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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모레가 49재인데…이렇게는 못 보내요”
[단비현장] 한익스프레스 화재 유가족의 47일
2020년 06월 14일 (일) 19:15:32 윤상은 기자 nadfri@naver.com

경남 거제시에서 용접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온 강정현(43) 씨는 지금 생업을 팽개치고  천리 먼 곳 이천시에서 47일째 막냇동생과 매제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객지생활을 하고 있다. 우레탄폼 시공을 하는 매제 김모(38) 씨와 매제를 따라 일하러 간 막냇동생 강정영(33) 씨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여 참변을 당한 지난 4월 29일, 강 씨는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 모임에 가서 술을 마신 뒤 귀가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6시 습관대로 핸드폰을 열어 보니 여동생으로부터 밤새도록 부재중 전화가 10통이나 와 있었다. 전날 저녁 먹으면서 뉴스에 나오던 화재 현장에 자기 가족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그는 벌떡 일어나 한걸음에 거제에서 이천시 사고 현장으로 달려왔다.

   
▲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매일 저녁 6시에 모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윤상은

그날부터 14일까지 그는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사고 진상규명과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사망자 38명은 모두 이천시에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어서 전국에서 달려온 유가족들은 이천시가 마련해준 주변 모텔에서 숙박을 하고 있다. 강 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에 눈을 뜨면 합동 분향소로 향한다. 분향소 2층에 마련된 유가족 사무실에서 다른 유족들과 대책을 논의하고 식사는 분향소 옆 복도에서 이천시가 보내준 음식으로 해결한다.

분향소 옆 체육관에는 대한적십자사가 보내준 구호 텐트가 들어서 있다. 강 씨와 다른 유가족들은 텐트 안에서 지내며 보상 문제와 함께 진상 규명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유가족 중 연로한 사람은 텐트에 누워 수액주사를 맞아 가며 기다리기도 하고, 너무 어려 아버지를 잃은 줄도 모르는 어린이 3형제는 학교에도 안 가고 텐트에서 하루 일과를 보낸다.

 
합동분향소 옆 체육관에 유가족들의 휴식공간으로 대한적십자사가 제공한 텐트들이 설치돼 있다. 텐트 앞 복도에는 이천시가 제공한 희생자 유족들을 위한 식사가 준비돼 있다. ⓒ 윤상은

보상합의하자 이제 떠나라는 이천시

“엊그제 보상문제는 1차 합의가 이뤄졌지만 진상규명은 아직 제대로 된 것이 없습니다. 낼 모레가 49재인데, 우리 막내와 매제가 왜 그렇게 어이없이 가버렸는지 그게 확실히 밝혀 지기 전에는 못 보냅니다.”

그동안 책임 소재를 두고 이런 저런 주장들이 오가면서 지연된 보상 문제가 지난 10일 시공사인 ‘건우’가 사망자 38명 유족에게 91억5천만원을 지급하기로 합의가 이뤄졌지만, 강 씨는 아직 막냇동생과 매제를 보내줄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천시는 합의가 이뤄지기 하루 전인 지난 9일 그동안 제공해온 유족 지원을 오는 15일부터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어 그동안 미뤄온 장례절차도 밟기로 하고 오는 17일 합동영결식 뒤에 합동분향소도 철거할 예정이란 보도가 나오자 유족들은 “무슨 소리냐”며 반발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사고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마련과 완전한 보상이 이뤄지기 전에는 억울한 영혼들을 떠나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전에는 못 떠나”

유가족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등이 하나도 이뤄진 것이 없는데, 공사 시공감독 등에 관한 책임이 있는 이천시가 유족들이 이천시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작정 나가라고 떠미는 것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강 씨는 "유가족들이 모두 타지 사람들이어서 여기를 떠나 흩어지면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은 물론 발주회사의 책임 등을 묻기 위한 의견수렴과 대책 마련이 힘들어진다"며 "갑자기 이천시가 우리를 쫓아내려는 것 같아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또 "15일로 예정된 경찰 브리핑은 수사 중간 결과일 뿐이고 누가 잘못을 했고 벌을 받아야 하는지 확실히 드러나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확실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위해 6월 말까지는 영결식을 미뤄 달라는 것이 유족들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유가족 대표들이 지난 13일 38명 사망자 유족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36명 가족이 합동영결식에 반대함에 따라 일단 17일 영결식은 거부하기로 했다. 이천시가 유족 지원을 중단하면 생업을 위해 돌아가야 할 사람을 뺀 나머지 유족은 이천시에 남아 자비로 숙식을 해결하며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등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유가족이 모일 사무실은 경기도 내 갈등과 민원 문제를 담당하는 경기도 갈등조정관이 마련해주기로 했다.

 
유가족들은 5월 5일 이천시 서희문화체육센터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5월 29일에는 발주사인 한익스프레스 본사 앞에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 KBS

힘없는 사람들 죽음 외면하는 나라

   
▲ 한익스프레스 화재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놓여 있는 조화들. 문재인 대통령 등 정치권 주요 인사들이 보낸 근조화환이 줄지어 서있지만 이들이 약속한 진상규명은 49재가 다 되도록 제대로 이뤄진 것이 없다. © 윤상은

지금 유족들을 더 울리고 있는 것은 화재 참사 희생자들에 관한 정치권과 언론 등 우리 사회 전반의 무관심과 외면이다. 4월 29일 오후 불이 나 38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자 정세균 국무총리와 진영 행정안전부장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화재 현장으로 달려왔다. 참사 발생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는 것을 지적하고, 피해자 지원과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합동분향소가 마련되자 여야 정치인들이 찾아와 사망자들 영정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등을 다짐하고 돌아갔다. 사망자들의 영정 옆엔 문재인 대통령, 정세균 국무총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이 보낸 근조화환이 줄지어 서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화재참사 발생 초기 언론에 크게 보도될 때만 대통령부터 국무총리, 장관, 지사, 국회의원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외쳤을 뿐, 죽은 이들이 못다한 한을 풀고 저승으로 떠난다는 49재가 될 때까지 억울한 죽음의 원인 하나도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왜 갑자가 폭발하듯 불이 났는지, 위험한 작업현장을 방치하고 묵인한 것은 누구인지, 이천시나 그 이상 상급관청에서 누가 감독 책무를 다하지 않아 38명의 목숨을 앗아가게 했는지가 밝혀지고 처벌돼야, 억울한 영혼들이 떠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5월 29일 청와대 분수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 KBS

유가족들은 참사 발생 한달이 지난 5월 29일에는 청와대 분수광장에 가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이 이천으로 와서 유가족들을 만나달라고 요구했다. 강 씨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대통령이 찾아갔는데, 열심히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이 죽은 현장엔 왜 오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천 화재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신축공사장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힘없는 사람들이라 사회 전체가 ‘나 몰라라’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다.

   
▲ 합동분향소 밖에 ‘화재 참사 유가족의 손을 잡아 주세요’란 내용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윤상은

"참사 이후 많은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및 관료 분들께서 조문을 다녀갔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얘기들 하고 가셨습니다. 이를테면,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관련부처에 전달하겠다', '철저히 조사하겠다' 등의 원론적인 이야기들, 즉 나의 일은 아니지만 한번 힘써보겠다 이런 얘기들... 각자의 자리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우겠답니다. 그리고는 사진 찍고 돌아갑니다. 얼마 뒤 기사가 올라옵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 참사에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강 씨 막냇동생의 친구 ㄱ 씨는 지난 5월 29일 청와대 분수광장 기자회견에서 말만 무성한 뿐 일반인들의 뇌리에서 참사가 잊혀 가면서 누구도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 우리 사회의 행태를 꼬집었다.

‘한익스프레스 화재 참사 유가족의 손을 잡아 주세요.’

이천시가 한익스프레스 화재 참사 희생자 유가족을 위로하고 돕자며 합동분향소 앞에 내건 현수막이다. 그랬던 이천시가 이제 보상 문제가 합의됐으니 이천시에서 떠나 달라며 유가족의 손길을 뿌리치고 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도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는데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체가 ‘망각의 강’을 건너고 있다. 참사가 빈발하는 요인은 바로 이런 데 있지 않을까?


편집 : 김태형 기자

[윤상은 기자]
단비뉴스 청년부, 디지털뉴스부 윤상은입니다.
좋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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