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실험실] 성착취물 시청자처벌법

<앵커>

여성과 미성년자를 협박해 성착취물을 찍어서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에 공유한 조주빈과 이 영상을 시청한 회원들을 강력하게 처벌해달라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통령까지 나서 “회원 전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회원 모두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 어떤 처벌이 가능할지, 또 앞으로 어떤 법률 정비가 필요할지, 권영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달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이른바 ‘n번방’ 사건 관련자 전원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주문하자, 검찰과 경찰은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대화방 운영자는 물론이고 영상을 공유하거나 시청한 사람들까지 모두 수사해 엄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들의 신상 공개도 검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 민갑룡 경찰청장

“향후 수사가 마무리되면 관련 절차와 규정에 따라 신상 공개도 검토하는 등 단호히 조치해 나가겠습니다.”

먼저 성착취물 제작에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직접 영상을 공유한 사람의 경우는 처벌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문제의 텔레그램 대화방에 가입돼 있다고 처벌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인터뷰) 한국여성변호사회 양진영 공보이사

“n번방에서 성착취물의 제작에 관여하지 않고 단순히 텔레그램에 들어가 있기만 하거나 아동·청소년 음란물만이 아니라 성인 음란물을 시청한 경우에는 현행법상 처벌이 어렵습니다.”

아동 착취물을 시청한 것이 확인된다면 처벌이 가능해 보입니다.

시청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은 없지만, 텔레그램을 통해 동영상을 시청할 경우 반드시 개인의 컴퓨터나 휴대전화에 파일이 저장되는데, 이것이 ‘아동·청소년 음란물 소지’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미성년자 음란물을 카카오톡을 통해 시청하는 과정에서 음란물 파일이 자동 저장된 것을 음란물 소지로 보고 유죄 판결했습니다.

이번 사건과 구조가 비슷합니다.

인터뷰) 한국여성변호사회 양진영 공보이사

“음란물을 의식적으로 저장할 의사가 없었다고 해도 기술적으로 자동 저장이 되는 형태면 소지로 보아서 처벌하겠다는 건데요. 소지죄를 처벌한다는 것은 사실상 ‘그거를 보지도 말라’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같은 취지로 계속 판시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일일이 동영상 저장 여부를 확인해야 할 가능성이 있고, 무엇보다 앞으로 메신저가 영상 자동 저장 기능을 없애면 아동 성착취물을 본 사람을 처벌할 방법은 없어집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성착취물을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제작하면 초범이라도 징역 15년에서 30년 형을 선고하고 있고, 이런 성착취물을 공유하거나 소지하는 행위도 무겁게 처벌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텍사스주의 한 40대 남성은 아동 성착취물을 보려고 한차례 접속해 다운로드를 했다가 5년 10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동과 청소년을 이용한 음란물을 소지해도 징역 1년 이하의 가벼운 처벌만 가능합니다.

또 현행 법률로는 신상 공개도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단순 가입이나 시청 행위가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 공개 관련 법률이 규정한 ‘성폭력범죄’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한국여성변호사회 양진영 공보이사

“‘신상 공개가 단순 가입자의 경우에도 가능하냐?’ 이걸 물으신다면 규정에 있는 요건에 맞아야 하잖아요. 단순 가입 후에 성인 음란물을 시청만 했다면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에 신상 공개 대상에서 제외될 것 같고요.”

결국 국회가 성폭력범죄 관련 법률 정비에 나서야 하는 상황인데, 정치권은 아직 생색내기에만 그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달 5일 ‘n번방 방지법’이 ‘국회청원 1호 법안’으로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영상을 합성해 음란물을 만드는 이른바 ‘딥페이크’에 대한 내용만 포함됐습니다.

성착취물 시청과 소지에 대한 처벌 강화나, 신원 공개 범위 확대 같은 내용은 논의에 오르지도 못했습니다.

인터뷰) 탁틴내일 권현정 활동가 인터뷰

“딥페이크 이건 정말 일부분이죠. 스트리밍(시청) 같은 경우는 소지죄로 보기도 어렵고... 그래서 스트리밍이나 이런 것들도 다 처벌할 수 있는 법이 만들어져야 된다...”

단순히 이번 사건 관련자들을 엄정하게 처벌하는 것을 넘어서서, 국회가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률을 제정하고 처벌 수위나 신상 공개 등에 대한 전면적인 법률 개정에 나서도록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단비뉴스 권영지입니다.

(취재, 디자인: 권영지 / 앵커: 이나경) 


편집 : 오동욱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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