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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가’가 아니라 ‘정치’를 점령하라
‘안철수 대망론’ 진보정치 위축시킬 가능성도 커
‘탈정치’ ‘탈이념’ 쏠리지 말고 진보정책 견인해야
2011년 10월 25일 (화) 20:51:08 이봉수 hibongsoo@hotmail.com

   
한국에서 뜨는 방법은 정치를 비판하는 것이다. 고상하게 말하려면 ‘탈정치’를 얘기하고, 돌려서 말하려면 ‘경제논리’를 들먹이면 된다. ‘정치적’이란 말에는 ‘뭔가 가식적이고 술수를 쓰는 듯한’ 비아냥의 의미가 내포된 지 오래다. 같은 맥락으로 ‘정치는 4류’라는 이건희 회장의 발언이 일찍이 나왔고, 가까이는 안철수로 대표되는 ‘탈정치화한 정치’가 있다. <한겨레> 기사 제목도 ‘‘탈정치의 정치’가 ‘대세론’ 깼다’(9월7일)는 식이다.

‘안철수 신드롬’에 빠져드는 대중의 심리에는 명문 의대 출신 박사에 의사·교수·벤처기업가 등 선망의 직업들을 종횡무진하는 성공 스토리가 깔려 있다. 자기계발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중은 자기를 대변해줄 사람보다 닮고 싶은 사람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던가? 거기에 엄격한 자기관리와 정직함, 온화한 말투 등 그가 살아온 이력과 태도까지, 진정성이 없거나 투쟁적인 정치인들과 대비되면서 대통령감으로까지 떠올랐다.

그러나 ‘안철수 대망론’에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선거가 무엇인가? 보수와 진보 또는 중도의 정치세력이 제각기 정책과 인물을 내걸고 국민의 선택을 받는 일이다. 대중의 처지에서는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밀고 나갈 정치인을 고르는 행사이다. 지금 대중이 바라는 게 뭔가? 양극화 해소가 가장 큰 소망일 것이다. 부자감세와 복지위축, 실업과 비정규직, 전세금과 등록금, 가계빚 문제 등은 양극화의 원인이고 결과이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로 표출되고 있는 세계 공통의 이슈이기도 하다. ‘토건 몰입’이라는 우리만의 특징도 있긴 하지만.

선거 국면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대중의 분노와 열망을 어떻게 정치에 반영할 거냐’라는 문제이다. ‘안철수’를 통해 그것이 가능할까? 아마도 꽤 제한적일 것이다. 고루 잘사는 북유럽 복지국가의 기틀은 진보정당의 집권으로 마련됐다. 한번 맛본 복지정책은 보수가 집권해도 크게 후퇴시킬 수 없었다. 오히려 진보와 보수가 번갈아 집권하며 국민의 여론을 고루 대변할 수 있었다.

합리적 보수와 진보가 양당체제를 구축한 나라라면 안 교수는 보수당 대표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하는 일마다 보수의 가치를 오히려 허무는 데 종사해온 사이비 보수가 역설적으로 합리적 중도우파쯤 되는 안 교수의 등장을 초래했고, 박근혜 의원의 대항마조차 키우지 못한 야권이 안 교수를 필요로 했다. 기업인 출신에 탈정치화한 정치인. 안 교수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착한 버전’ 정도에 그친다면 모두의 불행이다.

   
 

우리 정치사는 두 보수정당이 전적으로 써왔다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다. 진보정당의 위상은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조봉암이 216만표를 얻고,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노당이 10석을 차지한 게 최고치였다.

이번 ‘안철수 신드롬’의 최대 피해자도, 우리 언론이 보도하는 박근혜 의원이 아니라, 진보정당이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당장 진보정당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있다. 대세론의 승패와 상관없이 박 의원은 한국의 소위 ‘보수세력’을 한동안 대표하겠지만, ‘탈정치’ ‘탈이념’의 구호를 내건 ‘안철수’의 등장은 진보세력의 장외정치마저 위축시킬 공산이 크다.

안 교수는 24일 박원순 후보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번 시장선거는 부자 대 서민, 노인 대 젊은이, 강남과 강북의 대결이 아니고, 보수 대 진보의 대립은 더더욱 아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런데 세계 역사상 서민이 보수 기득권 세력에 대립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찾은 적이 있었던가? 그는 재벌 문제를 빼고는 민중을 위한 사회변혁을 얘기한 적이 없다. ‘민중’에 대해서는 개념이 없다는 미국인들조차 ‘민중을 위한 변혁’을 기치로 내건 루스벨트를 4선 대통령으로 만든 적이 있다.

언론은 ‘박근혜 대세론’과 ‘안철수 대망론’ 사이에서 기사를 쏟아내며 내년 대선을 맞을 듯하다. 물론 ‘안철수 대망론’에는 비합리적 보수세력의 재집권만은 막아야겠다고 각성한 민중의 절박한 소망이 서려 있다. 박원순 후보를 보는 민중의 시선도 다르지 않으리라. 학창시절부터 데모 한번 안 해보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온 사람과, 시시비비는 있지만 남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사람의 대결이니까. 어쨌든 ‘정치는 현실’이라고 한다. 하지만 민중이 처한 현실은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세계적인 금융가 점령 시위의 양상과 언론의 보도 태도만 일별해도 국가별 온도차가 감지된다. 영국 <가디언>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시위자들이 전세계를 뒤덮었다’고 보도했고, <비비시>(BBC)는 ‘불평등에 대한 불만’으로 시위 사태를 분석했다. 스페인 <엘 파이스>는 ‘시위가 더욱 체계적인 저항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전망했다. 시민들의 쌓인 분노는 스페인, 포르투갈, 덴마크, 프랑스 등의 주요 선거에서 집권여당의 참패나 좌파·중도진영의 승리로 표출돼 정책변화의 기초를 마련했다.
 
한국 언론은 주로 금융권의 탐욕을 비판하는 데 머물렀다. <한겨레>도 ‘1 대 99의 시대’ 등 기획기사들을 내보내긴 했으나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고, 정치를 통해 한국적 대안을 모색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그 사이 보수신문은 시위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고 경찰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다. 15일 ‘여의도 점령’ 집회에는 200명도 안 되는 사람이 모였다니 ‘점령’은 어불성설이었다.

사실 한국의 민중은 ‘금융가’가 아닌 ‘정치의 장’으로서 여의도를 점령하는 것이 급선무다. 선거 와중에도 경제 이슈들이 정치화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보도는 온통 후보의 도덕성 검증과 판세 분석에 매달리고 있다. 오늘이 선거일이니 정책선거는 이미 끝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건 진보언론의 역할은 또 있다. 조금이라도 삶의 조건을 개선하도록 행정과 경제를 견인하고 정치화하는 것이다. ‘경제의 정치화’를 주장하는 슬라보이 지제크의 발상이 아쉽다.


* 이 기사는 <한겨레>와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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