터 시각화 전문가인 알베르토 카이로 교수가 줌(ZOOM) 연결로 화상 강연을 하고 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카이로 교수는 ‘통찰력의 미학 : 데이터 시각화의 더 나은 독자가 되는 방법’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에서 “독자가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기자가 데이터를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화한 데이터 시각화 자료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워 독자들이 섣부른 결론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플로리다 주의 ‘홈리스(노숙인)’ 학생 비율을 데이터 시각화한 자료를 봤는데 20% 이상이 홈리스인 카운티(행정단위)도 있어서 노숙자 학생이 그렇게 많은 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회고했다. 알고 보니 플로리다 주 정부는 영구 거주지가 없는 사람을 홈리스로 규정하기 때문에 자료가 그렇게 나온 것이었다고. 그는 “스페인의 2~8월 실업자 수 변동 추이를 보면 갑자기 실업자 수가 급격하게 늘어서 의아할 것”이라며 “그러나 관광업을 주된 산업으로 삼는 스페인의 실업률은 계절성이라는 점을 알면 오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정보 신속·정확히 전달한 시각화 작업 

이어 진행된 1부 ‘데이터로 본 코로나19’에서 신유진 <워싱턴포스트> 그래픽 기자는 ‘코로나19와 비주얼 저널리즘’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워싱턴포스트>의 최신 보도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20만 명 이상 사망자를 기록한 미국의 코로나19 현황을 보여주는 ‘트랙커(추적자)’ 페이지를 화면에 띄운 후 미국 전체와 주별 확진자·사망자 발생현황 등을 보여주는 다양한 그래픽을 소개했다. 

▲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워싱턴포스트>의 코로나바이러스 트래커 페이지. 카운티별 확진자 현황과 증가 속도, 시계열 변화 등 다양한 그래픽을 통해 미국의 코로나 발생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신 기자는 “많은 양의 데이터를 단순히 차트로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스토리와 비주얼 요소를 모두 담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트랙커 콘텐츠 특성상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독자와 소통이 중요하다”며 “대표 이메일을 만들어 독자들의 실시간 질문과 제안을 받고 활발한 소통이 이뤄진 덕분에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한진 한국방송(KBS) 데이터저널리즘팀장은 ‘코로나19 백신지도와 관계망’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초기에 정부가 정보를 비공개하면서 국민들 불안감이 가중됐고 가짜뉴스가 퍼졌다”며 “그 경험을 통해 전염병 발생 초기에 신속하고 정확한 보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가 이끄는 팀은 ‘중국에서 새로운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메르스 사태 당시 자료를 참고해 코로나19 국내 확진자가 나오기 전에 관련 내용 보도를 준비했다고 한다. 정 팀장은 “국내 확진자가 발생한 뒤부터 질병관리청 브리핑과 보도자료를 전부 수집하고, 이를 데이터베이스로 누적해 다양한 정보 제공을 위한 인터랙티브 기반 설계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정 팀장은 이용할 수 있는 자료와 관련, “메르스 사태가 5년이 지났는데도 (정부) 보도자료 형식에 발전이 없었고, 텍스트 위주 보도 자료를 활용하기 위해 데이터화하는 중간 작업이 필요해 번거로웠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또 “사생활침해 문제와 확진자 동선 공개 필요성이 충돌했는데, 이에 관한 명확한 기준 제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1부 마지막 발표에 나선 정재관 카카오 정책팀 부장은 ‘카카오 코로나19 백서’를 내게 된 경위와 주요 내용을 소개했다. 그는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늘고 여행, 모임 등이 어려워지면서 인테리어 소품이나 게임용품, 홈트레이닝(재택운동) 관련 상품과 서비스 이용이 늘고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영화나 공연 등 티켓 선물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 신유진 그래픽 기자, KBS 정한진 데이터저널리즘팀장, 카카오 정재관 정책팀 부장이 ‘데이터로 본 코로나19’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공적 마스크’ 보급 지도 만든 시빅해커

2부에서는 ‘데이터 저널리즘의 테크 엔 메쏘드(Tech & Method)’를 주제로 발표가 이어졌다. 국제 비영리기구인 ‘글로벌 피시워치’에서 활동 중인 박재윤 데이터 과학자는 ‘위성데이터로 밝혀낸 북한 바다의 암흑 선단 조명’을 발표했다. 글로벌 피시워치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분석 등을 활용해 전세계 어업활동을 실시간에 가깝게 시각화하고 있는데, 4가지 인공위성 데이터를 분석해 북한 암흑선단(선박 위치를 송출하지 않는 선박들)의 활동을 파악해 냈다고 설명했다. 

▲ 프랑스에서 연결한 ‘글로벌 피시워치’ 데이터 과학자 박재윤 씨의 발표 화면. ©한국언론진흥재단

코드포코리아(Code For Korea)대표이자 시빅해커(공공 문제에 참여하는 시민 개발자)인 권오현 씨는 코로나19 이후 시민들을 위해 마스크 공급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데 참여했다. 권 대표는 ‘시빅해커들의 코로나19 공공데이터 공동대응과 공적 마스크 개발 이야기’ 발표에서 코로나19 초기 시빅해커들이 정부가 제공한 자료를 가공해 서비스를 만든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공적마스크가 배부된 후 매진율이 높았지만 줄을 굳이 서지 않아도 시민이 자신 주변에 있는 마스크 재고를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코드포코리아(Code For Korea)대표이자 시빅해커인 권오현 씨가 일본에서 줌을 통해 발표하고 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줄지 않는 산재 사망’ 인터랙티브로 고발 

"우리가 5년 동안 69건, 한 달에 1.4건 인터랙티브 기사를 만들었더라고요. 사실 잘된 것도 있고, 못된 것도 있고, 잊혀진 것도 있어요. 중요한 사실은 꾸준히 한 것입니다.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도 (그동안 쓴 인터랙티브 기사) 기반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어요."

▲ 인터랙티브 기사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를 취재제작한 황경상 경향신문 기자가 보도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3부 ‘데이터 저널리즘 보도사례’의 발표자로 나선 황경상 <경향신문> 기자는 인터랙티브(반응형) 기사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의 취재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우연히 동료인 김지환 기자가 조회 수 높지 않은 노동기사를 꾸준히 쓰는 것을 보면서,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경찰에 의한 총기 사망사고’ 기사가 떠올랐다”며 “<워싱턴포스트>가 아카이빙(기록모으기) 방식을 사용했는데, 저희도 비슷한 방식을 차용했다”고 말했다. 황 기자는 해당 기사를 쓰기 위해 2018년 1월부터 2019년 9월 말까지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 1305건을 전수 조사했다고 덧붙였다. 

황 기자와 콘텐츠전략팀 기자 4명은 팀을 꾸려 중대재해보고를 모으기 시작했다. 우선 중대재해 목록을 정보공개청구로 입수했고,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실을 통해 1300여 건의 재해조사의견서를 건네받았다. 자료를 일일이 엑셀에 입력하고 캡쳐한 사진을 모으는 수작업을 한 달 반 동안 했다. 황 기자는 “수백 장의 보고서를 읽으면서 비슷한 사고가 계속 반복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재해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우리 기사로 인해 사회적 환기가 됐고, 처벌의 양형기준도 재검토되는 기회가 생겼다”고 자평했다. 

이밖에 ‘고액체납 보고서’와 ‘조세포탈 보고서’ 2부작을 만든 김태형 KBS 기자는 뉴스 보도 후 국세청 사이트에서 조세 포탈범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지도가 만들어지는 등 긍정적 변화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사회적 질병, 외로움’을 보도한 황석하 부산일보 기자는 부산 지역 특성상 노인 인구가 많고, 서구·중구 등 원도심 일부 지역이 재개발 문제를 겪고 있어 외로운 시민들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취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머리 위 감시자’를 쓴 안경모 <한국일보> 기자는 ‘우리 부대는 위성이 지나갈 때 통신을 멈췄다’라는 한 커뮤니티 게시글 댓글을 보고 개인적 호기심으로 취재를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편집: 조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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