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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에 담긴 ‘사연’ 교환 안 되는 중고거래
[미디어비평] JTBC ‘스타와 직거래-유랑마켓’
2020년 06월 09일 (화) 22:28:54 김지연 PD huse7@hanmail.net

밀레니얼 세대는 소비와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한다. 공유경제의 기초 단계인 중고마켓이 주요 트렌드로 뜨고 있는 이유다. ‘오늘도 중고로운 평화나라’라는 유행어로 유명한, 중고마켓 대표 커뮤니티 ‘중고나라’의 2019년 거래액은 3조5000억원에 이른다. 모바일 중고시장의 후발주자인 ‘번개장터’와 ‘당근마켓’ 거래액은 1조와 7000억이다. 이런 소비 트렌드를 방송사도 놓치지 않았다. 올해 2월 16일 방송을 시작한 <스타와 직거래-유랑마켓>은 스타가 자기 물건을 동네 주민과 거래하며 쓰지 않는 물건의 가치를 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 2020년 2월 런칭한 JTBC <유랑마켓>은 중고거래를 통해 쓰지 않는 물건의 가치를 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 JTBC <유랑마켓> 홈페이지

중고거래와 경쟁의 결합

JTBC <유랑마켓>은 중고거래라는 트렌드를 ‘판매 경쟁’이라는 포맷으로 보여준다. 매주 다른 연예인 집을 방문해 집주인이 내놓은 중고 물건을 소개하면서부터 세 MC는 자신이 맡을 물건을 ‘찜’하느라 경쟁한다. 중고 물건을 가장 많이, 또는 가장 고액에 판매한 MC가 승리 배지를 받기 때문이다. MC들은 집주인이 ‘불필요’하다고 내놓은 물건 중 어떤 것이 다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일지를 깐깐하게 살핀다.

시청자 또한 자기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들을 상기하며 그 물건의 새로운 사용가치(쓸모)와 교환가치(중고거래)를 생각하게 된다. 중고거래 앱에 올린 물건은 제한 시간 2시간 이내에 팔아야 하므로 각자 거래 현황과 메시지가 오가는 데도 긴장감이 생긴다. 이뿐 아니라 촬영 당일 팔리지 않은 스타의 물건은 방송 직후 프로그램 홈페이지에서 선착순으로 판매한다. 시청자들은 원하는 물건을 ‘득템’할 기회가 올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남의 거래’를 ‘내 거래’로 감정이입하며 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유랑마켓> 포맷은 힘이 있다.

‘사람 냄새’ 나지 않는 중고거래

잘 짜인 포맷임에도 프로그램 시청률은 2% 전후에 그치고 있다. <미스터트롯> 출연자를 비롯한 트로트 가수가 등장한 10화만 5.4%대를 기록했다. 그러나 트로트 가수 2부인 11화는 3.5%로 급락했고, 이후 2%대를 유지하고 있다.

   
▲ 한강 조망, 넓고 세련된 집은 시청자들이 공감하기에는 거리가 먼 딴 세상이다. ⓒ JTBC

특별 게스트도 어찌할 수 없는 문제 중 하나는 위화감이다. <유랑마켓>은 출연자의 집을 찾아간다. 요즘 대세인 ‘집방’처럼, 누군가의 집을 보는 행위는 사람들의 본능적인 관음증을 자극한다.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호기심은 결국 사람을 향한다. 아무 집이나 보고 싶은 게 아니라 ‘누군가’의 집을 보고 싶은 거고, 그 근본에는 ‘누군가’를 내면 깊숙이 알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아무개의 생가가 아니라 괴테의, 셰익스피어의 생가를 찾는 이유도 거기 있다.

<유랑마켓>은 이 지점에서 시청자와 엇나간다. 지난 5월 31일 16회에 출연한 조은숙의 집은 아파트 단지 안에 딱 한 채 자리한 단독주택이다. 푸른 잔디가 깔린, 바비큐를 할 수 있는 테라스 앞에는 과실수가 심어진 텃밭도 딸려 있다. 집 내부에서는 드라마 세트 같은 화이트 톤의 넓은 거실, 주방과 방을 보여준다. 가정집에서는 보기 드문 개인 작업실과 악기방도 딸려 있다. 조은숙 씨가 내놓은 중고 물품은 대부분 새것 같다. 미니오븐, 전기 인덕션, 믹서기 등 사놓고 한 번도 쓰지 않은 제품이 다용도실에서 쏟아진다. 40만원을 주고 산 블루투스 키보드와 음파 채소 세척기 등 몇 번 쓰지 않은 제품도 많다.

이 집은 시청자들이 공감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다. 아무리 고가 물건을 싸게 내놓아도 그 중고물건은 ‘사고 싶은’ 물건이지 TV에서 그 거래를 보고 싶은 물건은 아니다. 고가 물건을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에 내놓는 행동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주인이 물건을 너무 쉽게 내놓아서 열심히 팔 이유도 납득되지 않는다. 경쟁할 이유가 없어 MC의 경쟁은 빛이 바랜다. 자기 물건을 떠나 보내는 사람의 마음은 ‘돈을 벌어서 기쁘다’에 그친다.

중고거래, 너와 나의 연결고리

“(구매자분이) 저한테 ‘고맙다’고 해주시는 말에 (제가) 도움이 되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첫 거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유세윤과 조은숙은 이웃 간 직거래가 주는 기쁨과 감사의 대화를 나눈다. 프로그램 내내 물건의 판매 가능성과 가격에 집중해온 흐름에서 마지막 감동 장면은 억지스럽다. 구매자에게 그 물건이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는 십여 초 영상과 사진으로 갈음한다. 판매자에게도 구매자에게도 중고거래의 의미가 ‘돈의 교환’으로 끝난다. <유랑마켓>은 중고거래 플랫폼을 ‘중계’하는 데서 멈춰있다.

   
▲ 프로그램 내내 물건의 판매 가능성과 가격에 집중해왔던 흐름에서 마지막의 감동은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 JTBC

중고물건은 사람에한테서 나온다.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처럼, 상품은 사람에게 와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된다. 가게에 진열되어 있던 의자는 누군가에게 팔려 가족이 모여 밥 먹는 식탁의 의자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컴퓨터 책상 의자가 된다. 중고거래는 서로의 ‘필요’와 그 필요에 깔린 ‘사연’이 만나는 교집합이다. 16화 영상은 미니오븐과 믹서기 등 시청자의 후기를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시청자가 믹서기로 견과류를 갈고, 미니오븐으로 쿠키를 굽는 모습에서 우리가 어떤 감동을 할 수 있을까? 조은숙이 한 번도 쓰지 않은 물품을 구입한 후기, 그게 신상품 구매 후기와 뭐가 다를까? <유랑마켓>이 중고거래가 아니라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의 ‘사연’을 부각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고물건의 필요는 각자가 다르지만, 스토리의 감정이입은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소비의 의미와 가치를 되돌아보는 프로그램 돼야

말이야 쉽지만, 중고물건의 사연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충동구매, 소비만능의 시대에 구매자는 물건을 쉽게 사고 쉽게 버리기 때문이다. 연예인처럼 대폭 할인한 가격으로 내놓을 수 없을 뿐, 우리 각자의 집에도 충동구매 후 한두 번밖에 쓰지 않은 생활용품들이 얼마나 많은가? 유행에 맞추는 제품은 애초에 내구성을 낮추는 대신, 가격과 생산 속도에 경쟁력을 둔다. 저렴함이 장점인 브랜드 가구는 1, 2년 쓰고 나면 중고로 내놓을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함이 떨어진다. 사람과 물건의 관계가 깊어져야 의미가 생기는데, 관계가 깊어질 새가 없을 정도로 물건의 소비 기간이 짧다.

중고거래는 이런 점에서 우리의 소비를 돌아보게 한다. 충동구매를, 과소비를 반성하게 하고 필요한 소비만 하겠다고 다짐하게 한다. 이미 가치의 변화는 나타나고 있다. 중고거래를 포함하는 공유경제가 21세기에 주목받는 배경에는 불필요한 소비, 과잉 생산이 낳은 환경 파괴에 대한 반성이 깔려있다. <유랑마켓>은 중고마켓이라는 트렌드뿐 아니라 그 밑에 깔린 가치의 변화까지도 반영해야 한다. 중고물건에 담긴 사연은 드러내고, 충동구매는 꼬집으면서 구매자에게는 그 물건이 어떤 의미로 새롭게 가치를 창출할지 담아내야 한다. 중고거래의 본질, 가치의 연쇄를 드러내야 하고 그것을 스토리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할 때,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마음도 따뜻해지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편집: 조한주 기자

[김지연 PD]
단비뉴스 미디어콘텐츠부, 시사현안팀 김지연입니다.
연은 순풍이 아니라 역풍에서 가장 높이 날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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