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한끼, 맘 한끼] ⑲ ‘당신께 드리는 한 상’ 그룹 나눔

▲ 9회차 수업에서 파트너를 위한 한 상을 클레이 미니어처로 만들었습니다. Ⓒ 이현지

상대를 위하는 마음에 하는 위로나 조언이 도리어 상처를 줄 때가 있습니다. ‘너는 틀렸으니 내 말대로 바뀌어야 해’ 같은 생각이 내포한 말은 듣기 싫은 잔소리가 될 수밖에 없어요. 윤대현 작가는 그의 저서 <잠깐 머리 좀 식히고 오겠습니다>에서 위로 혹은 조언이란 명분으로 폭력적일 수 있는 강한 메시지를 들으면 “심리적 독립성이 훼손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상대에게 필요한, 딱 알맞은 것을 주고 싶을 때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말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요?

<몸 한끼, 맘 한끼> 아홉 번째 시간에는 ‘당신께 드리는 한 상’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스트레스 상황과 그때 일어나는 나의 감정을 스스로 진단하여 글로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진단을 바탕으로 두 명씩 짝을 지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상대방 이야기를 잘 들은 뒤 오로지 그만을 위한 한 상 차림을 클레이 미니어처로 만들었습니다. 재료와 조리법, 효능을 적어 미니어처 한 상과 함께 선물하였지요.

▲ 불안한 취업준비생 수빈 님은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 한 상 차림을 받았습니다. Ⓒ 이현지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 위에 마늘과 양파, 김치가 올라와 있네요. 쌀밥 한 그릇과 숟가락 젓가락도 보입니다. 수빈 님이 은하 님에게 받은 작품입니다. 수빈 님은 스물일곱 살 취업준비생인데요. 구직이 어려워 심한 압박감을 받고 있어요. 스스로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이라고 말하는 수빈 님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취업이 잘되지 않아 ‘불안감’ ‘답답함’ ‘갑갑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은하 님은 수빈 님에게 ‘아직 익지 않은, 익어가는 고기’를 차려주었습니다. 작품 제목은 <힘내라 취준생>입니다. 은하 님은 주머니가 가벼운 취준생이 마음은 가볍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속 든든하게 고기를 먹고 힘을 내서 취업준비 잘하길 바란다”며 작품 의도를 소개했습니다.

“이 고기가 익어가는 것처럼 수빈 님도 맛있게 잘 익어갔으면 좋겠어요. 하하하, 웰던으로요.”

다 익은 고기가 아니라 아직 색이 붉은 고기를 만든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익어가는 고기는 우리에게 기대감을 주죠. <힘내라 취준생> 밥상은 수빈 님의 현재가 구워지고 있는 고기처럼 즐겁고 설레는 삶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주변에 취업 준비에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친구가 있다면, 마늘과 양파를 올린 불판에 지글지글 삼겹살을 구워주며 ‘너는 맛있게 잘 익어가는 중이야’라고 이야기해주면 어떨까요?

▲ 밤율 님이 지현 님만을 위한 한 끼를 만들고 있습니다. Ⓒ 이현지
▲ 지현 님이 선물 받은 새우볶음밥과 토마토계란볶음입니다. Ⓒ 이현지

지현 님은 최근 타인에게 존중과 배려를 받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치과에서 치료를 받고 결제를 하려는데 먼저 안내받은 비용보다 10만 원이나 더 나온 거예요. 그 이유에 관해 제대로 된 설명도 듣지 못했습니다. 다음 치과 진료 날에는 시간에 맞춰 병원을 방문했는데 의사가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헛걸음을 하기도 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겨우 시간을 낸 건데 말이죠. 별것 아닌 일일 수 있으나 사람들에게 작은 존중도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감정이 많이 상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밤율 님이 만든 음식은 새우볶음밥과 토마토계란볶음입니다. 새우볶음밥은 배려의 상징입니다. 밤율 님은 새우볶음밥을 먹을 때면 몇 마리 안 되는 새우를 골라 동생 그릇에 올려주곤 하거든요. 상대를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 바로 새우볶음밥 속에 녹아 있는 거예요. 큼지막한 새우가 듬뿍 든 새우볶음밥을 먹고 지현 님이 위로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작품에 잘 드러났네요.

토마토계란볶음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밤율 님은 토마토계란볶음을 만들며 실패한 적이 많다고 하는데요. 레시피대로 정확히 시간에 맞춰 요리하지 않으면 맛이 이상해진다고 하네요. 규칙대로 명료하게 만들어야 하는 음식인 토마토계란볶음에는 정확함을 바탕으로 한 존중이 깃들어 있습니다. 토마토계란볶음을 먹으면 명료하지 못한 일 처리로 상처받은 마음에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든든하게 속을 채워주는 공감일지 모릅니다. 오롯이 상대만을 위해 만든 섬세한 존중과 배려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위로와 조언은 언어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지요. ‘당신께 드리는 한 상’처럼 밥을 한 끼 차려주는 방법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흥얼거리는 노래가 될 수도 있고 짤막한 시 구절이 될 수도 있죠. 자신만의 방식으로 힘들어하는 이에게 꼭 알맞은 ‘한 상’ 선물해보세요. 딱딱하게 굳은 그의 마음이 순식간에 말랑말랑 풀릴 거예요.


미술치유 프로그램인 [몸 한끼, 맘 한끼]를 진행하는 이현지 <미로우미디어> 대표는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재학하면서 사단법인 <단비뉴스> 영상부장으로 일했으며 졸업 후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했습니다. 미술과 영상, 글쓰기를 결합하는 컨셉트의 <미로우미디어>는 서울시의 도농연결망 '상생상회' 출범에 기여했고 <단비뉴스>에는 [여기에 압축풀기]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편집자)

편집: 김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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