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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대교에만 홀리면 후회하게 되는 곳
[맛있는 집 재밌는 곳] 카멜레존 ⑮ 부산 F1963
2020년 06월 26일 (금) 21:08:28 이예슬 기자 yeslowly@gmail.com

부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소를 꼽으라면 단연 광안리다. 광안리 해수욕장은 꽤 이름이 알려졌지만 가까운 해운대해수욕장의 명성에 가려 외지인보다는 부산시민들이 가족끼리 주로 찾던 곳이었다. 그런데 외지인이 가장 많이 찾는 부산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것은 광안리 앞바다를 가로 지르는 광안대교가 놓인 이후다.

 
부산의 명소로 떠오른 광안대교. 지난 2002년 와이어로프 케이블을 매달아 다리를 지탱하는 현수교 방식으로 건설됐다. © 이예슬

광안리 해변에 줄지어 늘어선 카페촌 어디에서도 한 눈에 들어오는 광안대교는 화창한 날이든 해무가 짙게 낀 날이든, 낮이든 밤이든 나름대로 경관을 뽐낸다. 바다로 쭉 뻗은 광안대교 위를 달리며 푸른 바다를 감상하는 것도 장관이지만, 해변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일품이다. 광안대교에서도 사람들 사랑이 쏠리는 곳은 7,420m에 이르는 다리 가운데 900m 정도 되는 현수교다. 두 줄의 굵고 긴 케이블에 수직으로 연결된 케이블 178개가 다리 상판을 매달고 있는 모습이 파도의 물결 같기도 하고 부산 갈매기가 날개를 펼친 모습 같기도 하다. 그 경관은 밤에 시간대∙요일∙계절에 따라 10만 가지 다양한 색깔로 불빛을 밝혀 줄 때 극치를 이룬다.

건널 수 없는 곳 이어준 현수교의 공학 

현수교(懸垂橋)란 ‘매달 현’과 ‘드리울 수’, 즉 줄을 달아 아래로 늘어뜨려 다리 상판을 매달고 있는 교량이다. 다리 양쪽에 주탑을 세우고 탑과 탑 사이에 빨랫줄처럼 굵은 케이블을 매단 뒤 거기서 아래로 여러 케이블을 수직으로 매달아 다리 상판을 지탱한다. 다리발을 많이 세울 수 없는 곳에 사용하는 공법이다. 수심이 깊고 유속이 빨라 다리발을 놓기 어렵거나 지진 등의 위험이 있는 곳에 현수교를 많이 놓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현수교는 전남 여수시 묘도동과 광양시 금호동을 연결하는 이순신대교이다. 주탑과 주탑 사이 다리발 없는 구간이 1,545m에 이른다. 세계에서 네번째로 긴 현수교인데, 주 케이블을 지탱하는 주탑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270m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는 지난 2017년 착공해서 2023년 개통을 목표로 공사중인 터키 다르다넬스 해협의 차나칼레 현수교이다. 주탑간 거리가 2,013m로 인류가 건설한 교량으로는 최초로 주탑간 거리가 2km가 넘는 다리가 된다. 기술적으로는 4km 이상 현수교도 건설할 수 있지만, 같은 거리 해저터널을 만드는 것보다 건설비가 많이 들어 현실성은 없다고 한다.

현수교의 핵심은 무거운 다리 상판과 구조물을 매달고 견딜 수 있는 케이블이다. 광안대교 건설에 사용된 케이블은 지름 5mm짜리 쇠줄(wire) 312가닥을 꼬아 만든 스트랜드(strand) 37다발을 묶어 만들었다. 광안대교에 사용된 주 케이블은 직경 60.7cm로 5mm짜리 와이어 1만1544개가 들어가 있다. 현수교가 안전하게 유지되려면 케이블이 다리 무게를 얼마나 견뎌 주느냐가 관건인데, 광안대교에 사용된 와이어는 인장강도(引張强度)가 1560메가파스칼(MPa)이나 된다. 지름 5mm짜리 와이어가 견딜 수 있는 무게가 2천498kg 정도라는 것이다. 주케이블이 견딜 수 있는 무게는 최대 2만8천톤쯤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소나타 자동차 무게가 1.4톤 정도 되는 것을 감안하면 소나타 2만대 정도를 매달 수 있는 케이블로 다리를 만든 셈이다.

   
▲ 부산시 수영구 망미동 고려제강 기념관 전시실에 있는 광안대교 케이블 실물. 설명 부분에서 왼쪽 가장 작은 검은 점처럼 보이는 것이 지름 5mm짜리 와이어이고 그 와이어 312가닥을 꼬아 만든 스트랜드가 그 옆에 있는 검은 육각형 물건이다. 스트랜드 37다발을 묶어 만든 것이 육각형 벌집처럼 생긴 주케이블이다. © 고려제강 기념관

세계적 와이어 회사가 만든 복합문화공간

초고강도 케이블을 만든 고려제강은 복합문화공간을 지어 놓았다. 광안리 해변에서 광안대교를 감상한 뒤 해수욕장 남쪽 끝에 있는 광남초등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수영구 2번’ 마을버스를 타고 28정거장을 지나 코스트코 부산점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다. 광안리에 들르지 않고 바로 가려면 부산 지하철 3호선 망미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와 버스 정류장에서 역시 ‘수영구 2번’ 마을 버스를 타고 7정거장을 지나 내리면 된다. 코스트코 부산점을 왼쪽으로 끼고 돌아서 270m쯤 언덕길을 올라 가면 진한 감청색의 유선형 건물에 ‘Kiswire’라는 로고가 눈에 띄고, 그 아래로 시선을 낮추면 밝은 하늘색 철사줄이 둘러쳐진 공장 같은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려제강이 공장터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어 시민에게 개방한 ‘F1963’이다.

 
고려제강 본사와 고려제강이 공장터에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한 복합문화공간 ‘F1963’. © 이예슬

오른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10m는 훌쩍 넘어 보이는 맹종죽이 가득한 대나무숲이 나타나고 그 속으로 길게 ‘소리길’이 이어진다. 와이어 제조설비가 있던 공장터를 맹종죽 숲길로 만들어 놓았다. 공장 바닥에 깔려 있던 콘크리트를 페인트가 칠해진 모습 그대로 잘라 디딤돌로 깔았는데, 까지고 빛 바랜 모습이 주위의 초록빛 대숲과 잘 어우러진다. 공장 지붕을 받치던 나무는 방문객을 위한 벤치로 변신했다.

“대나무는 올곧으면서도 유연한 성질을 지닙니다. 땅에 뿌리를 넓게 펼쳐서 중심을 지키고, 자기 자신을 늘 성장시킬 줄 알며, 무엇보다 세찬 바람을 맞닥뜨리더라도 시원하게 흘려 보낼 줄 아는 삶의 여유를 지니게 합니다…..(중략) 이러한 대나무의 성질과 의미는 와이어와 닮아 있습니다. 강하면서도 유연하고, 중심을 유지하는 대나무처럼 올곧고 정직하게,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와이어 제조의 한길을 걸어온 Kiswire의 기업정신과 철학을 담고자 합니다.”

대나무숲 가운데 ‘대나무를 닮은 와이어’란 표지판에 이런 기업정신을 소개하고 있는 고려제강은 1945년 부산 남포동에서 와이어로프와 어군탐지기 등을 수입해 판매하던 고려상사로 출발했다. 해방 후 산업기반이 취약해 주로 수입에 의존해온 와이어로프의 수요가 늘어나자 고려상사는 고려제강소를 설립하고 로프를 직접 만들기 시작해 세계적인 와이어 제조업체가 됐다. 와이어로프와 콘크리트 강도를 강화하는 데 사용되는 PC강선과 강연선 등을 생산하는 로프 사업과 스프링와이어 비드와이어 등을 생산하는 선재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이다. 

광안대교를 비롯, 이순신대교와 서해대교 등 주요 현수교 건설에 사용된 케이블을 공급했고, 세계 최대 현수교인 ‘터키 1915 차칼레나 대교’ 건설에 세계에서 가장 강도가 높은 1,860MPa짜리 케이블을 공급하고 있다. 지름 5mm짜리 와이어로 최대 2.9톤까지 견딜 수 있는 최강도 케이블을 만들고 있다. 타이어의 강도와 원형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와이어와 피아노줄, 자기공명 촬영장치 등 의학 영상 장비 등에 들어가는 와이어도 만든다. 

폐공장터가 비엔날레 전시장으로 변신 

고려제강은 1963년 지금 본사가 있는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공장을 설립하고 2008년까지 45년 동안 와이어로프를 생산했다. 2008년 공장을 경남 양산시로 이전한 뒤 공장터는 10년 가까이 창고로만 쓰였고, 쓰레기 무단투기 장소로 변해 주민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그러다 2016년 공장의 시설 일부가 리모델링을 거쳐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되면서 이 공간의 활용 가능성이 새로이 모색됐다. 고려제강이 부산시와 손잡고 2017년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이곳 공장터와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해 전시장∙공연장∙카페∙서점 등을 갖춘 ‘F1963’이란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했다.

 
’F1963’ 맞은편에 있는 대나무 숲과 그 속으로 길게 이어진 ‘소리길’. 와이어 제조설비가 있던 공장터를 맹종죽 숲길로 조성했는데, 공장바닥에 깔았던 콘크리트를 잘라 길바닥에 깔았다. © 이예슬

‘F1963’의 ‘F’는 Factory(공장), Fineart(미술), Forest(숲), Family(가족)를 의미하며, 여기에 고려제강이 이곳에 처음 공장을 짓고 생산을 시작한 1963년을 더해 이름을 지었다. 

와이어 공장 보전한 전시 휴식 공간

‘F1963’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각형을 여러 개 겹친 형상으로 보인다. ‘네모 세 개’라는 컨셉으로 공간을 꾸민 건데, 가운데 첫 번째 네모 ‘F1963 스퀘어’는 세미나∙파티∙음악회 등을 할 수 있는 모임의 공간이다. 두 번째 네모는 카페∙펍 등이 들어선 쉼의 공간, 세 번째 네모는 전시장∙도서관∙서점 등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긴 복도를 걸어가면 가장 바깥 네모에 해당하는 YES24 중고서점이 나온다. 입구에는 전자책 단말기 ‘크레마’ 안에 원고지 무늬를 그려 넣은 ‘크레마월’이 방문객을 반기고, 그 뒤편에는 오래된 활자주조기가 눈길을 끈다. 철제 골조가 그대로 드러난 천장과 옛날에 최종 인쇄원고의 제판 과정에 사용되던 카메라, 책 케이스 양쪽에 철사를 매는 데 사용되던 케이스 철사기 등이 공장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전자책 단말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어 책과 출판에 관련된 정보를 과거부터 현재, 미래에 걸쳐 모두 살펴볼 수 있다. 천장까지 닿아있는 책장에는 새 책과 함께 문화예술 분야의 중고 서적이 빼곡하다.

 
F1963에 들어와 있는 YES24 중고서점은 철제 골조가 그대로 드러난 높은 천정이 특징이다. 서점 안에는 옛날 인쇄 제판 과정에서 사용된 독일제 카메라가 전시돼 있다. © 이예슬

서점 중간쯤에는 바깥으로 나가는 후문이 있다. 문을 열고 나가면 온통 초록인 공간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완성된 와이어 제품을 출고하던 옛 공장의 뒷마당이 철마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볼 수 있는 ‘달빛가든’으로 바뀌었다. 다양한 식물과 유기농 채소, 과실을 재배하는 유리온실은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 유리온실을 나오면 맞은편에 예술전문도서관인 F1963 도서관이 있다. 전 세계 건축∙음악∙미술∙사진에 관한 책이 있고, 클래식 CD와 LP판으로 음악 감상도 할 수 있다. 회원제로 운영되며, 인문학 강좌와 전시, 소규모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F1963 건물 밖으로 나서면 달빛가든과 유리온실 등의 야외 공간이 펼쳐진다. © 이예슬

하늘∙땅∙사람이 만나는 곳, F1963 스퀘어 

다시 주출입구로 돌아가 이번에는 왼쪽으로 꺾지 않고 그냥 앞쪽으로 걸어가면 공장건물 한 가운데 마당인 중정(中庭), F1963 스퀘어가 나타난다. 훤하게 뚫린 천장을 통해 바람이 드나들고 햇빛이 비껴 드는 바닥에는 콘크리트 대신 채운 흙이 발에 밟힌다. 높다랗게 설치된 무대와 야외 테이블이 있어 파티와 공연을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 공장 한가운데 있는 F1963 스퀘어의 무대에 올라 바라본 중정. © 이예슬

옛 공장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

   
▲ F1963안에 있는 카페 테라로사의 내부. © 이예슬

중정을 둘러싼 두 번째 네모에는 카페와 펍, 식당 등이 모인 쉼터가 있다. 중정으로 들어서기 전 오른쪽으로 꺾으면 카페 ‘테라로사’가 나온다. 입구에 들어가자 늘어진 와이어와 공장에서 실제 사용하던 발전기처럼 생긴 손몽주 작가의 설치 작품이 보인다. 바닥과 조리대 등은 모두 공장에서 실제로 사용한 철판과 콘크리트를 활용해 만들었다. 높고 웅장한 천장에는 철제 와이어 골조와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돼 있다. 곳곳에 커다란 발전기가 놓여있고 테이블과 의자는 제각각이다. 와이어를 감아 놓던 보빈을 테이블로 쓰기도 하고, 녹슨 철제 테이블과 나무 테이블이 섞여 있다. 낡은 소파와 철제 의자, 나무 의자도 어지럽게 놓여 있다. 어지러움 속의 통일감이 묘하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이곳이 카페인지 공장인지 혼란스럽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커피 머신 돌아가는 소리, 짙은 커피 향에 익숙해질 때쯤 되면 공장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카페가 친밀하게 다가온다. 마주 보지 않고 혼자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 옆 책장에는 건축에 관한 잡지와 책 등 원서가 가득 꽂혀있다. 바깥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창 옆 테이블에서는 중정에서 열리는 공연을 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커피 향 가득한 박물관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카페 테라로사에 들어서면 와이어와 공장 발전기처럼 생긴 설치 작품이 보인다. 카페 내부 곳곳에 와이어를 감아 두던 보빈이 놓여 있다. © 이예슬

일상의 쉼터로 돌아온 시대의 유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 ‘피아트’의 토리노 공장은 1899년에 지어진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공장이었다. 생산시설 낙후로 1982년 문을 닫은 뒤, 세계적인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가 리모델링해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120년 역사를 가진 세계 최대 국제미술제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옛 조선소였던 아르세날레에서 열린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유럽 최대 산업시설이었던 곳이 이제는 세계 미술의 중심지로 우뚝 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역할을 다하고 시대의 유물로 남은 공간들이 다시 우리 일상 속으로 돌아오고 있다. F1963도 우리에게 돌아온 우리 역사의 한 대목이자 유물이다. 365일 시끄럽게 돌아가던 공장에서 쓰레기 불법투기장으로 변했다가 이제 우리들의 쉼터로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버려진 곳들이 다시 살아나고, 그곳에서 우리가 살아가다 잊힐 것이다.

 
옛 와이어 공장에서 사용하던 기계와 철골 천장, 콘크리트 바닥 등이 옛날 공장이 돌아가던 풍경을 떠 올리게 한다. © 이예슬

카멜레존(Chameleon+Zone)은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춰 공간의 용도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제 밖에 나가서 여가시간을 보내거나 쇼핑을 할 때도 서비스나 물건 구매뿐 아니라 만들기 체험이나 티타임 등을 즐기려 한다. 카멜레존은 협업, 체험, 재생, 개방, 공유 등을 통해 본래의 공간 기능을 확장하고 전환한다. [맛있는 집 재밌는 곳]에 카멜레존을 신설한다. (편집자)

편집 : 임지윤 기자

[이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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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명소로 떠오른 광안대교. 지난 2002년 와이어로프 케이블을 매달아 다리를 지탱하는 현수교 방식으로 건설됐다. © 이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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