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대기업집단 실태분석...규제기관 제구실해야
[두런두런경제] 김광진 제정임의 경제카페

김광진(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들의 내부거래실태에 대해 처음으로 구체적인 분석자료를 내놨습니다. 계열사끼리의 ‘일감 몰아주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고 하는데요. 먼저 내부거래, 혹은 일감 몰아주기가 왜 문제가 되는지부터 짚어볼까요?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우리가 흔히 ‘재벌’이라고 부르는 대기업집단에서 계열사끼리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파는 것을 내부거래라고 하죠. 모든 내부거래가 잘못은 아니지만 계열사에게 외부 회사보다 유리한 조건을 적용해서 이득을 취하게 하면 부당내부거래로 공정거래법상 제재를 받게 돼 있습니다. 내부거래 중에서도 일감 몰아주기라는 것은 대기업집단의 총수나 그 가족이 소유한 회사에 계열사들이 거래를 몰아주는 것을 말하는데, 총수일가가 비상장회사를 설립한 뒤 계열사들이 몰아준 일감으로 회사를 급성장시켜서 재산증식과 편법 상속증여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회사들은 기존 중소기업 업종에 침투해 손쉬운 방법으로 경쟁기업들을 밀어내고 대기업으로 경제력이 더욱 집중되게 만들기 때문에 대기업 중소기업 동반성장에 암적 요소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룹총수 지분 높은 회사일수록 일감 몰아주기 비중도 높아

김: 이번에 공정위가 발표한 대기업집단의 내부거래 현황, 어떻게 나왔습니까?

제: 삼성 LG SK 등 국내 43개 대규모기업집단소속 1083개사를 대상으로 분석했는데요, 전체 평균 내부거래비중은 12.04%였지만 그룹총수의 지분이 높은 회사일수록, 비상장회사이고 기업규모가 작을수록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총수일가가 신설한 비상장사를 중심으로 일감몰아주기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공정위는 분석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총수일가 지분이 30% 미만인 업체 831곳의 내부거래 비중은 12.06%에 그쳤지만 총수일가지분이 100%인 34곳은 이 비중이 37.89%로 크게 뛰었습니다. 또 시장의 감시를 많이 안 받는 비상장사 867곳의 내부거래비중은 22.59%로 상장사 216곳 평균 8.82%의 두 배를 넘었습니다.

김: 일감 몰아주기로 의심할 만한 내부거래 비중이 특히 높은 회사는 어떤 회사들이었습니까.

제: 시스템통합(SI)이나 부동산관리,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광고, 물류, 유통, 건설 분야 등에서 내부거래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중소독립기업들이 경쟁하던 이들 분야에 대기업 계열사가 진출해서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손쉽게 시장을 잠식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SI업체 중 현대차그룹의 오토에버시스템은 내부거래 비중이 85.38%를 차지합니다. 이 회사는 지난 2001년 매출액이 485억원에 불과했지만 2009년에는 5669억원으로, 8년 만에 10배 넘게 성장했습니다. 이 회사는 현대차그룹의 정보기술(IT)업무 총괄하는데, 지난 6월 현대카드와 캐피탈에서 보안사고가 나지 않았습니까. 그 때 ‘내부거래로 쉽게 성장했기 때문에 실력이 부족해 사고를 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김: 대기업집단별로 살펴보면 어떤 그룹들이 가장 내부거래가 심한 것으로 나타나나요?

제: 내부거래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에스티엑스(STX)그룹이 23.49%로 가장 높고, 다음으로 현대차그룹, 오씨아이(OCI)그룹, 현대백화점그룹, 씨제이(CJ)그룹 등의 순서입니다. 매출액에서 수출액을 빼고 국내거래량에서 차지하는 내부거래 비중만을 따져보면 내부거래 숫자가 훨씬 커지는데, 1등이 현대차그룹으로 44.17%고 다음으로 LG그룹, 삼성그룹, SK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의 순서였습니다. 금액으로 보면 삼성, 현대차, SK, LG, 포스코 등 5개 집단의 내부거래 금액이 총 103조5천억원으로 전체 43개 대기업집단 내부거래금액의 71.53%를 차지합니다.

김: 공정위는 이들 기업 중에서도 특히 ‘30•30 클럽’을 주목하고 집중 감시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이건 무슨 얘깁니까.

제: 총수일가의 지분이 30%를 넘고, 내부거래비중도 30%를 넘는 회사들을 이른바 ‘30•30클럽’이라고 하는데, 공정위는 이들 기업이 일감 몰아주기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정밀 분석해서 불법적인 부분이 드러나면 제재할 것이라고 합니다. 30•30클럽은 현재 71개사가 해당됩니다. SI업체가 10곳, 부동산 관리회사가 9곳으로 가장 많다고 하네요. 예를 들면 SI업체인 지에스(GS)그룹의 지에스아이티엠(GS ITM)은 총수일가 지분율이 93.3%에 달하고 내부거래 비중도 80.77%나 됩니다. CJ계열의 건물관리업체인 씨앤아이(C&I)레저산업의 경우 총수일가 지분이 100%, 내부거래 비중이 97.09%를 차지합니다. 이밖에 광고업체인 현대차계열의 이노션, 외식사업을 하는 삼성그룹의 삼성에버랜드와 현대그린푸드 등도 30•30클럽에 들어 있습니다.

기업경영 자율성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감시해야

김: 그런데 내부거래를 한다고 해서 다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로 볼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기업들은 여기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제: 효율적인 생산관리를 위해 수직계열화를 하면서 불가피하게 내부거래 비중이 높아진 회사들도 있고, 기업의 사업기밀 보호를 위해 내부거래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다 문제 삼으면 기업경영의 자율성을 너무 침해하는 것이라는 항변하고 있습니다. STX그룹이 대표적인데, 해운-조선-기계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로 내부거래 비중이 높게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또 포스코 계열사의 경우는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면서 일부러 계열사 물량을 몰아주고 있는데 이런 공익활동까지 문제 삼으면 곤란하다고 하고요. 그래서 공정위도 생산관리상 불가피성이 인정되는 수직계열화나 공익목적의 내부거래는 규제대상에서 제외하고, 업종 연관성이 부족하거나 비합리적인 조건의 내부거래 등을 집중 감시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김: 앞으로 공정위 조사를 통해 일감 몰아주기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회사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가 내려지게 됩니까.

제: 공정위는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회사들에 대해서 계열사간 수의계약 실태 등 구체적인 거래조건을 조사할 방침입니다. 이미 일부 대기업집단의 소모성자재구매대행업체, SI분야와 건설업체 등에 대해서는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차별적인 조건 등 혐의가 드러난 회사들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상의 부당내부거래로 과징금 부과 등의 제재를 할 수 있습니다. 또 지난달 기획재정부가 마련한 세법개정안에 내부거래 비중이 30%이상인 기업의 경우 총수일가의 지분이 3%이상이면 증여세 등을 과세하는 방안을 포함했는데, 앞으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 내년 이후 징벌적 과세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규제에 손 놓고 있던 공정위, 지금부터라도 제 할 일 해야

김: 이번이 내부거래 실태에 대한 공정위의 첫 분석이라고 하는데요, ‘일감 몰아주기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공정위는 뭘 했나’ 하는 비판도 나오고 있죠?

제: 공정위는 존립 목적 자체가 기업들의 반칙, 즉 부당거래행위를 막고 공정한 경쟁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특히 공정거래법에는 대기업집단의 부당내부거래를 감시하고 제재할 수 있는 근거가 이미 오래전부터 명시돼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가 이렇게 만연하게 된 것은 공정위가 제 역할을 못해왔다는 얘기죠.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출자총액제한 규제를 없애는 등 대기업의 팽창을 막는 빗장을 풀어주면서 공정위가 대기업집단들이 변칙적 방법으로 몸집을 불리는 것을 사실상 방치해왔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습니다. 공정위 출신들이 대기업의 임원으로 스카웃돼 가서 ‘공정위 조사 피하는 법’을 자문하거나 대정부, 정치권 로비창구로 활약한다는 관측도 있고요. 정부의 규제기구들이 그 동안 제 역할을 다했다면 재벌의 경제력집중이 이렇게 심해지고 중소기업들이 이렇게 살아남기 어려운 경제구조가 되진 않았을 것이란 지적을 아프게 들어야 할 것입니다.

김: 이번 내부거래 실태 조사는 정부가 추진 중인 대기업 중소기업 동반성장 정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재 각종 동반성장 정책들은 어떻게 돼 가고 있습니까.

제: 대기업들이 정부 정책에 따라 ‘동반성장선언’을 하고 거래중소기업지원을 약속하는 등 요란한 행보를 보였지만 실질적으로 개선된 것은 별로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거래중소기업과 동반성장협약을 체결한 유통분야 등의 대기업들 이행실태를 점검해 보니, 대부분 성적이 나빴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대기업의 하도급횡포 등 고질적 부조리는 개선 기미가 별로 없고 이익공유제나 중소기업적합업종지정 등 주요 정책들도 아직 논란이 무성한 상황입니다. 또 정부가 금리,환율 등 거시정책에서 전기요금체계에 이르기까지 수출대기업에게 유리한 정책들을 중소기업지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근본적 변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용의 88%이상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이 어려우니 근로자들의 일자리 사정도 나쁘고, 경제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죠. 정부가 말만이 아닌 실천으로 동반성장 의지를 확인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 이 기사는 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했습니다. 방송내용은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10월 19일 다시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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