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 이택광 교수
주제 ② 한국 대중문화의 논리

문화비평의 칼날을 빌려 한국의 정치•사회 현상과 구조를 뜨겁고도 서늘하게 해부해온 이택광 교수는 ‘한국 대중문화의 논리’를 강연하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팔도강산> 시리즈부터 윤수일의 <아파트>, 그리고 <소녀시대>까지 짚어본 한국 대중문화의 계보는 한국의 근대 사회사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대중문화는 진실이 드러나는 ‘판타지’가 아닌가?

산업화의 윤리 주입한 ‘팔도강산’

이 교수는 한국 대중문화사에서 처음으로 모든 국민이 함께 소통하며 즐겼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 1960년대 국책 홍보영화 <팔도강산>을 꼽았다. 당대 최고 배우들이 출연해 발전된 한국을 보여주며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도시적 가치관을 이식했다는 것이다.

▲<팔도강산> 포스터. 당대 최고 배우들이 출연해 큰 인기를 끌었다.

“김희갑•황정순 커플의 <팔도강산>은 정말 전무후무한 히트를 기록합니다. 환갑을 맞은 노부부가 전국에 흩어져 사는 자식들 집을 방문하면서 한국의 근대화와 발전상을 보고 감탄하는 내용이죠. 정부가 만든 홍보영화가 대중의 호응을 끌어냈다는 건 대중이 그걸 즐겼다는 겁니다. 한국인이 산업화와 근대화, 새마을운동을 지지했다는 말이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곧 행복의 조건이라는 무의식이 드러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영화는 곳곳에서 정책을 홍보한다. 아이를 두 명만 낳자는 캠페인이 벌어지던 때이니 영화 속 노부부가 딸 내외에게 ‘요즘 세상에 애 많이 낳으면 무식하단 소리 듣는다’고 꾸짖는 식이다. <팔도강산>은 도시화와 도시적 가치관, 산업화의 윤리관을 사람들 사이에 새롭게 주조했다. 그런 대중문화에 직접적으로 정부가 개입했다는 것은 중요한 현상이다.

노래가 보여준 대중심리의 변천사

▲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의 인기에 힘입어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마을 선생>도 개봉했다.
이미자와 나훈아, 그리고 윤수일. 이들은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자 한국 대중문화의 변화를 논할 수 있게 하는 주요인물들이다. 이들의 노래는 우리나라가 농경사회에서 산업화로 진입하고 있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가사를 보면 시선은 섬마을 처녀를 향해 있습니다. 초점이 섬마을 처녀에게 맞춰져 있는 거죠. 처녀의 이루지 못하는 아픈 사랑과 가슴앓이 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그런데 나훈아는 어떻습니까? 사랑을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젊은 청춘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과감하게 얘기하죠. 여기에 가히 혁명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노래가 나옵니다. 바로 윤수일의 <아파트>죠. 지금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아파트>가 노래의 소재로 사용됐다는 것은 드디어 농촌문화와 도시문화의 역전이 일어났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 교수는 그들 셋의 노래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을 읽어낼 수 있다고 했다. 농민들을 달래주고 농민의 정서를 노래하던 이미자는 당시 도시로 떠나버리는 농촌의 현실과 맞닿아있다. 농경사회에서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시의 고단한 삶을 선택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런 변화를 더 드러내고 노래한 이는 나훈아다. 농경사회에서 남녀간 사랑이 부끄러웠던 그때, 도시남녀의 사랑을 노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농촌을 떠나 자신의 뿌리가 뽑힌 사람들의 고단한 사랑이다. 세속적인 정서를 구체적으로 반영했다. 남진의 <님과 함께>를 봐도 도시에 살지만 ‘저 초원’으로 가고 싶다고 노래한다.

그런 농촌에 대한 향수를 과감히 깨뜨린 게 윤수일의 <아파트>다. 도시의 삶이 농촌보다 나아지기 시작한다. 부동산 붐이 일기 시작한다. 도시문화에 애착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서구적으로 생긴 윤수일은 갈대숲을 지나 있는 아파트를 선망의 주거공간으로 그려냈다. 그 시기는 한국 사회가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체제로 진입해 들어가는 시기와도 맞아 떨어진다.

▲<아파트>를 부른 윤수일. 도시 문화에 대한 동경이 생겨나며 인기를 끌었던 대표적 노래. 서구적인 생김새와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당시 소비자의 욕구가 있었기에 그런 노래가 나온 겁니다.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지향점은 결국 미국문화입니다. 미국문화와 동일해지길 원하는 거죠. 여기서부터 박정희 체제에서 신자유주의 체제로 편입이 시작되는 겁니다. 신자유주의로 변화한다는 것은 지정학적 관계에서 전지구적인 관계로 이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안보가 실질적으로 작용한 우리 입장에서 전지구적 관계는 곧 대미동맹의 연장인 미국화를 의미하는 거지요. 그런 신자유주의와 부르주아를 혐오한 사람으로 김수현 작가를 들 수 있죠.”

“김수현은 한국의 셰익스피어”

신자유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이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그녀의 드라마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치정극과 시대•가족극. <사랑과 야망>은 시대극과 가족극이 혼합됐고 <엄마가 뿔났다>는 가족극으로 볼 수 있다. 그녀의 모든 작품에는 세상을 향한 메시지가 들어있다.

▲김수현 작가의 <엄마가 뿔났다> 장면들. 장미희 씨가 맡은 역할 '은아'는 부르주아를 대변한다. 김수현 작가는 그동안 작품을 통해 부르주아와 신자유주의를 비판했다. ⓒKBS

<젊은이의 양지>에서 남자 주인공은 권력상승을 이루지만 결국 가족을 버린다. <사랑과 야망> 또한 가족이 희생해 성공을 이루지만 윤리적으로 타락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1등이 타락한다. 그녀의 캐릭터를 관찰해보면 김수현은 부르주아를 혐오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시 중간계급의 욕망을 비웃고 부르주아의 위선을 비난하는 것이다. <목욕탕집 사람들> 등을 통해 등장하는, 대가족과 삐거덕거리는 매끈한 도시 중산층. 도시 근대화의 내러티브는 김수현을 등장시켰다.

“전 김수현 씨가 한국의 셰익스피어라고 생각합니다. 셰익스피어는 당대 대중의 마음을 그렸어요. 새로 지어내는 게 아닙니다. 그 당시 있었던 얘기를 자신의 방식으로 각색하는 거죠. 김수현은 그런 사람이라고 봐요.”

디지털 민주주의와 쾌락의 평등주의

90년대 들어오며 정보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디지털 시대, 곧 인터넷이 모든 것과 결합하며 주류를 이룬 것이다. 자유롭게 인터넷 공간에 접속한 모두가 평등했다. 인터넷은 많은 것을 만들어냈다. 그 생산의 수사학적 전략은 ‘패러디’였다. 80년대 민주화 과정의 관성으로 생겨난 ‘억압의 가설’은 나를 억압하고 있는 이들을 ‘패러디’로 조롱했다. <디시인사이드>가 대표적 예다. 그리고 바로 이 ‘억압의 가설’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쾌락의 평등주의다.

▲<타진요> 카페 캡처화면.

“쾌락은 교감될 때 즐겁습니다. 욕망의 대상을 가졌을 때 쾌락을 느끼지만, 그 사실을 알림으로써 기쁨은 배가 되죠. 쾌락의 평등주의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나도 가졌으니 너도 가져야지 하는 거죠. 그런 교환은 자기와 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이뤄집니다. ‘끼리끼리’ 모여서 노는 것이 쾌락의 평등주의에서 핵심이죠. 문제는 이 쾌락의 평등주의가 고원같다는 겁니다. 고원은 올라갈 땐 힘들지만 올라간 뒤엔 평평한 땅이 펼쳐지죠. 그 안에선 누구나 평등하게 쾌락을 즐겨야 한다면서, 고원으로 올라오는 과정의 불평등은 애써 무시합니다. 이게 한국사회에서 발현하고 있는 쾌락의 평등주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은 대중문화 속에 고스란히 들어와 있죠.”

‘이지아닷컴’과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의 탄생은 우리의 쾌락에 방해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단순 안티카페가 아닌 진실을 요구하는 움직임은 마치 마녀사냥을 연상케 한다.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쾌락을 방해하는 이들이라고 생각될 때 가차 없이 칼끝을 겨누는 것이다.

진실을 드러내는 가장 훌륭한 거짓말

이 교수는 대중문화가 진실을 드러내는 가장 훌륭한 거짓말이라고 했다. 이면을 드러내는 개그콘서트가 인기를 얻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애정남’이 애매한 것을 규정해주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현실에서 실제로 애매하기 때문이다. 김원효가 재미있는 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을 그대로 꼬집어주기 때문이다. 보편적 성찰을 주며 개그콘서트는 아직까지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대중문화를 통해 사회 현상과 구조에 질문을 던지는 이택광 교수. ⓒ윤지원

그렇기에 대중문화는 앞으로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인적 자본이 대중의 시대에 바탕이 된 오늘날,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고민이 대중문화 연구와 겹치게 되는 셈이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사회교양특강>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인문교양특강I>은 강재호, 이택광, 심보선, 이현우, 정희진, 오동진, 고미숙 선생님이 맡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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