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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의 눈물을 외면하는 기후위기
[‘마지막 비상구’ 서평공모전] 3등 수상작
2020년 06월 15일 (월) 23:02:42 최유진(경북 안동시) danbi@danbinews.com

“이놈, 벼멸구가 왜 이리 많아. 쌔빠지게 해놓으니까 다 망치네, 다 망쳐.”

   
▲ 최유진

할아버지는 올해 들어 농사를 접었다. 수지가 안 맞는 것은 진작 알았지만, 도무지 날이 안 받쳐줘 버틸 수 없었던 탓이다. 해가 갈수록 병충해는 심해지고, 폭염도 때 이르게 찾아와 이겨낼 재간이 없다고 했다.

나이든 농민 농사 접게 만드는 이상기후

지난해 논 몇 마지기 하지도 않았는데, 유난히 힘이 빠진 건 순전히 날씨 때문이었다. 사실 할아버지의 농사에 손을 많이 보태지도 못했지만, 이상기온은 내가 도와드릴 엄두조차 못 내게 만들었다. 정초에 망연히 앉은 모습을 뵈니, 내내 신경이 쓰였다. 할아버지 같은 상황에 처한 농민들이 얼마나 많을까?

기후변화로 한반도에서 흔치 않았던 병해충이 증가하고 있다. 이상고온으로 늘어난 벼멸구가 벼농사를 망쳤다면, 잎과 줄기를 시들게 하는 풋마름병은 1998년 제주도에 처음 등장한 후  전국으로 퍼져 감자 재배 농가에 큰 피해를 줬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감자풋마름병 발생지는 계속 북상하고 있다고 한다. 몸에 해로운 농약 등을 쓰지 않고 친환경 농사를 지으려 애쓰는 소농들도 기후위기 앞에 속수무책이다.

   
▲ 최근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고온으로 벼 병해충의 발생이 늘고 있다. ⓒ SBS

원전 인근 주민들의 고통스러운 삶

“진실을 알리려고.”

이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월성원전 이주대책위 황분희 할머니의 말이다. 언론인이 되겠다면서, 나는 길 위에서 진실을 외치는 이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단비뉴스>를 알게 되면서, 원전에 얽힌 삶이 고통스럽고 지리멸렬하다는 걸 깨달았다. 메이저언론도 아닌, 비영리매체가 끈질기게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을 만나고 속사정을 기록해 낸 사실에 놀랐다. 내가 이 매체의 구성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결정적 계기였다. <단비뉴스>가 펴낸 책 <마지막 비상구>는 기후위기가 외면한 약자의 눈물을 조명한다. 또 원전사고 위험을 무시한 채 ‘찬핵’하는 기득권 세력과, 생계와 생명을 걸고 ‘탈핵’을 외치는 소시민을 대비한다.

이 책에는 경주 지진을 겪은 후 날마다 생존배낭을 챙기는 원전 인근 마을 아이 인터뷰가 나온다. 누군가는 이런 행동이 ‘오버(over)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원전은 실제로 전쟁 같은 삶을 초래했다. 물질하던 해녀는 보물창고였던 바다를 잃고 갑상선암을 얻었다. 피서지였던 해변 마을은 사람 발길이 줄어 활기를 다 잃었다.

이 책을 읽으며 HBO영화 <체르노빌>과 다큐영화 <월성>을 봤다. 한국수력원자력 월성본부가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도 조사했다. 한수원은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맥스터) 추가 건설을 놓고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핵폐기물을 30여 년 끌어안고 산 황분희 할머니의 불안과 대조적으로 300km 넘게 떨어진 불야성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전기를 펑펑 쓰고 있다. 대기업은 값싼 전력 덕에 점점 더 배부르고, 월성지역은 핵폐기물로 포화 직전이다. 그런데도 다들 받기 싫어한다는 이유로, 또 할머니가 사는 곳에 폐기하겠다니 이런 불공평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갑상선암 환자가 속출하는 월성지역 사정을 우리 국민은 몇이나 알까? 원자력 에너지의 효율과 경제성을 주장하는 전문가들, 원전기술을 수출하고자 외교력을 동원했던 기업인과 정책당국자들은 모두 원전에서 멀리멀리 떨어져 산다. 나에게 안 좋은 것은 남에게도 권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은 화석연료 남용으로 ‘기후악당’ 짓을 저지르며 전 세계에 불량 친구가 되고 있다. 또 원전처럼 약자를 희생시키는, 비민주적이고 파괴적인 에너지를 전파하고 있다.

‘퓨처리움’ 가는 길에 ‘마지막 비상구’를 읽으며

지난 1월 독일 베를린에 있는 ‘퓨쳐리움(Futurium)’ 박물관에 다녀왔다. 책 <마지막 비상구>를 전자책(E-BOOK)으로도 구매해 박물관 가는 길에 또 한 번 읽었다. 1970년대부터 에너지원 다양화에 힘쓴 독일의 선진적 대응이 부러웠다. 70년대 중반에 이미 격렬하게 반핵을 외친 시민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책에서는 100퍼센트 재생에너지를 쓰는, 독일 동부 펠트하임 마을을 소개한다. 프라이부르크 중앙역 ‘솔라타워’를 알고서는, 독일 사람들은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생각도 해봤다. 퓨처리움은 자연과 사람, 기술의 미래상을 그린 곳이었다. 에너지를 만들어 쓰는 녹색빌딩을 보여주고, 재생에너지로 안전하게 살아가는 세계 각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아이들에게도 쉽게 기후위기를 일깨우고, 함께 대응하자고 메시지를 던지는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웠다.

   
▲ 독일 베를린에 있는 ‘퓨쳐리움(Futurium)’ 박물관. ⓒ Pixabay

“밤늦게 불 켜놓지 말고, 해 뜨면 공부해라.”
“에어컨 켜놓고 체육복 입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얼마 전, 내 고향에선 축구장 1천1백여 개 만큼의 산이 불에 타버렸다. 집에서 가깝진 않지만, 그래도 작게 가꾸는 밭에 잿더미가 내려앉았다. 국내외적으로 부쩍 잦아지고 거세진 산불은 기후변화와 관련이 크다. 마당에 꽃 하나 피어도 좋아하는 부모님은 산불 뉴스를 TV 화면으로 보며 눈물을 흘렸다. 특히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나에게 환경을 살리려면 불 켜지 말고 대낮에 공부하라고 설파하신 분이다. 학교 에어컨이 너무 세다는 말에 분통을 터뜨리시기도 했다. 그땐 옛날 사람이라 전기 아끼는 데 필사적인가 싶었는데, 이제는 에너지 낭비에 무감했던 내가 부끄럽다. 당장 내 생각과 행동을 아버지처럼 바꾸지 않는다면, 장차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이젠 안다. ‘위험한 에너지’에서 벗어나려는 의지, 에너지를 아끼려는 노력이 없다면 기후위기와 원전재난을 피할 ‘비상구’는 굳게 닫히고 말 것이다.


편집 : 민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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