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뮤지션’ 진가 못 살린 ‘바람에 실려’ 시청률 고전
[지난주 TV를 보니: 10.3~9]

오랜 공백 끝에 <나는 가수다> 출연으로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보여준 임재범. 그를 간판으로 내세운 문화방송(MBC)의 새 프로그램 <바람에 실려>가 기대와는 달리 방영 2회 만에 시청률 부진과 조작논란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첫방송에서 멤버들이 다 모인 모습. ⓒMBC일밤 <바람에 실려> 공식 사이트

지난 9일 방송된 <바람에 실려>의 시청률은 전주보다 1.6% 포인트 떨어진 4.5%(AGB닐슨미디어리서치, 전국기준)였다. 동시간대 경쟁프로그램 한국방송(KBS)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15.0%, 서울방송(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의 14.7%에 비해 한참 뒤졌다. 임재범과 함께하는 미국 음악여행을 통해 ‘로드 뮤직 버라이어티’의 새 지평을 열 것이라는 제작진의 장담과 달리 1, 2회 모두 이전 코너 <집드림>이 기록했던 3~5%대의 시청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잠적한 주인공 찾기, 어설픈 각본으로 보여

9일 방송에서 임재범은 샌프란시스코 즉석 길거리 공연을 한 후 갑자기 잠적한다. 과거에도 생방송을 더러 ‘펑크’낸 이력이 있는 야생마 같은 그였지만 그렇게 빨리 사라질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거리공연에서 음 이탈을 낸 데 상심해서 그랬다고 나중에 해명했는데, 시청자 입장에선 납득하기 어려웠다. 공연장면을 보면 음 이탈을 했다는 티도 별로 나지 않았고, 이미 <나가수>에서도 가끔 음 이탈을 했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숙 중이던 임재범의 모습. ⓒMBC일밤 <바람에 실려> 공식 사이트

이 사건으로 2회 방송의 대부분은 나머지 멤버들이 임재범을 찾으러 다니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잠적 5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임재범은 로스앤젤레스(LA) 선셋거리의 한 벤치에서 노숙자처럼 잠을 자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 시청자들은 ‘조작 연출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우연이 계속 이어졌고, 출연자들의 행동도 뭔가 자연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임재범이 사라진 후 제작진과 나머지 멤버들은 실제 상황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침착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그를 찾아 헤매면서도 사진 대신 우스꽝스럽게 그린 몽타주를 들고 웃고 떠들며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미리 짜기라도 했던 것처럼 예정된 공연장 앞에서 삼류영화의 주인공처럼 누워있는 임재범을 발견한다. 그것도 카메라가 대기한 상태로, 멤버들이 느슨히 걸어오는 장면을 잡으면서 말이다. ‘사전각본’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우연히 만나 즉석공연을 같이한 길거리 가수가 하필 국내에서 광고(CF)음악 ‘폴링(falling)’으로 유명한 미국의 인기가수 벤 크웰러였다는 것도 수상쩍다고 지적한다. 

지난 2일 첫 방송에서 임재범은 “대본이 없어 너무 힘들다”며 불평했다.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를 강조한 셈이다. 하지만 이날 방송에 비춰진 모습은 오히려 너무 대본에 충실해 어설픈 게 아니냐는 인상을 주었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은 MBC 온라인게시판 등에서 웅성거렸다. “잠적이란 설정도 어설프고, 임재범의 락공연장을 그렇게까지 준비 못한 상황이 임재범 노래를 깎아 먹는다.” “잠적이니 노숙이니 이런 어설픈 소재 가지고 시청자에게 어필하리라 생각한 겁니까? 제작진은 임재범씨 안티입니까?” 

 

▲ 게시판에 올라온 비판의 글들. ⓒ MBC일밤 <바람에 실려> 사이트 시청자 의견 게시판

제작진은 임재범을 찾을 때까지 사막 지역인 데스밸리로 이동해 촬영을 강행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간 이유가 무엇인지 시청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별다른 이야기를 만들지 내지 못한 채 사막에서 배드민턴을 치거나, 태양열로 라면을 끓여먹으려다 포기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었다. 계획을 짰던 임재범이 없어 차질이 생겼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 정도의 시간과 예산으로 그렇게 밖에 못하나 하는 지적이 나올 만 했다. 

<바람에 실려>가 바람을 타려면

개그맨 지상렬을 빼면 <바람에 실려> 멤버 중에는 전문 예능인이 없다. 밴드의 보컬로도 활약했던 영화배우 김영호를 포함, 음악인이 대부분이다.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것도 이색적이고 흥미로운 음악 프로그램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제작진은 프로그램에 예능적인 요소를 가미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앞에서 뜬금없이 기타를 우승 상품으로 걸고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를 흉내 내게 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상황전개상 맞지도 않고, 프로그램의 정체성만 모호하게 만드는 시도였다. 

한국의 음악을 알리고, 음악의 신대륙을 개척하겠다며 미국으로 떠난 ‘로드 뮤직 버라이어티’의 포맷은 좋았다. 하지만 지금까진 음악과 예능, 리얼리티를 다 잡으려다 모든 게 어설퍼진 상황이다. 임재범의 노래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음악에 초점을 맞춰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프로그램을 풀어 나가면 좋지 않았을까.   

▲임재범이 '락 인 코리아'를 열창하는 모습. ⓒMBC일밤 <바람에 실려> 공식 사이트

 <바람에 실려>는 아직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성패를 단정하기는 이르다. 2회의 낮은 시청률도 동시간대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의 ‘청춘합창단특집’ 마지막 편과 겹친 요인도 있을 것이다. ‘뮤직 투어’라는 새로운 포맷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은 여전히 기대를 갖게 된다. 드넓은 사막, 데스밸리에서 영화배우 김영호가 ‘홀로 된다는 것’을 부르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또 임재범이 다시 합류한 후 LA의 키 클럽(Key Club)에서 펼쳐진 ‘락 인 코리아(Rock in Korea)’공연도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현지인들의 뜨거운 반응을 받으며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바람에 실려>가 바로 이런 부분들을 잘 살려 음악프로그램의 진가를 보여준다면 시청률도 뒷심을 발휘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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