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비상구’ 서평공모전] 가작 수상작

▲ 김미림

대한민국에서 정규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발전소에 대한 기본지식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에서 반복·심화하여 학습했을 것이다. 나 역시 교과서를 통해 발전에너지의 종류와 장·단점에 대해 수없이 수업을 듣고 과제를 했다. 그리고 학습 빈도가 잦아질수록 이에 대한 편견 역시 단단해졌다. 

성인이 된 후, 원자력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가 왔다. 신고리 원전 사건이다. 처음엔 단순 님비(NIMBY)현상이라 치부하고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오랫동안 뉴스에 나오면서 나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되었다. 원전건설에 반대하며 드러눕고 농성하는 주민들과 이를 끌어내려는 사람들의 몸싸움이 카메라를 통해 거침없이 보도되었다.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래도 나에겐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절규하는 주민들의 눈빛은 내게 깊은 여운을 남겼지만, 그때 내 청춘은 너무 억척스럽고 바빴다. 그래도 얻은 게 있다면, 원자력이 값싸고 친환경적이며 안전한 것이라는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의 진실’을 거침없이 말해 준 책 

시간이 더 흘러 사회초년생이 되었을 때, 후쿠시마 원전사고(2011년)를 통해 원자력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 뉴스를 보는 것인지 영화 속 컴퓨터그래픽(CG)을 보는 것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무서움을 느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1986년)는 여러 번 책으로 접했어도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었기에 공포심이 책을 뚫고 전달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달랐다. 뒷짐 지고 관망하기에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보였다. 본능적으로 컴퓨터를 켜고 원전에 대해 검색했다. 정보의 바다 속엔 증명되지 않은, 원자력발전에 대한 무분별한 정보들이 떠다녔다. 나의 눈과 귀를 막으려는 정보들이 반짝이며 진실을 왜곡하고 있었다. 나의 갈증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 책이 그 모든 것을 해갈해 주었다. 오랫동안 나의 머릿속에 파편처럼 흩어져있던 이상기후와 원자력발전에 대한 얕은 지식의 조각들이 <마지막 비상구>를 통해 퍼즐 맞추듯 정리가 되었다.

▲ <마지막 비상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학생과 교수진이 만드는 '단비뉴스'에 2017년 9월부터 1년 4개월 동안 연재된 탐사보도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을 묶은 것이다. ⓒ 오월의봄

일단 이 책은 거침이 없다. 기후위기 시대의 현장을 직접 발로 뛰어 취재해 독자의 눈앞에 들이민다. 나아가 에너지 공급체계에 대한 독자의 편견을 들쑤시며 ‘정말 당신이 생각했던 게 옳았나요?’ 줄기차게 묻는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볼 계기를 만들어준다. 뿐만 아니라 원자력에 관한 불편한 진실들을 재조명하고, 그렇다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에너지 정책의 대안까지 제시한다.

결코 얇지 않은 이 책을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책이 가진 현장감, 정확성, 진정성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수면 위로 드러난 원전의 모습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 충격적이었고, 수면 밑에 가라앉아있는 어두운 진실이 얼마나 거대할지 가늠하며 소름이 돋았다.

단숨에 독파하게 만든 현장감·정확성·진정성의 힘   

1부에서는 원자력 발전의 실체를 낱낱이 짚어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전은 ‘가성비’ 좋은 에너지가 아니다. 비싸고 안전성 따윈 없는 위험한 에너지다. 예컨대 ‘고준위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은 안전한 처리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원전 인근 임시저장시설에 계속 쌓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원전에 친근하고 우호적이다. 현시점에서 최고의 에너지발전소라는 생각까지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의 눈과 귀를 막고 있었을까? 

2부에서 그 이유가 설명된다. 놀랍게도 내가 낸 전기요금이 결국 내 눈과 귀를 막는 재원으로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치밀하고 교묘하게 방송과 언론을 통해 ‘친원전 이데올로기’를 주입 당했다. 

 덧붙여 이 책은 원자력발전으로 인해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아낸다. 가장 충격적인 사연은 원자력발전소 근처에서 수십 년 물질을 하던 해녀들이 단체로 암에 걸린 것이었다. 원자력 뿐 아니라, 석탄발전소가 건립된 후 주민이 줄줄이 폐 질환으로 숨지는 현장도 여과 없이 조명된다. 절망적인 것은, 이 글을 쓰는 있는 현재까지도 석탄발전의 절대량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3부는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의 대안을 모색하며 독자에게 희망적 메시지를 준다. 독일의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빠른 속도로 탈원전을 추진하면서도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원전 대국 프랑스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회사 건물 전체를 재생에너지 발전소로 만든 애플의 창의성을 보며 깨어있는 기업의 위엄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나라 곳곳에도 희망이 피어나고 있다. 아직도 풍력발전소 건설을 두고 곳곳에서 갈등이 계속되고 있지만, 제주도가 보여준 ‘공풍화(바람은 모두의 것) 정신’은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대안을 보여주는 모범사례라 말하고 싶다.

▲ 제주시 한경면 바닷가 마을에 설치된 풍력발전기. 바닷가에서 종일 부는 바람은 제주 풍력발전의 주된 경쟁력이다. ⓒ 박지영

 얼마 전 우리 아파트 정원에 가로등 공사가 한창이었다. 엘리베이터에 붙은 공지를 보니 태양광 가로등으로 전면교체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라 그런지 내겐 이 작은 변화도 감동이었다. 내가 알지 못했을 뿐, 기후위기에 대응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텀블러를 쓰고, 대기전력 낭비를 줄이고자 플러그를 빼놓는 등, 일상생활에서도 관심과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다. 나 역시 소소히 실천하기 시작했다.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또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내가 당장 혁신적인 개발을 해낼 수는 없지만, 원자력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편견을 깨줄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작은 날갯짓이 나비효과를 일으키길 바라며, 내가 이끌어가고 있는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함께 읽고 고민하며 머리를 맞대어 보고자 한다.

(*원 제목: 비상구에서의 날갯짓)


편집 : 신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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