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문화유산이 된 ‘기억의 장소들’

부산은 영화인과 영화팬들에게 ‘집단기억의 장소’이다. 남포동과 충무동 일대 기억의 장소들은 이름마저 생소한 센텀시티로 분산되겠지만, 추억마저 옮겨갈 수는 없는 일. 사람들은 ‘스타의 거리’와 ‘영화제의 거리’를 거닐며 흘러간 스타와 영화를 기억하고, 센텀시티 ‘영화의 전당’에서 영화의 오늘과 미래를 보게 될 것이다.

 

▲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올해 16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는 근사한 전용관을 갖게 된 데다 개막작 <오직 그대만>이 예매 7초 만에 6만 객석이 매진되는 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아시아 최대 영화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대형 시설과 ‘별들의 축제’ 덕분에 부산이 ‘영화의 도시’가 된 것은 아니다. 과거 없는 오늘이 없듯이 부산이 ‘영화의 도시’가 된 것은 ‘기억의 장소’들을 물려받고 영화촬영의 최적조건을 갖춰왔기 때문이다. 부산은 또 1930년대부터 이미 남포동 일대에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큰 극장가가 형성돼 영화 생산지인 동시에 소비지가 됐다.

‘영화 제작’의 메카, 아무데나 되는 건 아니다

 

▲ 지난 9월 29일 개관한 영화의 전당. ⓒ 김강민

최근 개봉한 영화 <투혼>, 12월 개봉할 장동건 주연의 <마이웨이>, ‘칸의 여왕’ 전도연이 주연한 <카운트 다운>, 그리고 <미스진은 예쁘다> <페이스 메이커> 등은 모두 부산에서 촬영을 완료했다. 그밖에 <범죄와의 전쟁> 하정우, <미스고 프로젝트>의 고현정, <도둑들>의 김혜수와 전지현 등 내로라하는 유명 배우들이 부산을 찾아 영화 촬영을 했다.

부산에서 촬영하는 영화 수가 해를 거듭할수록 늘고 있다. 올 상반기 부산에서 촬영을 끝낸 개봉영화는 지난해 10편보다도 2편이 더 많은 12편이다. 촬영 중인 영화는 <도둑들> <펀치라인> 등 7편이나 된다. 촬영일수도 지난해 149일에 견주어 76.5% 증가한 263일이다. 전체 촬영분량의 70% 이상을 부산에서 촬영한 영화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영화 <전우치>는 국내 최초로 1401컷을 CG로 완성했고, 부산영상후반작업시설에서 작업했다.

영화인들이 부산을 많이 찾는 이유가 있다. 부산이 영화 제작에 열려있는 도시인 까닭이다. 영화 지원의 중심에는 부산영상위원회가 있다. 부산영상위는 부산을 찾는 영화인들에게 로케이션, 촬영, 후반작업까지 지원하는 영화 육성기관이다. 1999년 부산시가 영화 진흥사업을 펼치기 위해 발족시켰다. 영화의 전당이 위치한 부산 해운대구 우동 센텀시티에 부산영상위 산하 ‘부산영상 후반작업시설(AZworks),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등이 집적시설을 형성하고 있다.

부산영상위는 로케이션 지원단계에서 촬영 장소를 추천하고 관공서 등의 허가를 받고 섭외까지 도맡아 한다. 각종 기관이나 시설과 유기적인 공조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점은 영화인들에게 큰 매력으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19일 부산영상위는 부산경찰청과 영화•영상 촬영지원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영화 <황해> 중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이 전복되는 장면은 부산 연제구 과정사거리에서  촬영됐다.  부산영상위원회 이승의 팀장은 “당시 <황해>의 나홍진 감독이 영상위에 요청을 했고, 관계 기관을 설득한 뒤 이틀간 도로를 통제해 촬영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 영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의 박찬욱 감독이 정원이 있는 병원을 찾았고 폐쇄된 부산금정동물원을 추천해 그곳에서 촬영했다. 이 팀장은 “기관 관계자들이 영화촬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자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영상 후반작업시설은 영화 촬영이 끝난 후 필름현상, 편집, 컴퓨터그래픽, 녹음 등이 가능하다. 이 곳에서 영화 <박쥐> <전우치> 등 10개 작품이 제작됐고 현재 촬영 중인 작품도 4편이다.

남포동 일대 1930년대에 20여 극장 밀집

‘남포동’ 하면 KBS 예능프로그램 <1박 2일> 이승기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던 ‘씨앗 호떡’은 물론이고 파전, 오징어무침, 비빔당면을 맛볼 수 있는 ‘먹자 골목’이 떠오른다. 서민음식이 몰린 ‘남포동’은 오늘날 ‘영화의 도시 부산’의 시초가 됐다.

 

▲ 1980년대 후반 남포동 극장가. ⓒ 부산 중구청 제공

남포동은 1930년대를 전후로 충무동 일대까지 20여 개 극장이 밀집된 극장가를 이뤘다. 1932년 부산극장, 1957년 제일극장, 1961년 동명극장, 1969년에는 부영극장과 국도극장 등이 생기면서 영화의 거리를 채웠다. 개봉극장이 이렇게 밀집해 있는 곳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1996년부터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되면서 극장가를 새롭게 단장하고 남포동 일대를 PIFF광장(현 BIFF광장)으로 명명하게 됐다. 남포동~충무동 육교는 ‘스타의 거리’와 ‘영화제의 거리’로 나뉘어 정비됐고 영화제 장소가 해운대 BIFF빌리지까지 확대됐다.

구 부영극장에서 부산극장 간을 ‘스타의 거리’로 단장해 매년 부산국제영화제 수상자와 참가작품의 이름을 새긴 동판을 광장 바닥에 깔고 있다. 국제영화제의 주무대였던 남포동이 올해부터 센텀시티와 해운대 일대로 그 자리를 양보하게 됐지만, 남포동은 부산의 상징적 장소가 됐다. BIFF광장 한 매장 직원인 김보민(24ㆍ호밀호두)씨는 “BIFF광장이 어디냐고 묻는 관광객이 여전히 많다”며 “올해부터 남포동에서 영화제 영화를 볼 수 없지만 BIFF광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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