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한국 등 25개국 400개 도시서 ‘전 세계 시위의 날’
[두런두런경제] 김광진 제정임의 경제카페

김광진(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지난달 17일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가 4주 만에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현재 어떤 상황입니까.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처음 이 시위가 시작된 것은 ‘애드버스터’라는 온라인 잡지의 제안으로 청년 30여 명이 뉴욕 맨해튼의 한 공원에 모인 것입니다. 그런데 날마다 시위 인파가 늘더니 지난 5일에는 2만여 명으로 불어났고, 워싱턴디씨(D.C.)와 로스엔젤레스 등 미국의 수십 개 도시로 확산됐습니다. 또 캐나다와 유럽 여러 나라, 호주 등지에서도 동조 시위가 이어졌고요. 시위대의 공식웹사이트 중 하나인 ‘함께 점령하라(Occupy Together)’는 오는 15일을 ‘전 세계 시위의 날’로 선포했는데 미국, 유럽 등 전 세계 25개국 400여개 도시에서 시위가 열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금융소비자협회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집회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의 탐욕 참지 못해 월가로 향한 99% 시민들

김: 이들 월가점령 시위대는 왜 이런 행동에 나서게 된 것인가요. 스스로 밝힌 이유가 있겠죠?

제: 네, 이들은 웹사이트를 통해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월가점령은 다양한 인종과 성과 정치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지도자 없이 모인 저항운동이다. 우리는 1%의 탐욕과 부패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99%의 사람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아랍의 봄’ 혁명과 같은 비폭력적 수단을 활용한다.” 한 마디로 월가로 대변되는 금융자본, 즉 미국 상위소득 1%를 차지하는 집단의 탐욕과 부패가 99% 대중을 경제난으로 몰아넣고 착취하는 구조를 참을 수 없어서 일어났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1% 금융자본의 탐욕에 제동을 걸고 99% 시민을 위한 정의를 추구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죠.

김: 이들이 미국 정부나 사회에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정책이 있습니까. 현장에서 나오는 구호는 어떤 것들인가요. 

제: 이들은 일단 ‘월가의 탐욕을 규제하라’는 요구를 내걸고 있는데,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참고로 이들이 가장 분노하고 있는 것은 월가의 대형금융사들이 글로벌금융위기를 초래하고, 납세자의 돈으로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받았는데도 경영자들은 오히려 금융위기 이전보다 많은 보너스를 챙겼다는 사실입니다. 다수 미국인들이 9%가 넘는 실업률 속에 집을 잃기도 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과 대조적인 현실이죠. 이런 탐욕을 규제하기 위한 오바마정부의 금융개혁은 공화당과 월가의 로비에 막혀 있는 상황이고요.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확실하게 월가를 규제하고,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정책을 펴라는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시위현장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이 외에도 대학등록금경감, 의료보험 확충, 주택문제 해결, 지구온난화 대응, 핵발전 중단, 아프간 전쟁중단 등 가지각색 구호가 등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위 참여자도 처음엔 젊은층 위주였는데 중년층과 고령층도 가세하고,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 등도 동참하면서 더욱 요구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모습입니다. 

오바마 대통령 “시위대 힘을 빌려 금융개혁 이루겠다”

김: 월가점령 시위대에 대해 미국 정치권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제: 우선 오바마 대통령은 공감과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시위대는 월가에 대한 규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금융개혁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금융개혁과 일자리창출 법안 등에 공화당이 협조를 안 해주는 상황에서 시위대가 대중적 압박을 통해 우군이 돼 줄 것을 기대하는 모습입니다. 반면 공화당은 시위에 비판적입니다. 에릭 캔터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시위대가 폭도로 변질되면서 미국을 양분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공화당 대선 주자 중 한명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시위대가 계급투쟁에 나섰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도 “월가의 금융인을 몰아내면 누가 시 공무원과 청소부들에게 월급을 주겠는가”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시위대는 이런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과 오바마 정부에 대해서도 불신을 표하면서 기성정치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김: 미국 언론은 이들의 시위를 어떻게 다루고 있나요.

제: 주류언론들이 초기엔 “시위대가 명확한 목표도 없고, 뚜렷한 주장도 없다”며 폄하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조직력 없는 감정적 표출에 불과하다, 일회적 이벤트에 그칠 것이다 하는 분석도 나왔고요. 그런데 시민들이 시위대에 물과 음식 등을 갖다 주는 등 동조하고, 이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보고 당황하면서 새삼스럽게 정밀분석에 나서는 모습입니다. 진보적 신문인 뉴욕타임스 등은 시위대의 움직임과 주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고 월스트리트저널 등 보수적인 매체들은 여전히 회의적인 논조입니다. 그런데 시위대는 전직 기자들이 참여해서 ‘아큐파이드 월스트리트 저널(점령된 월가신문)’이라는 자체 신문을 몇 만부 씩 찍어 배포하고 있습니다.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데, 기성언론을 믿지 않는다, 의존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보입니다. 

김: 전문가들은 월가점령 시위에 대해 어떤 평가와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까. 상당히 큰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도 있던데요.

제: 대체로 청년실업자 등 경제적 소외계층이 금융위기를 거치며 겪어온 좌절과 박탈감에 월가의 사그라지지 않는 탐욕이 기름을 끼얹었다는 분석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폴 크루그만 프린스턴대 교수는 평소 저술 등을 통해서 “신자유주의적 감세, 복지축소, 노동탄압의 결과 미국의 소득불균형이 대공황 때 이상으로 극심해졌고,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미국인들의 박탈감이 극대화됐다”고 진단했는데요, 이번에 이런 분노가 표출되면서 오바마 정부가 망쳐버린 개혁에 다시 나설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고 진단했습니다. 같은 대학의 코넬 웨스트교수는 중동아프리카 민주화 시위와 비교해서 ‘아랍의 봄’에 이은 ‘뉴욕의 가을’이 오고 있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상위소득 1%가 부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1%대 99%의 계급투쟁이 시작됐다고 의미를 부여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김: 국내에서도 동조시위 움직임이 있다고 하던데요, 언제 어디서 어떤 집회가 예정돼 있나요.

제: 월가점령시위대의 ‘함께 점령하자’ 사이트를 보면 오는 15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과 부산역 앞에서 시위하자는 제안이 올라와 있다고 합니다. 금융소비자협회와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주축이 되고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과 금융피해자협회 등이 집회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노동빈민단체들의 연대체인 빈곤사회연대도 ‘1%에 맞선 99%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 내걸고 같은 날 오후 2시 서울역 광장에서 집회한 뒤 명동까지 행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김: 이번 월가점령 시위가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제: 즉각적으로 경제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진 않겠지만 미국의 포함한 각국의 경제정책이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보다 강력하게 개혁되어야 한다는 압력을 정치권에 줄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미 각국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글로벌위기의 원인이자 심화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자증세, 복지강화, 노조보호, 금융권에 대한 규제 강화가 논의돼 왔죠. 그런데 기득권 계층의 저항에 부딪쳐 개혁이 지지부진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시위의 영향으로 개혁이 가속화하는 계기를 맞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불평등해소를 위한 각국의 개혁이 얼마나 속도를 높이느냐는 시위가 얼마나 지속적이고 강력한 결집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하겠습니다. 


*이 기사는 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했습니다. 방송 내용은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10월 12일 다시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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