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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의도’는 ‘착한 결과’로 이어질까?
[TV를 보니] EBS ‘별일 없이 산다’
2020년 02월 10일 (월) 22:48:19 양안선 PD yasun2002@gmail.com

2019년 EBS를 빛낸 프로그램은 무엇일까? EBS가 낳은 최고의 스타, 10살 펭귄 ‘펭수’의 성장기를 담은 <자이언트 펭TV>다. <자이언트 펭TV>는 ‘2019 EBS 시청자상’ 투표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빛나는 1위와 경합한 세 프로그램이 있다: <별일 없이 산다> <건축탐구-집> <발견의 기쁨 동네책방>. 이 프로그램들은 2019 EBS 시청자위원회가 선정한 펭수의 경쟁자였다.

그중 <별일 없이 산다>는 지난 9월 시작한 ‘국내 최초 배리어프리 토크쇼’다. 프로그램 안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출연자들은 모두 같은 이웃이다. 서로를 ‘이웃님’이라 부르며 이들은 허물없이 소통한다. 프로그램 소개에도 나와 있듯이, <별일 없이 산다>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꾼다.

   
▲ 작년 9월 23일 첫 방송한 EBS <별일 없이 산다>는 국내 최초 배리어프리 토크쇼다. Ⓒ EBS

편견 없는 세상을 꿈꾸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바람은 오로지 하나다. 모두 별일 없이 잘 사는 것. 사회적인 주제부터 개인적인 인생 고민까지 장벽 없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대화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힌다.’

‘착한’ 기획의도의 일부다. 기획의도에 밝힌 대로 <별일 없이 산다>의 매회 토크 주제는 장애와 상관없다. 외모 지상주의, 문화생활, 소통 등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주제가 방송됐다. 일상 주제를 다루기에 자연스럽게 ‘이웃님’들의 일상생활 이야기가 나온다.

13회 문화생활 편에서 문화생활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절단 장애를 가지고 있는 신명진 사서는 영화광이지만, 아이가 생기자 영화관에 가기 힘들어졌다고 이야기한다. 게임으로 문화생활이 바뀌었고, 가족들이 잠든 새벽에 게임을 한다는 그의 일상 이야기는 장애인이 아니라 그저 유부남의 모습을 보여준다.

회차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이웃님’은 다양한 장애와 직업을 가졌다. 이들은 회차 주제와 연결된다. 결혼 편에는 청각장애를 지닌 웨딩플래너가 등장하고, 문화생활 편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피아니스트이자 바이올리니스트가 출연하는 식이다. 각자 자리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이웃님’들은 장애인의 다양한 생활을 보여주고, 토크를 풍성하게 한다.

‘착한 의도’, 그러나 어쩌면 ‘착하지 않은 결과’

장점이 있는데도 한 발짝 떨어져 <별일 없이 산다>를 보면 아쉽다. ‘배리어프리 토크쇼’를 표방해 오히려 장벽이 도드라진다. 기획의도는 착하지만 구체적인 전개 과정에서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연자가 자신의 장애를 소개하고, 장애인 패널로 등장하는 것부터 문제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들으면 더욱 코끼리가 생각난다.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사람은 생각의 기본 틀, 곧 ‘프레임’에 따라 인식한다. 기존 프레임을 부정할수록 프레임은 더욱 강력해진다. 프레임을 바꾸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즉 새로운 프레임이 등장해야 한다.

과거 TV 프로그램에서 장애인은 시혜의 대상, 혹은 장애를 극복한 영웅이었다. 이런 프레임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모두 같다’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바꾸려 했지만, 장애인 이웃과 비장애인 이웃으로 ‘구분 짓기’한 지점에서 새로운 프레임 전환은 실패했다. 토크 주제에서는 일상화를 시도했지만, 패널 선정에서는 미흡했다. 장애를 지녔거나, 장애 관련 활동을 한 비장애인들이 주로 출연했기 때문이다. 장애와 관련 없는 인물은 조우종 아나운서와 가수 이상미 등 전체 출연자 8명 중 2~3명에 불과하다.

<별일 없이 산다> 일부에서는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봤다. 첫 회 MC가 등장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시각장애를 가진 이동우 MC는 지팡이 없이 조우종 아나운서에게 기댄 채 등장한다. 조 아나운서가 부축하고 설명을 했지만, 이동우 MC는 의자에 살짝 부딪힌다. 조 아나운서가 자리를 잘못 안내했으나, 그가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 이동우 MC는 잘못된 자리로 간다. 2014년 SBS <힐링캠프>와 EBS <만나고 싶습니다>에 출연했을 때, 이 씨 손에는 흰 지팡이가 있었다. 흰 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이 길을 찾고 활동하는 데 가장 적합한 도구로, 시각장애인의 자립과 성취를 나타낸다.

현실에서 장애인이 10% 있다면, TV에도 10% 나와야

우리 사회에 장애인이 존재한다면, TV에서도 그들의 존재가 드러나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이들을 그리느냐’다. <별일 없이 산다>가 내세운, ‘모두 같은 이웃’이란 의도를 살리기 위해서는 장애에 특별함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배리어프리 토크쇼’라는 간판도 내려야 한다. ‘배리어프리’가 아닌 토크쇼에 장애를 가진 출연자가 나오는 방식이 적합하다.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여주인공의 친구로 나온 표지수(현쥬니 분)가 그런 사례다.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있지만, 장애는 드라마 서사의 일부가 아니었다. 왜 장애를 갖게 되었는지, 장애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등은 드라마에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여주인공을 속 깊이 이해해주는 친구로 그려졌을 뿐이다.

   
▲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강모연(송혜교 분)의 친구로 나온 표지수는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탄다. Ⓒ KBS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에 따르면 ‘우리’라는 구분 짓기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구분 짓기는 실체적 구분이 아니라, 마음 속 범주에 좌우된다. 장애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닌 그들로 구분 짓기에 ‘시혜적 대상’, ‘영웅’ 등으로 대상화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별일 없이 산다>의 기획 의도는 의미가 있다. ‘모두 같은 이웃’인 우리의 이야기가 혐오와 차별을 없앨 수도 있다. 다만, 모두가 별일 없이 살기 위해서는 기획의도에 걸맞은 전개 방식이 필요하다.


편집 : 김은초 기자

[양안선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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