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비상구’ 서평공모전] 2등 수상작

21대 총선 전에 읽기 시작했던 이 책을 총선이 있던 날에 마저 읽었다. 지인 중 집권 여당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승리를 기뻐했고, 정부의 코로나 위기관리도 힘을 더해 ‘국뽕에 취한다’는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 그날 돌아보게 되었다.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여전히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는 왜 그들처럼 ‘국뽕에 취해 본’ 적이 없을까. <마지막 비상구>가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내가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곳은 경북 울진이다. 혹자는 성류굴이 있고 울울한 금강송 숲을 돌아 나오면 왕피천이 흐르는 곳, 천혜의 자연이 있는 그곳을 여행지로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내게는 반 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던 원전이 내 고향 울진과 등치 되는 말이었다.

백일장에서 핵 발전 칭송하던 ‘원전 키드’

원전이 고향을 살려주고 지켜주고 끌어주고 있다는 말을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터라 내게는 원전에 대한 믿음과 자부가 있었다. 그 자랑스러움을 원자력 백일장에서 가감 없이 써 내려갔던 열다섯의 나를 돌아보는 일은 아직도 씁쓸하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남편의 고향, 7번 국도 자락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었는데 그다음 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났다. 주변을 돌아보니 내가 새 터전으로 삼은 곳에서 두서너 시간이면 가닿는 곳에 원전 밀집 지역이 있다는 사실이 불안과 위협으로 다가왔다. 회원으로 활동하던 지역 생협에서 그 불안을 나누었고, 탈핵 모임도 결성하게 됐다. <마지막 비상구>에서도 여러 번 언급된 김익중 교수를 비롯해 경주 환경운동연합 관계자, 지역 방송국 기자를 초청해 지역 원전의 문제점 등을 이야기 나누며 오랜 무지에서 벗어났다.

이후 소모임으로 꾸려졌던 탈핵 모임은 생협, 지역 환경운동연합의 지원을 받아 연대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경주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의 시위에 함께했고, 영덕 핵 폐기장 반대 시위에는 마지막 주민 투표 진행까지 함께했다. 나아리에서 연대했던 주민들을 영화 <월성>을 통해 다시 만났을 때의 뭉클함을 잊을 수 없다. 탈핵희망 국토 도보순례에 동참했을 때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핵 없는 세상’이 적힌 깃발 하나씩을 들고 뜨거운 햇살 아래 묵언수행자들처럼 걸었던 몸의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 있다.

▲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월성>. Ⓒ <뉴스타파>

<마지막 비상구>는 이렇듯 찬핵의 유년기를 보냈던 내가 온전한 탈핵주의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시 돌아보게 해주고 그 시기에 놓쳤던 행간을 복원시켜준 고마운 책이다. 내 경우처럼 ‘원전 키드’로 자랐던 친구들에게는 자신의 성장사를 객관화할 수 있는 책이 될 수도 있겠기에 이 책을 알려주며 오랜만에 친구들과 연락하기도 했다.

‘기후 악당’ 한국의 에너지 정책에 분노  

보상이라는 미명하에 원전의 어두운 그림자를 처음부터 가리고, 지역사회를 신념에 가까운 친원전으로 의식화했던 한수원의 여러 행태에는 분노가 일었다. 탈핵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도 풍력발전이나 태양광발전의 부정적 정보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마지막 비상구>를 통해 그런 보도 역시 한수원과 언론의 합작인 경우가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진보를 자처하는 일간지마저 한수원의 협찬을 얻어 기사를 쓰는 일이 있었다는 사실에서는 씁쓸함이 밀려왔고, 소위 ‘원전 마피아’가 가진 위력을 실감하게도 되었다.

이 책은 대한민국 환경정책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기후 악당’이라는 소리를 듣는 나라가 여전히 탈석탄 정책을 쓰지 않고 오히려 석탄 소비량을 늘리는 상황을 시민으로서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 아이는 문경 석탄 박물관으로 현장학습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그 박물관들은 여전히 석탄을 홍보 중이었다. 어느 일간지 칼럼에서였던가, 우리나라는 정치민주화는 이루었는데 경제·문화민주화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는 말에 공감했는데 <마지막 비상구>를 읽으면서 에너지 민주화는 그 걸음마도 못 뗀 수준이 아닌가 생각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내가 세상과 다시 연대한 계기는 밀양 송전탑이었다. 밖에서 보고 듣는 것과 직접 마주해 느끼는 것은 천양지차다. 허리 굽어진 그 할머니들의 하소연과 분노를 맞대면한 나는 한두 번의 참여로 그칠 수 없어 이후에도 여러 번 밀양으로 향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취재하신 분들과 그 시간을 공유했다는 위안이 들었다. 수도권 사람들이 지방이라 부르는 곳에 원전이 건설되고 송전탑이 세워져 수도권에 사는 그들에게 전기를 공급한다. 그들은 단 한 번이라도 원전과 송전탑으로 피해를 보는 ‘지방’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낀 적이 있었을까. 지방자치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수도권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 밀양 송전탑은 주민 농성장이 강제 철거된 후 6개월 만인 2014년 말 완공됐다. ⓒ 하상윤

이런 의미에서 이 책 속의 독일 이야기들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책 속 사례들처럼 태양광을 쓰고 이윤을 남길 수 있다면, 내가 사는 곳의 에너지를 내가 친환경으로 조달한다는 자부심을 넘어 에너지 민주화로 가는 지속적 동기를 유발해 주지 않을까. ‘제주의 바람은 주민 모두의 것이니 풍력발전으로 얻는 수익도 주민과 나누어야 한다’는 제주의 ‘풍력 자원 공유화’ 운동은 큰 희망을 품게 했다.

독일, 제주 등 곳곳에서 발견한 희망

이 책의 ‘플라스틱 대신 친환경 제품 각광’ 꼭지도 인상적이었다. 영화 <알바트로스>를 보고 엄청난 죄책감과 참담함을 느낀 일이 있다. 죽은 알바트로스의 배 속에서 나온 비닐과 각종 플라스틱 조각들이 클로즈업되는 순간 ‘우리 인간이란 종들은 도대체 무슨 짓들을 벌이며 이 지구상에서 이리도 군림하는 거지’하는 가책을 받았다. <마지막 비상구>가 이런 고민을 두고두고 공유하게 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 

녹색당이 맹활약하는 독일의 경우 환경교육이 우리처럼 변방에 놓여있지 않고 교육의 중심 아젠다인 것이 부러웠다. 지리적 여건이 우리나라와 달라 일방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독일 대학생들 중에는 비행기를 타는 것에도 죄책감을 느껴 훨씬 긴 시간을 들여 기차를 이용하는 이가 많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런 환경의식은 일 년에 몇 번 이벤트 삼아 하는 수업으로는 기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환경교육이 중심 교과목으로 자리 잡아 지속적이고 현실적인 대안 수업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이 책은 탄탄한 내용만큼이나 저널리즘 취재윤리에 대한 울림을 준 책이라 내게 더욱 각별하다. 책을 다 읽고 단비뉴스를 검색해 볼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나 이런 청정 언론이 있었다니. 넘치는 글과 말, SNS를 빠르게 넘나드는 각종 정보와 지식, 뉴스에 우리는 이미 피로감을 느끼고 무기력 상태였는지도 모르겠다. 소위 ‘기레기’ 취재 관행에 냉소하면서 언론 본령을 지키려는 노력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 채로 말이다. <단비뉴스>는 언론에 대한 냉소를 불식시켜준 그야말로 단비 같은 존재다. 이제 내 컴퓨터 즐겨찾기에 추가 등록한 이 저널리즘을 나는 시민으로서 응원하고 지지할 것이다.


편집 :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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