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야권 서울시장후보 국민참여경선 체험기]

▲ 서울시장 야권대표 선출을 위한 국민참여경선 선거인단 신청을 받던 날(9월29) 조국 교수 트위터 메시지.

“긴급! 서울시장선거 국민참여선거인단 신청자가 현재 1만5천명에 불과합니다. 전화(1688-1003) 또는 인터넷(win2011.or.kr)으로 신청가능하오니, 많이 참여하셔서 경선을 축제로 만듭시다.”

지난달 29일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날린 트윗(트위터 메시지)을 봤다. ‘현재 1만 5천명’이란 부분이 눈에 확 들어왔다. 당황스러웠다. 범야권 단일후보 결정의 40%를 차지하는 참여경선을 위해 3만 명을 모집한다는 뉴스를 들었기 때문에 ‘이러다 경선이 망하는 것 아닌가’라는 걱정이 덜컥 들었다. “경선을 축제로 만들자”는 조 교수의 제안이 나의 시민의식을 자극했다. 

▲ 국민참여경선 선거인단에 선정되었다는 내용의 문자.
29일 오후5시 무렵, 지하철 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1688-1003을 눌러 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지 등을 알려줬다. 수화기 건너편에선 참여해주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본인이 알려준 주소지와 주민등록상의 주소지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 선거인단 자격이 박탈될 수 있다”는 등의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10월 1일, 문자가 하나 날아왔다.
 
“선생님께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참여경선 선거인단에 선정되셨습니다. 경선 투표는 10월 3일(월, 개천절)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장충체육관(지하철 3호선)에서 실시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1688-1003번으로 안내드리겠습니다.”

문자를 받았을 때는 ‘지원자가 적었으니 당연히 뽑혔겠지’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경선 선거인단에 총 6만 384명이 콜센터와 인터넷을 통해 신청했고 이 중 추첨을 통해 3만 명을 뽑았다고 한다.

두 후보에 관한 제대로 된 정보 찾기 어려워

▲ 서울시장 야권대표 선출을 위한 국민참여경선 투표장. ⓒ 미디어몽구 제공

어쨌든 난생 처음 선거인단에 뽑혔으니 각별한 책임감을 갖고 후보들에 대해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신문기사를 읽었다. 먼저 TV토론회를 통해 배심원단이 그들을 평가한다고 했기 때문에 TV토론에 대한 기사를 자세히 찾아봤다. 하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매체들은 박원순 변호사가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대기업으로부터 받았다는 거액의 기부금 등 일부 이슈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박원순, 박영선 두 유력 후보가 어떤 자질과 소신, 정책을 가진 인물인지 기성 언론에서는 충분한 정보를 찾기 어려웠다.

▲ 한 시민이 작가 공지영씨와 '투표 인증샷'을 찍고 있다. ⓒ 미디어몽구 제공
그래서 요즘 인터넷에서 인기 정상을 달리고 있는 ‘나는 꼼수다’를 내려받았다. 박원순, 박영선 후보가 직접 출연한 21회였다. 뛰어난 ‘촉’을 가진 김어준 딴지 총수가 뭔가 확실한 답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과연 소문대로 재미있었다. 방송 내내 웃음을 터뜨렸다. 많은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았다. 두 사람은 각종 의혹에 대해 열심히 해명하느라 막상 왜 자신이 서울시장이 되어야 하는지, 시장이 된 후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이튿날인 2일엔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전화가 여러 통 왔다. 늦은 오후 ‘박원순 캠프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가 “꼭 투표하라”고 부탁했고, 또 다른 사람은 “신분증 가지고 가는 것 잊지 말라”고 말했다. 민주당 정모 의원실이라며 “박영선 의원을 잘 부탁한다”고 권유한 아주머니도 있었다. 왠지 조직을 동원한 느낌이 있었던 민주당 측 전화는 거부감을 주었다. 가장 짜증나는 전화는 'MJ 리서치'라는 곳에서 걸려온 것이었다. 설문조사가 귀찮아 바쁘다며 2번이나 끊었는데 늦은 저녁에 또 전화가 왔다. 
 
더 나은 서울 위한 희망과 설렘으로 가득한 투표장

▲ 투표인증샷을 위해 만들어진 '나는 꼼수다' 팀의 무대. ⓒ 미디어몽구 제공

드디어 선거 당일인 3일. 트위터에서는 아침부터 난리가 났다. 투표장에 가자는 권유, 투표했다고 자랑하는 ‘인증샷’등이 이어졌다. 축제분위기였다. 그러나 현장인 장충체육관에 비하면 약과였다. 오후 4시쯤 도착한 장충체육관은 설렘, 흥분으로 가득했다. 우리의 투표로 조금 더 나은 서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믿음이 느껴졌다. 많은 선거에 참여해 본 것은 아니지만 투표장 분위기가 이렇게 즐겁고 희망적인 것은 확실히 처음이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소풍처럼 나온 가족, 데이트하듯 나온 연인 등 젊고 자발적인 참가자들이 많았다. 물론 나이가 지긋한 분들도 있었지만 투표장에 20·30대의 비중이 그렇게 높은 경우도 처음 봤다.

▲ 정혜아 기자.
결국 국민참여경선은 ‘대박’이 났다. 선거인단 3만 명 중 59.6%, 총 1만7891명이 참여해 예상보다 훨씬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박원순 후보는 현장투표에서 박영선 후보에게 약간 뒤졌지만 TV토론 배심원평가와 국민여론조사 등을 합산해 단일후보로 선출됐다. 기성언론들이 제 몫을 못해주었어도 우리는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방송 등 대안 매체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했고, 소신에 따라 결정을 내렸고, 행동했다. 더 나은 서울, 지금과는 다른 대한민국을 꿈꾸는 이들이 확실히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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