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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비상구’ 서평공모전] 1등 수상작
2020년 05월 13일 (수) 16:54:17 한송희 (경기도 안양시) danbinews@naver.com
   
▲ 한송희

단발머리 중학생이었던 시절의 나는, 교육부 최초로 ‘환경’ 과목을 정규 수업 과정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세대였다. 당시 배운 내용 가운데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몇 장면들이 있다. 매연이 온 도시를 뒤덮은 런던 스모그 사건, 일본에서 수질오염으로 발생한 이타이이타이병 등이 그것이다. 교과서에는 런던 스모그로 폐 질환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들과 일본의 강 하류에서 발견된 기괴한 물고기의 사진들이 실려 있었다. 환경이 오염되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이 어린 내게는 꽤 충격적이었다.

그와 더불어 비중 있게 다뤄졌던 부분이 ‘체르노빌 원전 사고’였다. 당시에는 ‘방사능’이라는 단어도 매우 낯선 것이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 내게는 잘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도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별개로 원자력 자체에 대해서는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깨끗한 에너지, 미래를 이끌 에너지라고 배웠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 공포 속에서 만난 ‘원전의 진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 나는 ‘마지막 비상구’라는 책을 만났다. 하필 온 세계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공포에 뒤덮인 때에 말이다. 바깥에는 따뜻한 봄바람이 불고, 벚꽃은 흐드러지도록 만발했지만 나는 마스크를 쓴 채 서점에 다녀왔고, 집 밖을 나갈 수 없어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 전 세계를 발칵 뒤집은 몇 번의 원전 사고 때문에 원전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유독 우리나라의 원전에 대해서는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라고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 있었으니 말이다. 왜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한 번도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지금껏 원전 프로파간다, 핵 마피아의 거짓 선전에 속고 있었다는 것을. 핵과 방사능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우리나라의 원전은 안전하다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결국 누군가의 거짓 선전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거짓된 정보로 사람들을 안심시킨 데는 핵 사업으로 얻는 엄청난 경제적 이익이라는 동기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나처럼 무지한 사람들의 생명을 담보로 돈벌이를 했고, 국가 역시 그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채 사람과 환경을 위협하는 에너지로 나라 살림을 꾸려오고 있었다.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니 이 모든 것은 결국 전기 없이, 아니 편리함 없이 살 수 없게 되어버린 인간 때문이었다. 인간은 당장의 이익을 위해 지금도 화석연료를 태우고, 핵폐기물을 쌓고, 끊임없이 쓰레기를 만들어가면서 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부끄럽게도, 내가 있었다.

   
▲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해변을 따라 들어 선 월성 원전 1, 2, 3, 4 호기(왼쪽부터). ⓒ 윤연정

‘자연친화적 에너지전환’ 가능성 알게 돼 행복

이 책이 원자력과 석탄발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피해만을 얘기했다면 나는 책을 읽은 뒤 죄책감과 공포로 더 불행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책에 소개된 세계 여러 나라의 ‘진짜’ 미래 에너지에 대해 읽으며 잠깐이나마 마스크를 쓰고 있는 답답한 현실을 잊고 행복해졌다. 

자연이 우리에게 무한하게 선물한 태양과 바람, 그리고 그것을 선하게 이용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에너지를 필요한 만큼만 아껴서 사용하는 사람들. 기사를 읽고 그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고, 불안했던 미래가 갑자기 환해지는 것 같은 편안함이 몰려왔다. 

“그래, 이거네!” 독일과 스웨덴, 덴마크 등에서 먼저 이뤄진 자연친화적 에너지 대전환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발을 넓혀가는 추세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제주의 바람은 주민 모두의 것’이라는 모토 아래 풍력을 제주도의 공공 자원으로 함께 관리하고 이용하는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자연을 파괴하는 에너지’에서 ‘자연과 공존하는 에너지’로 전환을 한 것뿐 아니라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나누는 ‘에너지 민주주의’도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감동적이었다. 어서 빨리 더 많은 도시에서 이 같은 ‘긍정적 바람’이 불길 기대한다.

에너지 전환 만큼이나 중요한 문제가 또 있다. 어떻게 생산한 에너지든 우리에게는 그 에너지를 ‘아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쓴 만큼 돈을 내겠다는데 뭐’라는 이기적이고 안일한 생각에서 벗어나, 이제는 모두가 내게 주어진 에너지를 소중히 아끼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독일인 에너지 절약 본받아 ‘지속가능한 환경’을

나는 3년 동안 독일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했는데, 그곳에 살면서 우리나라와는 다른 절약 문화에 매우 놀랐다. 독일은 전기나 수도 같은 공공요금이 아주 비쌌고, 그래서인지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 많은 사람의 생활에 스며들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노교수의 모습, 너나 할 것 없이 장바구니를 챙겨와 필요한 만큼만 장을 보는 소박한 모습을 보면서 넘치도록 소비하고, 낭비를 일삼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에너지 세금 인상에 찬성한다. 당장은 불편하겠지만 그것이 장기적으로 에너지를 아끼도록 유도하는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산업이나 활동에는 확실히 환경 부담금을 물리고,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 사용에도 더 많은 제한을 두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조금씩 불편을 감수하고, 지구를 위한 자발적 노력을 해야 기후위기의 파국이 오기 전에 ‘마지막 비상구’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무한히 주어질 것 같지만 모든 것에는 결국 끝이 온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렇고, 젊음이 그렇고, 누군가를 사랑할 기회가 그렇다. 나는 에너지와 지구환경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무한할 것이라 생각하고 함부로 낭비하다간 후회만 남을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우리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아름다운 지구와 소중한 에너지를 아껴서, 오래오래 지속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게 어떨까.


편집 : 박서정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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