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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병원 등 급식, 기본값을 채식으로”
[단비현장] 기후위기비상행동 ‘채식부문 기후의제 포럼’
2020년 09월 24일 (목) 22:44:10 김정민 기자 akimmin37@naver.com

"먹거리 부문을 기후위기 대응 정책과 그린뉴딜에서 배제하는 것은 실패하겠다고 작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먹거리는 더 이상 사적인 영역이 아닙니다."

23일 오후 2시 서울 을지로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채식부문 기후의제 포럼’에서 조길예 전남대 명예교수가 말했다. 유튜브로 생중계된 이날 포럼은 기후위기비상행동이 주최했다. 조 교수와 이의철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기조발제를 맡았고,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공동대표, 박상진 비욘드넥스트(채식한끼) 대표, 주영재 주간경향 기자, 지현영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등이 토론에 참여했다. 

가장 싸고 효과적인 기후위기 대응은 ‘육식 벗어나기’

   
▲ 조길예 전남대 명예교수가 23일 ‘채식부문 기후의제 포럼’에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 기후위기비상행동

조 교수는 ‘육식이 기후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주제의 기조발제에서 소, 돼지, 닭 등을 기르는 축산업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5 이상을 차지하고, 지구온난화를 억제하는 생물다양성을 해친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구생태계 복원력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면 그때는 인간이 배출량 감축 같은 완화책을 아무리 사용해도 소용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1990년 이후 사라진 열대우림의 70~90%는 축산업 때문이며, 전 세계 담수의 1/3을 소진하는 것도,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에 즉각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블랙카본과 메탄의 주된 발생 원인도 축산업”이라고 꼬집었다. 조 명예교수는 “채식 전환은 비용이 저렴하면서도 필수적인 기후위기 대응 방법”이라며 “네덜란드 환경평가원(PBL)에 따르면 비건(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것) 채식은 기후비용을 약 80%까지 감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학교와 병원 등에 채식을 공급하는 것을 ‘기본값(시스템에 미리 정해진 표준값)’으로 삼고, 적절한 가격에 지속 가능한 먹거리를 섭취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육류 등은 탄소세 같은 세금을 매겨 가격을 올리고, 광고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또 “인류 역사상 가장 담대한 먹거리 전환을 위해 ‘국가 식이 지침’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붉은 육류 섭취를 1인당 하루에 14그램(g) 이하로 줄이지 않으면 기후위기 억제는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육류 공급 줄인 덴마크, 당뇨병·사망률 감소 경험 

이의철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멸종 저항 영양학’을 주제로 한 기조발제에서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영양학은 채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후위기로 (전 세계에서) 매해 25만 명이 사망하고, 직접적인 건강 손상으로 매년 20억~40억 달러(약 2조3천억~4조6천억 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며 기후위기 대응과 인류 건강 증진을 위해 채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전문의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원활한 식량 공급을 위해 고기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채식 위주의 생활을 유지한 덴마크에서는 1900년~1916년 사망률이 34% 감소하고 당뇨병이 사라졌다”고 소개했다. 그는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적정 칼로리의 탄수화물만 먹어도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을 모두 섭취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 전문의는 육식의 위해성도 강조했다. 그는 “2017년도 기준 (세계에서) 매년 10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고혈압으로 사망하고, 당뇨병으로 65만 명, 고콜레스테롤 혈증으로 40만 명이 사망한다”고 밝혔다. 육식 위주 생활이 인간을 당뇨병, 비만과 다양한 합병증에 시달리게 하고 탄소배출로 지구까지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 밥 2공기 대신 육류를 섭취할 경우, 해산물을 섭취할 경우, 유제품을 섭취할 경우 당뇨병 발생 확률이 각각 653%, 1918%, 246% 증가하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 식물성 단백질을 대신 섭취할 경우엔 질병 발생 확률이 증가하지 않는다. ⓒ 이의철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이 전문의는 기후위기 시대의 기본 소양이 ‘기후 미식’이라고 주장했다.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고 건강에도 좋은 채식을 주식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네덜란드와 캐나다 등이 이 분야에서 앞서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네덜란드 영양센터의 식이가이드(2016)는 육류를 주 2회 미만으로 섭취하도록 권고한다. 네덜란드는 2018년부터 교육부에서 주최하는 모든 행사에 채식을 제공하도록 했고, 2019년부터는 정부 공공행사에서도 채식을 ‘기본’으로 제공하고 고기를 ‘옵션’으로 추가하도록 했다. 2019년에 나온 캐나다 식이가이드 역시 단백질 섭취를 위해 식물성 식품을 먹도록 권유한다. 이 전문의는 ‘기후 미식’ 확산을 위해 ‘한국인 영양섭취기준’을 채식 중심으로 개정하고, 단체급식에서 채식선택권을 보장하자고 제안했다. 사육 가축 수를 줄이기 위해 ‘양분총량제’나 ‘사육권거래제’ 등도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인도적인 고기’는 없다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공동대표는 ‘동물권/비거니즘 운동의 역할’에서 동물 학대와 착취를 막는 게 그간의 동물권 운동이었다면 앞으로 동물권 운동은 ‘탈육식’을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처럼 동물을 생산하고 환경을 파괴하면서 사육방식만 복지적으로 바꾼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며 축산업을 석탄산업처럼 취급하고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인도적인 고기’라는 환상에 기대 축산 정책을 개선할 게 아니라, 육식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채식인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축산과 동물보호를 관장하는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장동물 복지만 조금 개선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축산농가 시설이나 한우·한돈 등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관행을 멈추고 업종전환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진 비욘드넥스트(채식한끼) 대표는 ‘채식 인프라 확대’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박 대표는 채식 전환은 나와 가족, 친구, 주변인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됐다며 채식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장의 시장논리로는 수요와 공급이 적은 채식 시장을 확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주도해 채식 전문 식당, 채식 상품, 채식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편의점 등에서 채식 식품 선택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며 저렴한 가격에 더 많은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박상진 비욘드넥스트 대표는 국내 식당 66만여 곳 중 채식 전문점이 274개밖에 안 되는 현실을 선진국 현황과 비교했다. ⓒ 채식한끼

박 대표는 식당이 채식 메뉴를 만들고 싶어도 맛과 영양을 내는 레시피(요리법)나 정보가 부족해 장벽에 부딪힌다며 “체계적인 채식 영양 연구와 발표를 위해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도 요리학과에 채식 과정을 편성하고 식품영양학에서도 채식 부문을 신설하거나 채식 관련 국가자격증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미디어에 넘치는 ‘먹방’이 육류 과식 부추겨 

주영재 주간경향 기자는 ‘식문화 전환과 미디어의 역할’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한국 미디어에서는 육식을 홍보하고 권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에서도 ‘윤식당(tvN)’ ‘배틀트립(KBS)’ 등 이른바 ‘먹방(먹는 방송)’을 경쟁적으로 만들어 육식 홍보에 앞장섰다는 것이다. 그는 “시청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유튜브 등에서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푸짐히 차려진 고열량 음식들을 한 끼 식사로 소비하는 콘텐츠가 만연하다”며 “육식이 개인의 건강을 넘어 동물권을 침해하고 기후변화를 심화시키는 현실을 자각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어 언론사 차원에서도 채식과 기후위기 기사를 쓰는 전문기자를 육성해 관련 보도를 늘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현영 변호사는 ‘제도적 전환의 필요성’에서 채식선택권과 관련한 헌법소원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지난 4월 녹색당 및 시민단체들과 함께 학교급식과 공공급식에서 채식을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이 건강권, 자기결정권, 양심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기각당했다. 지 변호사는 “입법 행위를 통해 채식을 기본값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특히 학교급식에 채식을 의무적인 기본옵션으로 깔고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발제와 토론이 끝난 후 현장에서 유튜브 댓글을 읽고 답하는 발제자와 토론자들. 왼쪽부터 지현영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주영재 주간경향 기자, 박상진 비욘드넥스트 대표, 이오이 환경정의 사무처장(사회),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공동대표, 이의철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조길예 전남대 명예교수. ⓒ 기후위기비상행동

편집 : 신지인 기자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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