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3가지 아쉬움 남긴 채 화려한 폐막

압도적이다. 하지만 운치는 덜하다. 올해로 16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영화의 전당’을 처음 본 느낌이다.

지난 6일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가 14일 9일간의 일정을 마쳤다. 올해 영화제는 무엇보다 '영화의 전당'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지난 영화제와 구별됐다. 10여 년간 부산영화제 숙원사업이었던 전용관 ‘영화의 전당’(두레라움)은 건축에만 1천678억 원이 들어간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상영시설이다. 하지만 외적 규모가 커진 반면 아쉬운 점도 있었다.

▲ 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 맞춰 개장한 영화제 전용관 '영화의 전당(두레라움)'의 모습. 화려한 LED지붕이 눈에 띈다. ⓒ진희정

남포동도 부산바다도 멀어진 영화제

지난 12, 13일 남자 친구와 부산영화제에 처음 온 서유진(27) 씨는 해운대 백사장을 밟아보지도 못했다. 작품들이 대부분 바닷가에서 떨어진 센텀시티에서 상영된 탓이다.

“급하게 오느라 보고 싶은 영화만 정했는데, 그게 다 새로 지어진 ‘영화의 전당’이랑 백화점 멀티플렉스에 있을 줄은 몰랐어요. 상영관이 바다도 제대로 볼 수 없는 곳에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죠”.

▲ '영화의 전당'을 중심으로한 센텀시티 내 극장이 부산국제영화제 주요 상영관이다. ⓒ진희정

이번 영화제는 남포동과 광복동, 해운대비치에 있던 상영관과 행사장을 바다와는 좀 떨어진 해운대구 센텀시티 일대로 대부분 옮겼다. ‘영화의 전당’을 중심으로 한 센텀시티 내 4개 극장(영화의 전당, CGV 센텀시티,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시청자미디어센터)과 해운대 메가박스로 영화제 중심지가 이동했다. 영화관 사이를 이동하는 거리가 짧아져 좋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남포동이 주던 부산영화제만의 운치를 잃어버렸다는 의견을 시민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새로 지어서 시설과 건물은 좋은데 영화 보는 것만 있지, 부산을 여행하는 다른 관광요소가 없어졌지예. 남포동 쪽은 부산의 볼거리, 먹거리가 많은데 이번 영화제부터는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그쪽으로 갈 일이 없으니까 (부산의) 정취를 느낄 새가 없지. 남포동 자갈치 시장이랑 국제시장 구경하면서 맛있는 길거리 음식도 먹고, 보수동 책방골목도 함 둘러보면 좋은데...”

예전 영화제 때 가족들과 함께 남포동에서 종종 영화를 봤다는 택시기사 권재진 씨는 관객들이 해운대와 센텀시티에서만 돌아다니는 걸 안타까워했다. 줄어든 택시 요금 때문이 아니었다. 자랑스러운 영화제에 또 다른 자랑거리 남포동이 빠진 건 부산시민 누구라도 아쉬울 터이다. 영화제는 언젠가 남포동을 떠날 운명이었던 걸까?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열었던 노래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였다고 한다.

감상적으로 지난 영화제들을 기억하기보다 발전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시민도 있었다. 미국 내에 한국문화를 소개해 온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조윤정 필름담당 국장은 “영화의 전당이 토론토 국제영화제의 전용관보다도 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남포동 일대가 제외된 것은 아쉽지만, 세계적 규모의 상영관을 갖게 된 만큼 부산영화제가 이를 통해 한국 영화 발전에 바탕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 복국’ 대신 간이편의점 샌드위치?

▲ 지난해까지 요트경기장에서 열린 개,폐막식과 야외상영이 '영화의 전당'으로 옮겨왔다. ⓒ진희정

11일 ‘영화의 전당’ 야외상영관에 온 부산시민 김경주(36) 씨네 가족은 저녁 무렵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LED 지붕을 보고 모두들 놀랐다. 김 씨는 “불과 며칠 전까지 영화제를 열 수 있을까 걱정할 정도로 공사가 덜 돼 있었다”며 “바다 수면을 본뜬 거 같은 화려한 지붕이 이렇게 생기다니 신기하면서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날 영화 <별을 바라보는 개> 상영이 끝난 뒤 많은 관객들이 마치 관광지에라도 온 듯 건물 곳곳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편의시설이 미비한 상황에서 영화제에 맞춰 ‘영화의 전당’을 개장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영화의 전당’에서 영화를 본 뒤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걸어서 20분 걸리는 백화점 전문식당가를 이용해야 했고, 그나마 9층에 있어 바쁜 영화상영 시간 사이에 들르기는 어려웠다. 건물 앞에 마련된 간이편의점에서는 간식류만 판매했고, 상영관에 붙어 있는 매점에서는 여느 극장처럼 팝콘을 팔 뿐이었다.

▲ '영화의 전당' 한쪽에는 관람객들을 위한 간이편의점이 있다. 제대로된 식사를 하거나 부산음식을 맛볼 기회가 없어, 부산을 찾은 관객들의 아쉬움이 크다. ⓒ진희정

서울에서 왔다는 관객 박형준(20) 씨는 “마땅히 뭘 사먹을 데가 없어서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웠다”며 “부산에 온 건지 서울 용산 CGV에 온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객 김혜진(35) 씨도 ‘부산’을 무색케 하는 시설에 아쉬움을 느꼈다.

“두 번째로 부산영화제에 왔는데, 롯데나 신세계백화점 내에서 영화보고 셔틀로 메가박스로 이동하고 그러다 또 숙소에 가게 되네요. 해운대 메가박스 갔을 때나 근처 식당에서 골라 밥을 먹지, 여기 센텀시티 쪽으로 넘어오면 꼼짝없이 백화점 내에서 사먹어야 하더라고요”.

익명을 원한 한 영화인은 “준비를 급히 한 탓에 영화제 기간 중에 생길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의 전당’ 비프힐(Biff Hill) 한 쪽 입구가 공사현장처럼 어수선하게 통제되고 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유난히 눈에 띄는 건 협찬사들이 무료로 음료를 제공하는 부스들이다. ‘영화의 전당’ 내•외부에는 후원사들 브랜드 광고가 넘쳐난다. 영화제 기념품이 담긴 쇼핑백에는 ‘세계최대 백화점 신세계 센텀시티’ 로고가 박혀있고, 대부분 관객들 손에는 영화인들 인터뷰 무대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해 로고를 노출시키는 비타민 음료가 형형색색으로 쥐어져 있다. 

▲ 게스트와 취재언론인을 위해 마련된 공간에서는 영화제 협찬사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진희정

관객과 영화인은 단지 영화를 보기 위해 ‘부산’까지 발걸음하지는 않는다.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가까운 곳에서 부산의 맛과 멋을 찾게 마련이다. 어디서나 사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품이 넘치는 영화제라면 굳이 몇 시간 또는 반나절이나 걸려 이 도시에 올 이유가 없다. 부산영화제에서 밀려난 남포동이 새삼 아쉬운 이유다. 

뒷전으로 밀려난 국내 감독들

영화제가 해외에 드러나는 부분에 신경 쓰다 보니 국내 감독들의 참여에 대해서는 오히려 소홀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영화인들이 모인 술자리에서는 “부산영화제에서 작품을 상영하는 건 감독들에게 굉장한 영광이고 기회인데, 이미 알려진 해외 영화를 소개하는 데 더 집중하는 것 같다”는 볼멘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부산영화제에 참여한 국내 감독들에 대해서는 취재진이 개별적으로 인터뷰 요청을 해야 했다. 해외 유명 감독들에 대해서만 영화제 사무국 차원의 인터뷰 일정 관리가 이루어지면서 덜 유명한 작품과 감독들은 거의 조명을 받지 못했다. 반면 해외 유명감독이 참여하는 마스터클래스나 기자회견, 관객과의 대화(GV) 등에는 취재진과 관객들이 북적거렸다.

장소안내는 가장 신경 써야 할 과제다. 지난해에 이어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한혜인(25), 서보국(34) 씨는 “작년보다 지각하는 관객이 적었다”며 장소가 한 곳에 집중된 효과로 풀이했다.

▲ 복잡한 건물구조와 제대로 된 안내표지판이 부족해, '영화의 전당'에서 헤매는 관객들이 꽤 눈에 띄었다. ⓒ진희정

그러나 개선해야 할 점도 꽤 있었다. ‘영화의 전당’ 2, 3층 소극장들은 이동 경로가 명확하지 않아 상영이 임박할 때마다 우왕좌왕하는 관객들을 볼 수 있었다. CGV 센텀시티와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상영관 20개는 백화점 상층에 있어, 극장으로 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위치안내가 추가로 필요해 보였다. 영화제 쪽이 제공한 팸플릿은 주요 건물 위치만 지도로 담고 있어 상영관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청각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영화제 쪽 배려는 눈에 띄었다. 다만 너무 많은 영화목록을 읽기 벅찬 중장년층 관객들에 대한 배려도 필요해 보인다. 앞으로 더 늘어나게 될 어르신 관객이 이용하기 쉽도록 ‘큰 글씨 팸플릿’을 마련하는 건 어떨까? 숨어 있는 화장실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선명한 안내도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고려해볼 만하다. 

영화제는 관객의 안목을 키워 영화의 발전을 꾀하는 ‘영화진흥의 장’인 동시에 미래의 영화인을 양성하는 ‘영화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멀리 충북 제천에서 학생 40여 명을 인솔해 부산영화제를 찾아온 세명대학교 최종한 교수는 “한국에서 이 정도의 세계적 영화제를 만날 수 있다는 건 자부심을 가질만한 일”이라며 “학생들에게 부산영화제 관람은 중요한 공부”라고 말했다.

부산영화제는 분명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웅장한 건축물과 현대적 장비만으로 세계적 영화제가 되기는 어렵다. 부산영화제가 성장해 온 것은 도심의 남포동이 많은 시민들을 ‘영화관객’으로 만들고, 독립영화 상영관인 ‘시네마테크 부산'이 ‘씨네필’을 길러낸 덕분이다. 또 부산을 배경으로 작품을 만들어 온 수많은 영화인과 이들의 작품을 환호하며 관람해 온 관객의 사랑 덕분이다. 칭찬이든 불만이든 시민들의 의견은 부산영화제의 자양분이 됐을 터이다.

영화의 전당, 후반작업시설, 벤처센터 등 다른 도시들이 갖지 못한 시설을 갖추는 데 들인 노력을 이제는 관객 서비스 쪽으로도 기울여야 한다. 영화제가 끝난 시점은 부산이 ‘영화의 도시’로 자라는 동안 토양이 되어온 것들이 무엇인지 돌아볼 기회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제’만 살아남고 ‘부산’이 사라지는 것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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