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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강정 사람들을 범법자로 만드나
[단비발언대] 박경현
2011년 10월 10일 (월) 23:32:16 박경현 기자 ouida1211@gmail.com

   
▲ 박경현 기자
요즘 한국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은 지역은 어디일까? 아마도 ‘평화의 섬’ 제주의 강정마을일 것이다. 인구가 1900명 남짓한 이 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다 이미 50여 명이 사법처리를 당했고 지금도 200여 명이 이런 저런 ‘혐의’로 처벌 절차를 밟고 있다. 주민과 외부활동가가 섞인 숫자이긴 하지만 마을 인구의 10%를 훌쩍 넘는 이들이 강정마을 안에서 범법자가 된 셈이다. 그러나 몸을 던져서라도 마을의 자연을 지키겠다는 이들의 충정은 처절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해군은 강정의 명물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는 등 기지건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사업이었다.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강정마을의 동의는 지난 2007년 4월, 주민 1900여 명 중 고작 87명만이 참가한 마을투표에서 결정됐다. 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일부 주민들이 충분한 공지 없이 서둘러 추진한 투표였다고 한다. 이미 화순과 위미에서 주민 반대로 기지 건설이 무산된 상황이라 정부와 해군은 이를 이용해 재빨리 기지 건설을 강행했다. 뒤늦게 다른 주민 725명이 재투표를 실시했고 94%가 기지건설 반대표를 던졌지만 정부와 해군은 이를 무시했다.

이후 마을 주민은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차갑게 대립했고, 반대 주민들이 환경운동가 등과 함께 몸으로 공사를 막는 과정에서 수많은 충돌과 희생이 빚어졌다. ‘평화의 섬’을 자칭하는 제주, ‘유네스코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뽑히려 애쓰는 제주가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저항하는 주민들을 공권력으로 진압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고발되고 있다.

정부가 국책사업을 졸속으로 추진하다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 게 한 두 번이 아닌데, 왜 이런 한심한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일까? 사업의 필요성을 지역주민에게 설명하고 이견을 조정하는 노력을 생략한 채 어떻게든 빨리 성과를 내려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손해 본 경험이 이미 많은 데도 말이다.  

정부와 해군은 ‘대양 해군’으로서의 전력강화를 위해 제주에 대규모 기지를 반드시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기지가 미 해군을 위한 전략기지로 활용되면서 중국과 군사적 긴장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정부는 해군 기지가 건설되면 대형 크루즈선의 정박 시설도 확충되므로 중국 등에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비판적인 사람들은 중국 측이 미 해군의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군사적 시위라도 한다면 지금까지 오던 중국 관광객들도 발길을 끊을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프랑스 같은 독립적 갈등조정기구 어떨까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생물권보호구역’이자 제주도에서 지정한 ‘절대보전지역’으로 생태적, 문화재적 가치가 빼어난 강정마을을 콘크리트로 뒤덮는 기지건설은 자연파괴 외에도 이처럼 다양한 각도에서 토론과 검증을 요구한다. 그런데도 정부와 해군은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 없이 공사를 강행하면서 선량한 주민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후진국형 횡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느 나라에나 국책사업을 둘러싼 이견과 갈등은 있지만 선진국일수록 주민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중시한다. 1982년 시작된 미국 보스턴의 빅 딕(Big Dig) 프로젝트는 완공에 25년이나 걸렸다. 시의 외곽과 도심을 잇는 지하차도를 건설하려던 이 사업은 지하차도가 지나는 마을 주민의 반대로 오랫동안 공사가 중단됐다. 그러나 보스턴 시는 서두르지 않았다. 환경 승인을 받는 데 약 7년의 시간을 썼고 반대 주민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 그 결과 갈등을 줄이고 타협점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 정부도 빈 국제공항의 제 3활주로 증설계획이 반대에 부딪히자 지난 2000년 전문 갈등조정인을 고용해 지역주민과 지자체, 환경단체 등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그 결과 2005년에 만장일치로 합의를 이끌어내고 공사를 성사시켰다.

프랑스에는 국가공공토론위원회(CNDP)가 정부와 독립적으로 운영되면서 중요한 국책사업 등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상·하원 의원, 환경단체 대표, 갈등관리 전문가 등 각계인사들이 참여해 이해당사자들이 직접 토론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합의를 도출하게 도와준다. 우리도 ‘선진화’니 ‘국격’이니 말로만 떠들 게 아니라 이런 제도와 관행을 먼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속전속결’을 노리다 엄청난 갈등 비용을 낳고, 국민을 범법자로 만들고, 세계적으로 망신당하는 일은 이제 그만 되풀이할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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