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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삭 속은’ 만큼 치유한 제주의 숲
[맛있는 집 재밌는 곳] 카멜레존 ⑫ 서귀포 치유의 숲
2020년 02월 27일 (목) 16:45:20 오수진 기자 rainmaker-sj@daum.net

제주도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크게 세 띠로 둘러싸인 섬이다. 해안선을 따라 섬을 도는 해안일주도로(지방도 1132호), 그 안쪽으로 해발 200~400m 중턱을 도는 중산간도로(지방도 1136호), 섬의 가장 안쪽 한라산을 둘러싸고 도는 지방도(1115, 1139, 1131호)가 세 바퀴 환상일주도로를 형성한다.

해안일주도로는 해안선을 따라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를 거쳐 다시 제주시로 돌아오는 177.8km 최외곽도로다. 일제가 식민지화 수단으로 건설해 해방 후 단계적으로 전 구간이 완성됐다. 애초 국도12호선이라 불렸으나 제주도가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지방도로 바뀌었다.

   
▲ 제주도 일주도로와 서귀포 치유의 숲. 치유의 숲은 녹색으로 표시된 지방도 안에 있다. © 오수진

제2우회도로라 불리는 중산간도로는 제주시 아라동에서 한라산 중산간지역을 거쳐 다시 아라동으로 돌아오는 176.7km 길이다. 해안일주도로가 해변을 따라 발달한 취락들의 생활권 연결도로라면, 중산간도로는 한라산 중턱의 황무지를 개발하기 위한 산업도로다. 한라산 정상에 근접해 있는 제일 안쪽 일주도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폭력배들을 동원해 건설한 역사가 있어 ‘5.16도로’라 불리기도 했다.

목장과 농장이 ‘치유의 숲’으로

제주도의 주요 도시나 취락은 해안일주도로를 따라 발달해 있으며 중산간도로 위쪽은 농장이나 목장, 산업시설 등이 들어서 있다. 제일 안쪽 일주도로 위쪽은 한라산 산록으로 사람이 거의 살지 않은 숲 지대이다. 지금은 깊은 산중이지만 이곳에도 사람이 산 흔적이 남아 있다. 서귀포시 호근동 산4번지 일대 ‘서귀포 치유의 숲’도 그중 하나다. 옛날 목장과 농장을 일구던 사람들이 1960년대 전후에 다 중산간지역 밑으로 내려오고 지금은 숲이 우거져 사람들에게 치유의 공간을 제공한다.

   
▲ 제주 서귀포시 호근동 ‘서귀포 치유의 숲’ 관리사무소와 입구. © 오수진

중산간도로를 타고 서귀포시 동흥동 주민센터 사거리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3km쯤 올라가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지방도 1115호선을 만난다. 동흥동 솔오름 전망대에서 로터리를 돌아 서쪽으로 3km쯤 가면 ‘서귀포 치유의 숲’ 안내판이 보인다. 겉보기로는 여느 자연휴양림과 다를 바가 없지만, 숲해설사를 따라 숲안으로 들어서면 제주 사람들의 삶과 역사, 자연에 관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폭삭 속았수다.”

예약된 시간에 나타난 숲해설사가 던진 첫 마디가 관람객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아주 좋은 곳이라 기대하고 왔는데 ‘폭삭 속았다’는 뜻인가?

“놀랐지요? 저는 서귀포시 호근동에 사는 마을 숲해설사입니다. ‘속았수다’는 제주어로 ‘수고했다’는 말입니다. ‘폭삭’은 ‘아주’ ‘많이’라는 뜻으로, ‘아주 수고하셨다’는 말이 됩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 서귀포 치유의 숲 안내도. © 오수진

축구장 240개 넓이에 ‘치유의 숲길’ 11개

서귀포 치유의 숲은 서귀포시 호근동 주민들이 조상 대대로 가꾸어 온 숲을 지난 2016년 서귀포시에 기증하면서 만들어졌다. 서귀포시가 숲속에 산책로를 만들고 정비해 ‘서귀포 치유의 숲’으로 문을 열었다. 한라산 중턱 약 175만㎡(53만평), 축구장 240개 크기 숲 속에는 11개 치유의 길이 열려 있다. ‘가멍 오멍 숲길’ ‘쉬멍 치유숲길’ ‘가베또롱 치유숲길’ ‘벤조롱 치유숲길’ ‘숨비소리 치유숲길’ ‘놀멍 치유숲길’ ‘오고생이 치유숲길’ 등 모두 제주어로 이름 붙여진 길이다. 길 이름에 있는 ‘멍’은 ‘~면서’라는 뜻의 제주어로 ‘가멍 오멍’은 ‘가면서 오면서’, ‘쉬멍’은 ‘쉬면서’, ‘놀멍’은 ‘놀면서’라는 뜻이다. 서귀포 치유의 숲은 산림청이 지난 2017년 전국의 ‘아름다운 숲’ 53곳을 대상으로 심사평가한 결과 ‘대상’을 받았다.

지금은 사람이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숲이 우거졌지만, 과거에는 제주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말을 기르던 곳이라고 해설사는 설명했다. 숲 곳곳에 제주사람들 삶의 흔적이 배어 있다.

   
▲ 큰 길 옆 숲속으로 이어지는 탐방로. 보도가 설치돼 있어 걷기에 불편이 없다. © 오수진

탐방코스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비포장도로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난 좁은 산책로를 따라 가도록 돼 있다. 해설사는 숲속으로 들어가면서 양쪽에 담장이 둘러쳐진 작은 골목길에 관한 설명부터 시작했다.

집으로 들어가는 올레가 굽은 까닭

“원래 이곳에는 집이 있었던 곳이에요. 집으로 들어가는 작은 골목을 제주에서는 ‘올레’라고 합니다. 올레길이 거기서 유래한 거지요. 그런데 잘 보시면 올레가 구부정하게 S자 형태로 굽은 걸 알 수 있지요. 집으로 들어가는 길을 똑바로 내지 않고 왜 이렇게 구부정하게 해 놓았을까요?”

   
▲ 집터가 있었던 곳으로 들어가는 올레. 양쪽으로 돌담이 쳐져 있고 골목길이 구부정하게 S자로 굽어 있다. © 오수진

세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제주가 바람이 많이 부는 섬이라 골목길을 통해 집으로 바람이 바로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둘째는 여러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제주 사람들이 집에 해로운 잡신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는 이유다. 마지막으로는 손님이나 낯선 사람이 왔을 때 집안이 한눈에 들여다 보이지 않게 하려는 의도다.

올레에서 나오면 알아보기 힘든 큰길의 흔적이 있다. 양쪽으로 돌담을 쌓아 둔 것으로 겨우 식별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로 좀 평탄하게 다듬어 놓은 곳이 큰길이라고 한다. 농사를 짓기 위해 필요한 물건이나 농사지은 곡물을 손수레에 싣고 오르내리던 곳이다. 집이 있었던 흔적 근처에는 표고버섯을 기르는 데 쓰던 서어나무들이 있다. 표고버섯은 자생하기도 하지만 재배하는 곳이 많았다.

   
▲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는 표고버섯을 재배한다. © 오수진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곳 표고버섯 재배지에는 큰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서어나무를 베어 우물에 하루 종일 담가 두었다가 꺼내 망치로 두들겨서 서어나무 주변에 세워 두면 6월 장마나 가을장마가 끝난 뒤에 자연스럽게 표고가 자란다. 표고버섯은 지금 누구나 맛볼 수 있지만 50여년 전만 해도 아주 귀한 식재료여서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했다.

집 주위에 동백 심어 기름으로 불 밝혀

제주에서는 집 주변에 반드시 동백나무를 심었다. 겨울에 동백꽃이 피었다 지고 나면 맺는 열매를 압착해서 기름을 짰다. 동백기름은 식용과 약용으로 사용했는데, 특히 폐병에 좋은 약재였다. 이곳에서는 부녀자들 머리기름으로 많이 사용됐다. 석유가 없어 호롱불을 밝힐 수 없었던 시절에는 접시에 동백기름을 붓고 부싯돌로 불을 밝혔다.

이곳에는 동백나무 두 그루의 나무줄기가 중간쯤에서 서로 붙어 연결된 희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두 나무를 이어주는 가지는 왼쪽이 높고 두텁고 오른쪽이 낮고 가늘게 생겼다. 이 대목에서 해설사의 퀴즈가 출제된다.

“두 나무를 연결하고 있는 가지는 어느 나무에서 나와서 이어진 것일까요?”

   
▲ 두 그루 동백나무가 가지로 연결돼 있는 모습. 오른쪽 아래가 가늘고 왼쪽 위가 굵어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 오수진

관람객들 답변은 두 갈래로 나뉜다. 가지가 두터운 왼쪽 나무에서 나와서 아래로 연결됐을 것이란 주장과 오른쪽 나무에서 나와 위로 연결됐을 것이란 주장이다. 둘 다 모순처럼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두터운 쪽에서 나와서 아래로 연결됐다고 하면 가지가 아래로 자랐다는 이야기가 돼 말이 안 되는 것 같고, 아래쪽에서 나와 위로 연결됐다면 나중에 자란 위쪽이 더 두터운 것이 이해가 안 된다.

“정답은 오른쪽 아래서 왼쪽 위로 자라 연결됐다는 겁니다. 나무나 식물은 해를 바라보고 자랍니다. 광합성을 해서 영양분을 얻기 위해서지요. 그래서 태양을 향해 아래서 위로 자라나 두 나무를 연결시킨 것입니다. 위쪽이 더 두터운 것은 아래서 자라 올라온 가지가 왼쪽 나무에 접목이 되면서 굵어진 겁니다. 어디서나 접목을 한 부분은 다른 부위보다 더 두터워집니다. 이처럼 두 나무가 가지로 연결된 것을 열지현상이라고 합니다.”

   
▲ 서귀포 치유의 숲 탐방로에서 올려다본 하늘. © 오수진

칡나무와 등나무, 마사줄나무…

‘갈등(葛藤)’의 흔적도 남아 있다. 집터에서 100여m 올라가면 몸통이 꽈배기처럼 패인 물푸레나무가 서있다. 칡나무가 물푸레나무를 감아 올라가면서 압박한 흔적이다. 칡은 감아 올라가는 나무 위로 올라가 햇볕을 가려 나무를 말라 죽게 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여기 서있는 물푸레나무는 칡이 나무를 감아 올라가면서 몸통의 절반 이상을 파고 들어가 사람도 저 정도로 몸을 졸리면 살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 서귀포 치유의 숲 탐방로 근처에 있는 물푸레나무. 칡넝쿨에 감겨 패인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왼쪽). 큰 나무 오른쪽으로 가늘게 자라 올라가고 있는 마사줄나무(오른쪽). © 오수진

“칡넝쿨은 나무를 타고 올라갈 때 반드시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습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갑니다. 그래서 이 두 나무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감아 올라가면 얽히고 설켜 떼 낼 수도 없고 아주 복잡하게 되지요. 그래서 옛사람들이 사람 사이에 얽히고 설킨 관계를 칡(葛)과 등(藤)나무가 얽힌 모양 같다 해서 ‘갈등(葛藤)’이라 표현했다고 하지요.”

물푸레나무는 나뭇가지나 잎을 맑은 물에 담그면 물색갈이 파랗게 변한다고 해서 물푸레나무라고 부른다. 파랗게 변한 물을 눈에 넣고 씻어 주면 눈이 맑아진다고 한다. 해설사의 과학적이면서 사회학적인 설명이 머리속에 쏙쏙 들어온다. 숲속 세상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어진다.

조금 더 올라가면 다른 나무 곁에 기대서 자라 올라간 칡처럼 보이는 나무가 있다. ‘마사줄나무’다. 마사줄나무는 칡나무와 달리 다른 나무에 올라가지는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칡은 보는 족족 제거하지만, 마사줄나무는 그대로 둔다. 옛사람들은 농작물 등을 묶을 때 쓰는 끈을 마사줄나무로 만들었는데, 마사줄나무로 만든 끈을 ‘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줄이 사람들 사는 세상으로 넘어와 출세를 위해 강한 자에게 선을 대는 것을 줄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게 해설사의 설명이다.

숲속에 묻혀 있는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듣고 보면서 올라가다 보면 어느덧 해발 500m 근처에 이른다. 해설사는 잡초 더미 가운데 빨갛게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 열매 하나를 가리키며 관람객들을 320년 전 구중궁궐로 끌고 들어간다.

   
▲ 뿌리가 독약으로 사용되는 천남성의 열매. © 오수진

장희빈이 받은 사약의 원료

“여러분, 장희빈 잘 아시지요. 조선시대 역관의 딸로 궁중 나인에서 숙종의 총애를 받고 빈으로 책봉됐다가 왕비까지 올랐던 인물이지요. 남인과 서인간 당쟁과 궁중 비빈들간 암투로 부침을 거듭하다 인현왕후 민씨가 복위되자 왕후 자리에서 강등돼 장희빈이 됩니다. 장희빈이 인현왕후가 죽기 전 인형을 만들어 저주한 것이 들통나 숙종한테 사약(賜藥)을 받고 죽었는데, 그때 왕이 내린 사약의 원료가 바로 이 식물의 뿌리입니다.”

해설사 설명을 듣고 나니 빨갛게 예뻐 보이던 꽃열매가 무섭고 섬뜩해진다. ‘천남성’이란 꽃으로, 제주도뿐 아니라 우리나라 곳곳의 숲속 나무 밑이나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는 다년생 식물이다. 꽃은 깔때기 모양으로 피는데 녹색바탕에 하얀 선이 있고 꽃잎 끝은 안으로 휘어 있다. 열매는 10~11월경에 붉은 색으로 포도송이처럼 열린다. 천남성의 뿌리가 약용으로 쓰이는 유독성 식물인데, 예전에는 사약의 재료로도 쓰였다. 뿌리는 약제로 잘 조제해서 먹으면 혈액순환에 좋다고 한다. ‘약은 독이고 독은 약’이라는 것이 해설사의 설명이다.

   
▲ 하늘 높이 죽죽 뻗어 올라간 편백나무로 둘러싸인 쉼터. © 오수진

산책로를 따라 더 올라가면 하늘로 죽죽 뻗어 올라간 키 큰 편백나무들로 둘러싸인 쉼터가 나온다. 편백나무 나무 아래 침상과 벤치가 여러 개 놓여 있고 사람들이 드러누워 삼림욕을 즐긴다. 족히 15~20m는 돼 보이는 편백나무들은 60년 전에 심어진 것들이다. 편백나무는 박테리아나 곰팡이,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피톤치드(phytoncide)라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질을 뿜어 낸다. ‘식물의’를 뜻하는 ‘phyton’과 ‘죽이다’를 뜻하는 ‘cide’가 결합된 합성어다. 공기를 정화해 주고 뇌신경을 안정시켜 마음을 맑고 가볍게 해주는 치유효과가 탁월하다.

편백나무 숲에는 외관상 크기나 모양으로 잘 구분이 되지 않는 삼나무들도 여기저기 서있다.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구분하는 방법은 잎을 보면 알 수 있다. 편백나무는 잎이 짧고 납작하게 생긴 반면, 삼나무는 잎이 길고 뾰쪽뾰쪽하다.

   
▲ 왼쪽이 편백나무 잎이고 오른쪽이 삼나무 잎이다. © 오수진

편백나무가 주로 치유용으로 많이 활용된다면 삼나무는 제주 사람들의 생업과 관련이 깊다. 제주 해안가에서는 감귤을 재배할 때 밭 둘레에 돌담을 쌓고 그 안에 삼나무를 심어 방풍림 구실을 하도록 했다. 50여년 전만 해도 귤나무는 ‘대학나무’라 불렸는데, 귤나무 한 그루면 자녀를 대학까지 졸업시킨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감귤재배 방식이 달라지면서 해안가 귤밭에서는 삼나무가 다 사라졌다. 감귤 소비량이 늘어나 귤의 품질이 맛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면서다. 단맛을 내기 위해 일조량을 늘리려고, ‘방풍림’인 삼나무들을 다 베어버린 것이다.

이 나무 이름은 ‘이나무’

“이 나무 이름은 무엇일까요?”

   
▲ 서귀포 치유의 숲 해설사가 ‘이나무’를 설명하고 있다. © 오수진

해설사가 이름 모를 나무 한 그루를 짚고 서서 관람객들에게 퀴즈를 낸다. 말이나 소들이 등이나 허리 등 가려운 곳을 갖다 대고 비비면서 목욕을 하는 나무라며 ‘이 나무 이름이 무어냐’고 묻는다. 관람객들이 ‘목욕나무’ ‘소나무’ ‘말나무’ 등 여러가지 이름을 대보지만 정답이 나오지 않는다. 해설사가 “이 나무 이름이 무어냐”며 “내가 말하는 중에 나무이름이 들어 있다”고 하자, 잠시 후 한 관람객이 “이나무”라고 하자 “정답”이라고 한다.

서귀포 치유의 숲에는 제주 사람들의 삶이 묻혀 있고, 그들이 농사를 짓던 흔적은 돌담으로 남아 있다.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일반인은 구분할 수 없는 여러 용도의 돌담들이 자주 보이는데, 이번에는 돌담이 계단식으로 층층이 이어져 있는 곳을 만난다.

“여기는 농장이 있던 곳입니다. 산간 황무지를 개간해서 평탄하게 고르고 돌담으로 계단을 쌓아 경작을 했습니다. 이런 계단식 밭을 제주어로 ‘살레왓’이라 합니다. ‘살레’는 부엌에 있는 찬장을 말하는 것이고 ‘왓’은 밭인데, 찬장이 몇 개 층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본떠 계단식 밭을 ‘살레왓’이라고 부릅니다.”

   
▲ 서귀포 치유의 숲에 있는 ‘살레왓’의 흔적. 오른쪽으로 계단식 밭은 만들기 위해 쌓아 올린 돌담이 보인다. © 오수진

살레왓에서 계단식으로 메밀 농사

해안가 평탄한 곳에도 땅이 많은데 왜 이렇게 높은 산중에까지 올라와 농사를 지은 것일 까? 해설사는 “옛날에는 거름이나 퇴비, 비료 등이 없어 농사를 한 번 짓고 나면 지력이 떨어져 2~3년은 휴경을 해야 했다”며 “해안 평지가 휴경하는 동안 산간지역으로 올라와 농사를 지었다”고 설명했다. 험한 산간으로 들어와 맨손으로 돌을 캐내고 밭을 일구고 비바람에 밭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하려고 계단식으로 돌담을 쌓아 경작했다는 얘기다. 살레왓에서는 주로 메밀을 경작했는데, 한때는 제주도 메밀이 전국 생산량의 36%나 됐다. 당시에는 메밀이 주식이고 쌀밥은 구경도 하기 힘들어 쌀밥을 ‘고운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너무 맛있어 씹지도 않고 그냥 목구멍으로 녹아 들 듯 넘어갔다는 것이다.

   
▲ 서귀포 치유의 숲 탐방로를 걷다 보면 가끔 고라니를 만나기도 한다. © 오수진

이곳에서는 농사와 함께 말도 길렀다. 말도 몇 마리 정도가 아니라 대규모 목장을 만들어 수백, 수천 마리 말을 기르던 흔적이 남아 있다. 탐방코스 막바지에 좁은 숲속 산책로에서 큰길로 나오자 숲을 옆으로 가로지르는 긴 돌담이 나타난다.

“여기는 말을 기르던 목장이 있던 곳이에요. 숲속으로 길게 이어진 돌담을 ‘탯담’으로 부르는데, ‘태’는 목장이란 뜻입니다.”

   
▲ 목장에서 사육하는 말들이 한라산으로 달아나지 못하게 막아 놓은 탯담. © 오수진

조선 세종 11년에 조정에서 제주 전역을 나라가 관리하는 목장으로 만든다는 방침을 정하고 10개 구역으로 나누어 목장을 만들었는데 이곳이 아홉 번째 목장이었다고 한다. 탯담은 목장의 경계를 표시하면서 말들이 한라산 쪽으로 달아나지 못하게 막는 울타리 구실을 했다. 탯담은 방화벽 기능도 했다. 해마다 음력 섣달이 되면 목장지 전체에 불을 질러 진드기 등을 태워 없애고 새봄이 되면 불탄 땅에서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 말들이 아주 잘 먹었다는 것이다.

만리장성 길이 10배 넘는 흑룡말

이처럼 메밀농사를 짓고 말을 기르던 곳이 지난 1960년대 박정희의 제3공화국이 등장하면서 사람이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우거진 숲으로 변했다. 박정희 정부가 산림녹화와 자연보호를 부르짖으며 과거 농장과 목장이 있던 곳들에서 방화와 경작, 목축을 금지하고 나무를 심어 숲으로 변했다. 그래서 지금 남아 있는 탯담을 기준으로 위로는 자생한 나무나 식물들이 많고 아래는 심은 나무들이 많다.

제주에는 탯담, 밭담 등 돌담들이 즐비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검은색 현무암 돌담들이 굽이굽이 이어져 있는 것이 흑룡이 꿈틀거리는 것 같다 해서 ‘흑룡말’이라 부른다. 제주 전역의 돌담 길이를 모두 합치면 만리장성의 10배가 넘는다.

한 시간 남짓, 숲해설사를 따라 산책로를 탐방하고 나면 치유는 물론이고 제주 역사를 꿰뚫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고 뿌듯해진다. 제주 사람들의 삶과 함께 그들이 먹고 살아온 맛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있다.

   
▲ 서귀포 치유의 숲 관리사무소에 붙어있는 차롱도시락 안내문. © 오수진

탐방 3일전에 20명 이상 예약을 하면 ‘차롱 도시락’을 맛볼 수 있다. 차롱은 ‘구덕’과 함께 제주 사람들이 애용하던 대나무 용기다. ‘구덕’이 물항아리나 물건 등을 담아 운반할 때 주로 사용했다면 ‘차롱’은 밥이나 떡 고기 등을 담아 두는 찬합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차롱에 버섯꼬치, 주먹밥, 귤 등을 담아 만든 도시락이다.


카멜레존(Chameleon+Zone)은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춰 공간의 용도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제 밖에 나가서 여가시간을 보내거나 쇼핑을 할 때도 서비스나 물건 구매뿐 아니라 만들기 체험이나 티타임 등을 즐기려 한다. 카멜레존은 협업, 체험, 재생, 개방, 공유 등을 통해 본래의 공간 기능을 확장하고 전환한다. [맛있는 집 재밌는 곳]에 카멜레존을 신설한다. (편집자)

편집 : 정소희 PD

[오수진 기자]
단비뉴스 청년부 오수진입니다.
어둠은 이해 못할 빛이 있다는 걸 안다. 희망은 그 작은 불빛 하나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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